발상의 전환 / 이혜숙
자건거도 못타는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덤빈 건 어느 날 꾼 꿈 때문이었다. 남편의 차로 가족이 놀러 갔는데 갑자기 남편이 아픈 것이었다. 산중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 어쩐 일인지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 없는 내가 급하니까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도 다시 정말 필요하겠다 싶어 ‘유사시 대비책’으로 운전면허를 땄다. 그러다 교통 불편을 감수하고 시골로 들어와 살게 되니 아이들 등하교, 시내 외출 같이 써먹을 일이 생겼다. 하긴 운전면허증이 없었다면 시골에 들어와 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반경 10Km만 뱅뱅 돌다가 용인에서 분당까지 진출하는 데 십 년이 걸렸다. 매주 수요일 강의를 들으러 갈 때마다 버스 정류장까지만 자가용으로 가고 나머지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다보니 지각하기 일쑤였다. 나선 김에 목적지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갈 때는 고마운 자가용이 돌아올 땐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잦아졌다. 강의 후에 몇이 모인 자리에서 한 잔 맥주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우니 자연히 자동차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그래도 대리운전을 한 적은 없었다. 나도 교통이 불편해서 자가 운전으로 나가는데 대리기사가 어떻게 시내까지 나갈지 걱정이 되어 부를 생각을 못했다. 결국 유사시 대비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날은 그가 퇴근 후 데리러 와서 대리운전을 하는 것으로.
어쩌다 내가 남편 대신 운전대를 잡을 때도 있긴 하다. 그가 회사에 차를 놓고 온 다음 날엔 크게 생색을 내면서 출근을 시켜주긴 하는데, 옆에서 어찌나 자상하게 잔소리를 하는지. 나는 되도록 운전은 피하자는 주의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면 나도 그를 위해 교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한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그는 손잡이를 꽉 움켜잡고 평상시보다 열 배나 더 자상해기지 때문에 본인도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피곤하다고 한다.
운전면허 딴 지 십수 년이 지나도 장거리 운전을 해본 적도 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 기어코 그날이 오고 말았다. 서울 친정집에 가서 엄마를 모시고 아산병원에 갔다가 다시 신림동 집에 모셔다 드려야 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남들은 용인에서 서울이 무슨 장거리냐고 하겠지만, 네겐 왕복 100km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친정까진 잘 갔다. 아무려면 조수석에서 졸며 갔어도 무수히 갔던 길인데 그것도 못할까. 그 전날 남편에게 신림동에서 아산병원 가는 길의 약도를 받고 외우다시피 입력해놓았다. 그 길도 남편하고 몇 번 간 길이어서 못 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병원까지도 잘 갔다. 돌아오는 길에 올림픽대로도 잘 들어섰다. 김포공항이라 써 있는 이정표도 따라가다가 국립묘지 쪽으로 나가서 흑석동을 지나 상도동으로…. 길이 그려졌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자신이 대견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한강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우리가 갔던 한강공원 보이지? 여름밤엔 애들 데리고 자구 갔는데.”
“사위가 이모네 식구도 태워 오느라 두 번씩 왕래했잖아.”
“그랬지. 그땐 우리 애들도 어렸는데…”
엄마와 나는 신이 나서 옛이야기에 빠졌다.
그런데 얼마를 달리다보니 국립묘지가 슥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어 63빌딩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판단할 새도 없이 내 차는 마냥 김포공항 쪽으로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새 황금빛 위용을 뽐내며 ‘어서 와’ 하며 팔을 벌리던 63빌딩도 등 뒤로 휙 지나가고 말았다. 자칫 다리를 건넜다간 ‘돌아오지 못할 다리’가 될까봐 함부로 우회전해서 나갈 수도 없었다. 마징가제트를 숨겨 놓았다는 국회의사당 지붕도 갑자기 열릴 것처럼 가까워 보이더니, 금새 뒤로 물러난 풍경이 되고 말았다. 엄마와 비행기를 탈 계획은 애초에 없었는데, 자동차만 신이 나서 제 목적지가 김포공항인 줄 알고 달리고 있으니….
엄마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는 당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했지. 운전도 못하는 애 정신없게 떠들어댔으니….”
차가 달릴수록 엄마의 자책은 강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
“내가 왜 아파서 너를 힘들게 만들었대니?”
그건 별개의 일이라고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눈에 힘을 주느라 입을 열 새가 없었다.
졸음쉼터가 보였다. 양화대교 전인가 그랬다. 도움을 청하려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불통. 겨우 통화가 된 막냇동생은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은 탓에다 한 수 얹어 스마트폰도 없는 것을 두고, 남편 못지않게 자상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누난, 작가라는 사람이 이직도 폴더를 쓰느냐”는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놓고는 어디서든 들어가란다. 정작 그 ‘어디’를 알려주지도 않고 끊는 것이었다.
그래도 싱거운 말에 힘입어 간신히 영동포 쪽으로 들어서는 길을 찾았다. 올림픽대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시내로 들어섰다.
문득 아무데나 세워놓고 대리기사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운전은 음주 때만 부른다는 고정관념이 확 걷히는 순간이었다. 이런 게 ‘발상의 전환’이란 거지? 글을 쓸 땐 써먹지 못한 발상의 전환을 그 순간 하다니. 그래도 ‘익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익숙하게’ 보라고 배운 것이 요긴하게 쓰이니 헛공부는 아니었구나.
그러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나가야 할 길이. 영등포에서 보라매 공원 정문 쪽으로 가서 한 바퀴 돌면 어느 쪽으로 돌든 후문이 나올 것이다. 서울대 병원만 가면 다 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발상의 전환- 실전 편. 그것을 마스터하기 위해 그날 원 없이 장거리를 뛰었다. 엄마가 들어갔다 가라는 것도 마다하고 냅다 우리 집으로 달렸다. 방광이 빵빵했는데도 굳이 집에 와서 화장실로 달려간 것은 왜였을까. 그 생각도 못했다. 뒤늦은 공부에 열중하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