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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러나 마침내 그 커다란 광고풍선이 「풋볼」만큼 적어졌을 때, 망원경을 가진 어떤 사나이가 돌연 부르짖었다.
『저놈이 마침내 올라가 앉았다! 줄이 합해진 그 사이에 마치 그네를 타듯이…… 아 저놈이 웃는다! 양복 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는다! 저 놈 봐! 저런 대담한 놈!……』
사람들 사이에는 거기서 망원경 약탈전이 전개되었다.
이 전대미문의 대곡예사의 공중 비행! 이 소문이 어느 듯 서울 장안의 골목 골목까지 전파되었다. 담 위에 올라간 사람, 지붕 위에 올라간 사람, 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
풍선은 그 이상 더 올라갈 줄을 몰랐으나 바람이 서북쪽으로 이동하는 때문에 얼마 후에는 부청까지 옮아 왔다.
M백화점에서 부청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원체 바람이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삼십분 이상의 시간이 경과 되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푸로펠라」소리가 들리었다.
『앗! 비행기다! 비행기가 떴다!』
그것은 ××일보사의 비행기 ─ 비행기는 「애드바룸」을 중심으로 하고 마치 맴돌듯이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이것은 약 한 시간 후에 배포된 ××일보사의 호외 기사의 한줄거리지만, 그 때 비행기 「떠글라스」를 타고 대공(大突)의 악마 오상억의 심경을 타진코자 나타난 것은 ××일보 사회부장과 그의 부하인 민완기자 정대호였다.
그러나 「푸로펠라」소리에 대화는 불가능이고 다만 풍선의 주위를 돌면서 오상억의 모양을 관찰했을 뿐이었다.
─ 오상억이 앉은 자리는 비교적 편안하였다. 위에서 내려온 이십여 오리의 줄과 밑둥의 줄이 합해진 사이에 몸을 올려놓고 그 어여쁜 부처님과도 같은 얼굴에는 때때로 미친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음이 떠올랐다. 멀리 발밑에 군중을 내려다보고, 자기 코 앞을 스치면서 지나가는 무리들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오후 일곱시, 약 열 시간 밖에 부유력(遊浮力)이 없다는 이 불완전한 광고풍선으로부터 「까스」가 새어 나는 모양이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풍선을 문득 쳐다보는 오상억의 어두운 얼굴빛! 풍선은 어느 듯 광화문 네거리 위로 옮아왔다.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는 「포켙」에서 조그만 수첩을 꺼내어 거기다 만년필로 무엇인가 한 줄 쯤 기록하여 그것을 허공 중에 날리는 것이다. 그것이 한 장뿐이 아니고 두장, 석장, 열 장, 스무장 ─
이상이 ××일보사의 호외 기사의 한 대목이었으나, 그 때 광화문에서 총독부 앞으로 밀려가는 군중의 머리 위로 흰 나비처럼 팔락팔락 내려오는 종이 조각을 주은 사람이 있다.
아니, 그와 같은 종이 조각을 주은 사람이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이 모퉁이에서도 줍고 저 모퉁이에서 줍고……
그 종이 조각을 향하여 쇄도하는 군중! 거기에는 대체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은몽아, 잘 있거라!
은몽아, 잘 있거라!
아아, 오상억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는 풍선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운명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 주은몽에게 최후의 작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은몽은 벌써 그보다 먼저 죽지 않았던가?』
이와같은 새로운 의문이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 잡았다.
그것은 실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문구였다.
해는 서산을 넘는다. 풍선은 총독부를 지나 청운동 쪽으로 이동하면서 스름스름 아래로 내려온다.
「풋볼」만 하던 풍선이 이제는 한결 커졌다. 대바구니만 하여 보인다.
이대로 가면 오상억은 풍선과 함께 자하문밖 근방에서 완전히 땅위에 내려앉을 것이다. 사람의 파도는 아우성 소리와 함께 효자동 쪽으로 흘러간다.
- 海月(해월)의 正體(정체)
그보다 약 한시간 전 ─
「애드바룸」이 부정 상공을 부유하고 있을 즈음, 소연한 시내를 등지고 자하문 고개를 넘어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젊고 한 사람은 늙고 ──
앞선 젊은 사람은 탐정 유불란이었고 뒤선 늙은이는 교장 황세민이었다.
고개 마루턱을 넘으면서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 주위를 배회하는 비행기도 보인다. 군중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글쎄, 저놈이 어쩌자고 저런데를 올라간담! 저러면 잡히지 않고 견디어 낼 수가 있을까.』
황교장의 중얼거림이다.
『말하자면 범죄자로서의 일정의 허영심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지요. 아, 저 풍선이 차츰 이편으로 이동해 오는군요.』
『바람이 이쪽으로 부는 모양이지요. 그런데 ──』
하고 황교장은 ── 아니, 백문호 씨는 유불란과 같이 발걸음을 옮기면서
『아까도 여러번 물었지만, 대체 내 딸이 어디서 살고 있단 말이요? 인제는 뭐 그렇게 감출것 없이 탁 터놓고 얘길해도 괜찮을텐데 ──』
하고 유불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게 아닙니다. 황선생께 아니 백선생께, 일부러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실은 나 역시 확실한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옇든 가봐야 알지요. 내 생각 같아서는 백선생의 따님이 확실히 그 문영태(文榮泰)라는 소경네 집에 있으리라고 ──』
『뭐, 소경?』
하고 백문호 씨는 저윽이 놀랐다.
『네! 놀라지 마십시요. 그 문영태라는 소경이 백선생의 사위일 것입니다.』
『아니 뭐? 그래 그 소경이 내 딸의 남편이라구요?』
하는 백문호 씨에게
『거듭 놀라지 마십시요. 백선생의 따님도 역시 소경이랍니다!』
하고 어떤 의미 깊은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내 딸이 소경?…음 ──』
백문호 씨는 어디까지나 기구한 자기의 일생을 암담한 마음으로 회상해 보았다.
『내 딸이 소경이라구요? 그게 참말인가요? 참말이라면 언제부터 소경이 되었읍니까? 유불란 씨, 모든 것을 속 시원히 빨리 이야기해 주십쇼! 소경……소경……』
허둥지둥하는 발걸음을 단장으로 잡으면서 그는 신음하듯이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 아니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면서부터 소경이었지요.』
『으음 ── 기구한 팔자가…… 그래 이름은 뭐라고 부릅니까?』
『예쁜이라고 부릅니다.』
『예쁜이요?』
『네, 예쁜이!』
『예쁜이! 여분이! 예쁜이! 여분이!』
백문호 씨는 이 두개의 이름을 함께 불러 봄으로써 지난날, 자기의 온 정열을 불태워 주던 엄여분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는 것이었다.
『엄여분은 예쁜이를 낳고 산후가 순조롭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읍니다. 어미없는 예쁜이는 그때 엄씨댁의 머슴이던 홍춘길이 내외의 손에서 자라났지요. 그런데 홍서방에게도 예쁜이와 동갑인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애도 병신이어서 말 못하는 벙어리였습니다.
홍서방 부부는 그 후 어떤 사정으로 × 천읍을 떠나서 평양으로 들어와 살다가 예쁜이가 열 살 때에 병신인 두 어린애를 길러내던 홍서방의 처가 전염병으로 털컥 죽고마니까 홍서방은 젊은 후처를 얻어 드리면서, 귀찮은 이 두 병신애를 서울 어떤 맹아학원(盲啞學院)에 넣어두고 자기는 후처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지금으로부터 오년 전에 다시 × 천읍으로 돌아가 살았지요. 홍서방의 주머니에는 그때 두 어린애를 맹아학원에 맡겨둘 만한 돈이 있었읍니다. 그 후부터는 통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홍서방의 딸은 어떤 곡마단의 줄타기로 들어가고 예쁜이는 학원에서 알선하여 지금의 남편인 문영태라는 복술가의 집에 맏며느리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것은 어제 × 천읍으로 가서 홍서방의 벙어리 딸에게 들은 사실이니까 가장 확실한 것으로 믿습니다.』
유불란은 거기서 말을 끊고 주첨주첨 따라오는 늙은이의 어두운 얼굴을 엿보았다.
그러나 백문호 씨는 아무 말도 없다. 그저 머리를 숙으리고 모든 것이 꿈결같다는 표정으로 유불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십년 전에 엄여분이가 낳았다는 딸자식 예쁜이의 얼굴을 머리속에 그려보면서 ──.
좁은 길가에 게딱지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암정을 지났을 때는 해가 서편 산기슭을 누엿누엿 넘으려는 때였다.
『대체 그 애가 살고 있는 데가 어디쯤 됩니까?』
하는 백문호 씨의 기운 없는 물음에 유불란은 힐끗 뒤를 돌아다보며
『홍제리 일백삼 십× 번지라는데요. 아, 잠깐 기다리시요. 내 저 담배가게에서 물어보고 오지요.』
유불란은 행길가 조그마한 담배가게에 들려서
『아, 말씀 한마디 여쭙겠읍니다. 홍제리 일백삼십 × 번지면 대개 어느 방향입니까?』
하는 온근한 물음에 호외를 읽고 있던 젊은 주인이 머리를 쳐들며
『일백삼십 × 번지면?…아, 아직 멀었읍니다. 한참 더 가셔서 다시 한번 물어 보십시요.』
하고는 다시 호외를 읽는다. 호외는 두말할 것 없이 광고풍선을 탄 오상억에 관한 기사였다.
유불란은 잠깐 머리를 기웃하고 호외를 들여다보았다.
『글쎄 이런 대담하고도 민첩한 놈이 어디 있겠소! 풍선의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 데 풍선의 「까스」가 점점 빠져서 그대로 내버려 두면 두 시간 후에는 이 자하문 밖 어디서 땅 위에 떨어지리라고요! 지금 총독부까지 떠 왔다는 군요. 글쎄! 참 사람이 사노라면 별별 괴상한 것을 다 보겠소!』
젊은 주인의 혼잣말 비슷한 중얼거림을 등 뒤에 남겨놓고 유불란은 다시 백문호 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외로 시외로 자꾸만 걸어갔다.
이리하여 자하문 고개에서 약 십리 쯤 걸었을까, 지붕 위에 도사리고 있던 저녁연기도 이제는 사라지고 회색빛 황온이 마을을 덮기 시작할 즈음에야 비로소 그들은 목적지 박영태의 집 싸리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싸리문 옆에
── 복술가(卜術家)박영태 ──
라는 조그마한 널판자로 만든 간판이 붙어 있는 이 집은,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었다.
개천을 하나 건너선 산비탈에 외따로 서 있는 초가삼간이었다.
『이 집입니다!』
하는 유불란의 말에 백문호 씨는 그저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백선생에게 미리 다져 둘 것은 ──』
하고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추어
『어떠한 놀라운 일이 있더라도 결코 고함을 친다든가 또는 그 놀란 표정을 상대방에게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의외의 사실에 접하시더라도 백선생은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백선생과 따님을 소개할 때까지 백선생은 그저 돌부처 처럼 잠자코 계셔주시면 됩니다! 알아 들어시겠습니까?』
하고 백문호 씨를 쳐다보았다. 늙은이는 그렇지 않아도 모든 것이 꿈같은 데다가 더구나 이러한 유탐정의 다짐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될지 통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저 알아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이윽고 유불란은 싸리문을 열었다. 그리고 주인을 부르려고 한발자욱 안으로 들여놓은 그때 건너 방문에 친 발이 들리면서 이 집 주인인 듯한 소경 ─ 나이가 한 사십이 될락말락하여 보이는 눈먼 사나이가 소경 독특한 감각으로 얼굴을 쳐들고 마루로 나왔다.
『거 누구요!』
바로 저녁을 물리고 나온 듯한 소경은 긴 담뱃대를 툭툭 마루 끝에 털면서 그렇게 묻는다.
『이 댁이 점을 치시는 박영택 씨 댁이십니까?』
유탐정의 목소리는 대단히 낮으막하다.
『네 그렇소. 내가 박영택이란 사람이 올시다.』
『아, 그렇습니까? 아이 참 어찌나 먼지……』
하고 유탐정은 마루 앞으로 다가서면서
『하도 용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읍니다.』
그 때야 비로소 안색을 펴며
『아, 먼길을 찾아 주셔서 황송합니다. ─ 야아 간난아, 손님들께 방석을 갖다 드려라.
자아, 누추하지만 어서 이리로 올라 앉으시요. 에이 이 놈의 모기 때문에 원 ─』
반가이 맞이하는 장님의 말대로 유탐정과 백문호 씨는 마루로 올라가 앉았다.
저녁 바람이 부나보다. 울파주 안의 옥수수 잎이 어둑어둑한 황혼 속에서 팔락거린다.
유불란은 마루에 올라앉자 머리를 들어 뜰 안을 한번 내려다 보았다.
답사리와 화초나무가 무성한 그리 좁지 않은 뜰안 저편으로 부엌과 안방이 건너다보였다.
황혼은 점점 짙어가고 지붕 위의 박꽃이 소복한 여인처럼 요염하고도 청초하다.
백문호 씨는 황혼에 잠긴 뜰 안과 불빛 ─ 희미하게 비치는 안방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지금 저 문안에, 저 등불아래 자기 딸 예쁜이 ─ 사랑하는 여분이가 낳은 딸 예쁜이가 앉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일 분 일 초가 그에게는 무한의 초조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
하고 이윽고 유탐정은 주인을 쳐다보며
『실인 즉 우리들은 점을 치고자 온 것이 아니고 선생께 한가지 의외의 사실을 전하고자 온 사람입니다.』
『의외의 사실이라고요?』
소경 박영태는 순간 안색을 가다듬으며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네, 의외의 사실이라는 것보다는 말하자면 무척 기쁜 일이지요. ── 선생의 장인되시는 분을 모시고 왔읍니다.』
『뭐 장인?』
장님은 깎짝 놀라며
『아니 장인이라니요? 그러면 내 마누라의 부친을 모시고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쁜이의 부친을 모시고 왔읍니다.』
『아니 그럴 리가 세상에……예쁜이의 부친은 벌써……세상을 떠나셨는데……』
하고 장님은 양미간을 모았다.
『── 네, 예쁜이가 어머니의 뱃 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요 그러나 ──』
하고 유탐정은 간단하게 전후 사연을 설명한 후에
『여기 저와 같이 오신 분이 그 때의 백문호 씨 그 사람입니다.』
장님 박영태는 이 의외의 사실에 놀라
『아, 그, 그렇습니까? ── 아버님! 이거 참……』
하고 백문호 씨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나서
『여보오! 여보, 빨리 좀 이리로 나오쇼! 원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여보오! ── 야아, 간난아! 아씨를 모시고 나오너라!』
하고 희색이 만면하여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안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희미하게 비치는 안방문이 통 열리지를 않는다.
『야, 간난아! 어서 빨리 아씨를 모시고 나오래도!』
장님은 다시 한번 범 같은 호령을 했다.
아까 방석을 가지고 나온 십 오륙세 쯤 되어 보이는 계집애가 쪼르르 뛰어나오며
『저어, 아씨께서는 지금 주시는댑쇼.』
하고 마루아래서 공손히 두 손을 읍하였다.
『응? 주무셔…… 아니, 조금 아까까지 앉아 있었는데 ── 원 그런 일이 어디 있나?』
하고 이번에는 손님들을 향하여
『잠깐만 실례하겠읍니다.』
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켜 마루를 내려서서 답사리 사이로 안방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러나 장님은 통 안방으로부터 나오지를 않는다.
『여보 여보! 이게 웬일이요?……대체 이게……』
하고 부르짖는 장님의 목소리가 어둑어둑한 황혼을 뚫고 터져 나왔다.
『엣?』
하고 그 순간 유탐정은 벌떡 몸을 일으켜 쏜살같이 안방으로 뛰어갔다.
백문호 씨는 통 무슨 영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그저 멍하니 안방을 바라다 볼 뿐이다.
뒤이어 들려오는 유탐정의 목소리 ──
『아, 늦었다!』
유탐은 그리고
『백선생, 빨리 빨리 이리로 들어 오시요! 빨리 빨리!』
하고 부르짖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백문호 씨! 그가 컴컴한 뜰안을 허둥지둥 걸어서 안방으로 뛰어들어갔을 그 순간, 그는 거기서 대체 무엇을 발견하였을까?
『엣?』
문안에 들어서자 백문호 씨는 그렇게 외치며 돌부처처럼 우뚝 섰다.
이 세상에 꿈과 같은 사실이 정말 있을 수 있다면 지금 백문호 씨의 눈앞에 전개된 그 광경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유탐정과 장님이 지금 아랫목에 누워 있는 한 사람의 여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지를 않는가!
그리고 그 여인은 그 어떤 극도에 달한 육체적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눈을 지긋이 감고 얼굴을 찌프리고 양손을 허공 중에 내졌고 있다.
『오오! 은몽 씨가 아니요!』
하고 늙은 백문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아아, 세상에 이런 기적(奇蹟)이 또 어디 있으리요!
독약을 마시고 지금 무섭게 고민하는 예쁜이 ── 소경 박영태의 처 예쁜이는 비록 남루한 의복을 몸에 걸쳤을 망텅 그것은 틀림없는 주은몽 그 사람이 아닌가!
『여보!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요? 독약을……아니 독약을 마시다니……』
장님은 두 손으로 아내의 몸뚱이를 쓰다듬으며 목메인 소리로 부르짖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사지를 무섭게 요동시키면서 장님의 아내 예쁜이는 지금 창자를 쑤시는 듯한 육체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온 정신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은몽 씨, 은몽 씨!』
거의 숨결이 끊어져 가는 여인의 상반신을 잡아 흔들면서 유불란은 힘차게 불렀다.
『아니, 은몽이라니……당신은 대체 누구를 부르는거요?』
하고 꿱 소리를 치는 장님의 물음을 무시한 유탐정은
『은몽 씨! 어서 눈을 뜨시요! 그리고 아버지 ── 은몽 씨가 그렇게 그리워하시던 아버지가 오셨읍니다! 백문호 씨가 오셨읍니다!』
하고 거의 고함치듯 하는 유불란의 말에 여인은 최후의 기력을 다하여 감았던 두 눈을 반짝하고 떴다.
『여기 계신 이 어른이 백문호 씨! 삼십 년 전 부부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던 백문호 씹니다!』
그 말에 여인은 전신의 힘을 다하여 간신히 입을 열었다.
『화, 황선생!』
『그렇습니다. 부부암에서 대동강에 떨어진 백문호 씨는 그 후 어떤 해적선의 구호를 받아 다년간 해적 생활을 하다가 「아메리카」 「쌘프란시스코」에서 해적선을 탈출하여 황세민이란 이름으로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서……』
하고 빠른 말씨로 성명을 하는 유탐정에게
『유불란 씨, 대체 이것이……』
하고 얼리벙벙해진 백문호 씨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백선생, 숨이 끊어지기 전에 빨리 한마디라도 이야길 해보시요! 은몽 씨는 틀림없는 백선생의 따님입니다!』
그러나 유탐정의 이 벼락같은 설명에 아버지도 딸도 잠깐동안 벙어리처럼 마주 쳐다볼 뿐이더니 마침내 백문호 씨가 입을 열었다.
『은몽 씨 그대의 부친 성명이 무엇이지요?』
하는 물음에 여인은 경련하는 입술을 간신히 벌려
『백……백문호 씨……』
『오오! 그러면 그대의 모친은 엄여분이랑 사람이 아닙니까?』
『네에……엄여분……』
『오오! 그대는 틀림없는 내 자식! 내 딸이로구나!』
그렇게 외치면서 감정의 폭풍우에 휩쓸린 늙은 백문호 씨는 왈칵하고 달려들어 은몽의 몸뚱이를 웅켜 안았다.
『오오! 은몽이! 내 딸! 네가……네가 여분이의 자식일 줄은 꿈에도…내가 네 애비다! 백문호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