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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767
■ 3부 일통 천하 (90)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1장 하나를 다시 여섯으로 (3)
연소왕(燕昭王)은 궁 옆에 큰 저택을 짓고 곽외(郭隈)를 모셔다 재상 겸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제자의 예(禮)로써 곽외를 섬기고 친히 대청 앞에 꿇어앉아 가르침을 받았다.
뿐만 아니었다.식사 때면 손수 곽외(郭隈)에게 밥상을 갖다 바치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연소왕은 역수(易水) 가에 높은 대를 세우고 그 위에 많은 황금을 쌓아두었다.
어진 인재를 구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 황금을 쓰겠다는 각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대를 '초현대(招賢臺)'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황금대(黃金臺)'라고도 했다.연소왕(燕昭王)이 곽외를 연나라 재상으로 삼고 역수가에
초현대(招賢臺)를 쌓았다는 소문은 곧 천하에 두루 퍼졌다.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 연왕(燕王)이 그토록 인재를 사랑한다니 내 기꺼이 연(燕)나라로 가 보리라.
이리하여 후일 전국시대 최고의 군사 전략가로 평가받는 악의(樂毅)가 위나라에서 달려왔고,
조나라에서는 천하장사 극신(劇辛)이 달려왔으며, 제나라에서는 음양오행의 대가인
추연(騶衍)이 귀순해왔다.연소왕(燕昭王)은 이들을 모두 높은 자리에 올리고 연나라의
부흥을 꾀하니, 이때에 이르러 연나라는 비로소 전국칠웅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히게 된다.
연(燕)나라가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서방의 초강대국 진(秦)나라는 차근차근
연횡책(連衡策)을 펴나가고 있었다. 물론 연횡책의 주도자는 장의(張儀)였다.
그런데 이때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엉뚱한 것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진나라 남쪽으로 한중(漢中)이 있고, 다시 그 아래로 내려가면 촉(蜀)이라는 나라가 있다.
사방이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좀처럼 중원과 교류를 갖지 않는 조용한 나라였다.
그래서 중원 사람들은 촉을 가리켜 '신비의 땅' 이라고도 하였다.
중원 진출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진(秦)나라 또한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촉(蜀)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그 신비의 땅 촉과 진나라 사이에 저(苴)라고 하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촉(蜀)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로, 촉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나라였다.
지금의 사천성과 섬서성의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 저(苴)나라가 촉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촉(蜀)나라는 당연히 저나라를 무력으로 누르려 들었다.
저나라는 저나라대로 저항을 해서 이 싸움은 꽤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싸움이 극렬해지면서 저(苴)나라 임금과 촉(蜀)나라 임금은 제각기 사자를 보내어
진혜문왕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이것이 바로 진혜문왕의 고민거리였다.
- 촉(蜀)을 도울 것인가, 저(苴)를 도울 것인가?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이 고민거리 하나가 후일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줄이야.
당시 진혜문왕의 신하 중에 착(錯)이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다.
관직이 사마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사마착(司馬錯)이라고 불렀다.
사마착은 진혜문왕이 촉과 저나라의 일로 고민하는 것을 알고 엉뚱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번 기회에 아예 촉(蜀)나라를 정벌하십시오."진혜문왕(秦惠文王)은 귀가 솔깃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그러나 과연 군사를 내어 촉(蜀)나라를 정벌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듯, 재상 장의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과연 장의(張儀)는 촉나라 정벌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아직 합종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촉(蜀)나라를 치다가 한(韓)나라의 기습을 받을까
걱정입니다. 군사를 내려면 차라리 한나라를 치는 것이 좋습니다."
사마착과 장의는 이 문제를 놓고 진혜문왕 앞에서 대논쟁을 벌였다.
사마착(司馬錯)은 주장했다."촉(蜀)나라는 비록 외딴 곳에 떨어져 있지만 매우 넓을 뿐 아니라
땅도 여간 비옥하지 않습니다. 군사상으로도 대단히 요긴한 곳입니다."
촉나라는 진나라 남쪽에 위치하지만 초(楚)나라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촉(蜀)나라를 선점해둔다는 것은 초나라 등뒤에 창끝을 들이미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게 된다.언젠가는 초나라와 쟁패를 벌여야 하는데, 그때 촉(蜀)나라에서
군대를 출병시키면 진(秦)나라는 앞뒤로 초나라를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백년대계(百年大計)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이른바 토촉론(討蜀論)이었다.
반면 장의는 토촉의 무용론(無用論)을 펼쳤다."촉(蜀)나라는 서쪽 구석진 곳에 있는
보잘것 없는 융적(戎狄)입니다. 굳이 군사를 내어 정벌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 진나라의 당면과제는 중원입니다.""공연히 엉뚱한 것에 힘을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 힘으로 한(韓)나라를 공격하고 삼천(三川)을 쳐서 주왕실을 멸망시키는 것이
왕업을 이루는 데 지름길입니다."이른바 멸주론(滅周論)이다.
삼천이란 황하와 그 지류인 이수(伊水), 낙수(洛水)를 말한다.주(周)나라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마착의 토촉론(討蜀論)과 장의의 멸주론(滅周論)을 들은 진혜문왕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촉(蜀)나라를 정벌하겠소.
이로써 장의의 연횡책은 잠시 연기되고 진(秦)나라는 모든 군사력을 촉나라로 집중시켰다.
촉나라 정벌군의 대장은 사마착(司馬錯)이었다.
768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768
■ 3부 일통 천하 (91)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1장 하나를 다시 여섯으로 (4)
사마착(司馬錯)은 진혜문왕(秦惠文王)의 기대에 부응하여 결국 촉(蜀)나라를 정벌하는 데 성공했다.
BC 317년의 일이었다.그 후 사마착은 촉나라 총독으로 임명되어 그 지역을 다스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진나라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사마착의 예견대로 훗날 진(秦)나라는
천하통일을 놓고 초나라와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대전(大戰)을 펼치게 되는데, 이때 배후를 위협당한
상태에서 초(楚)나라는 전력을 한 곳에 쏟아부을 수 없었고 끝내는 패하여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장의의 계책이 진혜문왕(秦惠文王)에 의해 기각된 것은 아마도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기각,즉 장의(張儀)의 단 한번의 오판을 진혜문왕은 나름대로의 결단으로 잘 넘겼다.
이로 미루어볼 때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상당히 판단력이 뛰어났던 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러고 보면 장의의 연횡책(連衡策)이라는 것도 진혜문왕의 치밀한 검증을 거쳐 실행된 것이 분명하다.
비록 장의의 멸주론(滅周論)을 기각하긴 했지만 진혜문왕은 여전히 장의(張儀)를 중용하고 있었다.
늘 그를 불러 어떻게 하면 연횡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지 의논했다.
"연(燕)나라와 위(魏)나라는 합종 동맹에서 탈퇴한 것이나 다름없소.
문제는 동방의 대국 제(齊)나라와 남방 대국 초(楚)나라인데, 이들은 지금 서로 친밀한 우호를 맺고 있소.
어떻게 하면 이들의 관계를 깨뜨릴 수 있겠소?"
이미 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강구해둔 장의(張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신이 초(楚)나라로 가 세 치 혀로써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를 떼어놓고 돌아오겠습니다."
장의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쾌히 승낙했다.
"과인은 오로지 그대만 믿소."장의(張儀)는 수레를 타고 남쪽 초나라를 향해 떠나갔다.
당시 초나라에는 초회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신하가 한 사람 있었다.근상(靳尙)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초회왕(楚懷王)은 어찌나 근상을 총애했던지 그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줄 정도였다.
초나라 도읍인 언영에 당도한 장의(張儀)는 가장 먼저 근상부터 찾아갔다.
뇌물을 잔뜩 바치고 초회왕의 알현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근상(靳尙)의 알선으로 장의는 쉽게 초회왕을 만날 수 있었다.
초회왕(楚懷王)은 장의에 대해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육국 동맹을 깨뜨리려는 연횡책(連衡策)의 주창자가 아니던가.
그는 장의(張儀)를 불러들이기는 했으나 은근히 경계심을 품고 물었다.
"선생은 무엇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 누추한 나라를 방문하시었소?"
합종을 깨려는 발언을 하면 모욕을 주어 내쫓아버리리라 초회왕(楚懷王)은 마음먹고 있었다.
이런 초회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의(張儀)는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신은 이번에 진(秦)나라와 초(楚)나라 간에 우호를 맺게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초회왕(楚懷王)이 응대했다."진(秦)나라는 승냥이보다 더 음흉한 나라요.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그런 나라와 과인이 어찌 우호를 맺을 수 있겠소? 그대는 헛고생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시오."하지만 장의(張儀)는 이미 초회왕의 그러한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내려왔다.
더욱이 그는 천하 제일의 유세가라는 소진조차 '나보다 뛰어난 사람' 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언변이 능한 세객(說客)이었다.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날 승냥이의 발톱을 지니고 있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왕께서는 지금이 요순시대
(堯舜時代)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신은 당장이라도 초(楚)나라
땅을 떠나겠습니다.""하지만 오늘날의 시대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있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이런 시대를 맞이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나라가 어떻게 하면 종묘사직을 유지하고,
나아가 영토를 넓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왕께서는 이 점을 부인하시겠습니까?"
"부인하지는 않소.""그렇다면 왕께서는 신이 초(楚)나라에 온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진(秦)나라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초나라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진나라를 위해서지 않겠소?""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좀더 상세히 말해 보오."
어느덧 초회왕(楚懷王)은 장의의 말솜씨에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장의(張儀)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신은 분명히 진(秦)나라를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신은 진나라를 위함과 동시에 초(楚)나라를 멸망에서 구하고자
이 곳에 온 것입니다.""우리 나라를 구하다니? 언제 우리 초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기라도 했소?
나는 그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구려.""왕께서는 눈앞의 일만 보시고 내일의 일을 내다보지 못하시니
청맹과니와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신이 이제부터 초(楚)나라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소상히
아뢸 터이니 잘 들으시고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천하에 일곱 나라가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강대국은 초(楚). 제(齊).
진(秦) 세 나라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나라가 힘을 합하면 그야말로 가장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삼국의 단합은 글자 그대로 꿈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습니다. 삼국 중 두 나라가 손을 잡는 일은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입니다.""만일 우리 진(秦)나라가 제(齊)나라와 손을 잡는다면 초(楚)나라는 하루아침에
고립될 것이요. 진나라가 초나라와 손을 잡는다면 제나라 역시 졸지에 외돌토리가 되고 맙니다."
"반면 초(楚)나라와 제(齊)나라가 손을 잡는다면 우리 진(秦)나라는 밑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태가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진나라는 지금의 상태를 깨기 위해 제(齊)나라와 손을 잡으려 한다.
그런데 제나라는 본래부터 배신을 밥먹듯 하는 나라다. 언제 동맹을 깰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생각한 것이 초(楚)나라다.진(秦)나라와 초나라는 제각기 서방과 남방에 치우쳐 있어
그 동안 중원의 여러나라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기질도 비슷하다.
이런면에서 진나라가 동맹을 맺고 싶어하는 나라는 초(楚)나라인 것이다.
"만일 초나라가 진나라와 동맹을 맺게 되면 큰 이익이 둘 있습니다.
왕께서는 그 이익을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말해 보오."
"첫째로, 제(齊)나라를 고립시킴으로써 천하 열국에 미치는 초(楚)나라의 영향력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둘째로, 왕께서 진(秦)나라와 동맹을 맺으신다면 우리 왕께서는 옛날에 상앙(商鞅)이 빼앗은 바 있던
상(商)과 어(於) 땅 6백 리를 초나라에게 선물할 작정으로 계십니다."
"아울러 진(秦)나라 왕녀를 초(楚)나라로 시집보내 왕을 모시게 할 작정입니다.
이 어찌 큰 이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반면, 초나라가 진나라와 동맹을 맺지 않을 경우 초나라에는 큰 손해가 둘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이오?"
"첫째는 초(楚)나라의 영향력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난날 함곡관 전투에서
6개국 연합군이 패한 이후 다섯 나라는 한결같이 초나라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진(秦)나라가 초나라 대신 제(齊)나라와 손을 잡게 되면 초나라는 그야말로 발붙일 곳이
없어지고 맙니다. 둘째로는, 늘 진나라 공격에 대비하여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우리 왕께서는 얼마전 파촉(巴蜀) 땅을 정벌하는 위업을 이루셨습니다. 파촉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초(楚)나라 등뒤에 있습니다. 초나라가 진나라와 멀리하면 할수록 초나라 배후는
위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파촉(巴蜀)의 군대가 초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초(楚)나라는
하루도 편안히 잠잘 날이 없을 것입니다. 이 어찌 큰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장의(張儀)의 청산유수와도 같은 말을 듣는 동안 초회왕(楚懷王)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이득을 들을 때는 입이 벙긋 벌어졌다가 손해를 들을 때는 얼굴이 새하얘지기도 했다.
76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