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배기 호주 소녀 틸리에 크레이그는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1987년 뉴 사우스 웨일즈(NSW)주에 있는 하느님의 목사(Ministry of God) 목장이란 곳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틸리에가 사라지자 수십년 동안 아버지는 딸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펼쳐지게 했다. 아버지는 틸리에가 몰래 다른 가정에 입양됐을 것이란 말을 전해 듣고 낙담했다.
35년 뒤에야 알고 보니 틸리에의 의붓엄마 엘렌 레이철 크레이그(62)가 플라스틱 파이프로 때려 숨지게 했던 것으로 드러나 호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경찰이 제보를 받고 엘렌을 체포한 것이 2022년의 일이었다.
엄마가 끔찍한 짓을 벌인 이유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다. 딸이 찬송가를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사이비 종교 '하느님의 목사'에 빠져 있었고, 교주의 지시에 따라 딸의 시신을 불태운 뒤 코뮨(생활 공동체) 여기저기에 버려 증거를 없애버렸던 사실도 드러났다.
엘렌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혐의인 과실치사로 유죄를 인정하는 형량 거래에 합의했다. NSW주 대법원에서 21일(현지시간) 선고 재판이 열렸는데 나탈리에 애덤스 판사는 엘렌이 의도적으로 심각한 중상을 입힐 의도는 없었다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녀의 죽음을 비극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지나치게 절제된 표현"(gross understatement)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애는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던 누군가의 손에 죽었다"고 안타까워하며 엘렌에게 징역 9년형을 선고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법정에서 낭독된 범죄 사실 합의문에 따르면 코뮨의 아이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찬송가를 부르는 데 참여해야 했으며 때로는 검정색 파이프로 기합을 받아야 했다. 1987년 7월 7일 틸리에는 그녀의 노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행해 하는 엄마에게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엘렌은 딸을 집안으로 들인 뒤 "그애가 숨을 쉬지 않는다. 오, 안 돼, 안 돼. 그애가 죽었어"라고 말했다. 그녀는 틸리에를 욕조에 누인 뒤 교주 알렉산더 윌런, 일명 '파파'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가 기도를 올리면 딸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윌런은 틸리에의 시신을 화장한 뒤 유해를 뿌리라고 지시한 뒤 신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일체 입에 올리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윌런도 살인 액세서리(방조) 혐의로 기소됐는데 나중에 다른 성폭행 연루 혐의가 추가됐다. 하지만 말기 환자란 이유로 그는 재판에 나올 수 없다고 재판부에 통보했다.
엘렌은 1987년 11월 그 교단에서 축출돼 조국 뉴질랜드로 돌아가 가명을 여럿 쓰며 숨어 지내다 2021년 체포돼 추방됐다.
이날 법원에 제출된 서한을 통해 엘렌은 범죄에 대해 사죄하며 그 농장에서 엄마로서의 자신에게 “뭔가가 일어났다"면서 "내 행동들은 끔찍했고 소름끼치는 것이었다"고 뉘우쳤다. 그녀는 또 "내가 했던 일 때문에 스스로를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딸을 위한 정의가 구현되길 원하며 자신이 수감됨에 따라 딸아이가 편안히 잠들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틸리에의 아버지 제라르드 스탠호프는 딸을 찾으려는 간절한 바람으로 여러 차례 이 사이비 집단을 찾았다며 전 동거녀가 체포될 때까지 딸이 죽은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전한 피해자 진술 조서에 "몇 년을 허비했다. 딸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날마다 눈을 뜨고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낙담해 잠자리에 들었다"면서 "딸아이가 이미 저세상으로 갔는데도 30년 이상 이를 알아내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엘렌은 구금한 지 6년이 되는 2027년 11월이 돼야 가석방 신청 자격을 얻는다고 방송은 전했다.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2020)에도 사람을 죽인 뒤 간절히 기도하면 되살릴 수 있다고 믿는 미국 북동부 산골 깡촌의 광신도 얘기가 그려지는데 절박한 이들은 가스라이팅 등에 무력해지고, 외부로부터 고립된 여건에서 이런 어리석은 믿음에 빠져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