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날
한 달 간 방학에 들어 이월 첫날 개학을 맞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동료들을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이월은 학년도가 마무리 되는 달이다. 그러면서 새 학년도 밑그림이 그려지는 달이기도 하다. 3학년은 졸업해 나가고 재학생은 한 학년씩 오르게 된다. 일부 동료들은 근무지가 바뀌는 인사이동도 있다. 한 분 평교사는 정년을 맞아 새로운 인생 이모작에 나서기도 한다.
삼십여 년 전부터 / 한 사내가 학교로 오고 있었다. / 산을 넘어 학교로 오고 있었다. / 눈망울 초롱초롱한 아이들 앞에서 / x y축 포물선 그려 / 마디마디 나누어 / 함수에 대한 답을 구해주었다. // 이제 올봄부터 / 한 사내가 자연으로 가려한다. / 강을 건너 자연으로 가려한다. / 드넓은 산야를 누비며 / 발길 돌부리 채이고 / 풀꽃 향기를 맡으며 / 인생에 대한 답을 찾으려한다.
바로 앞 단락은 교무실에서 한 해 동안 같이 보낸 수학교사가 정년을 맞았기에 출근 후 축시를 한 수 남겼다. 제목은 ‘한 사내가’로 뽑았다. 이후 교지 제작 업체에 전화를 넣어 납품 일자를 확인했다. 다음 주 졸업식 전 교지가 도착하면 편집부원들을 시켜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배부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교감과 교무부장은 학년도 말을 즈음해 교사들이 해야 할 일들을 안내했다.
나는 3학년 교과라 수업을 진행할 일은 없었다. 1교시는 담임이 맡아주었고 3교시는 학급으로 들어가 아이들 얼굴만 살펴보았다. 졸업해 나가면 새내기 대학생이 될 예비숙녀들이었다. 머리카락도 다듬고 얼굴엔 옅은 화장을 한 아이들이 몇 보였다. 대체로 우리 아이들이 무척 착해 학생 생활 규정을 잘 지킨 편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달리 전해줄 얘기가 없어 교무실로 되돌아왔다.
유난히 추운 날씨로 본관 일부 화장실 수도가 얼어 당분간 사용에 불편을 겪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아침나절 내가 맡은 별마루를 살펴보았다. 난방이 되는 시설이라 일부 학생이 방학 중에도 학교를 찾아와 공부를 하고 갔다. 청결 상태는 잘 유지되었다. 실내에는 습도 조절을 위해 가습기 대용으로 수경재배 화분을 세 개 키운다. 이태 전 내가 뒷동산에서 잘라온 마삭줄기이다.
별마루 실내에 둔 수경재배 화분에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지는 않았을까, 한동안 지속된 혹한으로 유리병이 얼어 깨지지는 않았을까를 살폈다. 염려와 달리 물은 그리 많이 줄지 않았더랬다. 마삭줄기 잎맥은 파릇한 모습 그대로 살아 있었다. 실내이고 학생들이 간간이 다녀가서인지 얼음은 얼지 않았다. 바닥 먼지부스러기 정도는 나중 청소시간 찾아올 학생들이 쓸면 되지 싶었다.
별마루를 나와서 본관 앞뜰로 가보았다. 종려나무와 향나무 곁 볕바른 자리에 눈여겨 볼 들꽃이 있어서였다. 방학 들기 전 두세 송이 피던 광대나물 꽃은 겨울 추위에 오그라져 그 꽃송이마저 시들고 없었다. 나는 이번 겨울 학교 바깥서 광대나물 꽃을 두 군데서 보았다. 진례 송정마을을 지나다가 보았다. 다른 한 곳은 진동 선두 갯가에서도 보았다. 이 모두 소한 대한 이전이었다.
나는 본관을 돌아 다시 뒤뜰로 향했다. 쓰레기 분리수거장 주변 동백나무는 꽃망울만 몽글몽글했다. 겨울 들머리 선홍색 꽃이 한두 송이 피기 시작했었는데 추위가 닥쳐와 개화를 머뭇거렸다. 뒤뜰 분수대 근처 동산으로 갔다. 우리 학교 수목에서 봄의 전령사에 해당하는 산수유나무는 꽃망울이 부풀고 있었다. 그 주변 몇 그루 매실나무는 자잘한 꽃눈이 미세하나마 도톰해져갔다.
뒤뜰 동산에서 내가 하나 더 살펴 볼 것이 있었다. 이른 봄 초본으로는 일찍 피는 꽃 가운데 수선화였다. 나는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해마다 수선화가 피는 자리를 알고 있다. 자연석 더미가 놓인 근처다. 멀리서 보니 싹이 돋는 기미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땅바닥을 살펴보니 파릇한 순이 돋아났다. 머잖아 원추리 같은 잎맥이 더 자라 나오면 노란 꽃망울이 달릴 것이다. 18.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