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까지만 해도 예리코와 예루살렘을 이어주던 도로였고, 순례자들은 이곳을 지나면서 와디 켈트와 성 조지 수도원을 멀리서라도 보고 갈 수 있었는데 이렇게폐쇄했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이곳을 보기 위해서는 한참돌아 와야만 한다. 성 조지 수도원 주차장. 이곳에서 수도원으로 내려간다. 로마인들의 도로에서 약 7백 미터의 급경사를 내려갔다가 다리를 건너 조금 언덕길을 올라가면 절벽 중턱 약 해발 115m의 높이에 성 요한과 코지바의 성 조지(St. John and St. George of Coziba)라고 부르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나온다. 이곳의 명칭은 이곳에 살았던 유명한 두 은수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성 조지 수도원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서안에 있는 와디 켈트 계곡에 위치 해 있다.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아치에는 '코지바의 성모님' 상이 만들어져 있다. 코지바의 성모님께 봉헌한 다른 어느곳 보다도 오래된 성모님의 성지인 것이다 코지바의 성모님 상 성 조지 수도원으로 내려가는 길 나귀를 타고 올라오는 순례자들...앞쪽 나귀는 베두인 청년이고 뒤쪽은 순례자...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땀흘리며 걷다가 멀리서 수도원이 바라다 보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수도원의 지붕이 하늘색인것은 하늘색은 하늘나라의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색으로서 이곳이 바로 지상의 하늘나라임을 말하는 것이다. 종탑과 성당 위에만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다. 하늘색은 또한 청결한 색이기도 하다. 와디 켈트 계곡...이곳은 굴곡이 심한 협곡으로 되어 있다. 성 조지 수도원으로 건너가는 다리 성 조지 수도원 정문 성 조지 수도원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에서 수로로 흘러 내려가는 물을 볼 수 있는데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도원 맞은쪽을 보면 예리코를 향해 내려가면서 벽돌을 쌓아 놓은 흔적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로마인들이 만들어 놓은 수로의 흔적인데 4-6세기 비잔틴 시대에 복구를 하였고 다시 십자군들에 의해 복구되어 사용되었던 흔적이며 지금은 그 아래쪽으로 1920년경에 영국군이 위임통치 하던 시대에 새롭게 만든 수로를 사용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전승에 의하면 이곳은 셈어로 코지바(Choziba)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곳은 “구원의 첫 번째 영광이 자리한 곳”이라는 뜻이다. 야고보의 원복음에 의하면 마리아의 아버지인 성 요아킴은 이곳에 와서 40일간 단식하며 기도하여 코지바의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이자 광야의 테오토코스인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 조지 수도원은 어느 곳 보다도 더욱 오래된 성모님의 성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는 명칭이 봉헌된 이후 이곳은 ‘코지바의 성모님’께 봉헌한 작은 성당이 마련되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어느 날 비잔틴의 어느 귀부인에게 나타나 코지바는 원래 당신의 집이었다고 안심 시키면서 코지바로 성지 순례를 떠나도록 명령한다. 이곳은 야고보의 원복음에 의하여 요아킴에게 마리아의 탄생이 계시되는 곳이기도 하며, 비잔틴의 여인에게 발현한 전승에 의하여 코지바의 성모님이라는 칭호가 생겨나게 되었다. 독신을 서약하고 살아가는 수도자들이 사는 수도원은 금녀의 집이었지만 성모님에 의하여 비잔틴의 귀부인이 순례를 한 후 이후 이곳 수도원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순례객들을 환대하는 수도원이 되었다. 키드론 골짜기에서 사해로 흘러 내려가는 중간에 있는 마르 사바 수도원은 미물인 짐승도 암컷은 수도원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순례자라면 성 조지 수도원의 이러한 전통은 특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수도원 전통에서 환대는 모든 수도승들이 온 정성을 다해 실천했던 덕행이었다. 그러므로 방문객은 그리스도처럼 모셨다. 방문한 형제들에게 공손히 인사해야 하는 것은 인사하는 분은 그들이 아니고 그들 안에 계신 하느님께 인사하는 것이며 형제를 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주님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성 조지 수도원은 오늘날 수도원 전통에 따라서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로 맞이하는 환대하는 수도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광야의 작은 오아시스가 되어 있다. 마치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이곳은 이미 420-430년경에 시리아에서 온 다섯 명의 은수자들은 켈트 계곡에 있는 암벽을 파내어 작은 경당을 만들고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하고, 이 경당을 중심으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던 곳이다. 그 후 이집트 테베에서 440-450년에 태어난 요한이 이곳을 찾았고 이곳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한다. 이집트의 요한도 성 카리톤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를 와서 머무르게 되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의 요한은 켈트의 한 동굴에서 은수하면서 470년 경 라우라를 만들었고, 516년경에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던 지중해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되었으며 2년 후에는 공의회의 결정에 의해 예루살렘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은퇴하여 와디 켈트로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다가 520-530년경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성인의 이름을 따서 성 요한 수도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 요한의 무덤은 성당 안에 남아 있다. 코지바의 성 조지(George)는 키프로스(Cyprus)에서 550년에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그의 형이 있었던 칼라몬 라우라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코지바에 있는 공동체로 보내졌다. 페르시아 군대가 침입해 들어 왔을 때(614년) 많은 수도자들은 요르단으로 몸을 피했지만 14명의 수도자들이 순교 하였다. 조지와 그의 제자 안토니오는 켈트 계곡에 몸을 숨겼고 비극적인 회오리바람이 끝나자 코지바에는 조지의 지도하에 새로운 수도자들로 재 결집 되었다. 그는 620-63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무덤은 성당 안에 남아 있다. 그 후 다시 밀려들어온 무슬림들에 의해 수도원은 파괴 되어 방치 되었고 십자군들에 의해 1179년에 다시 복구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십자군을 몰아낸 무슬림들에 의해 파괴 되고 말았다. 오스만 터키 제국 당시 성당의 종을 울릴 수 없도록 했을때 대신 사용했던 나무 종 복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성당이 있고, 왼쪽은 와디 켈트 계곡쪽이다. 물 항아리 순례객들에게 제공하는 음료 이곳은 요아킴 성인이 천사로부터 마리아를 낳게 될 거라는 계시를 받은 곳이기 때문에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다. 그래서 이곳의 명칭을 따서 코지바의 성모님이라고 부른다. 성모님의 어머니 안나가 마리아를 낳는 성화 기념품 가게 코지바의 성모님께 봉헌한 성당 유골함 비잔틴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자이크 본관 성당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끝에 은수자들이 암벽을 파내어 만든 작은 경당이 있던 곳이 나온다.성 당의 바닥 모자이크는 이 건물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비잔틴 시대의 이 모자이크는 양탄자로 덮어 보호하고 있다. 성당 안에는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살해된 14명의 유골을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 마리아는 17년 동안이나 거리의 여성으로 살다가 28세 때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는 이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순례 여정 중에도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열심한 순례자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가 잡아 당기는 듯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서 있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리아상을 바라보니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고 한다. 깊이 통회한 후 요르단 사막에서 47년 동안이나 사람 한 사람 구경하지 못하고 살았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성 조시무스에게 영성체를 하는 이콘이다. 시리아에서 온 첫 은수자들이 돌을 파내어 작은 경당을 만들고 이 경당을 중심으로 은수 생활을 시작 했던 곳이다. 코지바의 조지 성인 경당 성 조지 성인의 유해 성당 내부의 정점이자 하늘과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성당 돔 안쪽에는'표상의 성모님'(The Mother of God of the Sign) 이콘이 그려져 있다. 두 팔을 벌려 기도하고 있는 성모님의 가슴에는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께서 한 손에는 성서 두루마리를 들고 다른 손은 세상을 향해 강복하고 있는 이콘이다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순교당한 수도자들의 유골 이곳에도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엘리야 예언자의 동굴(4m x 11)은 성당 지붕에 있는 테라스를 통하여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엘리야 예언자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낼 때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빵과 고기를 날라주었던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1열왕 17,3-6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4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 5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6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코지바의 가브리엘 은둔소. 절벽 중간에 있는 은둔소로 음식물은 바구니에 담아서 공급되었다. 음식물을 올려주는 바구니 성 조지 수도원을 중심으로 절벽의 동굴들이 많이 있는데 이곳은 모두 은둔자들의 동굴이었다. 절벽에 있는 은둔 동굴들 성 조지 수도원에서 와디 켈트 계곡을 따라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 계곡 왼쪽, 사진 오른쪽 십자가가 보이는 길은 다시 로마인들의 도로로 올라가는 길이다. 코지바 수도자들의 공동묘지는 수도원에서 동쪽으로 150m 떨어진 동굴(9 x 7m) 안에 있는데 250개의 두개골을 가지런히 정렬 해 놓았고, 바닥에는 16개의 무덤이 있다. 코지바는 이후 6세기경에는 혼합된 형태의 여러 수도 공동체(cenobio)가 있었다. 성 조지 수도원에서 예리코를 향하여 절벽 왼쪽으로 오솔길이 나 있는데 몇 십분 걸어가다 보면 길 아래쪽 절벽으로 많은 은수자들의 동굴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혼합된 형태의 공동체들은 마르 사바 수도원이 있는 키드론 계곡의 엄청난 규모의 라우라와 비슷하였지만 켈트 계곡에서는 물로 인한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수세기 동안 파괴되어 방치되던 성 조지 수도원은 예루살렘의 그리스 정교회 수도자인 칼리니코스(1830-1909)에 의해 1878년에 복원이 시작 되었고 1901년 코지바의 테오토코스에게 봉헌되었다 성 조지 수도원에서 다시 로마인들의 도로로 올라와 이스라엘 정부에서 차단한 도로를 넘어 걷다 보면 예리코 서남쪽 언덕 위에 있는 키프로스 요새가 보인다. '키프로스'는 헤로데 왕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온것으로 헤로데는 와디 켈트 계곡이 끝나는 곳에 겨울 별장을 만들었고 겨울 별장에서 가장 가깝고 높은 언덕 위에 만일을 위해 즉시 피할 수 있는 요새를 만들었다 예리코로 내려가는 로마인들의 도로 사진 중앙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키프로스 요새이다 로마인들의 도로에서 만난 이스라엘 군인들 순찰 차량 키프로스 요새 정상 고고학 발굴 현장 키프로스 정상은 이스라엘 군인들의 중요한 요새가 되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만든 참호 키프로스 요새의 흔적들 사진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이 로마인들의 길이다. 왼쪽은 로마인들의 길에서 키프로스 요새로 올라오는 길 로마인들의 길이 끝나는 예리코 관문의 유적 와디 켈트 계곡이 끝나는 지점. 왼쪽 수로가 보이고, 계곡 오른쪽 중턱에는 오솔길이 보인다 와디 켈트에서 수로를 따라 흘러 내려온 물은 아래 보이는 작은 저수지에 모인다. 이곳이 정수장이다 키프로스 요새 정상에서 바라본 예리코 헤로데 궁전 유적지. 하스모니아 왕가의 별장이었던 이곳에 헤로데는 풀장이 있는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헤로데는 이곳에서 기원전 4년에 사망한다 예리코 시가지. 높은 빌딩은 예리코 인터 콘티넨탈 호텔이다 높은 봉우리가 키프로스 요새이다. 예리코 도로 예리코로 들어가는 관문에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검문소. 2009년 베네딕도 교황님이 오시면서 이 검문소는 철거되고 팔레스타인 자치 경찰에게 넘어갔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여관' 유적지. 새롭게 단장해서 성지의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로가에서 바라보이는 베두인들 마을 학자들은 와디 켈트의 깊고 어두운 골짜기는 시편 제23편의 저자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어두운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이 두렵지 않은 것은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시편 23,1-6)
Mozart (1756 - 1791) Exsultate, jubilate, motet for sop & orch, K.165 환호하라 기뻐하라 행복한 영혼이여
출처: 사랑과 평화의 샘 원문보기 글쓴이: jeosa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