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생각하며
박래여
농부는 벼루에 먹을 간다. 먹 향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먹 향에 취해 젊은 날의 한 때를 떠올린다. 직장생활 할 때였다. 책과 소일하던 나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 미술학원에 다녔지만 우연히 직장에 들린 한 노인의 권유로 붓을 잡게 되었다. 한문 서예학원을 운영하시던 노인은 초보 제자에게 좋은 붓 고르는 법과 좋은 먹, 벼루를 사 주셨고 연습용 화선지 두루마리를 안겨주셨다. 문방사우를 장만한 나는 퇴근만 하면 서예원에 가기 바빴다. 참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줄긋는 연습부터 시작한 붓글쓰기는 기초를 갖추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된 것이다. 혼자 하는 붓글쓰기는 늘지 않았고 붓글씨 쓰기보다 소설책 읽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선생님으로부터 구양순체를 배웠지만 내 목적은 사군자를 치는 것이었다. 난의 잎사귀 하나 쳐보기도 전에 끝나버린 서예였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연필 스케치와 소묘 데상을 끝내고 수채화를 배우다가 유화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끝나버렸다. 서예도 그림도 기본기조차 제대로 못 갖추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시댁에 들어오니 시아버님이 붓글씨를 쓰셨다. 먹 향이 좋아 코를 벌름거렸지만 붓글씨를 배웠다는 말을 못했다. 문방사우를 서재에 고이 모셔놓고 알은 채도 못하고 시집살이, 농사꾼 아낙으로 자리매김 하기에 허덕댔다. 전원생활의 꿈에 부풀어 들어온 시댁은 일복만 터졌다. 일에 지쳐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독서였다. 틈날 때마다 책을 잡았고 글을 썼다. 덕분에 늦은 등단을 하고 글쓰기를 천직으로 여긴다.
올 들어 농사를 대폭 줄인 농부는 붓글씨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문화원과 복지센터의 서예 반에 들었다. 한글과 한문을 배운다. 시간 날 때마다 먹을 갈아놓고 화선지를 편다. 줄긋기 연습하더니 어느새 한자와 한문을 쓴다. ‘와우, 재능 있네. 선생 글씨보다 정성이 든 당신 글씨가 훨씬 낫네.’ 농부의 붓글씨 실력이 쑥쑥 느는 것이 보인다. 삼촌과 막내시누이도 붓글씨를 오랫동안 썼다. 지금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수준급인 줄 안다. 농부에게도 잠재된 재능이 있었나보다.
“한의원에 몇 시에 갈 거야?”
농부는 주섬주섬 붓글씨 쓰기를 접는다. 치료방법이 없다는 농부의 눈도 아픈 내 어깨도 한방으로 다스려볼 생각이다. 양의에서 치료를 할 수 없다지만 한의에서 침과 뜸으로 다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 몸은 신비하다. 몸에 칼을 대기 전에 한방 쪽으로 치료를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농부의 병에는 한의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침 잘 놓는 한의사가 우리 지역에 있던가. ‘할머니들이 그러는데 그 한의원 의사가 침을 잘 놓는다고 하더라.’하여 그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서 침과 전기치료, 찜질을 한 시간 정도 하고 나왔다. 뒤로 돌리기도 힘들고 칼질도 힘들고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도 힘들던 오른 팔이 조금 편해졌다. 뜨거운 찜질팩을 붙여도 뜨거운 줄 모를 정도였다. 진작 침 맞으러 갔으면 고생 덜할 것을. 농부는 머리에 침을 맞고 나는 어깨에 맞았는데 효과가 있다. 침 몸살을 하면 이틀에 한 번씩 오란다. 나는 오래전부터 환자였다. 인공관절을 넣는 수밖에 없다는 무릎과 발목의 퇴행성관절염, 시멘트 공사를 해야 한다는 허리디스크, 못 대여섯 개를 박아야 한다는 척추협착증 환자지만 한방으로 다스리면서 여태 견디고 있다.
오후에는 수영장을 간다. 요즘은 오른팔과 어깨가 아프면서 자유형을 거의 못한다. 배영과 평영을 할 수 있지만 접영은 꿈도 못 꾼다. 오랜만에 자유형을 하는데 팔이 덜 아팠다. 기분 좋아서 30분을 돌았다. 물론 자유형과 평영, 배영 세 가지를 섞어서 돌기를 했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신나게 놀았다. 허나, 과유불급이다. 저녁이 되니 묵지근한 어깨가 다시 아팠다. 다행히 침 맞은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도 칼질을 하는 것도 침 맞기 전보다 덜 아팠다. 당분간은 한의원을 들락날락 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나보다 농부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도 이기심일까. 농부가 아프면 내가 간병하고, 내가 아프면 농부가 간병해야 하는 처지에 간병하기보다 간병 받기를 원하는 속내 아닐까. 둘 다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고 현상유지만 할 수 있어도 고마운 일이다. 애들 마음 힘들게 하지 않고 남은 나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첫댓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장 필요한 소망을 담은 작품으로 평가 합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 문학이고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우리 부부의 주 관심은 어떻게 하면 잘 죽는 것일까에 있어요. 잘 죽는 법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을 때 마침표 하나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남은 나날동안 제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야겠다 싶어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박래녀 가을이 오면 풀이 마르듯이 나이가 들면 온 몸 구석구석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육신이 마르면 통증으로 신호가 오는 것이지요.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 분비도 적게 되고 조금만 말해도 목이 쉬고 건조해지고 손가락, 손목, 팔다리 어깨, 허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피부도 쭈글쭈글 해지고 유연성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깜박깜박하고 눈물도 줄어들어서 눈 앞이 침침 해지고, 특히 목과 손등이 가장먼저 물기가 빠지니 쪼글쪼글 해 집니다. 근육도 감소하고
나이들수록 물을 많이 드시고 피부를 촉촉하게 해야 합니다.
@정임표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