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방의 미스터리
2009년 4월19일 전북 정읍시 영원면 천태산 고분 답사를 위해 샘바다 회원 4명과 이지역의 향토사학자 곽상주 선생의 안내로 천태산에 올랐다.날씨가 봄 날씨 답지 않게 무척 더웠다, 천태산 저수지에서 차를 세우고 도로를 건너 천태산 고분군으로 오르는 길은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었는 듯 주변은 소나무와 산죽들이 무성하다, 고분을 발견하고 답사 하느라 임시로 산길을 내어 놓았으나 여느 등산길과 다름없이 낙엽이 쌓여있는 산길이다,산중턱에서 첫 번째 고분을 만났다, 그 형체는 볼 수 있으나 허물어져 있어 규모를 정확히 알 수없었다, 다시 산길을 30여미터 올라가 두 번째 돌방 만났다, 산 중턱에 돌의 한쪽면을 다듬어 3측면에 세우고 지붕돌 역시 안쪽을 다듬어 덮개로 측면 초석위에 걸처놓은 돌방이다.지붕돌과 측면돌 사이에 사잇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균형을 잘 맞추어 이음새에 틈이 없는 구조로 나무로 깍아 만든 한옥의 구조 처럼 잘 짜여져있다, 사잇돌은 세밀하게 다듬어 측면 돌과 지붕돌 사이에 끼워 놓았는데 그 정교함이 경이롭고, 그 시대의 석조각 작품으로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내부는 보통 사람이 구부려서 활동 할 수 있는 넓이의 공간으로 측면과 천정은 다듬돌 면으로 매끄럽고 바닥은 다져져 단단한 구조이다.
어느시대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이 돌방을 만들었을까.이 돌방에 대한 아직 정확한 문헌을 나는 찾지 못하여, 정확이 알 수없으나, 이 지역이 백제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지역이고 이돌방을 돌무덤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는 곽상주 선생의 말을 듣고 돌 무덤이라면,
이런 무덤이 이지역 근처에 다른 장소에도 발견되었 것인데 이곳외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무덤이라면 무덤돌을 캐고 다듬고 운반하고, 설치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 무덤을 만들어 이곳에 안치하였다면, 그 시대 장례문화를 연구해야 할 것이지만, 일반적인 호장이나 평민의 장례 의식으로 이런 돌무덤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왕릉이 아닌 무덤을 돌을 다듬어 왜 돌무덤 만들었을까? 고미술이 관심 분야인 나로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돌방의 크기를 무덤으로 보기는 규모가 너무 크고, 바닥을 단단하게 다진 점,
무덤이라면 무덤내의 시신이 산화한 흔적이 있을 것이고 바닥면이 푸석푸석한 흙이었을 것이다.
돌방에 발견된 유물이 토기와 청자라는 점이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토기와 청자는 시대를 달리하는 유물 이기 때문에 무덤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돌방 규모나 출토품인 토기,청자는 시대를 달리하는 유물이므로, 이 돌방에서 시대를 달리하면서 어떤 목적으로 주거를 한 것은 아닐까 추정해본다, 추후 돌방 구조의 세밀한 관찰 ,제작시기, 돌방주거목적, 그 시대생활 문화, 환경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백제시대를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온조 백제를 기록하고 있으나, 중국 사료에 佝台백제 가있다. 구태의 선조는 蓋馬韓 사람으로 대방군의 옛땅에 나라를 세우고 백제의 기틀을 닦았으며 백제에서는 그 사당을 모시고 시조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산이름이 천태산이라 흥미롭다, 台는 臺와 같은 뜻이 있는 글자다, 구태와 천태의 이름도
예사롭지는 않다, 정읍 영원면의 돌방을 답사하면서 무었인가 알 수 없는 그 무었이 머릿속을 뱅뱅거린다.다음에 차분히 이 돌방의 미스터리를 연구해보아야 겠다,
그곳 향토를 사랑하는 곽상주선생과 차 한잔을 같이 하면서 돌방의 미스터리를 다시한번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첫댓글 내가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지적해주시어 더 많은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각도로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려장의 유적도 아직 발견된 적이없어 돌무덤이라는데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무엇일까
天氣를 받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하늘과 교류하는 곳. 지금의 표현을 빌면 명상을 한다거나 해서 하늘의 뜻을 알고자 몸을 다듬는,,,,,,절대 무덤은 아닐겝니다.....보름날 저녁에 하룻밤 자면서 물어보면 어떨까요...?
내가 뭘 알아야 하지요 ㅎㅎ
해보심 아실겁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