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771
■ 3부 일통 천하 (94)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1장 하나를 다시 여섯으로 (7)
초군(楚軍)이 두차례나 진(秦)나라에게 대패하자 초회왕(楚懷王)을 비롯한 신료들은
아연실색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입니다."모두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했다.
그러나 초회왕(楚懷王)이 군대를 물리려 한다고 해서 진혜문왕이 순순히 철군할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자를 보내 화평을 청했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 초나라의 성 두개를 바치겠습니다.
진혜문왕(秦惠文王)은 비로소 그 조건을 수락하고 군대를 불러들였다.
겨우 숨을 돌리게 된 초회왕(楚懷王)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의에 의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는가.
그는 장의(張儀)라는 이름만 들어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치를 떨었다.
그 이듬해인 BC 311년, 진혜문왕(秦惠文王)이 초회왕에 대해 엉뚱한 제안을 해왔다.
- 지난해 빼앗은 한중(漢中) 땅의 반을 돌려주겠소.그 속내는 이러하다.
진(秦)나라의 목적은 합종을 깨는 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楚)나라와의 화친이 절대적이다.
즉,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초나라와의 화평을 전제로 한중 땅의 반을 반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초회왕(楚懷王)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즉각 사람을 보내 답변했다.장의(張儀)를 바랄 뿐,땅은 필요없소.
장의만 보내주면 진(秦)나라에 검중 땅을 바치겠소.검중(黔中)은 호북성 서남부와 호남성
서북부에 해당하는 꽤 넓은 땅이다.파촉(巴蜀)과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런 요긴한 땅을 장의만 보내주면 그냥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장의(張儀)를 요구한 것은 물론 그를 산 채로 찢어죽이기 위해서였다.
장의에 대한 초회왕의 격분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제안을 받은 진혜문왕(秦惠文王)은 내심 고민했다.
장의(張儀)를 초나라로 보내기만 하면 검중 땅이 저절로 굴러들어오질 않는가.
이런 갈등을 눈치챈 사람들이 있었다.그동안 장의로 인해 요직에서 밀려난 신료들이었다.
그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진혜문왕에게 속삭였다."넓고 요긴한 땅을 사람 하나와 바꾸자고 하니,
이런 좋은 조건이 어디 있습니까? 작은 이익 때문에 큰 이익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러나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차마,- 그리하겠소.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어찌 땅 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도와준 신하를 팔아넘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이래저래 진혜문왕은 고민에 싸였다.
이것을 장의(張儀)가 알았다.그는 마음을 정하고 진혜문왕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신이 초(楚)나라로 가겠습니다."진혜문왕(秦惠文王)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그렇게는 할 수 없소.
지금 초왕(楚王)은 선생에 대해 몹시 격분하고 있소. 가면 선생은 죽을 것이오."
"왕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진(秦)나라는 강하고 초(楚)나라는 약합니다.
신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니, 아무 근심 마시고 신을 초나라로 보내주십시오."
"선생은 초(楚)나라로 가 목숨을 부지할 묘책이라도 있소? 있다면 그 계책을 과인도 알고 싶소."
"지금 초나라의 국론은 두 개의 의견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는 진(秦)나라와 친하게 지내자는
여론이고, 다른 하나는 진나라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신이 초(楚)나라로 가면 저들은 더욱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초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 중에 근상(靳尙)이라는 대부가 있는데, 그는 신과 몹시 친합니다.
신은 근상을 이용해 제 목숨을 부지할 작정입니다."
"아무리 근상이라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사정이 다르오. 좀더 자세히 말해 보오."
"근상(靳尙)은 초왕의 총애만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초왕의 부인인 정수와도 오누이처럼
친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수(鄭袖)는 초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어
그녀의 말이라면 초왕(楚王)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장의(張儀)는 정수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정수(鄭袖)는 정나라 여인으로 초왕에게 시집왔다.
미모와 애교가 어찌나 뛰어난지 초회왕(楚懷王)은 단번에 정수에게 빠졌다.
정수(鄭袖)는 질투심도 강했다. 그녀의 질투심에 관한 일화가 있다.
어느 때인가 초회왕(楚懷王)이 제법 얼굴이 반반한 여인을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총애를 빼앗길까 염려된 정수(鄭袖)는 새로 들어온 후궁을 찾아가 말했다.
- 그대는 아직 모르겠지만 왕의 몸에서는 노린내가 몹시 나네. 그러니 왕을 모실 때는
늘 나처럼 코를 틀어막아야 견딜 수 있네.그 후궁은 정수의 말을 믿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초회왕(楚懷王)이 언짢아 할 것은 당연했다.어느 날 그는 정수에게 투덜대었다.
- 어찌된 일인지 새로 들어온 후궁은 나만 보면 솜으로 코를 틀어막는구나.
정수(鄭袖)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 그 후궁이 말하기를, 대왕의 몸에서 노린내가 몹시 나 코를 막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하더이다.
이 말을 들은 초회왕(楚懷王)은 그 날로 후궁의 코를 잘라버렸다.
"이 정수(鄭袖)왕비가 근상과 가깝고, 근상(靳尙)은 신과 가까우니 신이 어찌 초나라에서
목숨을 잃을 리 있겠습니까. 설령 신이 초나라에 가서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 진(秦)나라가
검중(黔中) 땅을 얻을 수 있다면 신은 아무런 여한도 없습니다."진혜문왕(秦惠文王)은 감격했다.
잠시나마 장의를 보냄으로써 검중 땅을 얻을까 생각했던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여겼다.
772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772
■ 3부 일통 천하 (95)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1장 하나를 다시 여섯으로 (8)
이윽고 장의(張儀)는 사신의 자격으로 초(楚)나라로 건너갔다.
아마도 이때의 초(楚)나라행이 장의(張儀)의 일생 중 가장 극적인 부분이 아니었을까.
과연 초회왕(楚懷王)은 장의를 보자마자 옥에 가두었다.
장차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서 죽일 작정이었다.
그러나 장의(張儀) 또한 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심복 부하를 시켜 근상에게 뇌물을 바치고
세밀히 계책을 일러둔 뒤였다.- 반드시 이러이러하게 해주시오.
근상(靳尙)은 친진파의 대표이기는 했지만 간신의 기질도 농후한 사람이었다.
그가 친진파(親秦派)의 주역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애국심에서라기 보다는 장의의 뇌물 공세에
넘어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근상(靳尙)은 곧 내궁으로 들어가 초왕의 부인 정수에게 밀담을
신청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부인께서 왕의 총애를 잃게 되었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부인께선 대책을 강구해 놓으셔야 합니다."
"난데없이 그게 무슨 소리요?""지금 우리 나라 감옥에 진나라 재상인 장의(張儀)가 갇혀 있습니다.
왕께서는 장차 그를 죽이려 하십니다. 그런데 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장의는 진왕이 무척 아끼는
신하입니다. 장의의 죽음을 수수방관(袖手傍觀)할 리 없겠지요."".................?"
"신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진왕(秦王)은 지금 장의를 석방하기 위해 진나라 최고의 미인과
상용(上庸) 땅 여섯 고을을 우리 왕에게 바치려고 한답니다."
"우리 왕은 유독 땅을 좋아하시고, 여인을 사랑합니다. 왕께서는 틀림없이 땅과 미인을 받으신 후
장의(張儀)를 석방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부인께서는 진나라 여인에게 밀릴 것이니,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질투심이 강한 초왕의 부인 정수(鄭袖)는 그 말만 듣고도 안색이 핼쓱해졌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을까요? 대부께서는 부디 저를 위해 계책을 내주십시오."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일단 이번 일을 모른 체하시고 왕께 잘 말씀드려
장의(張儀)를 우리 쪽에서 먼저 석방하는 것입니다.""그러면 진(秦)나라는 신의가 없는 나라이므로
장의(張儀)가 돌아오기만 하면 땅과 여자를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오로지 부인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근상의 꼬드김을 받은 정수(鄭袖)는 그 날부터 밤낮으로
초회왕을 채근했다. 때로는 눈물로써, 때로는 협박으로써 장의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신하된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법입니다. 이번에 장의(張儀)가
죽을 줄을 알면서도 우리 나라에 온 것은 진왕(秦王)에 대한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장의(張儀)는 진나라 충신입니다. 그런데 왕께서 그런 충신을 죽인다면 진나라가 과연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마도 모든 군대를 동원해 우리 초(楚)나라를 칠 것입니다."
"신첩은 진(秦)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지금 강남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고자 합니다."초회왕(楚懷王)은 사랑하는 부인인 정수가 눈물을 찍으며 애원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그렇다면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장의(張儀)를 석방하면 진나라는 왕의 대범함에 감격하여 우리 초나라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첩이 왕을 영원히 모실 수 있는 길입니다."
초회왕(楚懷王)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방을 나왔다.다음날이었다.
아침 일찍 근상(靳尙)이 조당으로 들어와 황급한 어조로 초회왕에게 아뢰었다.
"큰일났습니다. 진(秦)나라 군대가 대거 국경 근처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진혜문왕(秦惠文王)이 장수 위장(魏章)에게 군사를 내주어 한중으로 내려보냈던 것이다.
지난해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크게 패한 바 있는 초회왕(楚懷王)은 그러한 보고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의 때문인가?""그런 듯 싶습니다.""어찌하는 것이 좋겠소?"
"왕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장의(張儀)를 석방하는 것이 나을 줄 압니다.
장의를 죽이고 검중 땅을 내준들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차라리 장의를 석방하고
진(秦)나라와 화친을 맺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간밤에 정수(鄭袖)로부터 장의의 석방 요청을 들은 초회왕(楚懷王)은 이미 마음이 흔들린 상태였다.
여기에 근상(靳尙)마저 가세하자 자신이 너무 격분해 있었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초회왕(楚懷王)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명이 떨어졌다."알겠소. 지금 곧 장의를 석방하시오!"
모든 것이 장의가 노린 대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오랫만에 햇빛을 본 장의는,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난 직후라 서둘러 초(楚)나라를 떠날 법도 하건만
그는 대범하게도 초회왕을 찾아가 오히려 연횡의 필요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펼친 것이었다.
사가(史家)들이 그들 단순히 유세가(遊說家)로만 보지 않는 것은 바로 장의의 이러한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리라.이때 그가 펼친 연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지난해 초(楚)나라는 진나라와 충돌하여 크게 패한 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바로 다른 나라들의 태도다.일찍이 초나라는 열국과 합종 동맹을
맺었지만, 초나라가 우리 진(秦)나라에게 패하자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초(楚)나라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군사를 내어 초나라 영토를 침공하지 않았는가.
초나라를 맹주로 모시던 제ㆍ한ㆍ 위나라가 모두 그러했다.
이것이 바로 초나라가 신봉하는 합종(合縱)의 실체이다..........이어 장의(張儀)는 외쳤다.
"왕께서는 그동안 소진(蘇秦)에게 속아오셨습니다. 이제 천하의 사기꾼 소진도 죽었으니,
왕께서도 맑은 정신을 되찾으십시오. 초(楚)나라가 가까이 지내야 할 나라는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진(秦)나라입니다.""왕께 진실로 말하노니, 진나라와 형제의 의(義)를 맺어
종신토록 서로 정벌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것만이 진과 초나라가 다 같이 번영할 수 있는 길입니다."
초회왕에게 있어 장의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그는 장의(張儀)를 빈객의 예(禮)에 따라 접대하는 한편,
장의가 내민 진(秦)ㆍ초(楚) 우호조약서에 서명했다.
77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