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6-27. 파리 여행(3) - 로댕 박물관, 에펠 탑, 몽마르트
pebblebeach2019. 3. 30. 05:27 박상규
프랑스의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1840-1917)은 1908년부터 9년 동안
생을 마감할 때까지 우아한 18세기 저택 비롱에서 살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비롱 저택은 1730년에 완공된 건물로 1911년에 프랑스 정부가 저택을 구입하여
로댕이 죽은후 1919년에 미술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로댕은 이 저택의 임차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사후 이곳이 국가 소유로
되면서, 이 저택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조건으로 모든 작품을 기증하였다고 한다.
로댕 미술관은 크게 비롱 저택과 정원으로 구분 전시 되어 있다.
비롱 저택 안에는 로댕의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있는데 반 고흐의 작품도 많이 있다.
반 고흐는 사후 남긴 그림이 900여 점이다.
생전에 정식으로 판매된 그림은 단 한 점 뿐이라 한다.
실내 전시실에는 로댕의 습작, 벨기에에서의 작품, 청동 조각 등이
연대 순서로 전시되어 있다. 작품 소재가 '키스'가 많이 눈에 띄었다.
아래는 <로댕의 키스> 1886년
로댕의 나이 42세 때 18세의 제자 카미유 끌로델(1864 -1943)과 9년간 연인관계가 되지만
카미유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
그 시기에 로댕은 사랑과 욕망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고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로댕의 키스 이다.
이 '생각하는 사람'은 연인 '까미유 끌로델'을 생각하는 중이다~ㅎ
아래는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들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정원의 입구에 전시되어 있지만.
나무에 둘러쌓여 있어서 바깥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뒤쪽 앵발리드의 높은 돔 교회 (Dome Church)의
지하에는 1861년 세인트 헬레나에서 옮겨온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되어있다.
'생각하는 사람' 외에도 '지옥의 문' '발자크' 등 로댕의
유명 작품도 매혹적인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내 처가 The Thinker 모양으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있다 ㅎㅎ
'칼레의 시민들'
로댕은 백년전쟁때 칼레에서 있었던 일을 기념비로 제작한다.
처형을 앞둔 7명 '칼레의 시민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닌
지나치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는 비난도 받는 작품이다.
'칼레의 시민들' 조각상은 미국 스텐포드 대학 캠퍼스에서도 보았다.
에펠 탑은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와 대혁명 100주년 기념을 위해
지어진 324m 높이로 19세기 미학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예전 파리 여행때 엘리베이터로 2차 레벨 115m까지 올라갔었다.
이번의 우리 파리여행때는 노란 조끼의 반정부 시위로 도심 곳곳이
차단되고 에펠 탑 근처에도 수시로 통행이 저지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평소 여행때 보다 우리 부부 사진이 많다.
최근의 내 경험으로는 일반 소장 사진보다는 블로그 사진을 더 자주
펼쳐 보게 되는것 같아 우리 부부 사진도 자주 올리기로 했다.
몽마르트의 사크레쾨르 대성당
1870년 보불 전쟁이 발발하고 프랑스인 사업가 두 분이 프랑스가 프러시아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하며 건축 자금을 약속하였다. 실제로 파리는 함락되지 않았고
건설작업은 1875년에 시작되어 1914년에 완공되었으나 그후 독일의 침공으로
1919년 프랑스가 승리할 때까지 독일에 점령당한 역사가 있다.
성당을 전망하기 가장 좋은 위치는 성당 밑에 있는 계단이다.
계단을 올라가 정문인 청동문을 지나 성당 내부로 들어간다.
청동문에는 최후의 만찬을 비롯한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은
장면들이 조각되어 있다.
본당 천장을 뒤덮고 있는 그리스도의 대형 모자이크
(1912-1922년)
우편의 기마상은 잔다르크이고 기마상 두 개보다
높은 위치에 그리스도의 동상이 서 있다.
몽마르트는 예술의 거리다.
무명의 화가들, 기념품을 파는 상인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택시를 타고 바로 올라와서 힘은 들지 않았지만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는 참 재미는 없었다.
데르트르 광장에는 수많은 무명 화가들로 붐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즉석으로 나오는 세상이지만
내 초상화도 한 번 그려 만들고 싶었다 ㅎㅎ
몽마르트는 카페를 중심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이고 뭉쳤다.
일상의 느낌을 표현하는 화가들에게는 풍부한 소재가 있는 곳이다.
반 고흐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 탕기 (Tanguy)영감은 몽마르트에 살면서
가난한 인상주의 화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로댕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탕기영감
지금은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몽마르트 언덕위의 좁은 골목이지만
옛날 가난한 초짜 화가들을 생각하게 하는 풍경이 남아 있어
몽마르트를 기억하고 사랑하게 되는것 같다.
세잔, 모네를 생각하게 하는 무명 화가의 그림이다.
테르트르 광장 주변에는 개성있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1793년에 문을 연 '라 메르 카트린' 레스토랑.
우리가 식사한 La Cremaillere 1900 카페.
레스토랑의 뒤뜰은 파란 하늘이 보이는 노천 카페다.
우선 오이스터와 스네일에 마리아주 와인을 시키고
메인은 사몬 셀러드, 파스타, 개구리 뒷다리 스튜를 시킨다.
몽마르트 언덕의 노천카페에서 와인과 요리를 먹으면서
파리의 매혹에 빠져 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특별한 즐거움이다.
프랑스인의 삶의 가장 큰 기쁨의 하나가 먹는것임이
- 미식 Gourmet - 이해가 간다.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사쿠레쾨르 대성당 외에도
둘러봐야 하는 교회, 박물관, 미술관이 많이 있지만 이정도로 마친다.
다음 여정은 파리의 백화점 관광 차례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파리지앵처럼 걸어 내려와 본다.
내 처와 딸, 손녀는 라파예르(Lafayette) 백화점엘 들어가고
나는 백화점 옥상에서 파리 시내를 조망하고 휴식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이다.
프랑스 요리가 슬슬 싫증이 날 때가 되었다
마침 호텔 인근에 일본식 라면집을 발견했다.
야끼만두, 야끼메시, 미소라면, 가라아게, 돈부리 등등
메뉴는 일본 이름으로 써야 제맛이 난다.
오늘 저녁의 엔터테인먼트도 어제 물랭 루주와 유사한 LIDO 쑈이다.
디너없는 샴페인 한 잔 서비스되는 쑈 가격은 85유로.
물랭 루즈 보다는 약간 저렴한 가격이다.
물랭 루즈는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있지만 리도 극장은
개선문이 보이는 상젤리제 거리에 위치한다.
리도 광고 포스터의 배경에는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과
개선문이 보인다. 중앙에는 리도의 아름다운 무희가 있습니다 ㅎ
쑈가 시작하기 전의 화려한 무대입니다.
오늘 저녁이 파리 관광 4박 째 마지막 날이다.
부지런히 파리의 명소들을 구경하였지만 주마간산이다.
다음에 혹시 파리의 미술관 혹은 프랑스 요리가 화두로 나오면
이 정도로는 아는체를 못할 것 같다.
2월 27일 오늘 오후 13시에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말라가로 떠난다.
동틀 무렵 호텔을 나와 세느 강변과 도심을 걷기로 한다.
튈르리 정원을 지나 콩코드 다리를 건너면서 파리의 동녘이 밝아 온다.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부르봉 궁전 국회 외관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알렉상드로 3세 교
1896년 10월 이 다리의 초석을 놓았던 러시아 황제 알렉상드로 3세 이름을 따서 불려지게 되었다.
(알렉상드로 3세는 니콜라스 2세의 아버지다)
다리 양쪽 끝에 있는 아기 천사상
여신상
청동대포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앵발리드 정원과
군사 박물관
앵발리드 저택
앵발리드 저택 입구의 맞은편의 동상은 내가 듣지 못한 장군이다.
여기에서 로댕 박물관을 지나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세느 강을 만나고
첫날 방문한 오르세 미술관을 만난다.
80분간 약 9,000보를 걸었다.
스페인의 말라가 공항에 도착하여 렌트 카 수속을 마치고
호텔이 있는 그라나다에 도착하니 저녁이다.
드골 공항에서 말라가 공항까지 비행 시간 2시간 30분,
말라가에서 그라나다까지 드라이빙 1시간 40분이다.
사진은 불밝힌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야경이다.
2019년 3월 30일
양평 우거에서
첫댓글 몽 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 쾨르 대성당에서 기도드리고, 인근의 테르트르 광장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안내를 했던 40년 전의 거리모습들 그대로 입니다. 덕택에 에펠탑, 앵발리드, 로댕미술관을 즐겁게 감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