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06] 맴돌다
피그미 카멜레온은 죽을 때까지
평생 색깔을 바꾸려고
1제곱미터 안을 맴돌고
사하라 사막개미는 죽을 때까지
평생 먹이를 찾으려고
집에서 2백 미터 안을 맴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시를 찾으려고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아야 하나
-천양희 (1942~ )
/일러스트=양진경
삶의 허무니 어쩌니 길게 말해 무엇하리. “너는 평생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았니?”라고 물어보면 게임이 끝난다. 네가 아무리 잘난 척해도, 네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모두 맴돌다 가는 인생. 직업에 매인 사람이라면, 직장에 구속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공감할 멋진 시.
피그미 카멜레온, 사하라 사막개미 그리고 인간. 서로 다른 동물들이 색깔과 먹이와 시를 찾아 각각 1제곱미터, 2백 미터,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제곱미터, 미터, 세제곱미터의 수학적인 변주도 언어의 맛을 느끼게 한다. 시에서는 무의미한 반복이 허용되지 않는다. 쉬운 듯 쉽지 않은 시. 시를 쓰기보다 시를 찾기가 더 어렵다.
똑같이 맴돌다 가는 운명이지만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 인간만이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도는 자신을 의식하고 한탄한다. 인간만이 이 거룩한 문자로 자신이 느끼는 허망함을 다른 호모 사피엔스에게 전달 전파 전염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