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6. 큐티
마태복음 13:10 ~ 23
네 가지 땅에 뿌려진 씨에 대한 비유의 해석
관찰 :
1)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
- 10절.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 제자들이 예수님께 비유로 가르치시는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질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16절-17절에서 자신을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나라는 주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열려지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 11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 12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 아는 자는 더 잘 알게 되고, 모르는 자는 영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는 자는 안타까움으로 모르는 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책임을 갖게 됩니다.
- 13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 비유는 숨기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듣고 알지 못하는 이의 책임입니다.
- 14절.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었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 15절.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 이사야 6:9-10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주님이 정말로 두려워하실까요? 이것은 그 말이 아니라 오히려 완악해진 백성들이 변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 16절.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 17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으니라”
2) 주님이 해석해 주시는 씨뿌리는 비유
- 18절.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 19절.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져진 자요”
- 20절.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 21절.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 22절.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 23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 이 비유의 같은 조건은 “씨”입니다. 씨는 네 가지의 땅에 차별이 없이 똑같은 것이 뿌려졌습니다.
- 이 비유의 다른 조건들은 “밭”입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주님은 좋은 땅에 초점을 맞추시고 계십니다. 즉, 우리가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땅은 역으로 길가와 같지 않으며, 돌밭과 같지 않으며, 가시덤불과 같지 않은 씨가 움트고 자라기에 좋은 환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 반면 교사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 가르침을 주님이 베푸십니다. 악한 자에게 말씀을 빼앗기지 말 것,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임할 때 넘어지는 것, 즉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히는 것,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인데, 이것도 결국은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 좋은 땅에 뿌려져서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조그맣게 결실을 맺는 것조차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 오직 좋은 밭에서만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대충, 조금 결실을 맺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침 :
1) 비유가 해석되지 않는 이유는 변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완악함이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2) 네 가지의 밭은 결국 말씀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길가도, 돌밭도, 가시떨기 같은 밭이라도 갈아엎어지면 씨가 움터서 열매 맺게 됩니다. 그러나 씨를 잃어버리면 갈아엎어져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용 :
1)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화될 것을 작정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작정함이 없으면 말씀을 이해할 수도, 변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인한 나의 삶의 변화를 소망합니다.
2)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씨, 곧 말씀을 잃어버려서 안됩니다. 좋은 방법은 지속적으로 날마다 그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잃어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씨가 터져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날마다 씨를 받아들이면 잃어버려도 결실을 맺는 것이 있게 되지 않을까요? 치기어린 적용일 수 있지만, 의미있는 생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씨의 소중함을 알아 그 씨에게 나의 자양분을 드림으로 결실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항문 옆 염증 치료를 마쳤습니다. 치루로 발전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받았습니다. 무너진 건강을 회복중에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