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린덴발트의 아이거 북벽
몽블랑의 그랑조라스북벽
체르마트의 마터호른 북벽
돌로미티의 트레치메 암봉
모두 거대 암봉이다.위 세계 3대 북벽이라 일컬어지는 알프스 븍벽은 많은 전설적인 얘기들이 기록되어 왔는데,이제 돌로미티를 마지막으로 암봉은 다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산을 좋아했고 등산을 즐겼지만 그렇다고 암벽은 타보지도 못했고,암벽 등산에 관한 책으로 대신했다.어디에 이에 준하는 바위산이 있다 해도 더 바라볼 나이의 여유도,나이의 감흥도,나이의 관심도 예전 같지 않다.
돌로미티의 마지막 깃발은 작년 말 듣지도 못했던 '배길 유럽 여행'에서 이메일에 태워 홀연히 나타났던 것이다.다른 여행사와 달리 가격,내용,다 좋았다. 한구석 묶어두었던 돌로미티 트래킹을 풀었다.
부부 신청하여 비행기 티켓까지 끊었다가 아내가 몸이 안 좋아 혼자 가게 됐다.혼자 여행은 처음이었다.작년에 44년을 한 약국을 은퇴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해 볼까 했는데 이미 늦은 나이가 되어 버린 모양이어었다.생각하면 60대가 팔팔이다.시간도,여유도...베네치아에 도착했다.오후 시간에 가까운 베네치아(베니스) 본섬 여행도 가능했는데 이미 지친 몸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돌,성당,돌길,곤돌라,물 등 형체만 다르지 본질은 같지 않나 위안하며...
더웠다.오후 일정이 자유 시간이었다.각기 흩어져 자취를 감추는데 난 광장에서 홀로 머뭇거리다가 숙소로 돌아왔다.계획에 있던 티롤 지방을 다녀봤으면 했는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날씨도 더워 땡볕에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여전히 몸은 긴장과 피로에 누적되어 있었다.
아내랑 같이 있었다면,누군가 일행이 있었다면, 천천히 둘러봤을 텐데 혼자만의 시간은 쫓기는 마음이었다.
첫 트래킹.4일 일정이다.고산 목초지 알페 디 시우스(독일어로 자이저 알름)에서 케이블카로 콤파치까지 오르고, 환승하여 파노라마 알펜 호텔까지 리프트로 오른다.
들꽃들은 이미 졌지만 푸른 초원은 광활했다.트래킹의 시작이다.멀리 트레일(산길)을 따라 길을 막는 산이 있으니 덴티 디 테라로사(2,657.붉은 이빨)다.꼭대기는 첨봉 모양으로 기암괴석의 험악한 인상을 준다.고산 넓은 초원은 나무 하나 없는 부드러운 초록 융단이다.얕고 부드러운 둔덕도 있고,띄염띄염 샬레풍의 가옥이 심심치 않은 그림을 만들고 있다
여행 가기 전 아무래도 산을 탔다곤 했지만 나이도 있고 해서 동네 뒷산에서 체력을 다져보기도 했다.걷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제주 올레길의 강행으로 무리가 되었는지 이미 무릎 한쪽에 퇴행성 변화가 와서 병원 치료를 받았고 약도 받아왔다.
초원은 다행이 덥지 않았다.선선하다고 할까.산행하기엔 아주 더없는 날씨였다.자유식인 점심으로 빵과 육포와 견과와 물을 챙겼고 가벼운 걸음으로 트래킹을 시작했다.등산화에 전해져 오는 흙의 부드러움도 좋았다.
산에 가까이 접근하자 깔딱고개라고 했지만 풀만 덮여 있는 상당히 급한 비탈의 돌산으로 지그재그로 한참 올라야 된다.고산 탓도 있지만 몇 번이니 숨을 다스려야 햇다.그나마 날씨는 덥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안부(고개)에 올라서니 앞뒤로 장엄했다.뒤로는 광대한 알페 디 시우스 초원과 실리아르 암봉과 산능선,앞의 티레스 산장 쪽으로 로젠가르텐 산군의 거대한 바위산들이 언덕 위에서 숨을 겨우 다스리고 있는 나를 감쌀 듯이 너른 가슴으로 가까이 다가와 내밀었다.급사면 아래 멀리 가느다란 하얀 트레일(산길)이 보인다.
티레스 산장으로 가는 길은 좁은 외길로 가다가 넓어진다.붉은 지붕.이미 산장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와 휴식을 갖고 있었다.
파노라마 알펜 호텔로 가는 길은 이정표와 구글앱과 휴대폰을 통해 보고 묻고 하며 긴 초원의 트래킹을 마칠 수 있었다.마지막은 알펜 호텔에서 맥주(스몰) 한 잔과 에이스로 자축했다.고산지대라 그런지 더웠다는 느낌은 가질 수 없었다.
구글앱 사용도 안해 봤다.국내에서 카맵밖에는.마침 동행하는 여성분이 있어,그녀는 구글앱에 아주 익숙해 있어 , 그분의 뒤와 옆만 따라다녔다.우리보다 앞선 일행이 있었는데 ,그 일행이 길을 놓치는 바람에 우리 앞에 보이지 않아,사정 모르고 ,제대로 가고 있음에도 계속 의심하며 걸었다.
콤파치에 내려 서니 컴컴한 하늘에서 한바탕 폭우와 우박이 쏟아져 급하게 우의를 꺼내 입어야 했다.비 맞으니 추웠다..
볼차노에서.세체다 싸소롱고 (5일 일정)
350번 버스.오르티세이에서 케이블카로 세체다 전망대까지 간다.어떻게 묘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아름다고 멋진 모습,아니면 “가보세요” 하고 말까.여러 갈래의 하늘로 치솟은 첨봉,절단면,매끄럽게 녹색치마 내린 것 같은 산비탈.트레일.점점의 사람들.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이 순간 만큼 이들에겐 세상의 선과 악이 공유되지 않는다.다만 세체다의 풍광에 넋 나간 바쁜 여행객들일 뿐이다.그냥 찍어대도 한 장의,일생의 컷이 될 풍광이다.동영상도 찍고...바쁘다.서두르니 숨이 가빠진다.
세체다에도 트랙이 여러 코스가 있다.
케이블카로 싸소 롱고 옆에까지 오른다.통채로 바위산이다.세체다에서 볼 때는 구름에 살짝 가린 모습이 뚜렷하여 그렇게 멋지고 강한 아름다움을 보였는데 가까이 목격하니 시큰둥한 마음이다.원래 미인은 멀리서 봐야 온갖 상상을 갖다부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 댈 일도 없어지고 추상적 상상도 필요치 않게 된다.
6일째 일정.브라이스 호수 들려 도비안코 유스호스텔로 간다.
도비안코 가는 중에 버스 시간을 간발로 놓쳐 모처럼 여유 시간이 생겼다.점심 자유식도 해결해야 한다.웰스베르그의 마을 공원 폐점의 그늘을 찾았다.조용했다.볕은 땡땡했다.축구하는 아이들,공원 어디선가 노는 어린아이들의 소리가 유난했다.볼차노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남티롤의 자치도시(comune)의 공원이다.폐점이지만 쉴 수 있는 벤치와 그늘이 있으니...벤치에 먼지는 없었다.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정말 여유롭게 읽었다.
도비아코 유스호스텔.3인실.처음 숙박해 보는 유스호스텔에 당황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성향에 따라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샤워실,화장실,세면실 ,세탁실--세탁기,건조기 다 밀레 제품--공용이지만,왔다갔다 하는 것 외에는 불편하지 않았다.아침 뷔폐만 먹었는데 그것도 괜찮았다.두 분은 같은 동향 분들이어 좋았다.네 분이 오셨는데 80넘는 분도 오셨고,세계 여행의 트래킹에 대해선 쟁쟁한 분들이어서 슬쩍 내놓으려고 했던 명함을 살그머니 다시 집어 넣었다..
7일째 일정.트레치메 트레킹(7일 일정)
두 팀으로 시간을 달리하다.너무 트래킹하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버스는 트레치메 시작점인 아우론조 산장 밑까지 올라간다.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나무가 보이지 않은 바위산군이다.네 군데 산장—아우론조,라바레도,로카텔리,말가 랑갈름—은 모두 2,300미터 넘는 고지대다.
금강산 일만 2천봉을 여기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뿌옇고 부드러운 운무에 잠긴 산들의 모습은 환상적이다.거기에 점점으로 나타나는 트래커들의 몸은 자연에 비해 존재의 무게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든다.그래도 자연은 거부하지 않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변화해 간다.자연이 위대한 것인지 인간이 엄청난 존재인지...
트레치메에 이르는 길은 두 개ㅇ의 길이 있다.이 길과 위로 더 올라 달라붙는 길
사면 오름길이다.돌이 부서져 길이 되고 경사가 급해 오르기에는 가볍지 않다.자갈길 돌길 메마른길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이 찬다. 호흡을 달래며 겨우 달라붙어 따라가니 트레치메에 이르는 시간에서 아랫길보다 빠르다.
아랫길로 올 일행들은 뒤쳐져 있다.외국인--나도 외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하다.돌로미티를 다 끝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감흥은 아이거나 마터호른 그랑조라스에 못 미쳤다.시간과 크기와 높이의 차이겠지만,거기에 전설 같은 얘기가 없으니...
로카텔리 산장으로 간다.
한 번 더 뒤돌아본다.보는 각도 위치에 따라 감흥이 전혀 다르다.
로카텔리에서 말가 랑가름 산장 가는 길은 내리막 오르막 좀 힘이 드는 길이다.제일 고된 길이다.
12시 55분. 이제 보인다
아우론조에서 스몰비어2.5유로 시키고 빵 두 개 꺼내 먹다
의자는 햇살 가득하다.뜨거움이 아니고 따슨 느낌.그냥 앉아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다.입 안이 달달하다.
주차장 어느 버스가 2시23분 차인가 모르겠다.
일행 하나 둘 모인다.팀이 나누어졌다.11시팀은 한창 돌고 있겠다.
8일째 일정..
유스호스텔을 체크 아웃.라가주오이와 친퀘 토리 트래킹이다.산장 숙박이 예정 되어 있었는데,동계올림픽 준비로 호텔로 바퀴었다.불편했을 것 같지만 기대했었는데 아쉬웠다.일반버스 대신 전담버스가 왔다.비가 조금씩 내렸다.주변 산들은 운무와 비에 젖어 갔다.
벌써 두 번째다.망각,깜막.이런 일이 없어야 해서 늘 저녁 떄는 미리 채비했었다.내일 일정 준비품에을.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티켓이 차량에 놓아둔 캐리어 속에 두었던 것이다.난감,당혹,당황,서두름,초조.운전기사를 기다리고,비 맞으며 무거운 캐리어를 힘내어 들고,지퍼 열고,손 넣어 뒤지고...이런 기억이 또렷한 것은 그 순간의 막막함과 초조함 때문일 것이다.비를 조금 맞았는데 추웠다.이미 일행은 올라갔고 나와 가이드는 운행시간에 맞춰 뒤쳐져야 했다. 케이블카에 내렸을 때는 비기 조금씩 온 탓인지 산장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그래도 주변 풍광은 운무와 멀리 암청색 산들이 어우러진 여러 폭의 산수화였다.온통 바위산으로 그 위에
길이 나 있고,멀리 정상부에는 십자가가 있다.일행은 이미 그 곳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서둘러야 했다.급했다.
그 티켓이 주머니에서 사라졌다.급하게 서두르다 보니--보고, 찍고,걷고--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몇 번을 뒤져봤다.케이블카 직원은 에누리 없었다.찍은 사진 보여줘도...나머지 일정의 티켓으로 긁어야 했다.15유로,아니면 오늘 입장비만 22유로 내라고 억지를 부리니...참으로 심란하고 낭패스러운 혼자의 여행이다.일행은 액땜 삼으라 하며 위안을 풀어 준다.내내 안 좋았다.
친퀘 토리(다섯 개의 탑).리프트 타고 오른다.1차 대전 때는 이태리와 오스트리아 간의 전쟁터였다.전후 이태리의 승리로 오스트리아 땅에서 이태리 땅으로 편입됐다.일정은 스코이아토리 산장과 아베아우 산장 왕복 트레킹인데,대신 친퀘 토리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코르티나 담페초--26년에 밀라노와 같이 동계올림픽 개최--의 숙소로 간다.
코담초의 외곽에 있는 오래된 호텔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샬레 스타일의 호텔이다.숲속에 있고,한적하며 번거롭지 않다.식사도 좋았다.아침은 뷔폐,저녁은 정식? 이라고 해야 하나...
9일 일정.마지막 일정.(미주리나 호수,토파나 전망대,코담초 중심가)
비가 오는 탓인지 몰라도 브라이스 호수와 달리 한적했고,서늘했다.산책하기 좋은 동네처럼 보였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었다.운항을 중지하고 있었다.날씨 탓인지 정비 탓인지...아쉬움을 안고 주변에서 기다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2차 정류장(라발레스2,470) 3차 정류장(토파나 디 메쪼 3,243)
선물 사가지고 나와 다시 중심가를 걷는데 일행 몇 분이 레스토랑 앞에서 앉아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나 역시 어데서 무엇으로 자유식을 해야 하나 고심하고 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동석했다.메뉴를 보고 간단한 것으로,아는 게 피자와 맥주였으니....
모든 일정을 끝내다.
파란 하늘이 보인다.
코담쵸 성당을 종소리가 울린다.먼 기억이 희미하게 울린다.
3시쯤 깼지만 잠이 안 온다.
여유 있는 아침이다.음악 들으려니 수신이 안 된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 호텔 앞 너른 풀밭을 거닐다.공기는 차갑고 서늘하다.가슴까지 서늘하
다.걷는 발걸음과 몸이 상쾌하고 가볍다.
10시에 전용버스 출발.베네치아 공항에 12시에 도착하다.
출국 시간이 다 돼 가니 게이트가 부산해진다.
시작은 쉽지 않았어도,끝내고 몇 일이 지나 글 쓰며 생각하니 꿈결 같다는 것이 뭔지 알 것 같다.
기억이 남아 추억이 된다지만,세월이 흐른 뒤 누가 그 기억과 추억을 절절하게 간직하며
이런 날들을 회상할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 여행은 몽블랑과 체르마트와 그린델발트의 트래킹으로끝냈고,이태리 로마 여행 등은 돌로미티 트래킹으로 끝냈다고 하면
숲을 제대로 봤는지,나무로 제대로 만져 봤는지 묻는 분도 있을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같은 것이고 형체만 다르지 않나 한다.
여행을 같이 한 모든 분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빈다.
25.9.10 대전의 한 여행객
|
|
첫댓글 알프스산을 두루섭렵하셨군요.
이번 돌로미테를 여행 하시면서
종지부를 찍고 오셨으니 감회가 새롭겠어요,
아직 근력이 남으셨으니 다음을 준비하세요
정말 멋진 여정입니다.
돌로미티의 위용이 사진에서도 느껴집니다.
세계 3대 북벽을 모두 직접 눈으로 확인하셨다니 그 자체가 큰 성취 같아요.
마지막 여정을 멋지게 마무리하신 것 같아 감동입니다.
이제 그 길들이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닌, 직접 걸어온 발자국으로 남아있다는 게 참 의미 있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멋집니다
응원드립니다
요즘 문득 그곳의 향기가 그립습니다.
음악이 바람처럼 스며들던 거리,
커피 한 잔 위로 내려앉던 오후의 빛.
그 순간을 다시 마실 수 있다면
인생도 조금 더 부드러워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