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몽의 유서는 대단히 길었다. 원고지로 약 삼십 매나 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백영호 일가에 대한 자기의 복수의 동기로부터 범죄의 수단 오상억과의 관계, 그리고 유불란의 무서운 추리에 쫓겨 다니던 자기의 공포심이 여자 다웁게 섬세하고도 「센티멘탈」한 필치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이 기나긴 은몽의 유서 전부를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서에는 이미 독자제군이 알고 있는 사실과 중복되는 대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탐정소설가는 결코 필요 이외의 것을 기록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탐정소설 애독자는 결코 필요 이외의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서 필자는 은몽의 기나긴 유서 중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대목을 초기(抄記)하여 유탐정의 설명을 보충하는 동시에 독자 여러분의 몇 가지 의문을 만족시키고자 한다.
(前略[전략])
……그렇습니다. 저번 날밤, 유선생이 저에게 주신 말씀과 같이 저의 범죄 계획에 있어서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유선생이었읍니다. 유선생의 입으로부터 그 무서운 공상을 들은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고백하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나의 뜻을 채 이루지 못한 때였지요. 정란이가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선생의 그 예리한 추리 가운데 몇 가지의 착오가 있아오니 그 점을 정정해 드릴 의무가 제게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 오상억 변호사가 나와 공범관계를 맺은 것은 백남수 살해 직후였읍니다. 유선생의 말씀대로 나는 이층 복도에서 남수를 「피스톨」로 쏘고 아랫층 나의 침실로 쫓겨 들어와서 해월의 가장을 벗고 따라 들어오는 오상억에게 해월은 이제 방금 들창을 넘어 정원으로 도망쳤다고 속이었읍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았지요.
그 때 나를 따라 내려온 오상억의 달음박질이 예상외로 빨라서 침실까지는 겨우 붙잡히지 않고 쫓겨 들어 왔읍니다. 그러나 해월의 가장을 채 벗어버리기 전에 오변호사가 따라 들어왔던 것입니다. 아아, 그 순간의 오변호사의 놀란 표정! 뭐라고 외치고자 하는 그의 발밑에 머리를 숙이고 나는 두 손을 합장 하였습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나의 일신에 속한 모든 것을 전부 바치겠다는 표적이었읍니다.
그때는 벌써 현관으로 돌아나간 유선생의 발자욱 소리가 들창 밖에서 들려왔을 때지요.
오상억의 두 눈동자가 번쩍 빛났읍니다. 그는 부리나케 들창으로 뛰어가 상반신을 내밀고 유선생을 맞이하면서 해월은 들창을 넘어 도망했다고 거짓말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아아, 그 순간부터 나는 뱀 앞에 개구리 모양으로 그를 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상억은 나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권력자였지요
…… (中略[중략])……
이렇게 그때 저를 구해준 그의 호의를 처음에는 저에게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애정 문제 보다도 더 심각한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백씨 일가의 전멸과 함께 나의 수중으로 들어올 백만 원 재산을 겨누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수단을 가리지 않았읍니다. 유선생이 나를 가르쳐 해월이라고 무서운 단정을 내리던 이튿날, 악마 오상억과 나 사이에는 하나의 이상한 계약이 체결 되었읍니다 ── 즉 그가 나의 목숨을 구해주는 대신 나는 나에게 장차 굴러 들어올 백만 원을 그에게 양도한다는 유언을 하라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절대적인 명령이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자기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中略[중략])……
(여기에 그날 저녁 삼청동에서 명수대로 옮아가다가 남대문을 지나서 예쁜이와 바꾼 광경이 상세히 적혀 있다.)……
이리하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상억이가 하라는대로 자하문 고갯턱에서 자동차를 내려 양장을 벗어 버리고 오상억이 싯누런 이빨을 가진 무서운 사나이의 손으로부터 받아 주는 보따리에서 시골 부인네 의복 한 벌을 꺼내어 입고 홍제리 박영태라는 장님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 예쁜이라는 소경노릇을 하면 된다고 하면서 예쁜이의 성질과 일상생활에 대한 지식을 상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中略[중략]……
이리하여 저는 어젯밤에 이곳으로 왔읍니다. 그리고 백만 원이 오상억의 손으로 들어간 후에 둘이서 상해로 도망하자는 것이었읍니다. 유선생! 저에게는 지금 생에 대한 애착이 손톱 만큼도 없읍니다. 처음에 오상억을 유혹한 것은 사실이오나 그것은 단지 그의 탐정안(探偵眼)을 무서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지금 독약 ×× 가 준비되어 있읍니다. 이것을 한 방울 마시면 죄 많은 저의 일생은 순식간에 청산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단 한가지 유선생께 여쭐 말씀은 청년화가 김수일 씨는 저의 영원한 애인이었었다는 한 마디입니다. 저는 탐정 유불란을 미워했으나 화가 김수일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下略[하략])
『그만했으면 오상억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악착한 놈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줄 믿습니다. ──』
하고 유불란은 임경부와 백문호 씨를 쳐다보았다.
『오상억은 예쁜이와 은몽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끝끝내 은몽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은몽은 단지 기계처럼 그의 명령대로 움직였을 따름이지요.』
『으흠 ──』
하고 백문호 씨는 그 참혹한 사실에 전신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언제부터 오첨지가 자기 아들 오상억의 범죄에 가담했는지, 그것은 있더라도 오첨지를 취조하면 알 것입니다. ──』
하고 유불란은 백문호 씨의 눈물어린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그것은 여하간, 백선생 ── 즉 황세민 씨와 백영호 씨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오첨지니까 오상억도 물론 황선생이 백영호의 사촌형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은몽에게 그런 말을 꿈에도 하지 않았지요. ── 지금까지 백영호의 손에 죽었다고만 믿고 있던 자기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를 알게 되면 ──』
『은몽은 복수행위를 중지한다는 말씀이지요?』
하는 임경부의 말에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백만 원이 자기 수중으로 굴러들지는 않을 테니까.』
유불란은 붙여 물었던 담배을 재털이에 던지고 나서 침울한 얼굴로 잠깐동안 잠자코 앉았다가
『임경부!』
하고 부르면서 의자에서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이번 사건은 나에게 가장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읍니다. 나에게는 탐정의 소질이 없는 것을 가르쳐 주었읍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결코 슬퍼하지 않읍니다. 이후에는 절대로 범죄사건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을 나는 이 자리에서 임경부께 성명합니다. 탐정의 혈관(血管)에는 피가 순환하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서 깨달은 때문입니다. 탐정의 혈관에는 강철(鋼鐵)이 돌아야 합니다!』
<끝>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