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태우고, 집은 허물어라”
8년 전 2015년 어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가 91세로 타계한 날입니다. 이보다 4년 앞서 그는 “내가 죽거든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 버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집을 철거하고 도시개발 계획을 바꿔 주면 건물을 높이 올릴 수 있고, 땅값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라며, “인도의 네루 총리나 영국 셰익스피어의 집도 세월이 흐르니 폐허가 됐다. 가족도 사진이 있으니 미련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965년 싱가포르 초대 총리로 취임한 그는 재직 26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을 30배 이상 높였습니다. 2014년에는 GDP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아시아 1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경제 신화를 이룩했습니다. ‘개발 독재’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실용주의자인 그는 가난한 어촌 섬나라를 강소국(强小國)으로 성장시킨 국부였습니다.
리콴유가 75년간 산 자택은 실제로 기와는 빛이 바랬고, 벽은 곳곳이 갈라져 그냥 둬도 무너질 듯 초라했습니다. 100여 년 전 유대인 상인이 지었다는 자택은 침실 5개와, 원래 하인들이 쓰던 방 3개가 전부. 집이 있는 옥슬리가(街)는 서울 강남의 고급 주택가쯤 되는 곳으로 대지만 넓었지 ‘멋있다’고 할 만한 미적 요소는 거의 없었습니다.
# 리콴유 유언 때 이건희는 강남 고급 저택 지어
리콴유가 유언을 남긴 시기, 한국 최대 재벌 이건희 삼선전자 전 회장이 서울 삼성동에 고가의 단독주택을 짓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기분이 떨떠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전 회장은 이태원, 장충동, 서초동에도 저택과 고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데 더 좋은 집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땅과 집에 대한 인식과 집착은 사람마다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의 동화 <바보 이반>은 땅의 본질을 감명 깊게 일러줍니다. 농부인 이반은 평생토록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성실하고 착한 그를 독립시켜 주려고 불렀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네가 밟고 온 땅은 모두 네게 주겠다”는 주인의 말에 이반은 새벽을 기다리느라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 ‘내 땅’ 한 맺힌 농부 이반의 땅은 묫자리 3평
새벽부터 달리기 시작한 그는 종일 뛰고 또 뛰었습니다. 한 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내달렸습니다. 내 땅에 대한 평생의 한을 풀어보려고 이반은 밤이 이슥하도록 달린 끝에 주인집 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땅만 팠던 그는 땅을 치며 후회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반이 마지막 차지한 땅은 고작 묫자리 3평뿐이었습니다.
땅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부러움과 경원, 착취와 전쟁, 분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대장동 땅, 백현동 땅, 위례 땅, 양산 땅, 울산 땅은 언제 어디에서 지뢰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지뢰밭입니다. 우크라이나 땅, 튀르키예 땅, 시리아 땅은 포탄과 지진·홍수로 수만 명 생명을 앗아가고도 슬픔과 참상 그득한 불지옥·물 지옥입니다. 그래도 인간은 연안 바닷속이나 먼 바다 섬 땅까지 탐을 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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