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宮)의 여자 ●
"에릭?"
"으윽…. 괜…찮으십니까? 윽."
우르르- 하고, 몸 안에 무언가가 눌러 앉은 듯, 가슴부근이 굉장히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등에 화살을 맞아 아파 신음하는 그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고, 다른 이
들의 외침과 함께 다시한번 화살세례를 받게 됐다.
"공주님!"
곧 유에가, 나와 에릭을 감싸고 화살을 칼로 막았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화살을
쏘고 있는─에릭의 상태로 보아, 독이 있는 것 같았다.─인간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유에
쪽을 돌아보니, 그는 어깨에 심한 상처와, 살갗이 불에 지진 것 같은 상처를 갖고 있었고
다른 기사들도 하나씩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에릭. 나는 화살을 어깨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잘도 막아내는 유에를 믿고, 그에게 조그맣
게 주문을 외웠다.
"리저렉션."
우리 주위의 다른 생명체─대부분이 죽었고, 살아있는 놈들은 다 우리 편이었다.─의 기를
빼앗아 그에게 넣어줄 수 없어서 나는 내 몸에 존재하는 일부의 기를 그에게 주었다. 빛이
발하며, 그의 몸은 점차 깨끗해졌다. 그리고, 그는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눈을 뜨자마자, 다짜고짜 나에게 죄송하다고 하는 에릭.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가 없었지만, 말할 기력이 없는 듯해 그에게 살며시 웃어주고는 말했다.
"일단은 아픈 몸이니, 리디아님께 가 계세요. 저는 놈들을 해치우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그 미소가 굉장히 싸늘하니, 필히 화가 많이 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나는 에릭에게서 점점 멀어져, 위치를 파악했던 곳─대부분이 나무 위─을 향해 상대를 가
루로 만들어버리는 꽤나, 마나의 소비가 많은 주문을 걸었다.
"어둠이여, 너의 주인이 너를 부르노니 어서나와 나의 적을 파멸시켜라. 브러스트 앗슈."
천천히 하나하나, 잔인하게 고통스럽게. 갖가지의 괴성을 지르면서 인간들은 나무에서 떨어
지고 서서히 가루가 되었다. 기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서는, 묵묵히 눈을 감고 보지 않기도
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와 나를 번갈아 보기도 했다.
"…."
순식간에 죽어버린 적과, 갖가지 파멸 주문과 마물들로 인해서 아디산의 일부는 황폐해져
있었다. 또한 여기저기 오크와 우르크, 위어울프, 샐러맨더의 시신들이 흩어져 있었고, 털
뭉치들이 여기저기 눌러붙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보여야 할 인간이 없자, 발에
붙은 털뭉치를 떼내면서 말했다.
"마녀는… 어디갔지?"
"제법이군, 그래."
"피식-"
나는 동굴 속에서 다시 코끼리를 타고 나오는 그녀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해도 여간 놀란 것이 아닌 듯 했다. 코끼리도, 초록색과 붉은색의 혈에 의해 매우 흥
분된 상태인 것 같았다.
"가만히 좀 있어."
그녀는 긴 코를 흔들어대는 코끼리에게 명령했고, 그녀가 지팡이로 그를 두어번 치자 그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래. 내 부하들은 다 죽었고, 네 부하들도 꽤나 죽었군."
"맞아요. 이젠 당신이 좀 죽어줘야 겠어요."
나는 벌써 죽어버려, 차갑게 변해버린 병사와 리디아의 치료를 받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한
실드 안에 있는 병사를 쓰윽- 보고선 말했다. 꽤나 친절해 보이는 존대였지만, 그 어투에
따라 느끼는 것도 달랐다. 차가운 시선과 말투에 그녀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기력을 회복
하고 뻔뻔하게 말했다.
"내가 피곤해서, 더 이상은 못…."
"바루스 로드."
뭐? 피곤해서 더 이상은 못해? 웃기고 있군. 나는 서서히 그에게 다가가면서, 빛의 띠를
불러냈다. 그녀의 얼굴빛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채찍에 맞는 건 싫나보죠? 마녀씨?"
"너 그,그러다간 코끼리한테 밟혀 주주,죽어."
그녀는 입술을 덜덜 떨면서 비현에게 말했다. 그녀가 보고 있는 비현의 모습이란, 마치 사
냥감을 노리고 있는 마족의 얼굴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예전 그 대학살이 생각나 머리가 혼
란스럽기만 한 마녀였다. 그렇게 그녀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비현은 무자비하게 그녀를
채찍질했다.
처음에는 지팡이로 주문을 외우고 나름대로 방어를 했지만, 시동어만 부르면 끝인 나와, 일
일이 주문을 다 외야하는 마녀의 속도차는 엄청났다. 나는 코끼리 코를 가볍게 올라타, 그
의 얼굴을 지긋이 밟아주면서 마녀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내려가려고 발을 움직였
지만, 어림없는 소리. 나는 에릭의 롱소드로 그녀의 마지막을 장식해줬다.
"이렇게 약한 게, 감히 내 부하들을 넘봐? 웃기지도 않는군."
에릭의 롱소드에 묻은 붉은 선혈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자신은
공포의 마왕 케리우스와 어둠의 마왕 자이센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리 없는 병사들과 기사들은─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다.─그녀의 승리
에 환호했다.
"…유에, 괜찮아?"
나는 자신의 주인이 죽은 것을 보고, 도망가려는 코끼리의 머리에 롱소드를 두어번 그어
주고는 뛰어내린 뒤, 유에에게로 다가가 피가 흐르는게 아니라, 쏟아지고 있는 그의 팔을
보면서 말했다.
그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고, 아픈 것을 충분히 알기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주문을 외워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 또한 여러모로 마나를 많이 쓴 상태라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었다.
"쥬니아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리디아가 나의 앞을 가로 막으면서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유에의 팔을 쓰윽 훑어봤다. 왕비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군. 내후년 쯤엔 아
주 묵사발을 만들고 떠나야겠어.
"근데 저들은 누굽니까."
나의 이런 깜찍한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나 대신 여러개의 화살에 맞았던 에릭이었다. 그
도, 인간들은 마녀의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이 믿을까 안 믿
을까, 염려했지만 별거아니란 듯 말했다.
"샤를로트 왕비가 보낸 놈들이야."
"네?"
"저번에, 왕국 도서관으로 가려고 할 때 어떤 한 놈이 나를 감시했었지. 그가 패(牌)를 갖
고 있었어."
나는 내가 분쇄시켰던 복면의 여자의 패를 꺼내 보여주면서 말했다. 혹시 몰라서 갖고 다
녔던 것이다. 그 패를 본 사람들은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을 무시하면서─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실드에서 나온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괜찮나요?"
"죄송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예전의 나 같다면 '알면 됐어.'라고 했겠지만,
그들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는 화살에게 맞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면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최대한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금새 얼굴이 시뻘게
지는 병사들과 기사들이었다.
"근데, 리디아님."
나는 순간 떠올랐다는 듯, 리디아 쪽으로 돌렸다. 흑발의 머리가 바람을 타고 날렸다.
"네. 쥬니아 공주님."
"이 동굴은 엘프들이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왜 이런 마물들의 거처지가 되었지요?"
"사실 원래 엘프들이 사는 곳은 이곳이 아닙니다. 아디산에서 해가 뜨는 곳. 즉, 동쪽에
위치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근데 왜 설명을 해주실 때는 엘프들이 사는 동굴이 이곳이라고 하신 거지요?"
"그것은, 마물들의 마을 습격으로 인해서 잠시 동안 엘프들의 거처지가 되었었기 때문입니
다. 아마 지금쯤은 다시 마을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군요."
리디아는 보통 사람들은 받아 내기 힘든, 비현의 눈빛을 받아내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
녀에게 다가갈 때의 그 살기가 머릿 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대피 시켰었나요?"
"아니요. 마물에게 당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극히 일부의 엘프들 뿐. 아디 동쪽의 마을
에 살고 있는 엘프들은 천계 엘프들 입니다. 능력은 보통은 넘습니다."
리디아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에 피식 웃는 사람은 나였다. 천계 놈들 따위, 알게 뭐야. 라
는 아주 지극하게 옳은 생각이었다. 나는 그들까지 보살필 정도 아량이 넓진 않기 때문에
내 쪽 사람들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만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동굴 안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왠지 나를 대하는 태도들이 딱딱해진 기사 중, 카스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무에 기댄채 눈을 감았다.
- 번 뜩 -
"잠깐."
"왜, 왜 그러십니까?"
유에를 저지하는 행동에 그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나의 흐름이 이상해졌어요."
나의 말에 리디아는 흠칫 했다. 아마도, 마나의 흐름을 읽을 줄 안다는 것에 대해 놀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무시하고 살며시 일어났다. 그리고 흔들리는 수풀 사이
에서 나타난 것은….
"엘프?"
* * *
"글쎄, 가자니까! 왜 다들 여기에 눌러 앉는건데!"
"쥬니아님 이야말로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세요. 이왕 쉴 거 아늑한 곳에서 쉬는게 좋잖아
요."
나는 유에의 딱딱한 말에 할 말을 잃었다. 후안도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보였지만, 우리가
어쩌겠는가. 우리는 마족이다! 하고 달려가서, 어둠을 불러 인간들을 질식 시킨 뒤, 엘프들
과 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인 걸.
"비현님. 아무래도, (마)기는 절제하셔야겠는데요."
"남말 하지마."
우리는 서로 조금씩 세어나가는 마기를 보고, 꾸짖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팔딱 팔딱 뛰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천계의 엘프들과 하룻밤이라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이
행복의 요정들은, 완전 수다쟁이여서 귀가 앵앵-하고 울릴 지경이라고.
"쥬니아님, 과일 드세요."
"싫어. 안 먹어."
"도대체 여기가 왜 싫다는 겁니까?"
"…몰라!"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슈나이드의 말에 괜히 화를 낸 후, 후안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후안의 손에는 어느새 포도 두 송이가 들려있었다.
"너까지…."
"비현님. 비현님이 아무리 악명 높으신 그 분─마왕─의 공주님이라고 하여도 말이지요. 별
거 아닌 일에, 자존심 세우다가 굶어 죽는 처참한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하셔야 한다구요.
자, 드세요."
"명령이냐?"
"부탁이죠."
그래, 너 잘났다.
나는 후안의 태도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포도를 받아들고는 손에 쥐고 하나씩 따 먹었
다. 엘프들은 고기와 같은 것들은 일체 먹지 않고, 오직 과일만을 먹고 살아서 육식 위주의
식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유에들에게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이겠지.
"맛은 있네."
"그러네요."
조용히 포도알을 씹으면서 떠있는 보름달만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풀에서 튀어나온 엘프는, 우리가 부상을 당한 것을 보고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마을로 데
려가 주었다. 아디산 천계 엘프들의 수장은 우리들을 아주 반가이 맞았고─그렇게 무르니까
맨날 지는거다.─결국 우리는 며칠 이곳에 묵게 되었다.
"후안."
"네?"
"어머니가 보내셨니?"
"네."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몰랐지만,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인계로 나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렇게 있다니. 그리고 그렇게 무시하던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
다니, 생각하고보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근데, 나요. 약간 놀랐다고요."
나는 그의 말에, 뼈만 남은 포도를 보다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비현님, 행복해보였어요."
"내가?"
"변하셨다고나 할까. 마계에선, 매일같이 살기를 풀풀- 풍기시면서 겁을 주셨었는데 그리고
그걸 낙으로 여기셨는데. 여기서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인간들의 일에 발끈하는 일까지.
처음보는 모습들 뿐이었는 걸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에이, 네가 잘못 본 거겠지. 내가 인간들을 좋아할리가 있냐. 그리고 온화한 미소는 무슨.
아, 내가 말해줬나? 내가 인간들하고 별 탈 없이 지내려고 만든 7가지의 미소?"
"네? 그게 뭐에요?"
"네가 말하는 온화한 미소도 여기 중 하나일거다. 잘 봐."
나는 하나하나씩 웃으면서 그에게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그는 호탕하게 배를 잡고 웃을
뿐 번호─각각의 미소에는 번호가 있다.─를 고르진 않았다.
"왜 안 골라."
"…없는걸요?"
웃음을 멈추고는 심각하게 말하는 후안이었다. 그가 말하는 온화한 미소가 이 번호안에 없
을리 없다면서 보여줬지만 끝까지 아까 그가 말한 '온화한 미소'는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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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말을 엄청난 힘이 됩니다!
시험이란 놈은 왜 맨날 저의 발목을 잡는지 모르겠습니다 ㅜ_ㅜ
정말, 리플 달아주시는 분들 보면 매일같이 쓰고 올리고 싶지만
그게 안되니까 너무 슬퍼요ㅠ
에휴.
여하튼, 여러분 모두 2주 정도 남은 중간고사 잘 보시구요.
궁의 여자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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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로맨스판타지소설
[판타지]
궁(宮)의 여자 - [제 14 화]
빙수가좋아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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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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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있게 읽구 가구여 시험 잘보세여~^^
★ 네! 근데, 겨울 바람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흐음. 혹시 고등학생이세요?
잼써여~~ 글구 시험 홧팅하세여~~ >_<ㅋㅋ
★ 몰라두되님도, 홧~팅! 이에요! >_<
참 재미있네요. 시험 잘보시고 화이팅이에요~ ^-^
★ 사랑애님도 시험 홧~팅 입니다! >_< 헤헤.
아니여 ^^ 1학년생인 대학생~ 빙수님은여?고등학생인거같은데 2학년?인가여?
★ 에에? 그렇게 삭아보여요? ㅜ_ㅜ 아직 중학교 3학년이랍니다 ㅜ_ㅜ.. 흐흑. 고등학교 가기 싫어요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