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느님”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이다-
“하느님,
제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6)
"어서와 하느님께 노래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목청 돋우세. 알렐루야."
독서의 기도 초대송 후렴의 하느님 찬미로 하루를 활짝 연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제 참 좋아하는 성가 둘은 둘 다 “오!”로 시작됩니다. “오! 아름다워라”와 “오, 감미로워라”로 시작되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성가입니다. 만일 언젠가의 제 장례미사 때에는 입장성가와 퇴장성가는 이 두곡을 부탁해 두고 싶습니다. 강론과 또 묘비명이 가능하다면,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제 애송 좌우명 고백기도시로 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입니다.
어제 오랜만에 4개 본당 꾸리아 간부들 40여명의 하루 수도원 피정을 지도했습니다. 모두가 참 아름답고 성실해 보이는 밝고 환한 모습들이었습니다. 파견미사전 잠시 둘을 공지했습니다.
“입당성가는 못했고 퇴장성가로는 애국가를 부릅시다.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가 들어있어 성가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리고 함께 주님의 제대앞에서 기념촬영을 합시다.”
지난 주일 미사 강론 때 애국가를 부른 이후 두차례의 단체피정때마다 애국가를 부른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가사를 들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얼마나 숙연한 분위기인지 모두가 한마음, 한사랑의 애국자처럼 느껴졌습니다. 1절까지 기대했는데 무려 2절까지 불렀고 감동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 나라도 국민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란 가사중 동해는 일본해로 바뀌었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애국가 가사는 어떻게 되고, 독도는 어떻게 되나 하는 언짢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 일간지 둘은 1면 톱기사와 첫째 사설은 둘 다 “독립영웅 흉상 철거하는 육사”라는 제하에 이념이나 정파를 떠나 올바른 역사관으로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독립영웅은 누구나 아는 일제치하에서 나라독립에 몸바쳤던 홍범도 장군, 지청전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의 다섯분 애국자분들입니다. 요즘 몇 번 미사중 이런저런 착잡한 마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애국가를 부르며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피정대표자가 보내준 사진도 참 아름다워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모두 활짝 웃는 모습이 활짝 피어난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사진처럼 사세요!”
답신을 보냈습니다. 웃으면 꽃같은 참사람 얼굴인데, 똑같은 얼굴도 분노나 두려움, 걱정으로 이그러져있으면 괴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고백성사 보속시 말씀처방전에는 꼭 “웃어요!”라는 스탬프도 찍어 드립니다. 얼마전 주고 받은 덕담의 메시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언제나 그곳 그 자리에서 누구나 환대하시는 울 신부님! 신부님의 사랑과 겸손, 넉넉한 성품은 그 자체가 저희에게는 위로와 치유가 됩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존재자체가 저에게도 위로가 치유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서로서로에게 위로와 치유가 되도록 합시다. 그러나 궁극의 위로자요, 치유자는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보다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성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 제목은 “오, 하느님!-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이다”로 정했습니다.
첫째, 성부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살아 있는 하느님과의 만남보다 더 절실하고 절박한 것은 없습니다. 어제 피정중 참 많이 강조한 하느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바로 이를 위한 끊임없는, 한결같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의 의무임을 강조했습니다.
수도원은 하느님의 집이고, 수도자는 하느님의 사람이고 수도자의 기도는 하느님의 일이니 하느님은 수도자의 존재이유임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느님을 빼버리면 말그대로 허무와 무지의 어둠입니다. 제2독서 바오로의 하느님 찬미가는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감동인지요!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적이 있습니까?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주일이라 기념미사는 생략되지만 성녀 모니카(331-387)의 기념일이고, 내일은 성녀의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녀의 마지막 아드님에게 주신 유언도 감동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신비에 젖어 살았던 성녀 모니카입니다.
“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 낙이라곤 인제 아무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어했던 것은 한가지 일 때문이다. 내가 죽기전에 네가 기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천주께서 과람하게 나한테 베풀어 주셨다. 네가 세속의 행복을 끊고 그분의 종이 된 것을 보게 되니, 내 할 일이 또 무엇이겠느냐?”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성녀를 위로한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어머니가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한 자녀는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만고불변의 조언도 우리에겐 감동입니다.
둘째, 성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고백합시다.
믿음의 고백, 희망의 고백, 사랑의 고백입니다. 고백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너희와 언제나 함께 있겠다.” 확약하신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자 스승이요 도반이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참나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음이라면 성자 예수님은 답입니다.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신 예수님만이 성자 아버지께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의 고백을 대변한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믿음이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통쾌한 답변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감격에 벅찬 예수님의 축복을 가득 받은 베드로이지만 이후의 행적 또한 우리에겐 분발의 노력과 더불어 믿음의 여정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각오를 지니게 합니다. 곧장 주님의 길을 막음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호된 질책에 또 후에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였고, 부활후 발현하신 주님은 세 번 연거푸 베드로에게 약속을 받아 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고백에 이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성부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성자 예수님 사랑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두 가르침도 잊지 못합니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마라.”,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보다 앞세우지 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보다 그 무엇도 앞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교회를 사랑합시다.
성령께서 도와 주십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교회의 사람이 바로 우리의 삼중신원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후 주님의 격찬이 우리에게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참으로 주님을 만남으로 참나의 반석이라 불리게 된 베드로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께 실현되었고 예수님은 자신의 절대적 권능을 베드로에 위임함으로 당신의 권능에 합류시킵니다.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여기 그가 가리키는 바 예수님이요, 이런 예수님의 엄청난 일을 그대로 베드로에게 위임하여 자신의 구원섭리에 동참하게 하셨으니 예수님의 베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우리 역시 또 하나의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께 합류하여 주님의 교회가 된 우리들입니다. 교황님의 호소가 절절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를 수호하십시오.”
더욱 하느님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교회를 이루는 성체성사 미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교회사랑, 미사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를 깊이 하시고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교회의 사람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당신의 길을 내게 가르치시어,
그 진리 안에서 걷게 하시고, 제 마음을 이끌어 주사,
당신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시편86,11).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