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원관지를 둘러
이월 첫째 일요일은 입춘이었다. 올 겨울은 추위와 미세먼지가 서로 교차하면서 지나간다. 포근했던 대한은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었다. 이후 혹독한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다가 물러갔다. 입춘이 되니 다시 추위가 찾아왔다. 내 어릴 적 웃어른들이 입춘의 반짝 추위를 두고 ‘입춘 땜’이라고 했다. 한 절기가 오는 즈음 날씨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 불렀다. 날씨가 추워도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집에서부터 중앙역까지 걸었다. 순천을 출발해 포항으로 하루 한 차례 오가는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서다. 경전선 선로를 가다가 삼랑진에서 내릴 생각이다. 진영을 지나 한림정이고 낙동강을 가로 지른 철교를 건너니 삼랑진이었다. 역에서 내려 네 갈래 행선지를 물색했다. 뒷기미를 돌아 밀양강 강둑을 따라 밀양역까지 걷기다. 낙동강 본류를 따라 수산까지도 가능하다.
이 두 코스를 택하려면 역전에서 김밥과 곡차를 준비해 한나절 걸어야 한다. 방학 때 많이 걸었는데 개학 후까지 무리할 일은 없다. 나는 이미 그 길고 긴 강둑을 몇 차례 걸은 바 있다. 남은 두 코스는 삼랑진 근교 답사다. 우곡으로 가서 만어사를 둘러 만어산을 다녀오는 길이다. 오가는 길에 국수로 점심 요기를 할 수 있지 싶었다. 다른 하나는 삼랑진 송지의 오일장 장터 구경이다.
지난 일월 말 청도에서 대학 동기들이 1박2일로 모임을 가졌더랬다. 그날 울산에 온 한 친구는 정한 시각보다 늦게 나타났다. 친구는 그날 아침나절 삼랑진을 둘러서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텔레비전 어느 채널 ‘한국의 국수’ 프로그램이 방영되더란다. 만어사 가는 길목 간판도 없는 허름한 포장에서 말아 파는 국수가 먹음직해서 식도락 기행으로 그곳을 다녀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나는 역전에서 반나절 행선지를 정했다. 강둑으로 나가 자전거 길을 산책하고 송지 오일장을 둘러보기로 작정했다. 삼랑진 양수발전소가 있는 안태 방향으로 걸었다. 천태산에서 뻗친 강변 벼랑은 밀양과 양산을 경계 짓는다. 그 근처에 작원관 터가 있다. 영남대로 밀양의 관문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함락하고 한양으로 진격하던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현장을 복원해 놓았다.
작원관을 둘러보고 경부선 굴다리 밑으로 나갔다. 강변에는 전설로 전해오는 특이한 다리가 있었는데 4대강 사업 때 현장 일부가 드러나 모래를 더 파내지 못하고 덮어두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쌍다리’ 전설이다. 작원마을 처녀를 사모한 스님이 파계를 무릅쓰고 청혼을 해오자 처녀는 다리 놓기 시합을 벌여 스님이 이겨야 시집가겠노라고 했단다. 둘은 돌다리 놓기 시작했다.
스님은 건장한 사내였기에 당연히 자신이 먼저 놓을 것이라 믿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데 곁에서 역시 다리를 놓던 처녀가 일을 먼저 끝내고 강가에서 손을 씻고 있더란다. 실망한 스님이 푸른 강물로 뛰어들어 세상을 뜨자 이를 안타까이 여겨 처녀도 강물로 몸을 던져 둘 다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이후 작원마을 앞 샛강엔 번듯한 돌다리만 두 개 생겨 사람들이 편하게 다녔다.
둔치 자전거 길을 따라 다시 강을 거슬러 올랐다. 강 건너는 김해 상동과 생림이었다. 강을 가로지른 고속도로와 철도 교량이 나타났다. 부산대구간 고속도로와 경전선 철로 교량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건넜다. 강둑에 심겨진 여러 조경수 가운데 매실나무가 눈에 띄었다. 매서운 추위를 건너오느라 매화망울은 아직 잠에서 깨질 않고 있었다. 뒷기미 어름에서 송지 오일 장터로 향했다.
설날을 열흘 가량 앞둔 오일장은 사람들이 붐볐다. 특별히 볼 장거리가 없으면서도 장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강가답게 민물고기도 보였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지역 특산 딸기도 눈에 띄었다. 장어구이나 순대국밥 가게도 있었으나 난 관심이 없었다. 국수집을 지나 메밀묵집을 찾아 들었다. 생탁을 한 병 시켰더니 밑반찬이 나오고 메밀묵이 그득 담긴 대접에다 밥공기가 나왔다. 18.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