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추위에 장독대 깨진다’는 속담처럼 날씨가 차다. 지난 4일이 입춘이었지만 8일 단양 방곡사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칼바람이 살을 파고들었다. 소백산맥 자락인 황정산 품속에 자리한 방곡사에서는 때마침 큰 법회가 봉행되고 있었다.
매월 음력20일마다 지장기도를 여는 방곡사는 이날 1년 지장기도 회향을 하고 있었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공양을 기다리는 신도들은 추운 날씨였지만 얼굴에는 만연의 미소가 가득했다. 지장기도의 효험(?)같았다. 1998년 이곳에 방곡사를 창건해 세 번째 1000일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묘허((妙虛)스님을 만나 기도이야기와 불자의 도리에 대해 들어보았다.
“건강하시지요?”라고 안부를 물었다. “예”라고 대답하는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1년 지장기도 회향일을 맞아 장시간의 법문을 한 후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전혀 피곤한 기색조차 없었다. 공양실을 드나드는 신도들과 담소하며 등산에 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졌다.
“산행을 할 때는 나이 들었다는 소리 듣기 싫어 먼저 앞서 갑니다. 또 늙었다는 소리 듣기 싫어 숨소리조차도 잘 내지 않으려고 해요.”
평생 수행자로 살아 온 삶이 몸에 배여 있는 듯했다. 옆에 있던 상좌 중의 한 스님이 “저희 스님은 산을 기가 막히게 타요. 키는 작으시지만 보폭이 넓어 상좌들보다 훨씬 더 빨라요”라고 귀띔했다. 나이 70이 넘으면 누구나 그동안 살아 온 삶의 궤적이 몸에 담기는 법. 묘허스님은 그저 미소로 대중들을 대하면서도 ‘몸이 말해주는 무정설법’이 들어 있었다.
우선 궁금한 게 있었다. 방곡사에 무문관을 건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이번에 두타선원을 완공해 4월 하안거 때부터 방부를 들입니다. 처음에는 문밖에 안 나가는 무문관을 운영하려 생각하는데 조금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무문관 형태의 독방수행이라도 오전11시부터 1시 사이에는 각 방에서 나와 큰방에 나와 함께 공양도 하고 깨달음에 대한 점검도 받고 이야기도 나누도록 하려고 합니다. 기간은 9개월 동안 진행합니다. 방은 총 11개인데 선원장실과 원주실을 빼면 9명이 방부를 들일 수 있습니다.”
‘지장신앙 펼치라’
은사 화엄스님 유지 받들어
전국에 7개 사찰 창건
지장기도 이끌어
스님은 20년이 넘게 지장기도를 해오고 있다. 특별하게 지장기도를 하는 이유가 있는 지 물었다.
“강원(승가대학)을 졸업하고 50살까지는 <법화경>을 좋아했어요. 독송도 하고 법문도 하고 강의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어느 해 저희 은사(화엄)스님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리고는 당신(은사스님)께서는 출가 이전부터 모친의 영향으로 지장신앙을 접했고 출가한 이후까지 수좌로 살아오면서도 산철이나 시간이 나면 지장기도를 해 왔다며 상좌들이 다 하고 있지만 당신의 뒤를 이어 경전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지장신앙을 널리 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지장경>을 전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물려 준 <지장경>이 목판본 2권입니다. 앞으로 이 경전을 문화재 지정도 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공부해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지장경> 산림도 열고, <지장경> 독송도 하고, <지장경> 법문도 했습니다.”
지장기도를 하면 어떤 영험이 있을까 궁금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이후부터 미륵부처님 오실 때까지 56억7000만년을 무불시대(無佛時代)라 했어요. 즉 현신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정법 1000년, 상법시대 1000년이 지나가면 말법시대가 도래하는데 그때는 ‘투쟁이 견고하다’고 했어요. 모든 게 경쟁이고 투쟁인 시대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장보살에 의지하라고 부촉한 겁니다. 그 경전이 <지장보살본원경>입니다. 세상의 모든 경전은 중생 위해 설해졌지만 지장보살보원경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도리천으로 가서 만나 뵙고 어머니를 위해 설해졌어요. 그래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시는 거지요.”
스님은 ‘기도를 통한 업장소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생들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게 업장소멸입니다. 금생에 일어나는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일들에 대한 과보는 스스로 지어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지장기도를 함으로써 지어온 선업은 선보(善報)로 남게 해 주고, 지어 온 나쁜 업은 기도로 소멸되게 해 주면 복이 저절로 오게 되는 겁니다.”
스님은 특별히 매월 음력 20일 방곡사에서 조상 천도를 위한 지장기도를 해 오고 있다. “아무 재일이 들어있지 않아 각자 다니는 원찰에 관계없이 올 수 있어요. 또 음력20일이 방곡사 창건일(음력 9월20일)이기도 합니다. 방곡사는 법당에 지장보살님을 모셨고, 대불(입불)도 지장보살로 모셨어요. 그래서 매월 음력20일에는 전국의 불자들이 이곳 방곡사에 와서 지장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는 음력1월에 입재해서 12월에 해제하는 식으로 매년 하고 있습니다.”
단양 방곡사에서
세 번째 1000일 정진 중…
올 하안거부터
무문관 ‘두타선원’ 개원
참선 수행자 제접 계획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행복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스님.” 스님은 “인과를 믿고 만족과 감사해야 한다”고 간결하게 해법을 제시해 주었다. “항상 이 세상에 최상의 행복은 만족에 있습니다. 만족이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족의 반대말이 불만족이잖아요. 불만은 불행의 원인입니다. 만족은 행복의 근원입니다. 만족은 감사해야 합니다. 어떻게 감사하느냐면 인과를 믿어야 합니다. 오늘의 내 주위에 일어나는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일은 내가 지어서 만든 일이라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원인이 되어서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을 알면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만족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스님은 불교의 귀중한 가치에 대해서도 설파해 주었다. “운명을 개조하고, 운명을 바꾸는 게 불교입니다. 운명을 바꾸려면 일어나는 나쁜 생각을 (불 끄듯이) 끄고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의 표출이 행동인 겁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이 바뀌지 않습니다. 행동이 바뀌면 생활습관이 바뀌고, 남이 나를 보는 인격이 바뀌고, 비로소 운명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한 생각이 현생과 내생을 좌우하게 되는 거지요.”
계속해서 스님은 ‘오늘 이 한 생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 일어난 생각은 미래의 씨앗이고, 미래의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한 생각을 바르게 해서 행동하고 실천하면 미래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내생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생각은 선악의 원인이 되고, 시비의 근본이 되고, 생사윤회의 바탕이 됩니다. 한 생각 일어남이 생(生)이요, 한 생각 꺼뜨리는 게 사(死)입니다. 한 생각 때문에 억겁다생을 지나 여기까지 온 겁니다. 금생에서도 내 마음을 바로 밝혀, 자성(自性)을 깨닫지 못하면 끝없이 윤회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생각, 한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을 헛되지 보내지 않도록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 스님은 ‘도리(道理)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게 수행’이라고 설파했다.
“올바르고 거짓 없이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내 스스로에게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도리(道理)가 ‘길 도(道)자에 다스릴 리(理)자’ 아닙니까. 내가 나를 어떻게 다스려야 참답게 사는 걸까요. 부모는 부모의 도리, 자식은 자식의 도리, 형은 형의 도리, 아우는 아우의 도리, 남편은 남편의 도리, 아내는 아내의 도리가 있잖아요. 스스로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게 도리입니다. 이미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만입니다. 도리를 다해 참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정진이 수행인 겁니다.”
스님은 특히 ‘다웁게(답게)’라는 말이 중요하다고 했다. “남편은 남편 다웁게, 아내는 아내 다웁게, 부모는 부모다웁게 행동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도리를 다하고, 다웁게 사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는 노력과 정진이 수행인 겁니다.”
스님의 법문은 간명해서 이해하기 쉽다. 수행에 관한 정의도 그렇다. 각자 도리(道理)를 다하려 노력하는 삶이다. 그 도리를 다하며 불자답게 사는게 또한 수행이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
■ 묘허스님은 …
1943년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57년 경북 상주 남장사에서 화엄(華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김천 청암사 고봉스님 밑에서 경전을 배웠고 1965년 양산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통도사 보광선원 등에서 안거를 성만한 스님은 신탄진 신흥사, 김해 원명사, 단양 방곡사, 용인 백령사, 경기도 광주 대법사, 부산 정수사, 군위 백련사를 창건했다.
참선수행에도 관심이 많은 스님은 단양 방곡사에 두타선원을 건립해 올해 4월 개원해 후학들을 제접할 계획이다. 현재 단양 방곡사에 주석하며 방곡사와 대구 불광사 회주로 있다. 수행서인 <불교수행의 요체>와 불교설화집 <무명을 밝히려거든>, 선학입문서 <봄이 오면 풀은 절로 푸르리> 등의 법문자료집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