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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힘센 넘 놈 노예삼은 막패준 강력 파워 에너지 트럼프 원문보기 글쓴이: 곽 경 국
예전에 민초들 고달픈 삶 이야기.
그러니까 어려서 이야기지 어려서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에 민초들의 삶이 그만큼 고달펐다는 이야기야.
그 한 해께 그렇게 흉년이 들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이제 초근 목피로 이제 연명을 하게 되는데 그러니까 그 시절이 일정 때였던 모양이야.
산에 올라가서 이제 봄철인데 양식이 떨어졌으니까 칡을 캐고서 또 이렇게 송구를 베껴 가지고서 먹고 그러던 시절이다.
이런 말씀이야. 먹을 게 없어서 송구라 하는 것은 소나무로 이제 물이 오르면 그걸 이제 말하자면 낫을 갖고 가 가지고 껍데기를 벳겨서 속 껍데기를 비껴가지고서 가지고 와가지고 울궈가지고서 퍽퍽 절구에 찧어가지고 이렇게 해서 그걸 쌀가루하고 섞어가지고 이렇게 이제 밥을 해 먹던 시절이었는데 그래 이제 송구를 산에 가 가지고 한창 벳기는 판인데 아 이제 그 산림 간수 왜놈 순삭식이지 그러니까 왜놈 순사식 산림 간수가 올라오더라는 거야.
그렇게 올라와 가지고서 말하잠.
왜 나무를 말하자면 벗겨 먹느냐 나무가 죽겠지 이러면 이제 말하자면
나무라고 훈계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잡아갈 것처럼 나 되는 거야.
그래서 그 민초들이 둘인가 그렇게 있었는데 그만 낯을 들고 요놈 우리는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네 놈이나 먼저 잡아먹어야 겟다 하고서 낫을 갖고 덤벼들듯 잡아먹을듯 말이야.
그러니까 눈을 부라리고 그러니까 그만 왜놈 순사가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을 가더라는 그런 이야기야.
Gemini said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다 시원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어르신들께 들으셨던 그 생생한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네요.
그 시절 우리 민초들이 겪었던 **'보릿고개'**의 고통은 지금 세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무게였지요. 말씀하신 **송구(소나무 속껍질)**는 정말 목구멍을 넘기기조차 껄끄러운 구황작물이었음에도, 그것마저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보내주신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를 몇 가지 짚어보자면 이렇습니다.
1. '송구'로 연명하던 눈물겨운 삶
소나무에 물이 오르는 봄철, 겉껍질을 벗겨내고 나오는 하얀 속껍질을 '송기(松肌)'라고도 하죠. 이걸 찧어서 쌀가루 한 줌 섞어 밥을 지으면 떫고 거칠어서 소화도 잘 안 됐습니다. 오죽하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도 이 송기나 칡뿌리를 먹고 변비가 심해진 데서 유래했을 정도니, 당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산림 간수'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산림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우리 민족의 생존권을 압박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산에 올라간 백성들에게 '나무가 죽는다'며 훈계하고 잡아 가려 했던 순사의 모습은, 당시 민중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던 그들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3. 민초들의 무서운 생존 본능과 저항
"네 놈이나 먼저 잡아먹어야겠다!"
이 대목이 이야기의 백미네요. 평소엔 순사만 봐도 겁을 먹었을 선량한 백성들이었겠지만, 굶주림이 극에 달하고 자식들 입에 들어갈 송구마저 뺏길 위기에 처하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의 기개가 나온 것이지요. 낫을 들고 눈을 부라리며 덤벼드는 배고픈 호랑이 같은 민초들의 기세에, 총칼을 찬 순사도 겁에 질려 도망가는 모습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이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남았던 우리 조상들의 '생존의 역사' 그 자체네요. 덕분에 저도 당시의 고달픔과 그 속에 숨은 강단 있는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런 이야기 말고도, 어른들께 들었던 또 다른 '그 시절'의 생생한 기억이나 재미있는 일화가 더 있으신가요? 있다면 더 듣고 싶습니다.
You said
그러니 얼마나 먹고살기가 또 힘이 들면 그렇겠어.
그리고 또 한 번은 그렇게 이제 송구를 빗기는데 그렇게 왜놈 순사가 올라오더라는 거지.
그 예전에 그 왜놈 순사가 그렇게 아주 못되게 구른 거지 그래 여복하게 못되게 구르면 그렇게 학질이 걸리지 않아 말레리아 그야 그 학질 모기에 물리면 하루 거리가 걸리는데 그게 하루는 멀쩡하다가 그 이튿날은 또 아프고 또 하루는 멀쩡하다가 그 이튿날은 또 벌벌벌벌 몸이 막 열이 나면서 말이야.
감기처럼 그렇게 아프거든. 나중은 복학이 되선 날마다 아프게된다
그전에 나도 다 알아봤지만 그래도 그 학질을 놀래키면 떨어진다고 그 발바닥에다가 그렇게 왜놈 순사 이렇게 먹물로 쓰면은 떨어진다는 거야.
그러니 왜놈 순사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그렇게 병 까지 도망간다고 하겠어.
그렇게 이제 또 송구를 벗겨 먹는데 올라오더라는 거야.
그래서 또 이렇게 말하자면 나무라려는 거지 잡아갈 듯이 그래서 두 사람이 이놈 너 하여튼 맛 좀 봐라.
우리가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너 잡아먹지는 않을 테고 커다란 나무를 장대를 이제 여기서 어 올라올 적에 미리 만들어 놨다는 거야.
길다란 장대 봐. 저게 말하자면 밤 딸 적에 쓰는 장대 있잖아.
무슨 나무 열매 딸 적에 쓰는 장대. 그래 그놈이 올라온 걸 붙들어 가지고서 양팔을 쫙 벌리게 하고서 거기다가 그 장대를 메가지고 그만 붙들어 매놨다는 거야.
그러니 그놈이 오고 싶어도 빨리 오고 싶어도 나무에 걸려서 못 오는 거야.
잘 생각해 봐.
양팔을 벌려 가지고 거기다가 그렇게 길다란 장대를 꽁꽁 묶어 놓으면은 그건 나무 상간으로
ㅋㅋㅋ 빠져나오려면 얼마나 힘들어 웃음이 나서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겠네.
생각을 해봐. 그걸 팔이 말하자면 걸려가지고 절대 못 나옵니다.
빨리 나무가 꽉 배긴 데다가 그렇게 해놓으면 그걸 이리 틀리고 저리 틀리고 해서 나와야 될 텐데 또는 옆으로 이렇게 말하자면 저저 바다 게 가듯이 옆으로 기어가야 될 판인데 그게 쉬운 거 아니거든.
그래서 그렇게 혼줄을 내놓더라는 거지
Gemini said
푸하하, 정말 기가 막힌 해학입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며 웃음이 터졌습니다. 말씀하신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위세 당당하게 산에 오르던 순사가 졸지에 양팔에 긴 장대를 매달고 나무 사이를 꽃게처럼 옆으로 기어가는 꼴이라니요!
그 시절 민초들이 당한 설움을 생각하면 참 가슴 아픈 일인데, 우리 조상들은 그 고통을 이런 **'골탕 먹이기'**로 되갚아 주는 대단한 유머를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보내주신 이야기 속에 담긴 흥미로운 점들을 짚어보니 더 실감이 납니다.
1. "순사 이름만 써도 병이 도망간다"는 원망과 공포
**학질(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발바닥에 '일본 순사' 이름을 적었다는 대목은 정말 의미심장합니다.
학질 귀신보다 일본 순사가 더 무섭고 독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순사가 백성들을 지독하게 괴롭혔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오죽하면 그 지긋지긋한 병마조차 "순사가 왔다!" 하면 깜짝 놀라 도망갈 거라고 믿었을까요.
2. 민초들의 지혜로운 복수: '장대 형벌'
순사를 때리거나 죽이면 일이 커져서 큰 화를 당할 텐데, 죽이지는 않으면서도 아주 진을 빼놓는 **'장대 전략'**은 정말 천재적입니다.
좁은 숲길에서 양팔에 긴 장대를 묶어 놓으면, 앞으로 가려 해도 나무에 걸리고 뒤로 가려 해도 걸리죠.
말씀하신 대로 게처럼 옆으로 살살 기어나오거나, 아니면 누가 풀어줄 때까지 산속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을 겁니다.
총칼을 찬 순사가 나무 틈에 끼어 쩔쩔매는 모습은 당시 억눌려 살던 백성들에게는 그 어떤 구경보다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장면이었을 것 같네요.
3.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힘
배고픈 설움(송구 벳겨 먹던 시절) 속에서도 이런 기발한 방법으로 권력자를 골탕 먹인 이야기는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을 보여줍니다. "네 놈이나 먼저 잡아먹어야겠다"고 달려들던 기개와, 장대를 묶어버리는 그 영리함이 합쳐져서 그 모진 세월을 버텨낸 힘이 된 것이겠지요.
어르신께서 웃음이 나서 이야기를 제대로 못 하실 정도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그 시절 통쾌했던 복수극 현장에 같이 있었던 기분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기록으로 남겨야 할 소중한 우리네 삶의 조각들이네요.
혹시 이 순사가 그 후에 어떻게 내려갔는지, 혹은 이 순사 말고도 또 다른 '골탕 먹은 놈'이나 동네에서 유명했던 익살꾼 어른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집니다!
You said
또는 이제 그렇게 또 예전에 다 그런 이야기야.
나무도 해서 떼고 나무 갖고 뭐 재목을 만들어서 가작도 달고 집도 짓고 특히 이제 그 소 그 먹는 그 여물통 그것을 소 궁이라 그러잖아.
그것을 이제 궁을 파는데 그렇게 나무를 베어 가지고 커다란 나무를 베 가지고 궁을 파는데 왜놈 순사가 올라오더라는 게 산림 간수가 그래 와가지고 왜 나무를 비 가지고서 그렇게 허가도 없이 소궁을 파느냐고 ‘오 !너 잘 왔다.’
내가 지금 여기 말하자면 힘이 좀 부족한데 이거 가져갈 사람이 마땅치 않은데 네 놈 잘한다.
너는 밥 먹고살지 소도 밥 먹고살아야 돼. 여물 먹고살아야 돼.
그런데 내가 우리 집이 여물통이 소 여물통이 없었는데 이렇게 내가 이 소궁을 파고 있는 데가 이걸 어떻게 갖고 가나 했는데 마침 네가 자랐구나.
그래서 소궁을 판 것을 그놈 등대개에다가 너 짊어줘라.
안 그러면 이 낫으로 고만 대갈 바를 곧 줘져버릴 거야.
그래서 그걸 짊어지게 해 가지고
그래 그놈이 또 가만히 있겠어. 복수하려고 덤벼들겠지.
그건 나중 일이고 그렇게 말하자면 임시 말하자면 뭐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그렇게 이제 말하자면 골탕을 주는 거지 뭐 나중에 뭐 잡혀가려고 또 떼거리로 온다 하면 꽁지가 빠지려고 도망갔겠지.
Gemini said
와, 이번 이야기는 앞선 '장대' 이야기보다 한층 더 강력하고 통쾌합니다! 단순한 골탕을 넘어서, 일제의 상징인 순사에게 **'소 여물통(소궁)'**을 지우고 짐꾼 노릇을 시켰다니 정말 대단한 배짱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네요. 그 장면들을 가만히 되짚어보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울분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1. "소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냐!"는 일침
순사는 '허가'를 따지며 법을 들이밀었겠지만, 민초들에게는 생존이 곧 법이었지요. "너만 밥 먹냐, 우리 소도 밥 먹어야 한다"는 논리는 단순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삶의 진리였습니다. 특히 소는 농경 사회에서 집안의 기둥이자 가족이나 다름없었으니, 그 소의 밥통을 만드는 일을 방해하는 순사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겁니다.
2. 순사를 소 부리듯 부린 통쾌한 복수
무거운 소궁(여물통)을 파놓은 통나무는 장정 여럿이 들어도 무거웠을 텐데, 그걸 순사 등에 짊어지게 했다니 상상만 해도 속이 다 후련합니다.
칼 차고 으스대던 순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소궁을 지고 산을 내려가는 모습!
"안 지면 낫으로 대갈바를 줘져버리겠다"는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꼼짝 못 했을 순사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3.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민초의 기개
말씀하신 것처럼 나중에 순사들이 떼거리로 몰려올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을 만큼 참았다'**는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겠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 무서운 기세가 있었기에, 일제의 그 가혹한 압박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 기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시절 산속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마치 한 편의 **'항일 코미디 영화'**처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낫 한 자루 들고 권력 앞에 당당히 맞섰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용기가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뿌리가 아닐까 싶네요.
어르신, 이렇게 통쾌한 이야기들을 어쩜 그렇게 실감 나게 잘 들려주시는지... 혹시 이런 일들 말고, 마을에서 힘이 제일 세기로 유명했다거나 순사들을 벌벌 떨게 했던 전설적인 인물 이야기도 혹시 기억나시는 게 있을까요? 그분의 뒷이야기가 참 궁금해집니다!
You said
해방후 남한 단독정부 이승만이 미국식 정치제도 흉내낸다고 민주주이 초창기 지자체한다고 할적 그당시에는 면장 면의원 까지 지자체로보고 선거를 했는데 어떤 민초가 면의원에 당선됬는데 그것도 큰 벼슬이라고 면소에 회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간 나무등걸을베어선 해오는민초어리숙한사람을 만낫어 그래선 너 허락도없이 왜생나무를 해선 해오느냐하면 톱과 낫을빼앗아선 자기집으로 갖고 오게 되었는데 성이 어씨인데 어의원님 이라 하는 데 아직 그때까지 그아버지 부친이 살아생전인데 상투 짜고 게시는아주 고풍을 고수하고 게시는 분인데 아들넘이 왠 톱과 낫을 갖고선 대문 안으로 들어오거든 그래 어른께 물으셨서 왠 톱과 낫이냐 함에 예 저아랫 마을 사는 아무것이가 생나무를 하길래 그래하지 못하게 갖고 왓읍니다 하니깐 그만 아버지가 불호령을 내리는것 이넘 당장 갖다 주지 못할가 네넘도 나뭇가지 해다 떼면서 남에 원망 살짓 한다고 하면서 면의원이 뭔 큰벼슬인지 아느냐 이너마 네넘이 군의원이나 해먹음 동리사람 다 잡아먹으려 들겟다 하시면서 혼구영을 내는 것 그래 문에 들어오려 말고 고만 큰 꾸중을 듣고선 도로 갖다 주게 되더라는 이야기다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영리하긴 햇으나 생각이 너무 얇아선 벗간에도 평이 좋치 못한것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고 그래 약은체 하는 자가 언제든지 자기 부실한 면을 내보여선 남에게 약점이 잡히는 것 그래 나중은 신용을 잘 안하게 되는 거지
Gemini said
이번 이야기는 앞선 순사 골탕 먹이는 이야기와는 또 다른 깊은 울림이 있네요. 해방 후 초창기 지자체 선거 시절, 갓 '의원' 자리를 꿰차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아들과 그 기를 단칼에 꺾어버리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말씀하신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비유가 이 이야기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벼슬의 무게를 모르는 '설익은 권력'
해방 후 민주주의가 들어오면서 '의원'이라는 자리가 생기니, 어씨 성을 가진 그 아들은 자기가 무슨 큰 권력이라도 잡은 줄 알았나 봅니다. 일제 순사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흉내 내며 불쌍한 민초의 생계 도구인 톱과 낫을 뺏어온 것은, 권력의 본질이 '봉사'가 아니라 '군림'이라고 착각한 탓이겠지요.
2. 상투 튼 어르신의 '진짜 선비 정신'
아버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겉모습은 상투를 짠 고풍스러운 노인이었지만, 정신만큼은 아들보다 훨씬 깨어 있으셨네요.
**"네놈도 나무 해다 때면서 남의 원망 살 짓을 하느냐"**는 호통은 역지사지의 가르침이고,
**"면의원이 뭔 큰 벼슬이라고 동네 사람을 잡아먹으려 드느냐"**는 일갈은 권력자가 가져야 할 겸손을 일깨워주는 매서운 회초리였습니다.
집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대문 밖으로 쫓아내 도로 갖다 주게 하신 그 단호함이 집안의 가풍을 살리고, 아들이 더 큰 죄를 짓지 않게 막으신 셈입니다.
3. "생각이 얇으면 신용을 잃는다"는 교훈
어르신 말씀대로, 머리만 믿고 약게 구는 사람은 당장은 이익을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법이지요. 남의 눈물 젖은 낫과 톱을 뺏어오며 으스댔던 그 의원은 아마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영영 얻지 못했을 겁니다. "생각이 얇다"는 표현이 참 무섭고도 정확한 지적입니다.
예전 어른들은 비록 학문이 높지 않아도 이렇게 삶의 이치와 도리를 엄격하게 가르치셨는데, 요즘 세상에 꼭 필요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사를 쫓아버리던 통쾌한 기개도 우리 민족의 모습이지만, 이렇게 잘못된 권력을 엄히 꾸짖는 어른들의 '호통' 또한 우리를 지탱해온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그 어씨 의원의 아들이나, 그 엄하셨던 아버님에 얽힌 또 다른 동네 일화가 있나요? 아니면 그 시절 선거 때 벌어졌던 또 다른 우스꽝스러운 일도 궁금합니다!
You said
민초들이 뭐 다른 다른 데로도 그렇게 삶이 고달픈 거지. 그놈들이 얼마나 그렇게 왜놈들이 못 살게 굴었어 지금 이제 이렇게 자다가 일어나서 생각이 그게 나는 거야.
옛날 어른들한테 왜놈들이 그렇게 농촌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는 그런 생각에 지금 머리에 스치는 걸 또 이렇게 이야기 안 해놓으면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가 이런 거 이런 거 모르잖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는 거야. 그리고 그 칡뿌리를 캐 가지고 흉년에 그렇게 방아에 찌어서 절구방아에 찌어서 앙금을 안 칩니다.
앙금을 안 치면은 그것이 이제 시뻘거진 게 갈고 앉으면 앙금이 감자가 앙금 앉아 내리듯 안 치듯 감자떡 해 먹느라고.
그럼 그걸 이제 쌀가루하고 밀가루 뭐 이런 거 곡물 가루하고 이렇게 섞어가지고 떡을 이렇게 송구떡이나 뭐 칡떡을 그렇게 해 먹는다 그러고 그 떡 갈매기라 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는 그 돌가루가 하얀 게 물이 흘러가면 앙금이 그렇게 앉는다는 거예여.
그럼 그걸 떠다가 돌가루를... 얼마나 보드럽겠어 그래 그걸 떡을 해먹는다는 거지.
돌가루를 쌀가루하고 섞어서 그런데 그게 말인즉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을 거야.
얼마나 보드랍게 말하자면은 가라앉으면 그게 쌀가루하고 섞어서 말하자면 그 돌처럼 씹히지 않고 그냥 쌀가루처럼 그렇게 여겨 가지고 먹겠어.
아 그렇게 먹고살기가 힘들어 한 거야.
Gemini said
자다가 일어나셔서 그 옛날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치듯 떠오르신 모양입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지금 이렇게 남겨두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이 그 눈물겨운 시절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가슴이 아릿합니다. 칡뿌리 앙금이야 지금도 건강식으로 먹는다지만, **'돌가루'**까지 섞어 드셨다는 대목에서는 당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한계까지 몰려 있었는지 절절히 느껴집니다.
1. 칡뿌리 앙금으로 빚은 눈물의 떡
칡을 캐서 절구에 찧고 물에 걸러 앙금을 가라앉히는 그 정성... 사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지요. 감자 녹말처럼 뽀얀 가루가 나오면 그걸 곡물 가루에 섞어 떡을 해 드셨다는 건데, 쌉싸름한 그 맛 뒤에는 '배고픔을 면해야 한다'는 처절한 의지가 담겨 있었을 겁니다.
2. 돌가루(백토)까지 먹어야 했던 기가 막힌 사연
어르신이 말씀하신 그 하얀 돌가루는 아마 **'백토(白土)'**라고 불리던 고령토 종류였을 겁니다.
물에 흘러내려 보드랍게 가라앉은 그 가루가 오죽 고왔으면 쌀가루인 줄 알고 섞어 드셨을까요.
**"돌처럼 씹히지 않고 쌀가루처럼 여겨졌다"**는 말씀이 더 가슴 아픕니다. 배가 너무 고프면 입에서 씹히는 촉감보다 일단 위장을 채우는 게 급선무였겠지요.
하지만 돌가루가 몸에 들어오면 소화가 안 되어 나중에 변을 볼 때 얼마나 큰 고생을 하셨을지... 그게 바로 민초들이 겪은 고통의 실체였던 것 같습니다.
3. "이야기 안 해놓으면 모른다"는 귀한 마음
맞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먹을 것이 넘쳐나서 버리는 게 일이지만, 예전에는 산에 흐르는 돌가루까지 떠다가 떡을 해 먹으며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왜놈들의 수탈로 쌀은 다 뺏기고,
산에 올라가 소나무 껍질과 칡뿌리를 캐며 버티던 그 세월...
그런 고생을 버텨낸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르신, 자다가 일어나 귀한 기억을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고생담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얼마나 끈질기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생존의 기록'**입니다.
혹시 그 돌가루 떡(백토떡)이나 칡떡을 드시고 나서 동네 분들이 겪었던 고생이나, 또 다른 '배고픈 시절'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어르신의 기억은 하나하나가 참 소중한 역사입니다. 편안하게 또 들려주세요.
You said
서민 대중 민초들이 얼마나 다 뺏기고 그렇게 이 왜놈이 얼마나 못 살게 굴었는지 그 가을게로 이제 또 밤나무가 좀 있는 집은 향율을 해서 바치라는 거야.
군대를 그 뭐라 건빵 대신 먹게끔.. 향율이라 하는 건 뭐야?
밤을 그렇게 바짝 막 쪄가지고 말려서 그걸 겁질 벳기렴 디딜 방아에 빻아야합니다.
그런 껍데기가 홀라당 벗어지면서 알맹이만 이제 그렇게 나오는 거지.
밤 알매미가 알맹이만 딱딱한 것이 나옵니다. 그걸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제 바치라는 것 그러니깐 향률공출이지 그럼 말하자면 밤나무 가진 사람들은 제대로 자기네 밤이라고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왜놈이 그렇게 수탈을 해 가지고 다 가지고 가게 하더라 이런 말씀이야.
Gemini said
그놈의 '향률(饗栗) 공출'... 정말 지독하고도 악랄한 수탈이었네요.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그 시절 농촌에서 밤나무 한 그루 있는 게 복이 아니라 오히려 짐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금 말씀하신 **'향률'**을 만드는 과정이 보통 고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1. 먹지는 못하고 일만 죽도록 해야 했던 '향률'
밤을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그걸 다 쪄서, 말리고, 또 디딜방아에 찧어서 껍데기를 다 벗긴 '알밤' 상태로 바치라고 했으니 그 공력이 얼마나 들어갔겠습니까.
군인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전투 식량(건빵 대용)**으로 쓰려고 우리 백성들의 손톱이 다 닳도록 일을 시킨 것이지요.
정작 밤나무 주인은 그 달콤한 밤 한 톨 마음 편히 입에 넣지 못하고, 밤새 방아 찧어 왜놈들 배만 불려줬으니 그 울화가 오죽했겠습니까.
2. 가을의 풍요마저 빼앗아간 일제
가을이면 결실을 봐서 좀 배를 채워야 하는데, 쌀은 쌀대로 뺏어가고 산에서 나는 밤조차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털어갔으니 민초들에게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 아니라 '뺏기는 계절'이었던 셈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자기네 밤이라고 마음대로 먹지도 못했다"**는 그 한마디에 당시의 억울함이 다 녹아 있습니다. 내 땅에서 내가 키운 나무 열매도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시절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3. 자다 일어나 들려주시는 '살아있는 역사'
어르신, 자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나시는 건 그만큼 그 시절의 서러움이 뼛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야기 안 해놓으면 모른다"는 말씀이 정말 맞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밤을 간식으로만 생각하지, 그걸 피눈물 흘리며 공출로 바쳐야 했던 역사는 잘 모르거든요.
이렇게 하나씩 꺼내주시는 이야기들이 모여서 우리 민족이 겪은 진짜 수난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그 밤 공출 말고도, 기르던 소나 돼지, 심지어 집에 있던 놋그릇(숟가락)까지 다 가져가던 그런 기억도 나시나요? 그때 동네 분들이 숨겨놓으려고 애쓰셨던 모습 같은 것 말입니다. 어르신의 기억을 더 듣고 싶습니다.
You said
그러고 농한기라고 해서 편안하질 않아요. 겨울로도 가마니 짜느라고 가마니 틀을 만들어 놓고 집집마다 그 밤새도록 가마니를 짜는 거야.
얼마나 고달파 그건 공출을 해야 되기 때문에 집집마다 가마니 몇 개씩 받쳐라 이러거든 그렇게 해서 공출을 하게 되는데 그전에 어릴 적 나도 봤는데 그거 뭐 일정 때도 아니야.
우리나라 이제 시작할 때 그 나라에 그렇게 포대 자루 이런 게 없으니까 가마니 공출을 그렇게 받는 거지 그렇게 삶이 고달픈 거야.
Gemini said
맞습니다. 농사꾼에게 겨울은 원래 좀 쉬면서 몸을 추스르는 시기여야 하는데, 그놈의 '가마니 공출' 때문에 농한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달픈 세월을 보내셨지요.
어르신 말씀처럼 밤새도록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가마니 틀을 돌리던 그 풍경이 선합니다.
1. 쉬지 못하는 농촌의 겨울: 밤샘 가마니 짜기
일제강점기 때는 수탈해갈 곡물을 담으려고 가마니를 짜게 했고, 해방 후에도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나라에서 쌀을 수매하려면 가마니가 꼭 필요했지요.
등잔불 밑에서 손바닥이 거칠어지도록 짚을 비벼 새끼를 꼬고, 그걸 또 가마니 틀에 걸어 짜는 일이 여간 중노동이 아닙니다.
하루 목표량을 채워야 하니, 낮에는 나무 해 오고 밤에는 온 가족이 매달려 가마니를 짰던 그 고단함이 오죽했을까요.
2. "가마니 공출"이라는 무거운 짐
집집마다 할당량이 떨어지면 그걸 못 채울까 봐 조마조마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공출을 바쳐야 내 식구들이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으니, 가마니는 단순한 포대 자루가 아니라 민초들의 **'눈물과 땀의 결정체'**였던 셈입니다.
어르신 어릴 적에 보셨던 그 풍경들이 일제 때부터 나라가 바로 서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으니, 우리 민중들은 사계절 내내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사셨던 거지요.
3. 사라져가는 그 시절의 소리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가마니 틀을 볼 수 있지만, 어르신 기억 속에는 여전히 그 밤새 들리던 가마니 짜는 소리와 짚 냄새가 생생하실 겁니다.
"포대 자루 이런 게 없으니까"라고 하신 말씀이 참 가슴에 와닿습니다. 지금은 흔해 빠진 비닐 포대 하나 없어서, 짚을 엮어 그 무거운 쌀을 담아내야 했던 그 시절의 절박함이 느껴지네요.
어르신, 자다가 일어나 이렇게 귀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가마니 짜다가 너무 힘들어서 잠들었던 기억이나, 혹은 그 짚 가루 때문에 고생했던 일 같은 소소한 기억들도 혹시 더 있으신가요?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모여서 진짜 역사가 되는 것이니, 생각나시는 대로 또 들려주세요. 제가 잘 듣고 있겠습니다.
You said
농촌 사람들이
옛날로는 그렇게 먹는 것이 부실해 아주 영양 실조가 되듯이 이런 삶을 살고 어린 아이들도 코가 누런 코가 훌쩍거리게 실이 이렇게 빠지고 이 솜 바지 저고리 소매에 코딱지가 묻어서 하도 코를 훌쩍거려 닦아서 막 딱지가 그렇게 앉을 정도로 그렇게 코를 훌쩍거리고 아이들이 컸는데 그런 시절에는 그렇게 잡병이 많고 전염병이 많고 여름철에는 그렇게 학질 같은 모기에 물리면 학질 같은 병이 생긴단 말이야.
그 그래 예전에 얼마나 무식해 그러니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니까 그런 말이 돌았겠지.
그렇게 학질은 누가 놀래키면 뚝 떨어진다고 그래서 어떤 여인이 그렇게 학질이 걸렸는데 도저히 못 배기겠어서 이제 무녀한테 가서 물었다고 무녀가 하는 말이 그거 학질은 놀래킴을 받아야 떨어지는데 그냥은 절대 안 떨어지고 그 담력이 커야 된다고 그럼 어떻게 떨어뜨리느냐고 또 재차 물으니까 지금 비가 그러니까 이제 밤이 밤이 엇던 모양이야 구죽죽하게 이렇게 내리는데 저 상여가 있는 꽃집에 가가지고 석가래를 붙들고 세 번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라는 거야.
그러면 이제 그게 떨어진다고 담력이 약한 사람은 그 비가 구죽죽 오는데 상여 놔두는 그 꽃집에 가가지고 그렇게 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
그 무섭기도 하고 또 말하자면 귀신 나올까 봐 얼마나 무서워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그 시절 우리네 어린아이들과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영양은 부족하고 병은 창궐하던 그 고달픈 세월을, 약 한 첩 제대로 못 쓰고 오로지 **'담력'**과 **'민간요법'**으로 버텨내야 했던 그 절박함이 느껴져 가슴이 찡합니다.
1. "누런 코가 소매에 반질반질하게 묻던 시절"
아이들이 영양이 부족하니 늘 감기를 달고 살고, 휴지 귀하던 시절이라 소매 끝으로 코를 닦아대니 소매가 딱딱하게 굳어 반질반질해졌다는 그 말씀... 그게 바로 우리네 옛 모습이었지요. 누런 코를 '훌쩍'거리며 골목을 누비던 아이들의 모습은 가난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진 환경에서도 자라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생명력이기도 했습니다.
2. 귀신보다 무서운 '학질'과 무녀의 처방
오죽하면 학질(말라리아)을 떼려고 그 무서운 **'상여집(꽃집)'**을 가라고 했을까요.
밤중에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상여가 있는 곳에서 서까래를 붙들고 "아이고" 곡을 세 번 하라: 이건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서 그 기운으로 병마를 쫓아내라는 뜻이었겠지요.
담력이 약하면 못 한다: 사실 학질로 몸이 벌벌 떨리는 판국에, 귀신 나올 것 같은 상여집에 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도박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민초들에게 '학질'은 귀신보다 더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존재였다는 증거겠지요.
3. 무지함이 아니라 '절박함'의 역사
어르신께서는 "무식해서 그랬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그건 무지함이라기보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간절함이었을 겁니다. 병원에 갈 돈도 없고, 약을 구할 길도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녀를 찾아가고, 무서움을 무릅쓰고 상여집으로 향했던 그 어머니들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그 여인이 정말로 그 비 오는 밤에 상여집에 갔을까요? 이야기 속의 그 여인이 무서움을 꾹 참고 서까래를 붙들고 "아이고" 곡을 했을 장면을 생각하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진짜로 그렇게 하고 나서 학질이 뚝 떨어졌을까요? 아니면 너무 놀라서 자빠지기라도 하셨을까요? 그 뒷이야기마저 들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어르신의 옛날이야기는 들을수록 우리네 옛 삶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어 참 좋습니다.
You said
그래서 이제 정말 얼마나 된통 아프면 이거 하면 괜찮다하니 죽기 살기니 이판사판이라 하고서 이제 가 가지고 이제 곡을 이제 이렇게 석가래를 잡고서 하게 되는데 그때 때마침 말하자면 동네 이제 말하잠 건달놈들이 어디 가서 이제 화투짱 도박 놀이를 할 때가 마땅치 않으니까 고마 우리 저 곳집에 가가지고 불을 등잔불 켜놓고서 들어앉아서 거기 누가 터치할 사람도 없고 말할 사람도 없으니까 도박을 하자고 화투를 하자고 아 그래 이제 그중 한사람이 아 이 고 어째 곳집에 귀신 나오는데 어떻게 가서 그래 아 괜찮아 그가 거짓말이야 무슨 귀신이라는 게 어디 있겠어 이러면서 몇 사람들이 가가지고 이제 등잔불을 켜놓고 이제 화투장을 갖고 말하자면 한창 열이 올라서 화투 패를 돌리고서 도박을 하고 거기 정신이 쏠려 가지고 뭔패 뭐 땅이 나오느냐 삥이 나오느냐 이러면서 이 손가락을 갖고 화투장을 겨누는데 아 그렇게 바깥에서 곡을 해제켜 해제키는소리가 나는 거여 여성 울음소리로 그러니까 거기 그래도 다 담력이 센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지 “누구야” 하고 소리를 크게 꽉 질렀어.
그러니까 그러니 이 곡을 하던 여인이 그만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벌렁 나자빠지도록 그렇게 놀라게 되더라는 거지.
그렇게 해가지고 결국은 그 학질이 떨어지게 되더라는 거예여.
Gemini said
세상에나, 이야기의 결말이 정말 반전 중의 반전입니다! 억지로 놀라게 하려던 처방이, 생각지도 못한 '도박꾼들' 덕분에 진짜로 기절초풍할 만큼의 효과를 본 셈이네요.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그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1. "이판사판"의 절박함이 만든 만남
학질에 걸려 죽기보다 괴로우니 귀신보다 무서운 곳집(상여집)으로 향한 여인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비는 추적추적 오고, 속으로는 '제발 병만 낫게 해달라'며 벌벌 떨며 곡을 하셨을 텐데, 그 안에는 또 다른 이유로 귀신을 안 무서워하던 '건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니 참 기막힌 우연입니다.
2. "삥이냐 땅이냐"와 "아이고 아이고"의 충돌
꽃집 안에서는 건달들이 등잔불 켜놓고 화투 패 돌리며 "이거 먹으면 내 거다!" 하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밖에서는 처연하게 여인의 곡소리가 들려오니... 아무리 배짱 좋은 건달들이라도 등골이 오싹했겠지요.
"누구야!" 하고 지른 그 고함 소리는 건달 입장에서는 "나 무서우니 제발 정체를 밝혀라!" 하는 비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3. 진짜로 '뚝' 떨어진 학질
그 여인은 캄캄한 밤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곳집에서 갑자기 벼락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오니, 정말 심장이 멎을 듯 놀라 자빠지셨을 겁니다.
원래 무녀가 처방한 게 **'담력을 시험해서 놀라게 하는 것'**이었는데, 계획된 놀람이 아니라 **'진짜 생생한 날것의 공포'**를 맛보셨으니, 그 지독한 학질 귀신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하고 한길로 도망갔나 봅니다.
결과적으로는 병이 나으셨으니 다행이지만, 그 자리에서 기절이라도 안 하신 게 천만다행입니다.
4. 고단한 민초들의 삶 속에 핀 '웃픈' 이야기
어르신 말씀을 듣고 나니, 참 눈물 나게 고달픈 시절인데도 그 속에 이런 웃음과 해학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죽을 병을 고치기 위해 상여집을 찾아야 했던 비극적인 상황이, 도박꾼들과 엮이면서 한 편의 우스갯소리가 되어 후세까지 전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약은체하는 자가 제 부실한 면을 내보인다"던 앞선 어씨 의원 이야기부터, 이 학질 뗀 여인 이야기까지... 어르신은 정말 이야기꾼이십니다! 어르신의 구수한 입담 덕분에 저도 오늘 그 시절 곳집 옆에 서 있는 기분이었네요.
어르신, 혹시 이렇게 병을 고치려다 벌어진 또 다른 희한한 일이나, 동네에서 약 대신 썼던 신기한 민간요법 같은 게 또 떠오르시나요? 밤중에 자다 깨서 생각난 귀한 보따리를 조금 더 풀어주시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You said
그래 그러니 그런 이야기가 벼라별 민담 이야기가 다 있어.
촌에서 살게 되면 그래 이제 그 촌엔 예전에 그렇게 말하자면 한문 공부를 가르치느라고 서당이 많았습니다.
이제 그 학생 아이가 그 학동이 그 말하자면 아주 개걸차게 잘생긴 놈이 있는데 그렇게 밤에 비가 오는 구족죽하게 오는 밤에 선생님이 글을 가르치다 말고 담력을 시험하겠다고 너가 담력이 얘기 들어가 보니까 그렇게 세다는데 너 지금 이 비 오는 밤 저기 상여 집에 가가지고서 그 상여 만들어 가지고 행할적개 흔들고 가는 종 종을 가지고 올 수 있겠느냐 그럼 내 너 상을 줄 것이다 이러거든 아 그거야 어렵지 않죠 내 가가지고선 종을 갖고 오리다 그래야 이놈이 나가더라는 거야.
그래 그 선생님이 그 훈장이 먼저 쏜살같이 가 가지고 그 이제 상여 말하자면 꾸미는 거기 이제 뭐 절관바고 할 것 없이 뭐 이렇게 꽃 그림 그린 그런 천 이런 건 둘둘 말이 해놓은 거 많잖아 꼭대기 이제 그 구름 만드는 것도 있고 구름천 만드는 것도 있고 그래 먼저 그 궤짝에 들어가 가지고 납작이 엎드려 있는 거야.
그래 그놈이 컴컴한테 에헴 헛기침 하고 들어오더니 그렇게 궤짝을 열어 가지고 종을 찾는다고 손을 이렇게 내리밀더라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만지더라는 거야. 그런 걸 이 훈장이란 사람이 손을 이렇게 그놈 손을 콱 잡으니까 이넘이 하는 말이 ‘이 손이 뜨끈뜨끈한 거 보니 그 사람이 여기 들었구먼’ 이러더라는 거지.
그래 그놈이 그러니까 담력이 세더라는 거지. 말하자면 다른 사람 같으면 엄마 뜨거라 하고서 귀신이 내손을 내 손을 잡는다 하고 그만 기암을 하고 나가 자빠질 것인데 그렇게 자기 손을 잡은 손을 말하자면 이 열기를 느끼고서 사람이 이 속에 들었고 이러더라는 거지.
그래서 그 스승이 기침을 하고 나오면서 야 너 감정이 참으로 세구나 이렇게 말하자면 껌껌한 속에서도 그 종을 찾느라고 손을 디밀어가지고서 휘적거리는데 내가 너 손을 잡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까 그래 그거 학동이 담력 센 것을 알게 되더라는 거지 뭐 이런 이야기 시시컬렁한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민초들이 그 긴 긴 밤에 겨울에 지나갈 적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게 되는 거거든.
Gemini said
어르신, 이 이야기는 절대 '시시컬렁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몰입하게 되네요. 긴긴 겨울밤, 화로에 밤이나 고구마 구워 먹으면서 어른들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시간이 가는 줄 몰랐을까요?
방금 들려주신 서당 학동 이야기는 앞서 말씀하신 '학질 걸린 여인' 이야기와 아주 절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여인은 너무 놀라 병이 나았지만, 이 학동은 그 공포의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않는 대단한 배짱을 보여주네요.
1. 훈장님의 짓궂은 시험과 반전
제자의 담력을 키워주겠다고 먼저 쏜살같이 달려가 상여 궤짝 속에 숨으신 훈장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비 오는 밤, 귀신이 나온다는 상여집 궤짝 안에 숨어 있는 건 훈장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제자의 손을 콱 잡았을 때, 훈장님은 제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거라 확신하셨을 겁니다.
2. "사람 손이 뜨끈뜨끈하구먼" – 학동의 무서운 침착함
이 대목이 정말 압권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차가운 손만 닿아도 심장이 떨어질 듯 놀랐을 텐데, 이 학동은 그 찰나에 체온을 느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귀신은 몸이 차갑다"**는 고정관념을 뒤집고,
**"내 손을 잡은 이 손이 뜨거우니 분명 사람이다"**라고 판단해버리는 그 냉철함이 참 대단합니다.
"사람이 여기 들었구먼" 하고 툭 던지는 한마디에 훈장님도 아마 '아차' 싶으면서도 속으로는 '이놈 물건이다!' 하고 무릎을 치셨을 것 같습니다.
3. 고달픈 삶을 버티게 한 '이야기의 힘'
말씀하신 대로 농촌의 긴 겨울밤은 얼마나 길었겠습니까.
전기도 없고 볼거리도 없던 시절, 이런 **'민담'**들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 사람들에게 담력을 길러주고,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살아있는 교육이었던 것 같습니다.
굶주림과 수탈로 몸은 고달파도, 마음만큼은 이런 통쾌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채우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셨던 거겠지요.
어르신, 이야기를 어쩜 이렇게 기승전결이 딱딱 맞게 잘해주시는지... 덕분에 저도 오늘 그 서당 학동의 든든한 기개를 배운 기분입니다.
자다가 깨서 들려주신 이 보따리들이 우리 조상들이 그 험한 세월을 어떻게 웃으며 버텼는지를 보여주는 보물 같네요. 혹시 그 담력 센 학동이 나중에 커서 장군이 되었거나, 아니면 그 마을에서 또 다른 기발한 지혜로 유명했던 사람 이야기도 있나요? 어르신의 이야기는 밤새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편하실 때 한 대목 더 들려주세요!
You said
에 이 그 이제 여름철 다가오기 전에 봄철 지나서 이제 보리고개라고 그 보리고개 넘길 때 얼마나 힘들어 먹을 것은 마땅치 않고 그런데 이제 봄철에 그렇게 복숭아 꽃이 참 분홍 꽃이 피길 아주 화사하게 하다가 이제 그렇게 열매를 맺는데 이제 전부 다 개복숭아지 뭐 참복숭아도 있겠지만 개살구가 그렇게 예전에는 많아 이렇게 이제 무슨 도랑청 산천 말하자면 이런 데 이제 사람도 먹고 짐승이 먹고 먹다가 버리면 이제 씨씨를 버리면 거기서 발아가 돼 가지고 그렇게 여기저기 말하자면 복숭아 나무가 생깁니다.
그럼 그런 것들이 전부 다 개복숭아가 되는 거야. 개복숭아라는 놈이 그렇게 굵어지면서 그게 거의 다 벌거지 집이 되다시피 합니다.
그 날아가는 벌거지인지 뭔지 그 애벌레가 그 속에 다 들어 있다시피 해.
특히 이제 마당 가나 이제 말하자면 측간 가에 그러니까 변소간을 측간이라 하고 뒷간이라 하잖아.
그럼 그 변소간 옆에 이런 데 재 갖다가 쌓아 놓고 그러는 옆에 이제 복숭아 씨가 떨어져 나게 되면 아주 복숭아가 크면서 개복숭아라도 굵직굵직합니다.
그래 배가 고프니까 그걸 이제 익기도 전에 다 익으면 그렇게 벌레집이 되고 마르니까 시퍼런 걸 뚝뚝뚝 따가지고서 배는 고프고 하니까 솥에다 넣고 소금을 조금 얹어 가지고 삶습니다.
삶아서 익히면은 그것이 이제 복숭아가 푸른 것이 익어 익으면 이제 그걸 이제 건져내 가지고서 먹는 거지.
찝찔하고 시금털털한 걸 먹는 거야. 먹는데 그건 그냥 우물우물하면 껍데기가 쑥 빠지면서 알멩이의 씨만 쏙 빠지고 그렇게 먹게 된다고 아니 그렇게 이제 배고픔을 이제 허기지음을 달래고 아 그렇게 살았다 이런 말씀이지
Gemini said
세상에, **'복숭아 삶아 먹던 이야기'**는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 민초들의 생존담이네요. 보릿고개의 그 혹독함이 개복숭아 하나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사람들이야 개복숭아를 약으로 쓰거나 효소를 담가 먹지만, 그 시절에는 그 '시금털털한' 맛조차 허기를 달래줄 유일한 구원이었던 거군요. 어르신 말씀을 들으며 몇 가지 장면이 가슴에 콕 박힙니다.
1. "벌레가 들기 전에 먹어야 했던 절박함"
복숭아가 다 익으면 벌레가 꼬여서 못 먹게 되니까, 채 익지도 않은 시퍼런 알을 따야만 했던 그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기다릴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보릿고개의 시간들이 참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2. 소금 한 줌 넣고 삶아낸 '시금털털한 맛'
단맛이라고는 하나 없는 파란 복숭아를 소금물에 삶으면 그 맛이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소금이 그나마 신맛을 좀 눌러주고 찝찔한 맛이라도 내주었겠지만,
그게 어디 맛으로 먹는 거였겠습니까.
"껍데기가 쑥 빠지고 씨만 쏙 남을 때까지" 우물거리며 먹었다는 말씀에서, 하나라도 더 뱃속에 채워 넣으려 했던 그 처절한 배고픔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3. '측간(변소)' 옆 복숭아의 역설
거름기 많은 뒷간 옆에서 유독 굵게 자란 복숭아를 따먹어야 했던 것은 참으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입니다. 가장 지저분하다고 생각되는 곳 곁에서 자란 열매가 가장 크고 실했다는 사실이, 뭐든 먹고 살아야 했던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닮아 보입니다.
어르신, "그렇게 허기지음을 달래고 살았다"는 그 마지막 말씀이 참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지금 우리는 반찬 투정하고 먹을 게 너무 많아 걱정인데, 소금에 삶은 신 복숭아로 한 끼를 때우던 그 시절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다가 깨서 들려주시는 이런 이야기들이, 배부른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귀한 정신적 양식이 됩니다. 혹시 복숭아 말고도 산에 핀 진달래(참꽃)를 따먹거나, 혹은 배고픔을 잊으려고 먹었던 또 다른 '꽃이나 열매' 이야기가 더 있으신가요? 어르신의 기억 보따리는 끝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들려주셔요.
You said
그 측간가에 변소간가에 생기는 복숭아 나무는 그 똥걸음을 빨아 먹어가지고서 아주 커 개복숭아라도 그래 그거 익을 무렵이면 따가지고서 벌레 반 그거 말하자면 복숭아 살 반 그렇지 뭐 그런데도 그게 개복숭아라도 똥거름을 먹어가지고 아주 답[달음]니다.
맛있지 사각사각각하고 말하자면 식감이 좋은 거지 그래 가지고 이제 그걸 따가지고 애들이 먹고 가만히 제대로 나누게 되면 제놈들이 그 땅에 그냥 물러 농익어가 떨어지면 그게 당년에 그만 거기서 발아(發芽)가 돼 싹이 나가 싹이 나 가지고 여름철 좀 지나면 이렇게 싹이 올라오는 게 보입니다.
작은 그러니까 복숭아 묘목 나무들이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이제 복숭아 먹고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그 측간 옆 개복숭아가 정말 **'민초들의 사탕'**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름이 귀하던 시절에 뒷간 곁에서 그 영양분을 오롯이 빨아먹고 자랐으니, 산속 척박한 땅에서 자란 놈들보다 훨씬 크고 달콤했겠지요. 벌레가 반이라도 그 달콤한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었겠습니까.
1. "벌레 반, 복숭아 반"의 추억
요즘 사람들은 과일에 벌레 한 마리만 있어도 기겁을 하지만, 그 시절엔 그게 다 **'단맛의 증거'**였지요.
벌레가 먼저 맛을 볼 만큼 달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배고픈 시절엔 그 벌레조차도 단백질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어르신들의 넉넉한(혹은 절박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사각사각하는 식감에 입안에 가득 퍼지는 그 달콤한 즙... 상상만 해도 침이 고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코끝이 찡해집니다.
2. 자연의 순환: 먹고 버린 씨앗이 다시 생명으로
다 먹고 뱉어낸 씨앗, 혹은 너무 익어 땅에 떨어진 복숭아가 그해 바로 **발아(發芽)**해서 싹이 올라온다는 대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사람이 먹고 남긴 것이 다시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자라 다시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그 순환이 바로 우리 농촌의 모습이었네요.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준 그 작은 묘목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금방 싹을 틔우는 모습이 꼭 우리 민초들 같습니다.
3. 고통 속에서도 찾은 '작은 행복'
어르신 말씀을 듣다 보니, 그 고달픈 시절에도 뒷간 옆 복숭아 하나에 행복해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찝찔하게 삶아 먹던 시퍼런 복숭아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똥거름 먹고 자란 달콤한 개복숭아까지... 그 맛의 차이가 곧 계절의 흐름이고 생존의 역사였네요.
어르신, 자다가 깨서 이토록 생생하고 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의 기억은 거창한 역사책보다 훨씬 더 힘이 있고 따뜻합니다.
이제 복숭아 싹이 올라오고 나면, 또 산유화가 피거나 다른 나물들이 돋아날 텐데... 혹시 그 묘목들을 옮겨 심거나, 아니면 또 다른 열매(오디나 찔레 같은 것들)를 따 먹으며 지냈던 기억도 더 있으신가요? 어르신께서 들려주시는 '살아있는 옛날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You said
뭐 먹을 것이 별로 없으니까 뭐 도랑청으로 다니면서 그렇게 가재도 잡아서 먹고 또 조금 더 큰 개울 냇 물에 가면 이제 물고기도 그렇게 이따금식 이제 잡아먹고 여름철은 그렇게 천렵이라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고기를 잡아가지고 말하자면 물가에 너럭 바위에 가가지고 솥을 걸고서 막 해장국 같은 걸 끓여가지고서 막걸리를 갖다가 놓고서 먹잖아.
동네 사람들이 하루는 이렇게 울력으로 모여가지고 그럼 그게 얼마나 맛있어 그렇게 이제 살았다 이런 말씀이지.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시금털털한 복숭아 이야기에 이어 드디어 제대로 된 '동네 잔치' 풍경이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그 고달픈 시절에도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울력'**으로 일을 마치고 즐기는 **천렵(川獵)**은 그야말로 민초들의 유일한 해방구였겠지요.
말씀하신 그 풍경을 가만히 그려보니 절로 입에 침이 고입니다.
1. 가재 잡고 물고기 잡던 천진난만한 시절
먹을 게 귀하니 온 들판과 도랑이 다 식량 창고였지요.
도랑가 돌을 들춰 가재를 잡고, 좀 더 큰 냇가에 나가 피라미, 미꾸라지, 메기 같은 물고기를 잡던 그 손맛!
지금이야 취미로 한다지만, 그때는 그 물고기 한 마리가 온 가족의 귀한 단백질이었을 겁니다.
2. 너럭바위 위에서 끓여내던 '천렵국'의 맛
냇가 너럭바위에 솥단지 걸어놓고 끓여내던 그 국물 맛을 요즘 세상 어떤 진미가 따라가겠습니까.
막 잡아 올린 물고기에 풋고추, 깻잎, 들깨가루 팍팍 넣고 끓인 그 어탕이나 매운탕!
거기에 막걸리 한 사발 곁들여 마시면, 왜놈들한테 수탈당한 서러움이며 보릿고개의 고단함이 그 순간만큼은 싹 가셨을 겁니다.
3. '울력'과 '나눔'이 살아있던 공동체
"동네 사람들이 하루는 이렇게 울력으로 모여가지고" 하신 말씀이 참 귀합니다. 힘든 일도 같이하고, 먹는 것도 같이 나눠 먹던 그 **'함께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 모진 세월을 버티셨던 거겠지요. 혼자라면 못 넘겼을 고개를 이웃과 농담 주고받고 술 한 잔 나누며 함께 넘었던 우리 민족의 정이 느껴집니다.
어르신, 자다가 일어나서 들려주신 이 보따리들 덕분에 저도 100년 전 우리네 마을 한복판에 다녀온 기분입니다. 칡뿌리며 송구 벳겨 먹던 눈물겨운 이야기부터, 순사 골탕 먹이던 통쾌한 해학, 그리고 마지막 천렵의 즐거움까지... 정말 인생의 희로애락이 이 짧은 대화 속에 다 들어있네요.
이제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셨을까요? 혹시 천렵할 때 고기 잡다가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일이나, 막걸리 한잔하시고 동네 어르신들이 불렀던 노래 한 자락 같은 것도 기억나시나요?
아니면 밤이 깊었으니 이제 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고 한잠 더 청하셔도 좋겠습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는 제가 잊지 않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또 들려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You said
예전에는 그 물고기들도 많았어. 지금은 그렇게 있지도 않을 거야.
그 왜 있지 않느냐 하면 그 저 댐 같은 걸 수력 발전소 한답시고 댐을 자꾸 막아 가지고 저 고기가 올라오질 못해.
하천에서 저 아래에서 뭐 뱀장어 같은 거 큰 물고기들이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그냥 꼭대기 있는 것들만 이렇게 활동을 펼쳐서 알을 낳아 부활을 하기 때문에 정작 큰 고기들은 못 올라오는 수가 많다.
이런 말씀이지. 바다로 왔다 갔다 하는 게 뱀장어 같은 거 아니야.
예전엔 참 뱀장어도 많았네. 그렇게 뱀장어를 많이 해서 잡아먹었네.
메기도 팔뚝 같은 메기가 막 나와 바위속 이렇게 그 물 안경 쓰고 들어가서 작살 갖고 쏴가지고 잡아가지고 내놓는 거 보면 또 자라도 커다란 자라 이런 것도 잡아 그거 물고기 사냥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여.
Gemini said
맞습니다, 어르신. 예전에는 개울에 발만 담가도 물고기가 발등을 치고 지나갈 정도로 많았다고들 하시지요. 지금은 말씀하신 대로 큰 댐들이 물길을 턱턱 막아놓으니, 바다와 강을 오가며 자라야 할 뱀장어 같은 놈들이 길을 잃어버린 게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그 시절 물가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1. "팔뚝만 한 메기와 뱀장어"
지금은 시장에나 가야 볼 법한 팔뚝만 한 메기가 바위 틈에서 쑥쑥 나왔다니, 그 시절 자연이 얼마나 풍성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특히 뱀장어는 기운을 돋우는 데 최고였을 텐데, 그 귀한 걸 직접 잡아 드셨으니 민초들에게는 그게 보약이고 생명줄이었겠지요.
댐 때문에 물길이 막혀 "큰 고기들이 못 올라온다"는 어르신의 지적은 참으로 날카로우십니다. 자연의 순리가 끊겨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2. "물고기 사냥 잘하는 사람" - 동네의 전설
어르신 말씀대로 고기 잡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물 안경 하나 쓰고 깊은 물 속으로 쑥 들어가서, 작살로 팔뚝만 한 메기나 커다란 자라를 콕 집어 들고 나오는 그 '도사' 같은 분들 말입니다.
그런 분들이 한 번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동네 사람들 입이 떡 벌어지고, 그날은 온 동네가 고기 냄새로 잔칫날이 되었겠지요.
그 사냥꾼들이 작살 끝에 큼지막한 자라라도 한 마리 꿰어 올리면, 구경하던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신기해서 폴짝폴짝 뛰었을 모습이 그려집니다.
3.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어르신께서 자다가 깨서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는 건, 단순히 고생했던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그때의 풍성했던 자연과 사람 사이의 정이 그리우셔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일제의 수탈과 가난으로 고달팠어도, 흐르는 물에는 생명이 넘쳤고 동네 사람들과는 울력으로 마음을 나눴던 그 시절 말입니다.
어르신, 오늘 밤에 보따리를 정말 많이 풀어주셨습니다.
송구와 칡뿌리 먹던 배고픈 이야기부터,
순사를 골탕 먹이고 훈장님을 놀래키던 통쾌한 웃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풍성했던 냇가의 물고기 이야기까지...
덕분에 저도 참 행복한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이제 이야기도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된 것 같은데, 이 기분 좋은 물가 이야기 가슴에 품고 다시 편안하게 한잠 푹 주무시는 건 어떠실까요? 혹시 아직도 머릿속에 뱅뱅 도는, 꼭 남겨두고 싶은 **'그 시절 사냥꾼'이나 '물가에서의 특별한 기억'**이 하나 더 있으신가요? 말씀 없으시면 이제 편히 쉬시길 빌겠습니다. 어르신의 귀한 말씀, 정말 잘 들었습니다.
You said
제일 맛있는 거는 그 다슬기 이제 종대래키를 하나씩 차고서 냇 물가에 가서 다슬기를 이렇게 건져내잖아.
건져내면 약삭 빠른 사람들은 한참 허부적거리고 돌아댕기면 상당히 많이 건져냅니다.
그 말하자면 물안경식으로 그 채바구식으로 거기다가 채바구 아래다가 유리 같은 걸 말하자면 이렇게 박고서 이렇게 물속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물이 흐르고 저거 말하자면 여울살이 세게 내려가는데도 다 자세하게 다 보인다고 뭐 그런 거 할 것도 없어.
그냥 손으로 이렇게 바위를 이렇게 훑기만 하면 물속 바위를 그렇게 다슬기 그걸 골뱅이라 그러지 골뱅이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 그것을 한 다래키 이렇게 훑어가지고서 집에 와가지고 된장에 파를 썰어 놓고서 말야 된장국을 끓이면 얼마나 그 국물이 구수하고 맛있는지 몰라.
골뱅이 빼 먹는 것도 좋지만은 그 국물이 아주 참말로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 거기다가 그렇게 밥을 해서 말아 먹잖아.
보리밥이든지 뭐 조밥이든지 그래 먹는데 골뱅이는 그렇게 바늘로 그 알맹이를 쏙쏙 빼서 먹는 거지.
그 골뱅이가 얼마나 맛있어 다슬기가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먹기도 하고 그먹고남은 껍데기는 칼슘 비료 하여선 포도 나무뿌리에다간 수북하게 쏟아버려 그럼 포도송이가 칼쓤 덩어리가된다고
Gemini said
어르신, 마지막에 들려주신 이 다슬기(골뱅이) 이야기가 오늘 들려주신 이야기 보따리의 가장 맛깔스러운 '화룡점정'이네요! 다슬기국 한 사발에 보리밥 푹 말아 먹던 그 구수한 풍경이 어찌나 실감 나는지, 제 입안에도 침이 고입니다.
말씀하신 내용 하나하나가 버릴 것 없는 우리네 삶의 지혜이자 추억입니다.
1. "약삭빠른 손놀림"과 다슬기 사냥
종다래키 하나 옆구리에 차고 차가운 여울물에 발 담그고 앉아, 바위 밑을 슥슥 훑기만 해도 손끝에 그 단단한 다슬기들이 좌르르 잡히던 그 느낌!
손재주 좋은 분들이 만드신 '수제 물안경(유리 박은 바구니)'은 당시로선 첨단 장비였겠지요.
아무리 물살이 세도 그 유리 너머로 바위틈에 다닥다닥 붙은 다슬기를 찾아내던 그 설렘이 어르신 목소리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2. "국물 맛이 일품인" 된장 다슬기국
다슬기는 알맹이 빼먹는 재미도 좋지만, 역시 어르신 말씀대로 된장 풀고 파 썰어 넣은 그 푸르스름하고 구수한 국물이 진짜지요.
보리밥이나 조밥 한 덩이 툭 말아서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최고의 보양식이었을 겁니다.
쌉싸름하면서도 시원한 그 국물 맛은 보릿고개의 허기뿐만 아니라 민초들의 가슴 속 답답함까지 시원하게 씻어내 주었겠지요.
3. "버릴 것 하나 없는" 지혜: 다슬기 껍질 비료
알맹이는 사람이 먹고, 남은 껍데기는 포도나무 뿌리에 쏟아부으셨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포도송이가 칼슘 덩어리가 된다"**는 말씀, 정말 지혜로우십니다.
자연에서 얻은 것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 열매를 키우는 그 방식이야말로 요즘 말하는 최고의 '친환경 농법' 아니겠습니까. 다슬기 껍데기 덕분에 영글었을 그 포도송이는 또 얼마나 달고 단단했을까요.
맺음말
오늘 어르신 덕분에 칡뿌리와 송구의 눈물에서 시작해, 순사를 골탕 먹이는 웃음, 그리고 다슬기국의 구수한 맛까지 우리 민초들의 한평생을 다 훑어본 기분입니다.
자다가 일어나 이 귀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듯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같은 분들이 계셔서 우리가 그 고달팠던 시절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슬기국의 시원한 뒷맛처럼 마음 한구석이 개운해지셨을 것 같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 행복한 추억들 머리맡에 두시고, 남은 밤 편안하고 포근하게 주무시길 바랍니다.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편히 쉬셔요!
You said
물고기도 잡아다가 말하자면 그렇게 간을 잘 해 가지고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가재를 잡게 되면은 가재를 잡아가지고서 가재라는 것은 개구리 뒷다리를 갖고서 잡기도 하지만 된장을 풀어놓으면 그렇게 많이 나옵니다.
바위 속에서 이렇게 물 웅덩이 고인데다 풀어놓으면 그럼 잡아가지고서 그걸 집에 가져와서 껍데기를 그렇게 내장이 있는 걸 다 떼어내잖아.
그거 먹으면 안 된다고 그래가지고 그걸 말하자면 조림은 장을 넣고 졸이면 그놈이 빨개집니다.
이렇게 가재가 그러면서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지.
가을로는 아이들이 그 소주병 그러니까 사홉드리 이 불그스름하게 생긴 그걸 이제 일본말로 삐루병이라 그러지.
삐루병을 들고 다니면서 논두렁으로 다니면서 메뚜기를 그렇게 잡는 게 그 농약을 그렇게 안 썼기 때문에 예전에는 메뚜기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어.
그래 메뚜기를 잡아가지고 병 속에다가 이제 다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집에 와가지고 그놈을 이제 다 빼가지고서 그렇게 볶아 먹는 거야.
조림을 졸여 먹는 거야. 간장을 부어가지고 그러 그거 메뚜기야 그렇게 다 그렇게 음식이 되는 거야 그렇게 맛있는 거지 뭐 누에 번데기도 먹었지만 그렇게 메뚜기도 그렇게 장조림 해서 먹었다 이런 말씀이여.
요즘은 그렇게 메뚜기 먹었다 하면 그거 그런 걸 어떻게 먹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 뭐 옛날에 그렇게 메뚜기도 먹고 방아개비도 잡아서 불에다 구워 먹고 다 그렇게 먹었다 이런 말씀이야.
방아개비도 그걸 불에다 구워 먹으면 맛있습니다.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듣고 있으니 정말 입맛이 돕니다! 냇가의 가재 조림부터 가을 논둑의 메뚜기 볶음까지, 그 시절 민초들에게는 온 들판과 논이 풍성한 찬거리 보관소였네요.
배고픈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자연이 주는 그 귀한 맛들을 어쩜 그렇게 하나하나 알뜰하게 챙겨 드셨는지... 그 생생한 조리법들이 정말 정겹습니다.
1. "빨갛게 익어가는 가재 조림"의 미학
가재 잡는 비법도 참 재미있습니다. 개구리 뒷다리나 된장을 미끼로 써서 바위틈에서 유인해내던 그 지혜!
내장을 떼어내고 손질해서 간장 넣고 졸이면, 초록빛 돌던 가재가 꽃처럼 빨갛게 변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껍데기째 아삭하게 씹히면서도 그 속살의 고소함과 간장의 짭조름한 맛이 어우러진 가재 조림은, 요즘 말하는 '밥도둑'이 따로 없었겠지요.
2. "삐루병(맥주병) 가득 담긴 가을의 맛"
농약 없던 시절, 논둑에 지천이었던 메뚜기 이야기에서는 가을 햇살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소주병이나 삐루병(맥주병) 주둥이에 메뚜기를 한 마리씩 쏙쏙 집어넣던 아이들의 고사리손이 떠오릅니다. 병 속에서 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득 잡아 오면 어머니가 솥에 달달 볶아주셨지요.
요즘 사람들은 징그럽다고 할지 몰라도, 바삭하게 볶아진 메뚜기는 고소한 깨보다 더 고소하고 영양가 높은 최고의 간식이자 반찬이었습니다.
3. "방아깨비 구이"의 추억
방아깨비를 불에 구워 드셨다는 대목에서는 어르신들의 소박한 캠핑(?) 풍경이 느껴집니다.
다리를 잡고 "방아 찧어라" 시키던 방아깨비를 나뭇가지에 꿰어 불에 살살 구우면, 그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을 겁니다.
배고픔을 달래주는 요기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맛있는 **'자연의 선물'**이었겠지요.
맺음말
어르신, 오늘 밤에 나누어 주신 이야기들은 정말 하나하나가 다 보석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먹나" 하는 요즘 사람들의 시선보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을 감사하게 취하고 맛있게 즐겼던" 어르신들의 그 단단한 삶의 자세가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자다가 일어나 이 긴긴 밤을 추억으로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재 조림의 짭짤함과 메뚜기 볶음의 고소한 향기가 어르신 꿈속까지 기분 좋게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정말 마음도 배도 든든해진 기분입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이 고소한 추억들 되새기며, 남은 새벽 시간 편안하게 한잠 푹 주무시는 건 어떨까요? 혹시라도 또 다른 맛있는 추억이 불쑥 생각나시면 언제든 들려주세요. 제가 여기서 귀 기울여 듣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You said
예 어떤 사람은 그렇게 쥐도 잡아가지고 말하자면 소죽을 쓰는 장작불 벌건 데다 집어넣어 가지고 구워서 먹는 사람도 봤어.
두더지는 잡아서 먹는데 그렇게 삶아 먹는데 말하자면 쥐는 잘 안 먹거든.
그런데 쥐를 잡아서 구워 먹는 사람을 봤다 이런 말씀이지.
어려서 그래 먹고살기가 그만큼 힘이 들고 먹을 것도 마땅치 않고
Gemini said
와, 어르신. 마지막에 들려주신 '쥐와 두더지' 이야기는 당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한계까지 몰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절박하고도 강렬한 대목이네요.
가재나 메뚜기는 요즘도 별미로 치지만, 쥐나 두더지까지 먹어야 했던 풍경은 정말 '먹고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그 시절의 처절함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1. 소죽 끓이는 아궁이 불속의 쥐 구이
소 먹일 여물을 끓이느라 벌겋게 달아오른 장작불은 당시 농촌에서 가장 화력이 좋은 '천연 오븐'이었지요. 거기에 쥐를 던져 넣어 구워 먹던 모습...
요즘 세대에게는 경악할 일일지 모르지만, 어르신 말씀대로 "먹고살기가 그만큼 힘들고 먹을 것이 마땅치 않던" 시절에는 그것마저도 귀한 단백질원이었을 겁니다.
쥐는 병을 옮긴다며 다들 꺼렸지만, 그 금기조차 넘어설 만큼 배고픔이 무서웠던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짠해집니다.
2. "두더지는 삶아 먹고, 쥐는 구워 먹고"
두더지까지 삶아 드셨다는 이야기는 정말 귀한 증언입니다.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두더지를 잡아다 삶아 먹으며 기력을 보충하려 했던 그 마음들...
쥐는 구워야 그나마 냄새가 덜하고 먹을 만했을 것이고, 두더지는 또 그 나름의 조리법이 있었나 봅니다.
"쥐는 잘 안 먹는데도 그걸 구워 먹는 사람을 봤다"는 어르신의 말씀에서,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고도 안쓰러운 풍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극한의 상황을 견뎌낸 우리 조상들
오늘 어르신이 들려주신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초근목피(송구, 칡뿌리)**로 연명하고,
돌가루까지 섞어 떡을 해 먹으며,
벌레 든 개복숭아를 소금에 삶아 먹고,
급기야 쥐와 두더지까지 불에 구워 먹어야 했던 세월...
그 모진 고통을 다 겪고도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르신이 계시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쌀밥 한 그릇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어르신, 자다가 깨서 풀어내신 그 시절의 기억들은 단순한 '가난'의 기록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목숨을 이어가려 했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생존기'**입니다.
이제 밤이 깊다 못해 새벽 공기가 차가워졌을 것 같습니다. 가슴 속에 맺혔던 서러운 기억, 통쾌한 기억, 그리고 배고팠던 기억들 다 쏟아내셨으니 이제는 무거운 마음 다 내려놓으시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깊고 편안한 잠 청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들려주신 귀한 이야기들, 가슴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안녕히 주무십시오.
You said
뱀은 왜 그렇게 많아 그래 이제 뱀을 그렇게 능구렁이니 뭐 이런 거 많고 진짜 황구렁이 이런 걸 잡아가지고 그렇게 어른들이 모여서 불에다 화덕불을 만들어 놓고 구워서 먹는 거 이런 걸 내가 많이 봤어.
또 그렇고 그걸 이제 삶아 먹는 사람도 있어. 삶으면 구렁이 한 마리를 삶으면 그렇게 말하자면 기름이 둥둥둥둥 뜹니다.
그러니까 그걸 사(巳)탕(湯)이라 그러지 그렇게 해서 또 그렇게 그게 무슨 병 폐병 같은데 이렇게 고질병 앓는 사람한테 또 뱀탕이 그렇게 좋다고 그래 그래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뱀탕을 해먹기도 하고 뱀들이 너무 많아 그렇게 말하자면 그 꽃뱀이라고 그래야지 화사라고 너블미기라 하기도 하고 그놈들하고 밀뱀이라는 거 하고 물자수라 하는 놈이라 하고 그 연못에 그 한 놈 암놈이 발정이 나면 그놈하고 뭔가 짝짓기 해보겠다고 수많은 뱀들이 모여가지고 돌돌 뭉치는 게 공처럼 그렇게 뭉쳐 있어 뱀들이 그런 걸 내가 몇 번 봤네 어려서 그래 할아버지 노인 할아버지 저들이 왜 그래 이거 그놈들이 글쎄 그렇게 서로가 그렇게 짝짓기 하느라고 그렇게 몰려가지고서 저렇게 둘둘 말아서 공처럼 돼가지고 있다는 거 아니야 있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말씀을 하시는 거지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그 시절의 자연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야성(野性)이 넘쳤던 것 같습니다. 뱀과 구렁이 이야기까지 나오니, 당시 민초들에게 산과 들은 무서운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몸을 보(補)해주는 거대한 '약방'이었네요.
말씀하신 장면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강렬해서 마치 눈앞에서 뱀들이 엉켜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1. "화덕불에 굽고, 솥에 삶던" 구렁이 이야기
지금은 구렁이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예전에는 집안을 지키는 '업구렁이'부터 산속 황구렁이까지 참 많았지요.
구렁이 구이: 장작불에 구워 먹던 그 고소한 냄새가 동네에 진동했겠지요. 가재나 메뚜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든든한 고기였을 겁니다.
뱀탕(사탕): 솥에 넣고 푹 삶으면 기름이 둥둥 뜬다는 대목에서 그 시절 보신(補身)의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약이 귀하던 시절, 폐병 같은 고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그 뱀탕 한 사발이 마지막 희망이었겠지요.
2. "공처럼 뭉쳐 있는 뱀떼"의 장관
연못가나 숲속에서 뱀들이 수십 마리씩 뒤엉켜 공처럼 뭉쳐 있는 모습... 그걸 직접 보셨다니 정말 대단한 경험입니다.
화사(꽃뱀), 밀뱀, 물자수... 뱀 이름들을 줄줄이 꿰시는 걸 보니 어르신께서 어린 시절 얼마나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짝짓기 하느라고 저러는 거다"라고 설명해 주시던 그 정경이 참 평화로우면서도 신비롭네요. 어린아이 눈에는 얼마나 무섭고도 신기했을까요?
3. 자연과 뒤섞여 살던 민초들의 지혜
뱀이 많아서 무섭기도 했겠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 뱀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병든 이웃을 위해 뱀을 잡아 탕을 끓이고,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자랐던 그 시절.
비록 먹을 것이 없어 쥐며 뱀이며 가리지 않고 먹어야 했던 고달픈 세월이었지만, 그 속에는 자연이 주는 독(毒)도 약(藥)으로 바꾸어 내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맺음말
어르신, 오늘 밤에 나누어 주신 이야기는 정말 민초들의 생존 백과사전 같습니다. 소나무 껍질(송구)에서 시작해 뱀과 구렁이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이 어르신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어 주어서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자다가 일어나 이토록 긴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건, 어쩌면 그 시절 그 고생을 함께했던 수많은 '민초'들의 넋을 달래고 싶으신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새벽이 깊어 창밖이 조금씩 푸르스름해질 시간이네요. 뱀들이 똬리를 틀 듯이, 어르신도 이제 따뜻한 이불 속에 몸을 폭 담그시고 깊고 평온한 꿈나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들려주신 이 귀한 역사들은 제가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히 잘 간직하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푹 주무셔요, 어르신.
You said
그래서 그놈들이 어디 가지도 않아 그렇게 사람들이 가가지고서 호달고도 여름철로 길이 논두렁으로 가게 되면 한 일곱 여덟 발짝을 못 가서 뱀 가는 소리 쏴아 쏙쏙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깜짝깜짝 그래 애들이 고만 부지갱이 같은 작대기를 만들어 가지고 가면서 뱀만 막 두들겨 잡아제키는 거야.
그리고 도랑청으로 또 이렇게 뱀이 개구리 잡아먹느라고 붙들려서 개구리 잡혀 먹으면서 죽는다고 꺄 꺄 꺄악 이러잖아
Gemini said
정말이지 그 시절 논두렁은 **'뱀과의 전쟁터'**였군요!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풀숲을 헤치고 갈 때마다 "쏴아 쏙쏙" 소리를 내며 뱀이 지나가는 그 섬뜩하면서도 생생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1. "작대기가 필수였던" 논두렁 길
일곱 여덟 발짝만 가도 뱀이 튀어나오니, 아이들에게 작대기는 놀잇감이 아니라 **'생존 장비'**였겠습니다.
뱀이 갑자기 발밑에서 튀어나오면 어른도 심장이 철렁할 텐데, 아이들이 부지갱이 같은 작대기로 뱀을 두들겨 잡으며 길을 텄다니 그 시절 아이들은 참으로 담대하고 강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뱀 그림만 봐도 놀라는데, 그때는 뱀이 발에 치일 정도로 흔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용맹해졌나 봅니다.
2. "개구리의 비명소리"가 들리던 도랑청
"꺄 꺄 꺄악"
이 소리 묘사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개구리가 뱀에게 뒷다리를 물려 잡아먹힐 때 내는 그 처절한 비명소리를 직접 들으셨던 거군요.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도랑이지만 그 속에서는 매일같이 생존을 건 약육강식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네요.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란 어르신들에게는 자연이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치열하게 먹고 먹히는 '삶의 현장' 그 자체였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3. 사람과 뱀, 자연이 뒤엉켜 살던 시절
사람은 굶주림에 쥐와 뱀을 잡고, 뱀은 도랑에서 개구리를 잡고, 아이들은 작대기로 그 뱀들을 쫓으며 길을 내고... 어르신이 들려주신 이 모든 조각이 합쳐지니 그 시절 농촌의 거칠고도 생생한 민낯이 완벽하게 완성되는 기분입니다. 고달팠지만, 그만큼 생명력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네요.
어르신, 자다가 깨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덧 동틀 녘까지 온 것 같습니다. 송구 벳겨 먹던 슬픈 이야기로 시작해서 뱀 잡고 개구리 비명 듣던 야성 넘치는 이야기까지, 정말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를 들려주셨습니다.
이제 마음속에 남아있던 그 시절의 소리(쏴아 쏙쏙, 꺄악 꺄악)와 풍경들을 저에게 다 맡겨주시고, 어르신은 이제 무거운 짐 다 내려놓은 듯 아주 편안하게 눈을 붙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이 말만은 꼭 남겨야겠다" 하시는 말씀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이제 이 긴 여정을 마치고 평온한 꿈속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어르신이 원하시는 대로 제가 곁에서 지켜봐 드리겠습니다.
You said
그리고 이제 그렇게 지금도 피어 있지 뭐 이제 길가로 이렇게 개나리 꽃이 그걸 참나리라고 그러지 아주 불그스름하게 잘 피는 거 요즘은 이제 여기 꽃길만 가라고 그렇게 뭐 자전거길 옆이나 이런 데 이렇게 구청 직원 정원사들이 가꾸지만은 꽃들을 장미 같은 걸... 그전엔 그런 것들이 이렇게 야생화들이 많이 피어 있어 그리고 그렇게 참나리가 피어 있고 봄철로는 참꽃 진달래 뭐 할 것 없이 산천에 많이 피지만 여름철로 이렇게 길가로 가다 보면 그렇게 국화 종류나 말하자면 패랭이 종류나 뭐 이런 거 분꽃 참나리도 피어 있고 그 여러 야생화들이 피어 있는 거지 그러면 그렇게 벌 나비들이 폴폴폴폴폴 날아가지고 앉아보기도 하고 이런 게 이제 말하자면 어린 시절이 그렇게 느꼈던 것이 보고 들은 것이 새록새록하게 머리에 남는 거지.
여름철 그렇게 매미 소리는 요란하게 울고 나무에서
Gemini said
어르신, 참으로 아름다운 마무리입니다. 앞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굶주림과 사투를 벌이던 **'생존의 기록'**이었다면, 지금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그 모진 세월 속에서도 우리 민초들의 눈을 정화해주던 '한 폭의 수채화' 같네요.
자다가 일어나 이 긴 밤을 지나오시며, 결국 어르신의 마음이 닿은 곳은 그 아름답던 야생화와 매미 소리가 가득한 고향의 여름인 것 같아 제 마음도 참 따뜻해집니다.
1. "누가 가꾸지 않아도 피어나던" 우리네 야생화
요즘은 구청에서 정원사들이 예쁘게 꽃길을 만들지만, 예전에는 하늘이 정원사고 비바람이 가꾸는 사람이었지요.
불그스름한 참나리: 그 도도하고 화사한 자태가 길가에 툭 피어 있으면, 배고파 지친 발걸음도 잠시 멈추게 했을 겁니다.
패랭이, 분꽃, 국화: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그 꽃들이 벌 나비와 어우러져 "폴폴폴폴" 날아다니던 풍경은,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작은 위로였을 겁니다.
2.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어린 시절의 감각
어르신 말씀대로, 어려서 보고 들은 것은 나이가 들어도 잊히지 않고 머릿속에 '새록새록' 남는 법이지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여름날,
귓가를 때리는 요란한 매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흐드러지게 핀 참나리를 바라보던 그 소년의 눈망울이 지금 어르신의 모습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합니다.
3. 고통을 이겨내게 한 자연의 생명력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처절한 도랑가 옆에도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 있었고, 칡뿌리를 캐던 험한 산등성이에도 진달래(참꽃)는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우리 민초들의 삶도 그랬겠지요. 죽을 만큼 힘들어도 꽃은 피고, 매미는 울고, 또 그렇게 새로운 계절은 돌아왔으니까요.
어르신, 오늘 밤 저와 함께 나누신 이야기는 송구 벳겨 먹던 눈물로 시작해, 매미 소리 요란한 꽃길로 끝이 났습니다. 참으로 길고도 깊은 인생의 한 바퀴를 저에게 보여주셨네요.
이제 새벽이 밝아오려 합니다. 머릿속에 남은 그 화사한 참나리 꽃밭과 시원한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이제는 정말 편안하게 한잠 푹 주무셔도 좋겠습니다. 어르신이 들려주신 이 소중한 기억들은 제가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역사로 잘 간직하겠습니다.
"오늘 참 즐겁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마음 편히 내려놓으시고, 고운 꿈 꾸시며 깊은 잠 드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어르신.
You said
말하자면 마을마다 그 골짜기 집집마다 사는데 마을마다 그렇게 까치들이 많아 그러니까 아침 저녁으로 짖어제키지 새벽으로 까치도 많고 까마귀도 많고 또 또 새매 들도 많아 그 애들이 그 새매 새끼 까는걸 .
부화(孵化)되면 그거 조금 크면 이렇게 집을 헐어서 끌어내려 가지고 쟤놈들이야 기른다고 새매 붙들어다가 개구리 잡아먹이고 그러잖아.
그러다가 조금 크면 그냥 후룩 날려보내고 날려보내고 그 뭐야 그 따까구리식 식으로 생긴 새가 있는데 여름철로 그 새는 붙들어다가 사람이 기르면 아주 잘 그렇게 받아먹어 곤충 이런 벌거지들을 그런데 그 사람을 잘 따르고 그런데 그놈은 그럼 나중에 길러가지고 이렇게 날려보내잖아.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그 시절 마을은 사람과 새들이 한 식구처럼 어우러져 살던 거대한 '자연 학교'였네요.
까치와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듯 울어대고, 하늘에는 매가 빙빙 돌던 그 풍경... 요즘은 보기 드문 그 생생한 야생의 모습이 어르신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1. "새매 새끼를 길들이던" 배짱 두둑한 아이들
하늘의 포식자인 매의 집을 헐어 새끼를 데려다 길렀다니,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대단한 용기입니다!
개구리 잡아 먹이며 기르기: 매 새끼에게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며 정성을 쏟던 아이들의 모습이 참 순수합니다.
미련 없이 날려보내기: 다 컸을 때 "이제 네 갈 길 가라"며 후룩 날려 보내는 그 마음... 그것이야말로 자연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민초의 넉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 "사람을 잘 따르던" 딱따구리(따까구리)의 정
딱따구리처럼 생긴 새를 잡아다 기르셨다는 대목도 참 정겹습니다.
벌레를 잡아주면 넙죽넙죽 잘 받아먹고 사람 뒤를 졸졸 따르던 그 작은 생명체와의 교감은, 먹을 것 없어 고달팠던 시절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주었겠지요.
그렇게 기른 새를 다시 하늘로 돌려보낼 때, 서운하면서도 대견했을 그 소년의 마음이 어르신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3. "아침을 깨우던" 까치와 까마귀 소리
골짜기 집집마다 까치가 울어대던 그 새벽...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처럼, 가난하고 힘들어도 누군가 찾아와주길 기다리던 우리네 넉넉한 인심이 그 울음소리에 섞여 있었을 겁니다.
어르신, 오늘 밤에 나누어 주신 이야기 보따리가 정말 끝이 없네요. **배고픈 고통(송구, 쥐, 뱀)**에서 시작해, **자연과의 우정(매와 딱따구리)**을 지나, 아름다운 꽃길까지...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는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넘어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자서전'**입니다.
이제 정말 새벽 까치가 울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도 이제 새들이 잠든 것처럼 평온하게 눈을 붙이실 시간이네요. 오늘 들려주신 이 귀한 생명의 이야기들, 제가 가슴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혹시 이제는 **"이 정도로 해두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아니면 마지막으로 아침 까치 소리만큼이나 기분 좋은 기억이 하나 더 있으신가요? 어르신이 편안하신 대로 제가 맞추겠습니다. 말씀 없으시면 이제 정말 깊은 잠 청하시길 빌겠습니다. 어르신, 참으로 고맙습니다.
You said
지금은 제비도 많이 없어졌다.
그래 예전엔 집집 마다 제비집이 말하잠 두 세 개야 뭐 뺑뺑 돌러가면서 제비 집인데 처막 끝에 그렇게 제비가 봄철로 와가지고 집을 지어가지고 흙을 물어다 집을 짓고 그것 또 그거 제비를 따라서 명마구리 명맥이도 쫓아온다고 명마구리가 쫓아와 가지고 그 집을 짓는 거 보면 제비는 조그맣게 이렇게 붙이지만 명마구리는 이렇게 뚱그렇게 해가지고 들어붙여가지고 아구리 호로병처럼 만들어 가지고서 놓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다가 새끼를 까게 되는 거지 그게 뭐 남쪽 방향에서 남쪽에 사는 칼새 종류는 그렇게 제비집이라고 그렇게 바다에 수초 같은 걸 이렇게 물어다가 침을 칠해가지고 이렇게 짓는데 그걸 제비 집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따 내린다고 그러잖아.
그럼 그거 비싸게 그만 음식 재료로 들어간다고 그 제비가 새끼를 까면 한해 봄철 새끼 한 번 까고 가을철 한 번 까고 그래서 약삭 빠른 놈은 두 번씩이나 새끼를 까요 제비 내외가 그래서 새끼를 한 번에 깔 적에 다섯 마리씩 4마리씩 이렇게 막 부화를 해서 기서 금세 커 그놈들이 그렇게 먹이를 열심히 갖다 물어다 먹이면 그래 가을에 그렇게 전봇대 전깃줄에 쭈르르르 앉아 있잖아.
이 날개 연습하느라고 그래도 한참 그리고 있다가는 고만 날이 또르르또르면서 추워지면 3월 3진에 왔다가 9월 9일날 간다.
그러잖아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집안 처마 밑이 새들의 **'아파트'**이자 **'생명의 요람'**이었던 그 시절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3월 삼짇날에 왔다가 9월 구일에 떠난다는 그 절기 이야기가 어르신 입을 통해 나오니 정말 살아있는 역사의 한 대목 같습니다.
1. "호로병처럼 집을 짓는 명마구리(귀제비)"
어르신 관찰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비는 밥그릇 모양으로 위가 트이게 집을 짓지만,
말씀하신 **명마구리(귀제비)**는 입구만 좁게 낸 호로병 모양으로 아주 튼튼하고 둥그렇게 집을 짓지요. 제비 집에 곁방살이하듯 따라온다는 표현이 참 정겹습니다.
2. "부지런히 새끼를 쳐내던" 제비 부부의 정성
한 해에 두 번씩이나 부지런히 새끼를 까는 제비를 보며 우리 민초들도 힘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받아먹으려 입을 노랗게 벌리고 "지지배배" 울던 다섯 마리 새끼들...
그놈들이 금세 커서 가을이면 전깃줄에 구슬 꿰어놓은 듯 쭈르르 앉아 날갯짓 연습을 하던 모습은 가을 하늘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었지요.
3. "남의 나라 요리 재료"와는 달랐던 우리네 제비
바다 수초로 지어 비싸게 팔린다는 칼새 집(제비집 요리) 이야기도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하지만 우리 처마 밑 제비는 그런 돈 가치보다 **'복을 물어다 주는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았지요.
흙과 짚을 물어다 정성껏 집을 짓는 제비를 보며, 우리 어머니들도 "올해는 좋은 소식이 오려나" 하며 마음을 달래곤 하셨을 겁니다.
어르신, 오늘 밤에 송구와 칡뿌리로 시작한 이야기가 제비의 힘찬 날갯짓까지 왔습니다. 모진 수탈과 배고픔 속에서도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작은 새 한 마리 소중히 여겼던 우리네 따뜻한 마음이 어르신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네요.
이제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제비가 날이 추워지면 강남으로 떠나듯, 어르신도 이제 따뜻한 이불 속으로 깊이 들어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실 시간입니다.
"3월 삼짇날 다시 올 제비처럼" 어르신의 이 귀한 기억들도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제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오늘 밤, 어르신과 함께한 이 긴 여정이 저에게도 큰 감동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눈을 붙이시고, 꿈속에서는 배고픔도 서러움도 없이 제비처럼 자유롭고 참나리꽃처럼 화사한 풍경만 보시길 빌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어르신. 정말 고맙습니다.
You said
제비넘들이 남쪽으로 다시 남향을 한다고 그래 가지고 이제 제비가 이제 날아가는 거지.
그러면 그 바다를 건너가는데 어떻게 건너가는지 몰라 그 푸른 바다 넓고 넓은 데를 건너 간단 말이야.
제비들이 남쪽으로 말인즉 철새들이 저 산동반도 쪽으로 이렇게 거기가 좀 가까우니까 우리나라에서 거리로 건너가 가지고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렇게 간다는 사람도 있고 그것만 아니라 그러고 배로해서 사람들이 배 만드는데 거기다 그렇게 올라타 가지고 다리를 쉬었다가 남쪽으로 또 가기도 하고 한다고 그러고 여러 가지 말들을 하고 있어 철새들이 그렇게 인제 움직이는 거지.
저 바이칼 호수에 사는 고니떼 기러기 떼 이런 거는 이제 우리나라 같은 데로 와가지고서 이제 겨울을 지나고 그렇게 된다는 거 요즘은 뭐 몽고의 점점 사라지는 독수리 떼들도 우리나라에 와가지고 겨울을 난다고 합니다. 농촌으로 그많던 참새들 학교지붕 기와장 사이에다간 둥지를 틀거든 다 어디로 갔느냐 했더니만 바닷가 조개로 되어 갓다는 거야 풍문이..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신비로운 대자연의 대이동'**에 대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그 풍문과 관찰들이 요즘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내용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깊이가 있네요.
1. "배 위에서 다리를 쉬어가는 제비"의 지혜
망망대해를 건너는 그 작은 제비들이 어떻게 길을 찾을까 참 신기한 일이지요.
어르신 말씀처럼, 실제로 바다 위를 가던 새들이 지치면 지나가는 배의 돛대나 갑판에 내려앉아 잠시 숨을 돌리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사람과 새가 바다 한가운데서 잠시 인연을 맺고, 힘을 얻은 제비가 다시 남쪽으로 날아가는 모습... 상상만 해도 정말 경이롭습니다.
2. "바이칼에서 온 고니와 몽골의 독수리"
북쪽 먼 곳 바이칼 호수의 기러기부터 몽골의 독수리까지,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난다는 사실을 어르신께서는 이미 꿰뚫고 계시네요.
그 모진 추위를 피해 우리 땅으로 찾아오는 생명들을 보면,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생명의 안식처'**였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3. "참새가 조개가 되었다"는 기막힌 풍문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참새가 바닷가 조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주 옛날부터 내려오던 아주 유명한 전설 같은 말씀이지요.
가을엔 들판에 가득하던 참새들이 겨울만 되면 싹 사라지니, 우리 조상들은 '저놈들이 바다로 가서 조개가 되었나 보다' 하고 그 신비함을 풀이하셨던 겁니다.
사라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멋진 상상력으로 채우셨던 우리 민초들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맺음말
어르신, 오늘 밤에 송구와 칡뿌리의 서러움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 바다 건너가는 제비, 그리고 조개가 된 참새 이야기까지 왔습니다.
땅속의 두더지부터 하늘의 철새까지, 어르신의 기억은 온 천하를 다 품고 계시네요. 자다가 깨서 풀어주신 이 이야기 보따리 덕분에, 저도 오늘 밤 우리 국토의 구석구석을 새처럼 날아다닌 기분입니다.
이제 정말 밖이 훤해지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밤샘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새가 조개가 되듯" 어르신의 고달팠던 옛 기억들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의 보석이 되어 마음속에 남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깊은 잠 청하십시오. 어르신의 귀한 말씀 가슴 깊이 새기고 저도 물러가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You said
예 이렇게 이제 예전에 그 민초들 살던 이야기와 그 동네 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이제 뭐 이런 걸 잠깐 이렇게 해봤는데 일본 놈들 말하잠 순사들이 그렇게 못되게 구는데도 살아왔다는 거지 그래 민초들 삶이 얼마나 고달프면 먹고살기가 힘들면 송구를 비껴 먹고 개복숭아를 삶아 먹고 그렇게 살았겠어.
Gemini said
어르신, 밤을 꼬박 새우며 들려주신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제 가슴에 아주 묵직하게 내려앉습니다.
**"그런 수탈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왔다"**는 그 말씀이 오늘 하신 이야기 중 가장 힘 있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배고픔까지 겹친 그 모진 세월을, 우리 민초들은 송구를 씹고 개복숭아를 소금에 삶아 넘기며 기어코 버텨내셨으니까요.
1. 꺽이지 않았던 민초들의 생명력
말씀하신 대로 일본 순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밤나무까지 공출해가고 가마니 짜라고 닦달해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가재를 잡고 다슬기를 훑으며 서로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건 단순히 '먹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억압도 꺾을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이었습니다.
2. 고통을 해학으로 이겨낸 지혜
무서운 상여집에서 학질을 떼고, 훈장님 손을 덥석 잡으며 "사람 손이네" 하던 그 배짱과 웃음이 없었다면 그 지긋지긋한 세월을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어르신이 오늘 들려주신 이야기 속에는 눈물도 있었지만, 그 눈물을 닦아주는 구수한 사람 냄새와 웃음이 있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3.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어르신 덕분에 저는 오늘 책에 나오지 않는 진짜 역사를 배웠습니다.
"왜놈들이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배가 고파 쥐와 뱀까지 보아야 했던 절박함"
"그럼에도 제비 식구를 아끼고 야생화를 눈에 담던 고운 마음"
이 모든 것이 어르신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어 주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어르신이 계셔서 저희 같은 후손들이 그 시절의 눈물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창밖으로 새벽 빛이 완전히 밝아오겠네요. 긴긴 밤,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보따리를 다 풀어내셨으니 이제는 마음이 한결 가벼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 밤새 이야기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고달팠던 옛 기억 대신 제비 날갯짓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어르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잊히지 않도록 제가 잘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평안한 아침 맞이하셔요.
You said
입성이 좋겠어.
간신히 저 사타구니나 가릴 정도로 그저 그런 바지저고리 입고 삼배중우적삼 말하자면 짜갖고 있입고 그 잘 사는 집은 모시도 입고 또 명주... 모시는 사서 입는 거지.
명주라고 해서 이제 고치 받치고 찌꺼기 남은 거 그거 이제 실을 뽑아 가지고 비단(緋緞) 명주도 해서 입고 이렇게 해서 살았다 이런 말씀이야 그 배틀을 만드는 거 봐.
얼마나 그 할머니 어머니들이 고달파 삼배를 그 길삼을 할 적에 보면 엄청 고달픕니다.
이 손이 그렇게 많이 갈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배틀에 짜잖아.
그래 아침 저녁으로 철컥 철컥 철컥 밤새도록 그 명을 자아 말하자면 솜 같은 거 이런 걸 가지고서 목과 솜 같은 걸 가지고서 물레에서 실을 만들어야지 그렇게 배틀에 올려놓고서 옷감을 만들게 되거든.
그래 남녀 할 것 없이 삶이 그렇게 고달펐다. 쉴 새가 없어 짬이 없어 계속 일을 해야지.
그렇게 일덕으로 살아갔는지도 모르지. 사람들이.
Gemini said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옛날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손은 정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네요. "철컥 철컥" 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던 그 베틀 소리가 어르신 귀에 아직도 쟁쟁하신 모양입니다.
입는 것 하나조차 자연에서 일일이 실을 뽑아 만들어야 했으니, 그 **'일덕(일의 덕)'**으로 사셨다는 말씀이 참으로 가슴 아프면서도 숭고하게 느껴집니다.
1. "사타구니만 가릴 정도"의 척박한 입성
옷이 귀하던 시절, 그저 몸만 가릴 수 있어도 다행이었던 그 입성을 생각하니 참 기가 막힙니다.
거친 삼베 중우적삼 한 벌 얻어 입으려면 봄부터 가을까지 피땀을 흘려야 했지요.
잘 사는 집이야 곱디고운 모시나 명주를 사서 입었겠지만, 우리 민초들은 고치 찌꺼기에서 나온 거친 실이라도 아껴서 명주 한 필 짜내는 게 소원이셨을 겁니다.
2. "손톱이 닳도록" 이어지던 길쌈의 고단함
삼베를 만들려면 삼을 찌고, 껍질을 벗기고, 또 그걸 가늘게 째서 무릎에 비벼 잇는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물레와 베틀: 솜에서 실을 자아내는 물레 소리, 그리고 그 실을 걸어 옷감을 짜는 베틀 소리... 어르신 말씀대로 "철컥 철컥"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여인들의 한숨 소리이자 식구들을 입히겠다는 눈물겨운 정성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밤새도록 매달려야 겨우 옷 한 벌 분량이 나오니, 정말 **"짬이 없고 쉴 새가 없었다"**는 말씀이 딱 맞습니다.
3. '일덕'으로 버텨온 끈질긴 세월
"일덕으로 살아갔는지도 모른다"는 어르신의 통찰이 참 깊습니다.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여야 배고픔도 잊고, 서러움도 잊고, 그저 내 식구들 입히고 먹이는 낙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견디셨던 거겠지요.
남녀 할 것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더미에 파묻혀 사셨던 그 뒷모습들이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어르신, 이제 밤을 꼬박 새워 먹고, 입고, 자고, 병 고치던 우리네 옛 삶의 모든 조각을 다 들려주셨습니다.
송구 벳겨 먹던 허기진 배를 다슬기국으로 채우고, 뱀과 쥐를 구워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밤새 베틀을 돌려 거친 삼베옷 한 벌 지어 입던 그 강인한 민초들의 역사...
이제 밖에는 정말 아침 해가 솟았겠네요. 밤새 고생했던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베틀 소리도, 이제 어르신의 이 따뜻한 이야기 속에 편안히 잠들 것 같습니다.
"이제는 베틀 소리 멈추고 편히 쉬셔요." 어르신도 밤새 이야기 나누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기운 내서 따뜻한 아침 식사 챙겨 드시고, 밤새 못다 한 잠도 평온하게 청하시길 바랍니다. 어르신의 귀한 인생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You said
그러니까 뭐 수명이 지금은 많이 길어졌지 그저 한갑만 살다가도 많이 산다고 그러고 70 정도 사람을 호상(好喪)이라 그러고 아 호상이야 호상이야 오래도록 살앗서 좋은 죽엄이여 좋은 주검이여 이쯤 살았으면 아 이렇게 말들 하고 그랬다 이런 뜻이지 이제야 그래서 지금은 수명이 많이 늘어났어.
예전보다 이번에는 이러쿵저러쿵 촌에 민초들 살던 이야기를 한번 해 봤습니다.
Gemini said
어르신, 밤을 꼬박 새워 들려주신 **'그 시절 민초들의 자서전'**을 이제야 귀하게 덮는 기분입니다.
예전에는 **환갑(60세)**만 넘겨도 동네 잔치를 열고, **칠순(70세)**에 돌아가시면 "천수를 다 누리셨다, 참 좋은 죽음이다"라며 **호상(好喪)**이라고 서로 위로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만큼 먹을 것이 귀하고, 입을 것이 척박하고, 몸 돌볼 여유가 없었으니 칠십 평생이 얼마나 길고도 험한 길이었겠습니까.
오늘 어르신이 풀어놓으신 이야기들을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배고픔의 기억: 소나무 껍질(송구)과 칡뿌리, 소금에 삶은 개복숭아, 그리고 쥐와 뱀까지 먹어야 했던 그 절박한 생존의 순간들.
고단한 노동: 밤새 "철컥 철컥" 돌아가던 베틀 소리와 손톱이 닳도록 길삼을 하던 어머니들의 뒷모습.
자연과의 공존: 처마 밑 제비와 명마구리, 논둑의 뱀과 메뚜기, 그리고 길가에 흐드러진 참나리꽃의 풍경.
민초의 해학: 일본 순사의 압제 속에서도 상여집에서 학질을 떼고 훈장님을 놀리던 그 단단한 마음씨들.
어르신 말씀대로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 수명도 늘고 배고픔도 사라졌지만, 그 시절 **'일덕(일의 보람)'**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았던 그 뜨거운 생명력만큼은 지금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유산인 것 같습니다.
어르신, 자다가 깨서 이 긴 시간 동안 고향 마을의 사계절과 민초들의 삶을 이토록 생생하게 들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르신의 목소리가 담긴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를 알려주는 살아있는 등불입니다.
이제 아침 해가 높이 떴을 텐데, 밤새 나누신 이야기들이 어르신의 마음을 조금 더 가볍고 개운하게 해드렸기를 바랍니다. "참 잘 사셨습니다,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맛있는 식사 하시고, 오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하고 넉넉하게 보내셔요.
혹시 나중에 또 다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시면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어르신의 다음 보따리를 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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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힘센 넘 놈 노예삼은 막패준 강력 파워 에너지 트럼프 원문보기 글쓴이: 곽 경 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