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습관 만들기
네이버 카페 - 영희야, 놀자! (책은 나의 밑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마구쓰기>
③ 생각 호수로의 잠수
마구 쓰기는 심연으로의 여행이다. 우리 안에는 깊고 푸른 ‘생각의 호수’가 있다. 생각의 지류를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사람의 의식구조는 빙산과 같다. 표면상 보이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밑에는 거대한 잠재의식이 조용히 축적, 성장하고 있다. 우리가 창의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빙산의 꼭대기에서 구멍을 뚫고 내려가 그 밑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탐색하고 채취하는 일과 같다.
―스탠 라이, 〈어른들을 위한 창의학 수업〉
이 글에서 보듯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거대한 잠재의식’은 창의력을 만드는 에너지다. 우리는 누구나 ‘기억의 도서관’과 ‘생각의 호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글쓰기의 중요한 재료가 있는 이 장소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저절로 복원되고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릴 것인가.
아이디어는 물고기와 같다. 작은 물고기를 잡고자 한다면 얕은 물에 머물러도 된다. 그러나 큰 물고기를 잡으려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깊은 곳에 있는 물고기는 더 힘세고 더 순수하다. 그놈들은 덩치가 크고 심원하며 아주 아름답다.
―데이빗 린치,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생각의 호수에는 물고기들이 산다. 어느 날 불현 듯 떠오르는 영감이란 물고기. 가끔 펄떡이는 물고기가 머릿속에서 요동칠 때가 있다. 그 기분은 어릴 적 정전이 되어 칠흑이 된 집에 한순간에 온 형광등이 동시에 켜지는 상황처럼 짜릿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매우 드물다. 글쟁이는 잠수부가 되어 종종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 바로 마구 쓰기다. 극히 단순한 손놀림을 통해 생각의 호수에 잠겨있는 지식과 정보, 기억을 꺼내오면 된다. 브레인스토밍과 비슷하다 해서 ‘브레인라이팅’이라고도 한다. 마구 쓰기는 도구로서의 손의 특징이 가장 원시적으로 나타나는 기법이다. 현대인들은 손으로 마이크로칩을 만드는 일까지 하지만, 옛 인류는 돌을 갈아 도끼를 만드는 일을 했을 뿐이다. 마구 쓰기를 하는 순간은 오로지 타자용의 손만 있다고 여겨라. 마치 로봇처럼 손은 그저 정보운반자로 내 안의 지식과 정보를 나르는 일에 충실하라.
☆ 기분 나쁜 악몽에 대하여
꿈을 기록하는 일은 의미 있는 글쓰기 행위 중 하나다. 꿈은 무의식의 표상이다. 글을 어느 정도 쓰다 보면 소재의 고갈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꿈은 종종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때론 꿈이 일상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만약 악몽을 꾸거든, 언젠가 쓸 소설의 한 정면이 영화가 되었다고 여기자.
국립도서관에 갔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자유 시간이다. 관중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췄다. 갑자기 한 여성이 끌려갔다. 직원이었다. 그녀는 다른 직원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직원이 자유 시간에 참여하는 일은 금지였다. 그녀는 잘못을 사죄했다. “한 번만 살려주세요.” 그러나 심문하는 직원의 표정은 미동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요.” 애처로웠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그럴 수도 있잖소. 직원이 참여하면 안 되는 규정이라도 있나요?” 직원은 나를 힐끗 쳐다봤다. 여자도 나를 쳐다봤다. 여성은 나에게 구조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 일이 아닙니다. 일 보세요.” 직원이 차갑게 말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를 용서해 주세요.” “안 됩니다.” 직원의 인상이 구겨졌다.
☆ 내 생애 최고로 기뻤던 일
지나온 삶 속에서 잊지 못할 사건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보자. 기뻤던 일을 기록함으로써 누구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기게 된다.
중학교 때 일이다. 매년 2학년 대상으로 합창대회가 열렸다. 우리 담임은 음악 선생을 모셔와 방과 후 특별 연습을 시켰다. 매일 남아서 혹독한 훈련을 했다. 우리는 알토와 소프라노로 나뉘어 연습했다. 넓은 홀에서 경연이 열렸다. 10반의 합창이 진행됐다. 우리는 초긴장 상태에서 노래를 불렀다. 모두 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중딩, 그 까까머리 아이들 사이에서 믿기 힘들 만큼 아름답고 고운 선율이 빚어졌다.
선생님(아마도 목사님으로 기억한다.)께서 수상자를 발표했다. 3등, 2등이 결정됐다. 마지막 남은 것은 요즘 같으면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1등은 어느 반일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반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2반이요.”
그랬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우리 반 모두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다. 그것은 친구들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뜻했다. 선생님은 웃으며 “맞습니다. 2반입니다!”라고 외쳤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 글쓰기, 어떻게 쓸 것인가, 한 줄도 쓰기 어려운 당신에게(임정섭, 경향BP, 2013)’에서 옮겨 적음. (2020.10.12. 화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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