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7. 큐티
마태복음 13:24 ~ 30
가라지 비유
관찰 :
1)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두 번째 비유
- 24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 25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 26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 27절.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 28절.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 29절.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 30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 가라지 비유의 요약 =>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씨를 뿌릴 때 그 사람의 원수도 와서 가라지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래서 뿌린 씨가 자라자 가라지도 같이 자랐습니다. 종들이 이를 보고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추수 후 알곡은 알곡대로 가라지는 가라지대로 따로 가르는 작업이 어차피 있을 것이므로 추수 때까지 그냥 놔두라고 하였습니다.
2) 밭은 세상
- 이 비유를 예수님께서 풀어 해석하시면서 “밭은 세상”(마 13:38)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밭은 교회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이 같이 다니나 추수 때에는 갈리게 된다고 가르치면서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잘못한 사람을 징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밭은 교회라고 말씀하지 않고 세상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 해석
- 예수님은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38~39)라고 가라지의 비유를 해석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끝에 천사들이 와서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날이 바로 심판의 큰 날이요, 이날 악인과 선인들이 서로 갈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면 그때 악인들은 멸절되고 악과 죄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라지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악이 이 땅에서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와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람들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와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받아들인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과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악의 아들들은 이 세상 이 세대가 끝나 선인과 악인들 가를 때까지 같이 산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구약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오면 악인은 없어진다고 믿어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라지 비유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고 너희 가운데 있으며 악인들은 너희와 더불어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또한 악한 이 세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와 있지만 악인과 선인은 함께 한 사회 속에서, 한 단체 속에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천국이 임하면 모든 악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 때에 있을 일이고, 그 전까지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선인과 세상에 속한 악인이 함께 섞여서 사는 양태의 삶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가라지적인 상황에 대해서 좌절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악에 대해서 우리는 거룩한 삶을 견지하고 살아야 하겠지만, 이 세상을 모조리 다 변화시키는 것이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함께 존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라지와 섞여 살되 ‘가라지 화’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씨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그 열매를 맺는데 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는 크고 넓어서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내버려 두는 것은 인생의 아이디어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스케일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솔루션입니다. 이해되지 않기에 내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 두라” 명하시는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고, 주인이 다루시는 올바른 심판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옳은 길입니다.
적용 :
1) 기독교가 위기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세속화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주님의 의도 속에는 그런 세속적인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christianity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같이 혼재하는 것이 주인의 뜻이라면 그 상황속에서 christianity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간절히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바로 알고자 간절하게 성령님께 의지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알곡이 가라지를 부러워하면 안됩니다. 미련한 것입니다. 장차 주인이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단으로 묶어 불살라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살라 없어질 것에 욕심내고 목숨 걸지 말아야 합니다.
3) 제게 일어난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잡게 됩니다. 주님은 분명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