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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철학(麻雀哲學)-이효석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이효석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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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찌는 복더위에 거리는 풀잎같이 시들었다. 시들은 거리 가로수(街路樹) 그늘에는 실업한 노동자의 얼굴이 노랗게 여위어 가고 나흘 동안─바로 나흘 동안 굶은 아이가 도적질할 도리를 궁리하고 뒷골목에서는 분 바른 부녀가 별수 없이 백동전 한 잎에 그의 마지막 상품을 투매하고 결코 센티멘탈리즘에 잠겨본 적 없던 청년이 진정으로 자살할 방법을 생각하고 자살하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 되기를 원하였다─
도무지가 무덥고 시들고 괴로운 해이다. 속히 해결이 되어야지 이대로 나가다가는 나중에는 종자도 못 찾을 것이다. 이 말할 수 없이 시들고 쪼들려 가는 이거리, 이 백성들 가운데에 아직도 약간 맥이 붙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정주사네 사랑일까? 며칠이나 갈 맥인지는 모르나 이 무더운 당장에 그곳에는 적어도 더위는 없다. 대신에 맥주 거품과 마작과 유흥이 있으니 내려 찌는 복더위에 풀잎같이 시들은 이거리, 서늘한 이 사랑에서는 오늘도 마작판이 어우러졌던 것이다. 삼 간이 넘는 장간방의 사이를 트고 아래 윗방에 두 패로 벌린 마작판을 싸고 전당포 홍전위, 정미소 심참봉, 대서소 최석사, 자하골 내시 송씨, 그 외에 정체 모를 수 많은 유민들이 둘러앉아서 때 묻은 마작쪽에 시들어가는 그들의 열정을 다져서 마작판을 탕탕 울린다.
"펑!“
"깡!“
그러나 흥겨운 이 소리가 실상인즉 헐려가는 이 계급의 단조한 생활을 상징하는 풀기 없는 음성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한 끗에 맥주 한 병씩을 걸고 날이 밝도록 세월없이 마작판을 두드리는 그들의 기력 없는 생활의 자멸을 재촉하는 단말마적 종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펑!"
"깡!“
"홀나!“
양동이에 얼음을 깨트려 넣고 그 속에 채운 맥주를 잔 가득 나누고 마작쪽이 와르르 흩어지니 판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오늘이나 소식이 있을까.“
판 한 모에서 대전하고 있던 정주사는 마작과는 관계없는 딴 생각에 마음을 은근히 앓으면서 홍중(中) 쪽을 정성스럽게 모아들였다. 그는 끗수의 타산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어쩐 일인지 홍중을 좋아하고 백(白)판을 극도로 싫어하였다. 홍중으로 방을 달면 길하고 백판으로 달면 흉하다는 이 비논리적 저 혼자의 원리에 본능적으로 지배를 받으면서 이것으로써 은근히 마음먹은 일을 점치는 것이다. 그 심리는 마치 연애에 빠진 계집아이가 이기든지 말든지 간에 남몰래 트럼프의 화투장을 정성껏 모아들이는 그 심리와도 흡사하였다.
정주사는 오늘도 아들의 편지를 고대하면서 홍중으로 방 짜기에 애를 썼다. 그러나 재수없는 백판만 여러 쪽 들어오고 홍중은 판판이 한 쪽도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는 추근추근히 세 쪽이나 들어온 백판을 헐어내 버리면서도 수중에 한 쪽도 없는 홍중을 한 장 두 장 판에서 모아들이기에 헛애를 썼다.
결과는 방 달기가 심히 늦고 남이 벌써 "홀나!"를 부를 때에도 그는 방은커녕 엉망진창인 수많은 마작쪽을 가지고 미처 주체를 못해서 쩔쩔매었다. 그러나 물론 그는 "홀나!"를 바라는 바도 아니오, 맥주를 아끼는 터도 아니었다. 다만 홍중으로 훌륭하게 방 한 번 달기가 원이었다. 그러나 종일 마작판을 노려도 홍중은 안 들어오고 편지는 안 오고─그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우울하였다.
"에, 화난다!"
마음 유하게 판에 앉았던 정주사도 나중에는 화가 버럭 나서 마작쪽을 던지고 벌떡 자리를 일어났다.
"운송(정주사의 호), 요새 웬일이오?“
같이 놀던 친구들은 정주사의 은근한 심정은 모르고 그의 연패하는 것이 보기 딱해서 그의 손속 없는 것을 민망히 여겼다.
"최석사, 대신 들어서시오.“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최석사에게 자리를 사양하고 정주사는 웃목에 서 있는 넓은 침대에 가서 몸을 던지고 마작 소리를 옆 귀로 흘리면서 자기 스스로의 생각에 잠겼던 것이다─정주사의 사랑하는 외아들이 일확만금을 꿈꾸고 새 실업을 꾀하여 동해안으로 떠난 것은 벌써 작년 봄이었다. 대학을 마친 풋 지식을 놀려두기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수년 전부터 동해안 일대에 왕성히 일어난 정어리업에 기울였던 것이다. 바다일이라는 것이 항상 위험하기는 위험한 것이나 천여석지기의 자본을 시세 좋은 정어리업에 들여 밀면 만금이 금시에 정어리 쏟아지듯 쏟아질 것이다─고 생각한 그는 대번에 삼백석지기에 넘는 옥토를 은행에 잡히고 이만 여원의 자본금을 낸 것이다.
십여 척의 어선과 어부를 사고 수십 채의 그물을 사고 해변에 공장을 세우고 기름 짜는 기계를 설치하고 공장 노동자와 수백여 명의 능률 노동자를 써가면서 사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얼떨떨한 흥분과 모험감으로 일년 동안을 계속하여 분주한 어기(漁期)를 지내놓고 연말에 가서 이익을 타산하여 보았을 때에 웬일인지 예측과는 딴판으로 수지가 가량없이 어긋났다.
결국 이만 여원을 배와 공장에 곱게 깔아놓았을 뿐이요, 한푼의 이익도 건지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른 법 없는지라 첫 사업의 첫해인 만큼 모든 실패를 서투른 수단과 노련치 못한 풋 지식의 탓으로 돌려보내고 금년에는 일년 동안에 얻은 경험을 토대로 사업을 확대하여 또 삼백 여 마지기의 옥토를 같은 은행에 잡히고 이만 여원을 내서 배를 늘리고 공장을 늘려서 한층 더 큰 규모로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뉘 알았으랴, 금 해금이 단행되고 금융계와 모든 사업계에 침체가 오자 무서운 불경기의 조수는 별수없이 정어리업에까지 밀려오고야 말았다.
물화상통과 금전융통의 길이 끊어지니 정어리의 시세는 대중없이 폭락되었다. 닷 말들이 한 자루에 이 원 육십 전 하던 정어리가 금년에 들어와서는 일 원 삼십 전으로 폭락되고, 기름 한 통에 이 원 팔십 전 하던 것이 금년에는 일 원 오십 전으로, 정어리 비료 한관 시가(一貫時價) 오 원이 이 원 오십 전으로─도대체 반값으로 폭락되었다. 이 대세는 도저히 막아내는 장사가 없었다.
정주사는 앞도 못 내다보고 공연히 사업을 확대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저질러놓은 것을 이제 와서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흥하든 망하든 하는 데까지는 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애처로운 것은 그의 아들의 고생하는 꼴이었다. 유약한 몸으로 편안한 집을 떠나 낯설은 해변에 가서 폭양에 쪼여가면서 갖은 신고를 다 하리라고 생각하매 아버지의 마음은 한시도 편한 적이 없었다. 자기 혼자 시원한 사랑에서 친구들과 맥주내기 마작을 울리는 것이 죄스럽게도 생각되었다. 게다가 요사이는 어찌된 일인지 아들에게서 한 장의 소식도 없었다.
이 어려운 시세에 고기라도 많이 잡혀야 할 터인데 과연 많이 잡히는지, 배와 공장에도 별 고장이 없는지, 더위에 몸도 성한지 모든 것이 퍽도 궁금하였다. 봄에 잠깐 집에 왔다간지 벌써 넉 달이나 되었으니 이 여름에 또 한 번쯤 다녀가도 좋으련만 이 바쁜 시절에 그것도 원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래저래 정주사는 요사이 매우 걱정이다. 마장의 홍중을 모아 친구 몰래 은근히 점쳐 보았으나 오늘도 역시 길패는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침대에 누운 정주사는 괴로운 심사와 가지가지의 무거운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바로 누웠다 돌아누웠다 하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펑!"
"홀나!“
어우러진 두 패의 마작판에서는 마작 울리는 소리가 맹렬히 들렸다.
"밤이나 낮이나 모여서 펑들만 찾으니 우리네 살림에도 멀지 않아 펑이 날 것이다!“
침대 위에서 마작에 열중된 친구들을 내려다보는 정주사에게는 돌연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가련한 친구들과 자기 자신의 자태가 머리 속에 전광적으로 번적였다.
"오, 악몽이다!“
정주사는 우연한 이 생각에 스스로 전율하고 불길한 환영을 떨쳐버리려고 애쓰면서 돌아누워 시선을 문득 푸른 하늘로 옮겨 버렸다.
종일 동안 들볶아치던 포구는 밤이 되니 낮 동안의 소란과는 반비례로 심히 고요하였다. 하늘도 어둡고 바다도 어둡고 뾰족한 초생달이 깊은 하늘에 간드러지게 걸리고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정어리공장 사무소 창에서 흐르는 등불이 어두운 해변의 한 줄기의 숨소리와도 같다. 규칙적으로 몰려오는 파도의 소리가 쇄─쇄─들려올 뿐이다.
<정구태 온어(溫魚)공장사무소>라고 굵게 쓰인 간판 달린 언덕 위의 공장사무소 안에는 젊은 주인공이 등불을 돋아놓고 이슥하도록 장부정리에 열중하고 있다. 옆방 침실에서는 공장의 감독 격으로 있는 최군과 서기 격으로 있는 박군의 코고는 소리가 높이 들렸다. 코고는 소리에 이끌려 건듯하면 저절로 내려 감기는 두 눈을 비벼 가면서 낮 동안의 피곤도 무시하여 버리고 그는 장부정리에 열중하였다. 장부의 숫자를 대조하여 가는 동안에 정신도 차차 맑아 갔다.
등불에 비취는 그의 얼굴은 검어 무뚝뚝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이태 동안이나 해변에 서서 바닷바람과 폭양을 쏘였음으로였다.
연전에 서울 있어서 카페에나 돌아다니고 기생들과 자동차나 몰고 할 때에는 그도 얼굴빛 희고 기개 높은 청년이었다. 그것이 두 해 여름이나 해변에는 끄슬고 타고 하는 동안에 이렇게 몰라볼 만큼 풍골이 변하였던 것이다.
카페에서 술 마시면 울고 기생 앞에서 발라맞추던 연약한 그의 성격도 껄끄러운 뱃사람들과 접촉하는 동안에 어느덧 굵직하고 거칠게 변하였던 것이다.
장부에 가늘게 적힌 숫자와 주판 위에 나타나는 액수를 비교하여 가는 그의 얼굴은 차차 흐려지고 암담하여 갔다.
"괴상한 일이다!"
까만 주판알을 떨어버리고 다시 놓고 또다시 놓아 보아도 장부의 숫자와는 어림없이 차가 났다.
"이 숫자의 차는 어데서 생겨났는가?“
이것을 궁리하기보다는 그는 먼저 이 너무나 큰 차이에 다만 입을 벌리고 놀랐다. 그러나 주판에 나타난 수는 엄연히 그를 노렸다.
작년 봄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조용한 그의 서재 책상 위에서 주판을 잘각거리고 장래를 응시하였을 때에 그의 얼굴에는 상기된 미소가 떠올랐다. 서재 책상 위에서 잘각거리는 주판은 미인의 눈맵시와도 같이 사람을 항상 황홀케 하는 법이다. 뜨거운 차에 혀를 꼬부리는 그의 얼굴에는 흥분된 혈색이 불그스름하게 빛났으니 주판의 까만 알이 화려한 그의 미래를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성공─일확 만금, 사치한 문화주택, 피아노, 자가용 고급차 ‘하드손’ 한 대, 당당한 청년 실업가, 화려한 꿈의 전당이 그의 머리 속에 끝없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주판의 농간을 그 어찌 알았으랴.
서재 책상의 주판은 그를 온전히 속여 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일년 전에 그를 황홀케 하던 주판은 이제 이 해변 사무소에서 그를 비웃고 있다. 끝없이 화려하게 전개되던 꿈의 전당은 이제 그의 눈앞에서 와르르 헐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뿐 아니다. 파산, 몰락, 장차 닥쳐올 비참한 이 과정이 그의 눈앞에 캄캄하게 가리웠다.
그는 장부와 주판을 던져 버리고 책상에서 머리를 들고 몸을 펴서 교의에 징긋이 전신을 의지하였다. 눈앞에는 창밖으로 캄캄한 어둠만이 내다보였다.
"나의 앞길도 이렇게 어두우렷다!"
하는 생각에 잠겼는지 그는 뚫어져라 하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결국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요 들리는 것은 늠름한 파도소리와 옆방에서 나는 최군과 박군의 코고는 소리뿐이었다. 일년 전의 그 같으면 이 애타는 마음에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못생기게 울지 않았다. 이것 하나가 바다에 와서 얻은 득이라면 득일까.
창밖에서 시선을 옮기고 그는 교의를 일어서서 담배를 태워 물고 잠 안 오는 울울한 마음에 사무소를 나왔다.
언덕을 내려와서 해변으로 걸어가는 그의 다리는 맥없이 허전허전하였다.
기울어진 초생달 밑에서 사만금을 집어삼킨 검은 바다는 탐욕의 괴물같이 이빨을 갈면서 그를 향하여 으르렁거렸다.
일순 그는 불쾌하여서 바다에서 몸을 돌려 포구를 향하였다. 잠들어 고요한 포구는 그를 대하여 으르렁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기에도 그의 ‘적’은 기다리고 있으니 그를 상대로 살아가는 수백 명의 부녀 노동자들과 공장 노동자는 임금 문제로 그와 다투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우러렀다. 그러나 하늘 역시 그에게는 적이었다. 북으로 모여드는 검은 구름─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위험한 날씨이니 한바탕 장황히 쏟아지기만 한다면 정어리가 바다에서 끓는다 하더라도 배는 낼 수 없는 터이다.
하늘을 우러러도 바다를 향하여도 포구를 대하여도 어느것 하나 그에게 적 아닌 것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적의 배후에는 시세의 농간을 부리는 더 큰 괴물이 선웃음 치고 있는 것을 그는 당장 눈앞에 보는 듯하였다. 이 모든 적을 상대로 싸워 나갈 생각을 하니 앞이 아득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터이니 싸울 데까지는 싸워 나가야겠다고 그는 이를 갈고 ‘거룩한 결심’을 하였다.
촉촉한 모래를 밟으며 으슥한 해변을 거니는 그에게는 낮 동안에 무심하던 해초냄새가 이제 새삼스럽게 신선하게 흘러왔다. 신선한 해초 냄새에 그는 문득 오래간만에 건강한 성욕을 느꼈다. 서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의 생각이 간절히 났다. 뒤를 이어 오랫동안 소식 안 보낸 아버지의 생각도 났다.
해변의 낮은 길고 북국의 바다는 쪽 잎같이 푸르다. 푸른 바다를 향하여 반원형으로 딸린 포구는 푸른 생활을 싣고 긴 하루 동안 굿을 하듯이 들볶아친다.
바닷물 찰락거리는 넓은 백사장─ 그곳은 포구 사람들의 살림터로 아울러 싸움터이니 거기에서 그들은 종일 동안 부르짖고, 땀 흘리고, 청춘을 허비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일생을 계산한다.
무거운 해와 건강한 해초의 냄새를 맡으면서 적동색으로 글린 수백여 명의 부녀 노동자는 백사장 군데군데에 떼를 짓고 정어리배가 들어오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배가 들어와야 그들에게는 할 일이 생기는 것이니 어부가 잡아들인 정어리를 그물코에서 따서 어장에까지 나르는 것이 곧 그들의 노동인 것이다.
"어째 배가 애이 들어오?“
"마─“
"저기 들어옵네. 우승기 날리며 배 들어옵네.“
"옮소, 옳소!“
먼 수평선 위에 나타난 검은 일점을 노리던 수백의 눈은 일시 빛나고 백사장에는 환희와 훤조가 끓어올랐다.
검은 일점이 그의 정체를 드러내 놓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거의 반 시간이 넘어서야 그럴듯한 선체와 붉은 돛과 선두에 날리는 우승기가 차차 드러났다. 남풍에 휘날리는 붉은 돛을 감아 내리더니 배는 노를 저어 포구로 향하였다. 선두에는 우승기 외에 청기 홍기가 휘날렸다. 청기 홍기는 어획의 풍산을 의미하는 것이니 백사장에는 새로운 환희의 소리가 높이 났다.
"뉘 배요?"
"명팔이 배 애이요.“
"우승기 달고 우쭐했소!“
"저─기 또 배 들어오.“
"저기 애이요. 하나 둘 서 너……“
"야─“
수평선 위에는 연하여 검은 점이 나타나더니 그것이 차차 커지며 일정한 거리에 와서 일제히 돛을 내리고 굵은 노를 저으면서 역시 포구를 향하여 일직선을 그었다.
기다리던 배가 들어옴을 볼 때에 정구태 공장 사무소에서도 각각 출동의 준비를 하였다.
젊은 공장주도 어젯밤 우울은 씻어버린 듯이 새로운 기쁨을 가지고 밀짚모자를 쓰고 고무장화를 신었다.
박과 최를 거느리고 사무소를 나와 언덕을 내려왔을 때에 배는 쌍쌍이 뒤를 이어 포구 안으로 들어왔다.
배는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모두 구태네 배였다. 그는 금년 봄에 사업을 확장할 때에 그의 영업정책상 포구 안에 산재하여 있는 수많은 군소 어업자의 태반을 매수하고 배와 공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여 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이 포구 안의 정어리업자라면 정구태가 첫 손가락에 꼽혔고 백사장에 모이는 주인 없는 수백여 명의 부녀 노동자들도 기실은 정구태에게 전속하여 있는 셈이었다.
"공장주 나옵네."
떠들고 뒤끓던 부녀 노동자들은 젊은 공장주를 위하여 길을 틔었다.
그들 사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이 떠돌았다. 그것은 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날마다 몇 차례씩 당하는 일이지만 이 기쁨만은 언제든지 변치 않고 일어나는 것이니 해변 사람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허연 고기를 배 속에 그득히 잡아 싣고 순풍에 돛을 달아 쌍쌍이 노를 저어 들어올 때 그것은 서로 이해관계는 다를지라도 뱃사람 자신들에게나 공장주에게나 부녀 노동자들에게나 똑같은 기쁨을 가져왔다. 생산의 기쁨이라고 할까─속일 수 없는 기쁨이다.
포구 안에 들어온 배가 차례차례로 해변 모래 기슭에 바싹 대었을 때에 그들은 벌떼같이 일제히 그리로 몰렸다.
검붉게 탄 웃통을 드러내논 뱃사람들은 배에서 내려서 밧줄을 모래밭 기둥에 든든히 매놓고 모래 위에 부대 조각, 멱서리 조각 등을 넓적하게 펴고 배와의 사이에 널간으로 다리를 놓고 그 위로 고기 달린 그물을 끌어내려 육지로 옮겼다. 한데 이은 여러 채의 그물이 한 줄에 달려 내려와서 부대 조각 위에는 허연 고기의 산을 이루었다. 이 고기더미를 둘러싸고 부녀 노동자들은 그 주위에 각각 알맞은 곳을 차지하고 볼 동안에 원을 그렸다.
─부녀 노동자 가운데에는 열 두어 살씩 먹은 소녀가 가장 많으나 그 외에 열 칠팔 세 되는 처녀도 있고 삼십을 넘은 부녀도 있고, 혹은 육십에 가까운 노파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순전히 일한 분량에 의하여 임금을 받는 것이니, 즉 그들은 대개 동무들과 몇 사람씩 어울리거나 혹은 두 모녀가 어울려서 함지에 고기를 따 담아 가지고 감독 있는 어장까지 날라서 큰 나무통에 한 통씩 채우는데 대개 십오 전씩의 임금을 받으니 이것을 어우른 동무들과 똑같이 분담하는 것이다.
그러니 배가 잘 들어오고 고기가 잘 잡혀서 하루 종일 일하게 된다 하여도 한 사람 앞에 불과 몇 십 전의 임금밖에는 배당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이것으로 생활을 도모하여 나가는 그들에게는 한 푼이 새롭고 아까운 것이다.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능률을 올려서 서로 다투어 가면서 재치있게 부랴부랴 일을 하는 것이다……
여섯 척의 배에서 내린 여섯 개소의 그물더미로 각각 분배되니 수백여 명의 노동자는 거의 다 풀렸다. 백사장 위에 일렬로 뭉친 여섯 개의 떼는 꿀집을 둘러싼 여섯 개의 벌떼와도 흡사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쉽게 여섯 개소를 뭉치기는 뭉쳤으나 일은 즉시 시작하지 않았다. 오늘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어이 공장주와 따질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임금 문제였다. 이때까지 한 통 임금 십오 전씩 하던 것을 오 전을 내려 십 전씩을 공장주 측에서 며칠 전부터 굳게 주장하여 나중에는 어업조합에까지 걸어서 결정적 시행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정어리 시세가 떨어졌으므로 라는 ‘당연한 이유’를 내세우나 이 ‘당연한 이유’가 부녀 노동자들에게는 곧 주림을 가져온다는 것을 공장주도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며칠 동안 십 전 임금에 복종하여 왔으나 그것으로 인하여 현저히 생활에 위협을 받는 그들은 더 참을 수 없어서 오늘은 공장주와 철저히 따져볼 작정이었다. 비록 아직 통일적 행동으로 동원되도록 조직은 못되었으나 그들은 똑같은 항의를 다 같이 가슴속에 감추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한 통에 얼매요?"
그들은 공장주를 붙들고 임금 결정을 요구하였다.
"조합에서 작정한 것이 있지 않소. 십 전이요, 십 전.“
젊은 공장주의 태도는 퍽도 뻑뻑하였다.
"십 전 아이 되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항의하였다.
"이 무서운 세월에 십 전도 과하오.“
"야 이 나그네, 십 전 통에 이 숱한 사람이 굶는 줄은 모르는가! 오 전 더 낸다고 당신네야 곧 굶어죽겠슴나?“
"굶든지 마든지 조합에서 정한 것을 내가 어떻게 한단 말요.“
"조합놈 새끼들 마사놓겠다!“
수백 명은 일시에 소란하여지면서 분개하였다.
"자, 어서들 일이나 하시오.“
"십오 전 아이 주면 아이하겠소.“
"일하기 싫은 사람들은 그만두시오."
"옳소! 그만 두겠소꼬. 누가 꿇리나 두고 봄세. 야들아, 오늘은 일들 그만두어라!“
극히 간단하였다. 공장주의 거만한 태도에 분개한 그들은 둘러쌌던 원을 풀면서 벌떼같이 어지럽게 백사장에 흩어졌다.
"일하는 년들 썩어진다!“
집안 형편이 하도 딱해서 그런 대로 여기서 일하여 볼까 하던 부녀들도 이 위협의 소리에 겁이 나서 자리를 비실비실 떠나 버렸다.
노동자가 헤져버린 백사장에는 손대지 않은 여섯 개의 그물더미가 노동자를 기다리면서 우뚝우뚝 서 있을 뿐이다.
그들의 집단적 행동에 공장주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이렇게 뻣뻣하게 나올 줄은 예측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을 다시 부르자니 같지 않고 그들 대신에 새 노동자를 불러들이자니 이 포구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요 그는 어쩔 줄 모르고 황망히 날뛰었다.
그날 저녁 야학은 다른 때보다 일찍이 끝났다.
맨 뒷줄에 앉아 하루 동안의 피곤을 못 이겨 공책 위에 코를 박고 있던 순야는 소란한 주위의 이야기 소리에 문득 눈을 떴다. 백여 명의 학생들—이라고 하여도 십여 명의 사내아이를 제하면 전부가 낮 동안에 해변에서 볶아치던 부녀 노동자이었다—은 공책을 덮고 자리에서 수군거렸다.
─. 우리는 왜 가난한가.
─. 정어리 삯전 십 전 절대 반대.
─. ……
국문으로 칠판 위에 크게 쓰인 이 토막토막의 글을 순야는 눈을 비벼 가면서 공책 위에 공들여 베꼈다. 국문을 가제 깨친 그는 이 단순한 글줄을 읽고 쓰는데 오 분이 넘게 걸렸다.
"그럼 이 길로 바로 장개 앞 해변으로들 모이시오.“
순야가 칠판의 토막글을 다 베끼고 나자 강선생을 그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였다. 그가 졸고 있는 동안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별안간 장개 해변으로 모이라는 이 분부에 순야는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소란한 이 자리에서 그는 어쩐지 알 수 없이 가슴이 울렁거렸다.
백여 명의 야학생들은 제각각 감동과 흥분을 가지고 교실을 나와 마당에 쏟아졌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즉시 장개해변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강선생의 명령이라면 절대로 복종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어디서 들어왔는지 고향조차 모를 강선생을 퍽도 존경하고 사모하였다.
눈이 매섭고 영악한 한편에 강선생은 학생들에게는 극히 순하고 친절하고 의리가 밝았다. 어디로부터서인지 돌연히 이 포구에 나타난 지 벌써 일 년이 넘도록 그는 한 푼의 이해관계도 없는 수많은 그들을 모아놓고 충실히 글을 가르쳐 주어 왔다. 그는 어쩐지 조합 사람이나 면소 사람들과 보다도 뱃사람이나 노동자들과 더 친하게 굴었다. 새빨간 표지의 툽툽한 책과 깨알 쏟 듯한 꼬부랑 양서를 열심으로 공부하는 반면에 그는 간간이 해변에 나와 바람을 쏘이며 이런 사람들과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에 잠길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밤만 되면 학생들을 모아놓고 열심으로 글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어느 모로 뜯어보던지 이런 촌구석에 와서 박혀 있을 사람이 아닌 이 정체 모를 강선생은 그들에게는 알지 못할 수수께끼였다. 그는 가령 말하면 젊은 공장주 정구태와 같이 이 포구로 돈 벌러 온 것은 아니다—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아무 관련도 없으나 가끔 이렇게 강선생과 공장주를 비교하여 보았다. 한 사람은 그들을 위하여 주고 한 사람은 그들을 얼리우고 빼앗아간다. 즉, 강선생은 그들의 동무요, 정구태는 그들의 원수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판단하여 왔던 것이다.
─순야는 이제 이렇게 강선생에 대한 가지가지의 생각에 잠기면서 동무들과 휩쓸려 고요히 잠든 포구의 앞 모래밭을 지나 약 삼 마장 가량되는 장개고개로 향하였다.
"진선아, 이 밤에 장개에 가서 무스거 한다디?"
길 가운데서 순야는 동무에게 물어 보았다.
"너 괴실(교실이라는 말)에서 선생님 말 아이 들었니. 정어리 삯전 올릴 운동을 한다드라.“
"운동이 무스기야?“
순야는 ‘운동’이라는 말의 뜻을 몰랐다.
"정어리 뜯는 삯전을 요즈막에 십 전씩 아이 했니. 그것을 되로 십오 전씩으로 올려 달라고 재주(공장주)와 괴섭(교섭)하기로 했단다.“
"재주가 뭐 장개에 있다니?“
"재주에게는 내일 말하기로 하고 오늘은 장개에 가서 우리끼리만 의론한단 말이다. 나래(이따가) 가보면 알 일이지.“
동무의 설명에 순야는 이 밤에 장개로 가는 목적이 대강 짐작되었다. 그리고 아까 칠판에 쓰였던 토막글의 뜻도 알듯 하였다. ‘정어리 삯전 십 전 절대 반대’의 ‘절대 반대’ 라는 말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이제 대강 그 뜻이 짐작되었던 것이다.
어지러운 발소리를 고요한 밤하늘에 울리면서 흥분된 일단이 장개고개를 넘어서니 먼 어둠 속에 장개의 작은 마을이 그럴 듯이 짐작되었다. 고개 밑 넓은 해변 모래밭에는 붉은 횃불이 타올랐으니 그곳이 곧 그들의 목적하고 온 곳이다. 파도소리 은은한 캄캄한 해변에 붉게 타오르는 횃불을 멀리 바라볼 때에 그들의 가슴은 이유 모를 감격에 울렁거렸다. 오늘밤에는 파도소리조차 유심히도 은은하다.
고개를 걸어내려 모래밭까지 다다랐을 때에 그곳에는 벌써 횃불을 둘러싸고 백여 명의 동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야학생들 뿐이 아니라 낮 동안에 해변에 나와 같이 일하는 부녀 노동자들의 거의 전부가 망라되어 있었던 것이다. 강선생도 물론 벌써 와 있었고, 그뿐 아니라 역시 정구태 공장에서 일하는 군칠이와 중실이, 그 외 그들과 같이 일하는 여러 명의 남자 노동자들도 와 있었다. 전부 이백여 명이 넘는 그들이 횃불을 중심으로 모래밭 위에 첩첩이 둘러앉았다.
"올 사람 다들 왔소?"
바로 횃불 밑에 선 강선생은 좌중을 휘돌아보고 말을 이었다.
"밤이 이슥한데 미안은 하나 오늘 이곳까지 이렇게 모이게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정어리 삯전 문제에 대하여 의론하고 앞으로 밟을 길을 작정하려는 생각으로였소.“
이것을 서언으로 하고 그는 숨을 갈아 쉬더니 단도직접으로 요건에 들어갔다.
"공장에서 일하는 분은 나중으로 밀고 정어리 따는 이들 중에 한 통 십 전에 반대하는 이들 손들어 보시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수많은 손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그들은 다 손을 들었고 가운데에는 두 손을 한꺼번에 든 사람도 있었다. 그럴 줄 모르고 강선생이 이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일하여 나가는 순서상 그들의 다짐을 더 한번 굳게 하려고 그렇게 질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손들 내리시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