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국전쟁 (The Birth Of Korea)" 관람기
김덕영감독의 다큐영화 건국전쟁 (The Birth Of Korea)을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 내 생전 처음으로
영화가 끝난다음 박수를 치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화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 애쓴 한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자막이 흐르며 영화는
시작 되었는데 사실에 근거한 역사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 결론은 “교과 과정에서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공과가 있는데 과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건국의 공'까지 부정당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
깝다는 생각을 갖게하였다."
이 영화는 잘 못 알려진 "미제의 앞잡이, 친일파, 독재자, 살인마…. " 와 같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에
게 붙어다니는 수식어를 이영화 하나로 "김덕영 감독은 절대 아니다" 라고 설명한다.이영화는 "거짖
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 는 것에 "거짖말은 거짖말일 뿐 언제고 밝혀진다" 참교육을 하고 있다.
이영화는 이승만에 덧씌워진 온갖 비난과 죄과는 대부분 근거가 없다는 것과 공(功)은 지우고 과(過)
만 부각한 역사 해석,미처 몰랐던 이승만의 삶과 투쟁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세이노의 가
르침의 저자 세이노의 말 “이승만이 무오류의 대통령은 아니었으나, 제가 이제까지 이승만에 대해 갖
고 있었던 생각은 편향적이었음을 고백한다”고 하였듯 나역시 이승만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못알고
무지하였다는 것이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
이어 “대한민국이 붉게 물들지 않게 된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덕분에 자유민주주
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에 동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보면서 제일 귀가 번쩍 하였던 부분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국민투표에 참여한 것은 1948년 건
국과 동시라고 하며 이는 선진국 스위스보다 앞섰다는 것이다.이게 바로 민주주의 기본인 평등을 건
국시 부터 실현 한 것이 이승만의 독재자가 아닌 민주주의를 실천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영화는 대한민국의 건국초기 농지개혁, 한미동맹, 독도 영유권 확보, 원자력 연구시작등 이승만의 업
적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이승만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증거 (사실)를 갖이고 설명하는데 충실한
다큐 영화였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세계 최강국 미국을 붙잡아 군
사 동맹을 맺었다. 영화는 이승만의 결단으로 맺은 한미 동맹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공산화되고 지금
은 미얀마 수준의 나라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건국전쟁이 밝히는 오해와 진실
1. 오해 : 분단의 책임자였다?
진실 : 이승만이 귀국하기도 전인 1945년9월 소련 스탈린이 북한에 친소 정권을 세우리는 지령을 내
렸다.
증거 :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1945년 8~9월 38선 남북의 통행과 통신·우편을 차단했다.
스탈린은 9월 20일 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관 슈킨에게 ‘한반도 북부에 소련의 이익을 영구히 구축할
정권을 수립하라’고 지령을 내렸다. 아직 이승만이 귀국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이에 따라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정부가 들어서 토지 국유화를 추진했다.
분단의 원인은 이승만이 아니라 소련과 북한이었다.
2. 친일파를 등용했다?
진실 : 초대 내각의 대부분이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증거 : 부통령 이시영, 국무총리 이범석, 법무부 장관 이인, 문교부 장관 안호상, 농림부 장관 조봉암
등 대한민국 초대 내각 각료 대부분이 항일·독립운동가였다. 반면 북한은 공산주의에 협조한 인물에
게 과거를 묻지 않은 결과 내각에 강양욱·이승엽·정국은 등 과거 친일 경력이 있던 인물이 상당수 들
어갔다.
3. 6.25때 도망간 '런승만' 이었다?
진실 : 서울시민에게 남으라는 방송을 한적이 없고 끝까지 해외망명을 거부했다.
증거 : 미국 CIA 감청 부서에서 기록한 1950년 6월 27일 이승만의 라디오 연설 원본을 분석한 결과,
연설 어디에도 ‘서울 시민 여러분,안심하고 서울을 지켜 달라’는 내용은 없었다. 무초 주한 미국대사
가 ‘한반도를 떠나 망명정부를 세우라’고 권유하자 이승만은 권총을 꺼내 들고 ‘인민군이 들어오면 이
총으로 그들을 쏘고, 마지막 한 발은 내게 쏘겠다’고 말했다.이것은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에
나오는 증언이다.이승만은 결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반도를 떠나지 않고 국토를 사수했다.
전쟁을 일으켜 놓고 불리해지자 가족을 만주로 피신시킨 인물은 북한의 김일성이었다.
4. 미제의 앞잡이였다?
진실 : 어히려 한반도에 별 관심이 없던 미국을 상대로 한미상호방위 조약을 만들어 냈고, 그 결과 장
기간의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증거 : 미국은 당시 한반도에 큰 관심이 없었다.이런 미국을 상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주한미군 주둔, 한국군 증강, 8억 달러 경제원조 등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얻어냈다. 그 결과 70년 이상 100명 이상이 죽는 전투가 한반도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역사상 유례 없는 평화를 이룰 수 있었다.
5. 독재자였다?
진실 : 의회와 언론의 역활이 봉쇄된 적이 없다.
증거 : 만약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는 독재 체제였다면 의회와 언론의 역할이 봉쇄돼야 했을 텐데
그런일은 없었다. ‘독재자 이승만’이라는 것은 당시 야당의 정치적 구호 속에서 주로 등장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평화선과 독도 수호, 전체 예산의 20%를 배정했던 교육 정책, 원자력 산업의 초석 등 1950
년대에 숱한 업적을 이뤘다. 6. 부정선거 원흉이다?
진실 :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의 당선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4.19 이후 책임을 지고 스스로 하야했다.
증거:1960년 4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 조병옥의 서거로 인해 이승만의 당선은 확정적이었다.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 공작으로, 이승만과는 무관했다.
이승만은 4·19가 일어난 뒤 부상 학생들을 위문하고 “내가 맞아야 할 총을 우리 귀한 아이들이 맞았다”
며 울었고, 스스로 하야하는 용단을 내렸다.
참고한 자료 :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movie_review/2024/02/06/AAUACTBXT5CM5MHD4M7L3P24HI/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4/02/06/ZZ3VPPZFAFFQHAT2UYYYFKY4CY/
https://www.chosun.com/opinion/taepyeongro/2024/02/05/JWF5J7WE7FF6FOSOVIIGQJPR6M/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02/03/L2NXZSCZBJCP7EOOLBVPLYIYS4/
첫댓글 건국 대통령, 위대한 자유 민주주의를 실천하신, 이승만 박사님의 공과를 정확히 기록한 영화가
너무 늦게 만들어졌어요. 세계 최강의 미국을 움직인 자랑스런 대통령을, 독재자나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매도한 종북좌파 빨갱이 세력이,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유 대한민국을
갉아먹어온 진실을 모르는 국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국회, 사법부, 군부, 행정부에 득실거리는
간첩들을 일망타진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조속히 발전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