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자 친구와 만난 지 100일째를 맞은 대학생 김지영(21)씨는 커플링을 맞추기 위해 종로 3가의 한 귀금속 가게를 찾았다. 김 씨는 “친구들이 입을 모아 종로를 추천했다”며 “특히 가격이 저렴해 남는 돈으로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종로 3가의 단성사 극장 재건축 공사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종로 보석거리가 젊어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결혼 기념 반지를 사려는 중년 주부들이나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IMF 이후 고가(高價) 결혼 예물이 줄고, 패션 액세서리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귀금속 도매상이 몰려있는 종로 3가가 2030의 새로운 메카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자, 도매상 위주였던 상가가 소매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 정병남 부장은 “최근 1년 동안 종로에선 귀금속 액세서리 소매점만 400여곳 이상 늘었다”며 “지난해 중순부터는 종로3가에 점포를 낼 자리가 없어 종로 2가와 종로 5가까지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 3가에서 보석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박상우(35)씨는 “‘보석길’로 통하는 종로 3가 일대에는 소매점만 1000여곳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70년대, 귀금속 도매상과 세공사, 수리점, 감정원 등이 몰리면서 형성된 종로 ‘보석거리’가 2000년대 들어 변신을 한 셈이다.
2030세대들이 액세서리를 구입하기 위해 종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뭐래도 가격이다. 주머니가 얇은 2030들은 이곳에서 주로 10만~50만원대의 커플링을 찾는다. 이는 시중 백화점이나 강남 소매상보다 30~40% 저렴한 가격이다.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이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이들은 말한다. 요즘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티파니, 까르띠에, 불가리 등 해외 명품의 이미테이션(모조품)도 구입할 수 있다. 매장에 없는 디자인이라도 일주일만 시간을 주면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가격은 진열된 상품보다 두 배쯤 비싸다.
커플링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액세서리들이 2030세대의 발목을 잡는다. 여성들끼리 우정을 간직하기 위해 맞춘다는 ‘우정 반지’나 ‘우정 팔찌’, 미혼 여성들만을 위한 ‘미스 반지’ 등이 인기다. 최근 종로에서 ‘우정 팔찌’를 맞춘 대학생 이주선(22)씨는 “똑같은 액세서리를 하고 있으면 동성 친구 끼리라도 더 친해진다”며 “커플들만 커플 팔찌를 하라는 법은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젊은이들이 주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종로 귀금속점들의 마케팅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고색창연한 귀금속 디자인을 벗어나, 톡톡 튀는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2030세대들을 유혹하고 있다.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려는 젊은이들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DNA를 추출해 수정 등에 넣어주는 점포도 생겼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호박에 갇혀 화석이 된 모기 피에서 공룡 DNA를 추출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얇은 금으로 명함을 제작해 주는 곳도 있으며, 연예인 액세서리를 파는 점포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유명 연예인들이 유행시킨 액세서리들의 일부는 담당 ‘코디’들이 종로 보석 상인들과 상의한 뒤 협찬을 받기도 한다. ‘이승연 귀고리’ ‘문희준 메달’ 등의 광고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결혼 예물을 스스로 고르는 최근 결혼 풍속 때문에 종로를 찾는 예비 신랑·신부도 많다. 귀금속점 ‘아가페’를 운영하는 반재현 씨는 “요즘은 집안 어른들을 모시고 예물을 준비하는 대신, 예비 부부끼리 직접 사러 온다”며 “이들은 비싼 예물보다 유행에 민감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의 예물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물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려는 예비 부부는 다른 상가와 꼼꼼히 비교해 보는 게 좋다. 다이아몬드는 같은 무게라도 컬러와 광채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국귀금속기술협회 정병남 부장은 “요즘 종로 귀금속 상가들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새로운 디자인의 액세서리를 선보이기 위해 바쁘다”며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주 고객층이 된만큼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종로3가 보석 거리가 2030들에 의해 다시 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