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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4.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수요일>
<루카21,12-19>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내가 너희에게 주겠다.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예비신학생 모임 때 담당 부제님이 물으셨어요.
세례도 안 받은 초기 신자들은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교할 수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맞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제님은 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목을 하고 계셨어요.
그 당시의 사람들은 신분계급으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고,
반상의 구분이 없는 형제자매로 사는 천주교 공동체는 천국이었고, 그 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것이라 하셨습니다.
성서는 인간이 쓴 것도, 성령이 쓴 것도 아닌,
성령의 감도로 인간이 쓴 것입니다.
순교는 나의 자유의지의 인내가 필요하고, 성령의 은총도 필요합니다.
백색순교는 순간순간 나의 인내로운 봉헌과 성령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처럼,
참수형이라는 대열에 우리도 무릎꿇고 귀에 화살촉이 꽂혀있고,
목이 떨어져 나갈 상황이라고 상상해봅시다.
하나 둘 셋 할 때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순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배교인 것이지요. 하나 둘 셋! “믿습니다!”
하나 둘 셋! “믿습니다!”
하나 둘 셋! “믿습니다!”
순교 되었습니까?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저 밑에서 두려움이 올라오고,
반항이 생깁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나?
내가 지금까지 붙들고 왔던 가치관 신념?
나라는 존재의 생존본능이 올라옵니다. 스티브잡스는
죽음을 생각할 때, 인간은 새롭게 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한 번 쫒겨났고, 다시 회사위해 일해달라 불리움을 받았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
‘가장 고급의 컴퓨터, 보통 컴퓨터, 가장 낮은 수준의 컴퓨터’, 이 세 종류의 컴퓨터만 남기고 다 없앴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공 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가면서 죽음을 미리 앞당겨 생각하면,
생존욕구에만 메달려 살려고 발버둥쳤던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놓치고 살았던 부질없는 지난날의 삶을 회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회개가 되면,
봉헌이 될 것이고,
지성 기억 의지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점점 변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되기위한 방법은?
순간순간 예수성심께 봉헌합니다.
그러면 순간순간의 죽음이 우리 영이 거듭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luke21,12-19>
12 "Before all this happens, however, they will seize and persecute you, they will hand you over to the synagogues and to prisons, and they will have you led before kings and governors because of my name.
13 It will lead to your giving testimony.
14 Remember, you are not to prepare your defense beforehand,
15 for I myself shall give you a wisdom in speaking that all your adversaries will be powerless to resist or refute.
16 You will even be handed over by parents, brothers, relatives, and friends, and they will put some of you to death.
17 You will be hated by all because of my name,
18 but not a hair on your head will be destroyed.
19 By your perseverance you will secure your lives.
<책 소개> 일곱 번째_
잊거나 깜빡하지 않게 하는
정보 기억의 기술
공들여 공부했는데 막상 시험지를 보니 정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공부의 성패는 기억이 좌우한다. 문제는 이 기억이라는 것이 자꾸만 사라지려고 하는 습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많이 오래 붙잡아 놓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이 기억이 쉽게 날아가지 않도록 신경 회로 속에 깊이 박아 놓는 방법은 없을까?
1.온몸을 동원해 기억하라
1)온몸 학습법
눈, 코, 입, 손과 발 등 온몸으로 하는 공부는 그 자체로도 신이 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주의 집중이 잘된다. 프로이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면서 단어를 외울 때 손으로 벽을 두드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산만하게 보여도 이 공부법은 나름의 뇌과학적 근거를 지닌다. 소리와 함께 단어를 기억하면 2개 이상 복수의 회로가 형성되므로 나중에 기억을 재생해야 할 때 하나의 회로가 막혀도 다른 회로가 열려 쉽게 떠오른다.
2)암창법(暗唱法)
일단 책을 읽을 때 소리 내 읽어라. 암창법(暗唱法)은 옛날 서당에서 사용하던 발법으로, 눈으로 보고 소리 내 외우면 기억력이 34%나 증가한다는 오하이오 대의 보고도 있다. 암창법은 뇌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전부터 대물림해 온 인간의 경험적 지혜다.
3)필기법
귀로 듣는 내용을 손으로 써 보는 것도 좋다. 암기 공부를 할 때 손/으로 몇 번이고 써 보는 것은 전통적이고 널리 알려진 공부법이다.
4)눈감기
눈을 감고 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극 차단으로 주의 집중이 쉽고 눈을 감으면 절로 이미지가 떠올라 기억의 재생이 쉬워진다.
5)하품 그리고 기지개
공부하는 중간 중간 일부러 하품도 해 보고 기지개도 켜자. 하품과 기지개는 근방추를 자극해 망양체를 활성화시켜 사뿐한 각성이 촉진되며, 뇌파의 알파파와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가급적 많은 자극을 활용하는 것이 기억의 정착률을 높인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194-196)
2.기억과 감정을 연계해 기억하라
1)감정 기억
기억은 감정과 긴밀한 관련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뱀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깜짝 놀라 달아난다. 이렇듯 강한 감정에는 측두엽이나 전/두엽의 개입 없이 편도체에서 바로 결정하고 판단을 내려 즉각적인 행동을 취한다. 이것은 모든 동물이 지닌 개체 보존의 본능적. 반응이다. 위험에 처하면 생존을 위한 즉각적인 반응이 필수다.
기억과 본능이 바탕이 된 즉각적인 판단을 뇌과학에서는 감정 기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감정 기억이 위급 상황에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뇌의 본성은 좋은 걸 좋아하기 때문에 해마는 편도체가 좋아하는 기억에 더 민감하다.
2)에피소드 기억
우리가 우리말을 절로 배우게 된 것도 수많은 에피소드 기억 덕분이다. 아기가 칭얼거리면 엄마는 이렇게 달랜다.
“어이구, 우리 아기 화났어? 엄마가 뭐 해 줄까?”
아기는 당장에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이런 대화가 차곡차곡 쌓이고 상황과 감정, 언어가 반복되다 보면 절로 그 말의 의미와 형태를 기억하게 된다.
3)기억의 연합성(聯合性)
기억의 이런 성질을 연합성(聯合性)이라고 한다. 연합성을 이용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어떤 하나의 기억만 잡아 뽑아도 다른 기억들이 따라 올라온다.
4)기억의 편집성(창조성)
그러나 에피소드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차츰 단순한 의미 기억으로 바뀌어 간다. 이를 기억의 편집이라 한다.
우선 하나의 뉴런이나 회로에는 많은 정보가 함께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기억들이 서로 엉켜 정확성이 떨어지고 모호해진다.
여기서 창조라는 고차원의 기능이 생겨난다. 저장해둔 정보가 인출될 때는 처음의 기억이 다른 정보들과 연합해서 재편성된다.
기억이 창조라는 말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학창 시절의 시험공부는 언어화된 기억을 재생하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도 기억의 편집 기능이 곁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반면 사회에서는 단순한 기억의 재생보다는 고도의 편집 능력, 즉 창의성이 요구된다. 정확한 기억만으로 창조를 할 수는 없다.(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196-200)
3.의지를 도구로 활용하라
무엇보다 공부에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취업을 위해 명문 대학 학생과 무명 대학 학생이 비슷한 시간을 들여 영어 학원에 다녔다. 얼마 후 학습 결과를 보니 무명 대학 학생의 영어 실력이 월등히 좋았다. 그에게 영어 공부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려면 영어라도 잘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가 학습력을 높인 것이다.
의지가 강한 것은 좋지만 지나친 스트레스로 자신을 옥죄게 해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는 이에 대항하려는 코르티솔/을 분비하는데, 문제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해마가 14%나 위축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의지력으로 기억력을 높이되, 그 의지가 스트레스로 적용하지 않도록 적당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200-201)
4.먹으며 기억하라
공부할 때 커피를 적당히 마셔 보자. 커피는 도파민 신경을 자극하고 알파파를 형성한다. 커피 속의 트리고넬린은 대뇌 피질과 해마의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카페인이 단기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껌을 씹으면 해마에 혈류량이 증가하고 세로토닌의 분비가 촉진되면서 기억력이 향상된다. 칼슘이 강화된 우유 한 잔도 불안 해소, 긴장 완화, 기억력 향상에 좋다.
콩과 두부 요리에는 뇌 세포의 주요 성분인 레시틴이 풍부하다. 레시틴은 뇌 신경 세포를 활성화시켜 머리 회전을 빠르게 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시틴은 호두, 잣 등의 견과류에도 다량 함유되어 있어 공부할 때 간식거리로 좋다.
단, 견과류가 들어 있는 과자의 경우 유해 식품 첨가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면 피하자. 뇌 기능이 저하될 수도 있다.
피해야 할 것이 또 하나있다. 바로 담배다. 담배 한 대 피우면 기/분이 안정되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것은 니코틴 금단 증상의 해소에서 오는 것일 뿐 실제로는 뇌혈관의 축소로 산소 부족을 일으키는 등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201-202) 5.’끊어가기’로 기억하라
공부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기억의 간섭 때문이다.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할 때 그 전의 기억이 새 기억을 못하게 방해하는 현상이다. 학술적으로는 이를 기억 억제 또는 간섭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이 발생하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실제로 뇌 속의 열이 오른다. 뇌 회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뇌는 체열보다 좀 낮은 온도에서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머리를 식히려면 찬바람이나 찬물도 좋다.
잠깐의 휴식 뒤에는 공부하던 부분 말고 다른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기억의 간섭은 같은 공부를 계속할 때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과목이 다르면 쓰이는 회로도 달라진다. 한 과목을 계속 공부해야 한다면 가급적 내용을 잘라서 토막 공부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영어 단어를 한 번에 오랜 시간 외우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씩 토/막 시간에 자주 외우는 것이 효율적이다. 토막 시간 사이사이에는 해석, 문법 등을 적절히 섞어 공부하는 것도 요령이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202-203)
6.전체 맥락을 먼저 이해하라
공부할 내용을 이해해야 공부할 부분에 체계가 선다. 급하다고 함부로 기억 창고에 내용을 밀어 넣으려고 하면 기존의 정리된 기억도 흐트러지고 만다. 공부의 체계를 잡는 것을 전문 용어로는 기준계(Frame of Reference)라고 하는데, 계통적인 틀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해한 후 전체의 틀이 잡히면 절로 메모리 트리(Memory Tree)가 그려진다.
나무를 그릴 때 기둥 줄기부터 세우고 큰 가지와 작은 가지, 잎 등을 차례로 그린 다음 색칠을 하는 것처럼, 기억도 대략적인 내용을 익히고 난 후 작은 것을 외워 가는 것이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시선을 옮겨 가며 중요한 부분에 표시하면 암기할 부분이 절로 정립된다. 암기용으로 따로 정리된 부분을 이해하면서 표시한 부분을 함께 엮어 이해와 암기를 연계한다.
이후의 단계는 복습이다. 분명 아까 읽어 본 내용인데 기억이 안난다고 실망하지 마라. 두 번째 보면 첫 번째보다 훨씬 기억하기 쉽다. 이것을 잠재 기억이라 하는데, 한 번 기억한 건 아주 없어지는 게 아니고 희미하게나마 회로에 흔적이 남아 있어서 다음번 기억을 쉽게 해 준다. 맥락을 이해하고 반복해서 읽다 보면 절로 암기가 된/다. 이해의 밭에 뿌리를 내린 암기는 웬만한 공격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203-204)
7.세 단계 복습으로 기억하라
복습은 공부의 가장 중요한 단계다. 복습을 안 하면 기억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기억 후 하루 사이에 망각률이 제일 높아서 공부한 것의 4분의 3은 하루 만에 다 잊어버린다. 따라서 기억 후 하루 사이가 승부의 타이밍이다. 기억을 다지는 작업은 기억 후 수시간 내에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그 후엔 1일 1주, 그리고 1개월의 사이를 두고 복습하는 것이 좋다.
문제는 첫날 하루다. 중,고등 학교의 45분 수업을 기준으로 한다면 45분 공부하고 5분 복습한 후 10분간 휴식을 취하자. 45분 공부한 후 5분 동안 공부한 부분을 눈으로 슬쩍 훑어본다. 그야말로 ‘눈만 걸친다’. 이것이 첫 단계 복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책을 보고 다시 확인하거나 머릿속에서 반추한다. 이런 복습은 5분이면 충분하다. 이 5분이 짧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시험 결과, 더 나아가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두 번째 복습은 취침 전에 한다. 그날 공부한 분량의 전체를 훑어보고 기억이 잘 안 되는 부분은 밑줄을 그어 놓는다. 그날 얼마나 많은 양을 공부했든 30분이면 복습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세 번째 복습은 1주일 후에 한다. 지난주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보/는데 이것은 기억의 간섭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이다. 새로 들어온 정보가 그 전에 익혀 놓은 기억의 재생을 방해하기 때문에 ‘한 주 앞서 공부’ 한 내용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 세 단계를 게을리했다가는 책상 앞에 붙어 있던 그 힘든 노력이 기억과 함께 물거품처럼 ㅅ가라질 것이다. 물론 복습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골치 아프게 공부한 내용을 다시 펼쳐 본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집중해서 봤으면 됐지 뭘 또 봐야 하나, 지루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많은 학자가 효과적인 기억 보존에 대해 실험도 하고 연구도 했지만, 유일한 방법이 ‘복습밖에는 왕도가 없다’ 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조금만 참고 다시 책장을 넘겨라. 짧은 시간이면 된다. 책장 덮고 일어서고 싶어도 잠깐만 훑어보자. 질리지 않도록 짧게, 이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마라.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암기 비법은 없다. 몇 번을 외워도 자꾸 잊어 버린다고 푸념하지만, 그렇다면 물어보자. 도대체 몇 번이나 외웠는가?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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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모든 인간에게 천부적인 도덕률이 존재하나요?
인간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해야 한다고 할 때,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알 수 있는 확신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지성을 통해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것, 즉 어떤 의미로 인간의 ‘천부적인’ 도덕률이 실제로 존재합니다.[1949-1960, 1975, 1978-1979](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68)/ 천부적인 도덕률
모든 문화에는 다양하고 특별한 윤리적 합의들이 있는데, 이는 창조주가 원하시는 것과 똑같은 인간 본성의 표현으로서, 인류의 윤리적 지혜가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진리 안의 사랑>) 천부적인 도뎍률은 모든 이에게 유효합니다. 이 도덕률은 인간이 어떤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가정과 사회, 국가에서의 공동생활을 위한 진정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타고난 인식은 죄와 인간의 약점들로 종종 흐려지기 때문에, 인간은 올바른 길을 계속 가기 위한 하느님의 도우심과 계시가 필요합니다.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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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1949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지만, 죄 때문에 상처 입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하여 그에게 주어진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필리2,12-13).
제1절 도덕률 ->1950 도덕률은 하느님의 지혜의 작품이다. 성서적 의미에서 도덕률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그분의 교육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도덕률의 규범은 엄격하지만, 그것이 약속하는 바는 감미롭다.
->1951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규칙이다. 도덕률은 피조물들 사이에, 그들의 이익을 위해 또 그들의 목적에 비추어, 창조주의 권능과 지혜와 선으로 세워진 합리적 질서를 전제로 한다.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영원한 법’ 에서 비롯한다. 법이란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이성은 선언하고 확증한다. “이성이 내리는 이러한 규정을(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714)/ 바로 법이라 한다.”(레오13세, 회칙 Libertas praestantissimum: Leonis XIII Acta 8, 218,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1-2, q. 90, a. 1: Ed. Leon. 7, 149-150 참조) 살아 있는 존재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에게서 법을 받을만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고 식별할 능력이 있는 이성을 가진 동물인 인간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분께 기꺼이 복종하면서 그의 자유와 이성을 사용해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해야 합니다.(테드툴리아누스, ‘마르키온 논박’, 2, 4, 5: CCL 1, 479(PL 2, 315) ->1952 도덕률은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이 표현들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다. 모든 법의 근원이며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법, 자연법, 옛 율법과 복음이라고 하는 새 율법을 포함한 계시된 법, 그리고 국법과 교회법 등이 그러하다.
->1953 도뎍률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해지고 하나로 통합된다.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완덕에 이르는 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치시고 주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법의 마침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로마10,4).
I.자연법
->1954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으로써 식별할 수 있게 하는 타고난 도덕 의식의 표현이다.
자연법은 모든 인간 개개인의 마음에 적혀 있고 새겨져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715)/ 왜냐하면 그것은 선을 행하도록 명하고 죄짓는 것을 금하는 인간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인간 이성의 이러한 명령도, 그것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자유가 복종해야 하는 더 높은 이성의 목소리이자 또한 해석자가 아니라면, 법으로서 효력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레오13세, 회칙 Livertas praestantissimum: Leonis XIII Acta 8, 219)
->1955 “하느님 법[神法]의 하나인 자연법”은(사목 헌장, 89항 참조) 인간이 선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자연법은 도덕 생활을 규제하는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규범들을 표명하고 있다. 자연법의 주축은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열망과 복종이며, 타인을 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는 의식이다. 자연법의 주요한 규정들은 십계명에 제시되어 있다. 이 법을 자연법(lex naturalis)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비이성적인 존재들의 본성과 연관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법을 규정하는 이성이 인간 본성(natura)에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이 ‘진리’라고 하는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지 않고, 도대체 다른 어디에 씌어 있겠는가? 모든 정의로운 법은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으며, 거기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인간의 마음 속으로 건너간다. 법이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인장(印章)이 마치 반지에서 밀랍으로 건너가는 것 같아도 그대로 반지에 남아 있듯이 법은 인간 안에 새겨지는 것이다.(성 아우구스티노, ‘삼위일체론’, 14, 15, 21: CCL 50A, 451(PL 42, 1052))
자연법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지성의 빛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빛을 통해서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인식한다. 이 빛, 곧 이 법은 하느님께서 창조 때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십계명론’, c. 1: Opera omnia, 27권(파리 1875), 144면)(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716)/
->1956 자연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으며, 각자의 이성으로 확증된다. 자연법은 그 규정들에서 보편적이며, 그 권위는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자연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가 된다.
참된 법이 있으니, 그 법은 올바른 이성이다. 이 법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이 법은 불변하고 영원하며, 그 규정은 의무감을 촉구하고, 그 금지령은 과오를 방진한다……..이 법은 변질시켜서도 아니 되고, 그 일부를 폐지해서도 아니된다. 이 법을 완전히 폐기할 수 없다.(키케로, ‘공화국론’, 3, 22, 33: Scripta quae manserunt omnia, Bibliotheca Teubneriana fasc. 39, K. Ziegler 편(라이프치히 1969), 96면)
->1957 자연법은 매우 다양하게 적용된다. 자연법은 장소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생활 조건들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가 다양함에도 자연법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피할 수 없는 차이점들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원칙들을 제시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1958 자연법은 불변하고 역사의 변동을 거치면서도 그대로이다.(사목 헌장, 10항 참조). 사상과 풍속의 흐름 속에서도 존속하며, 그 사상과 풍속의 진보를 뒷받침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한 채로 남아 있다. 설령 자연법의 원칙들을 부인한다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을 파기할 수는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제거해 버릴 수도 없다. 자연법은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 안에서 언제나 되살아난다.
주님, 당신의 법이, 죄악으로도 말살할 수 없는 인간 마음에 쓰인 법이, 도둑질을 처벌한다는 것은 틀림없사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2, 4, 9: CCL 27, 21(PL 32, 678))(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717)/ ->1959 창조주의 매우 훌륭한 작품인 자연법은, 인간의 선택을 이끄는 도덕 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된다. 또 자연법은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된다. 결국, 자연법은 국법과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국법의 필수적 토대가 된다. 국법은 자연법의 원칙들을 살펴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자연법에 실질적이거나 법률적인 요소들을 더하기도 한다.
->1960 보든 사람이 자연법의 규범들을 분명하게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어렵지 않게,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을 가지고, 오류의 혼동 없이”(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Dei Filius, c. 2: DS 3005; 비오 12세, 회칙 Humani generis: DS 3876)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진리들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죄인인 인간에게 은총과 계시가 필요하다. 자연법은 성령의 활동에 따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토대를 계시된 법과 은총에 제공해준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718)/
간추림
->1975 성서에 따르면, 율법은 사람들에게, 약속된 행복에 인도하는 길을 제시하고 악의 길을 금하는 하느님의 부성적 가르침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724)/ ->1978 창조주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자연법에 따라서 하느님의 지혜와 선의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격의 존엄성을 나타내며,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를 이룬다. ->1979 자연법은 불변하며, 역사 속에서 존속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하다. 자연법은 도덕 규범 확립의 기초이며 국법의 필수적 토대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