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님이 된 첫해 태국 북서부 지방에서 지낼 때였다.
인근 마을에서 사흘간 계속되는 잔치가 열렸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 마을이라 휘발유 발전기, 엠프와 확성기들이 들어왔다.
마을이 1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고요했던 우리 사원에 잔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불교는 언제나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철학을 가르쳤지만 잔치가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요란하게 계속되자
'자고 싶은 대로 자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결의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스님들은 새벽 세 시에는 일어나 절집 일과를 시작해야만 했다.
우리는 촌장에게 잔치를 새벽 한 시에만 끝내주면 우리가 밤잠을 두 시간이라도 잘 수 있겠노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촌장은 점잖게 거절했다. 그래서 우리는 널리 추앙받고 계신 스승님 아잔 차 스님을 내세워
새벽 한 시에는 볼륨을 낮춰달라고 말씀해주시도록 부탁하기 위해 대표단을 꾸려서 찾아갔다.
우리는 촌장이 아잔 차 스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엇이든 따를 줄 알았다.
한데 아잔 차 스님께서는 반대로 우리를 이렇게 가르치셨다.
"소리가 너희들을 방해하고 있는 게 아니다. 너희들이 소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은 우리가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잔치 소리는 여전히 우리 고막을 울려댔지만 우리 마음은 울려대지 못했다.
우리는 불편 속에서 평화로워졌다. 잔치는 겨우 삼 일이었고 금세 지나갔다.
여러 해가 지난 뒤, 태국의 절에서부터 같이 지냈던 한 스님의 동생이 호주의 우리 사원을 방문했다.
불행하게도 손님방들이 모두 차 있어서 그 스님이 내게 하룻밤만 동생과 함께 방을 쓰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들은 한방에서 자란 형제였다. 나는 미심쩍은 마음에 말했다.
"아, 그런데 두 분 모두 이젠 나이가 들었잖아요? 아마도 두 분 다 코를 고실 것 같은데."
그 스님이 아무 문제 없을 거라며 졸라대 허락했다.
동생이 먼저 잠이 들었고, 예상했던 대로 코를 너무 세게 골아대 스님인 형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을 못 자 지친 스님은 문득 아잔 차 스님의 예전 가르침을 기억해냈다.
"소리가 너를 방해하고 있는 게 아니다. 네가 소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의 자장가를 상상하면서 코 고는 소리에 맞춰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코 고는 소리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듣는 방법은 바꿀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떠오른 마지막 기억은 스님이 개운한 잠에 빠져들기 전에
동생의 코고는 소리가 정말 아름다운 선율로 들렸던 것이었다.
남편이 코를 골거든 당신이 좋아하는 아무 음악이나 록 밴드 '그레이트풀 테드'의 곡을 듣고 있다고 상상하시라.
한밤중에 개가 짖으면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나 비슷한 음악을 듣고 있다고 받아들이시라.
시끄러운 소리를 피할 수 없을 때는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바꿔보시라.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