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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십 전 삯전에는 절대로 반대합시다. 대체 남의 사정 모르는 것은 재주이니 아무리 시세가 폭락하였다 할지라도 어디서 그 벌충을 못 대서 하필 가난한 노동자들의 간지러운 삯전을 줄여 버리니 이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 짓이오. 그의 욕심은 만금을 벌자는 무도한 탐욕이요 여러분의 욕심은 다만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 나가는 정당한 요구가 아니요? 시세의 폭락도 그에게는 다만 만금을 못 벌게 하는 폭락이지만 오 전 삯전 내리는 것은 여러분에게는 곧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요? 이 가련한 노동자의 사정은 못 살피고 가증스런 재주 편에만 가담하여 그의 말만 솔곳이 듣고 수백 명의 삯전을 멋대로 작정하는 어업조합 놈들도 죽일 놈이요. 이것은 참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우리들의 조합이 아니기 때문이요. 여러분! 여러분은 재주와 같이 이 조합에도 철저히 대항하여야 되오!“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고 애쓰면서도 그는 이보다 더 쉽게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족하였다. 그들의 가슴을 울리는 ‘아지’의 효과는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옳소!“
"강선생님 말이 맞았소!“
"십 전 반대, 십오 전 좋소꼬!“
그들은 비록 박수는 할 줄 몰랐으나 이런 찬동의 소리가 뒤를 이어서 맹렬히 들렸다.
"십 전 반대, 십오 전 찬성! 이 여러분의 요구를 실시케 하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여야 되겠소?“
강선생은 이렇게 반문하여 놓고 차근차근 그 방법을 설명하였다.
"이때까지 이왕 일하여 준 것은 그만두고 내일로 즉시 여러분은 재주에게 이 요구를 들어달라고 담판하여야 할 것이요. 그러자면 여러분이 제각각 떠들기만 해서는 효과가 없으니 여러분 가운데에서 몇 사람의 대표를 추려서 그가 직접 재주에게 가서 정식으로 교섭을 하여야 할 것이요.“
말이 끝나자 또 찬동의 소리가 뒤를 이어서 요란히 들렸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난관이 있으니 그렇게 정식으로 교섭을 하여도 재주가 요구를 안 들어주는 때에는 여러분은 어떻게 할 터이요?“
강선생은 침착하게 그들의 열정의 도를 시험하였다.
"안 들어주면 일을 아이 하겠소꼬!“
"재주 썩어지지!“
"조합을 마사놓겠소꼬!“
그들은 열렬하게 의기를 토하고 결심의 빛을 보였다.
"재주가 요구를 안 들어주면 일하지 않겠다는 분은 그 자리에 일어서 보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이백 여 명의 노동자는 일제히 그 자리에 일어섰다. 물론 한 사람도 주저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손을 들고 맹세하시오!“
서슴지 않고 손들을 일제히 높이 들렸다. 이만하면 유망하다고 은근히 기뻐하는 강선생은 그들을 그 자리에 다시 앉히고 침착한 어조로 그들의 결심을 다졌다.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서 맹서하였소! 이 중에 한 분이라도 비록 굶어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이 맹서를 어기면 안될 것이요. 무릇 어떠한 사람과 대적할 때에는 일치와 단결의 힘이 필요한 것이요. 하나보다는 열, 열보다는 백, 백보다는 천—이렇게 수많은 것이 한데 굳게 뭉치면 자기의 생각지 못한 큰 힘이 생기는 법이니 그 힘 앞에는 제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필경은 몰려 넘어질 것이요. 여러분도 이것을 굳게 믿고 맹서를 어기지 말고 끝까지 버티어 나가야만 여러분의 뜻을 이룰 것이요!“
횃불을 빨갛게 받은 수백의 얼굴이 강선생의 말이 끝나기까지 조금도 긴장을 잃지 않고 결의와 맹서에 엄숙하게 빛났다.
─이렇게 하여 으슥한 이 해변에서는 포구 사람 잠자는 동안에 비밀 회합이 무사히 끝났던 것이다.
끝으로 강선생은 그들 중에서 네 사람의 교섭원을 뽑았다. 공장의 군칠치, 중실이, 부녀측에서는 임봉네와 일순네─이 네 사람은 모든 사람의 환영리에 기쁜 낯으로 책임을 맡았다. 내일 아침 배 들어오기 전에 네 사람은 다음의 세 가지 요구를 가지고 재주와 직접 담판하기로 하였다.
─. 정어리 뜯는 임금 한 통에 십 오 전씩 하소.
─. 기름 짜는 임금 육두 한 통에 십 전씩 하소.
─. 비료 가마니 묶는 임금 매개에 삼십 전씩 하소.
나중에 일어날 여러 가지 시끄러운 장해를 피하기 위하여 그들은 이 조목을 구두로 담판하기로 하고 요구서는 작성치 않았던 것이다.
질의를 다 마친 그들이 강선생을 선두로 긴 열을 지어 장개고개를 넘어 다시 포구로 향하였을 때에 밤은 어느덧 바다 멀리 훤한 새벽을 바라보았다.
이튿날 아침─
포구 안 백사장에는 일찍부터 수백의 부녀 노동자들이 도착, 수물거렸다. 전날 밤의 피곤도 잊어버리고 그들은 이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공장사무소로 담판 간 네 사람의 교섭위원과 공장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백사장에 끌어올린 빈 배를 중심으로 혹은 배 속에 앉기도 하고 혹은 기대기도 하여 별로 말들도 없이 그들은 언덕 위의 공장 사무소만 한결같이 바라보고들 있었다.
강선생도 그들과 연락을 취하려고, 그러나 보기에는 아무런 낙도 없는 듯이 혼자 떨어져서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아즈바이네 나옵네!"
언덕 위를 바라보고 있던 그들은 일시에 부르짖었다. 사무소를 나와 부지런히 해변으로 걸어 내려오는 네 사람을 바라보는 그들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떠올랐던 것이다.
"어찌 됐소?"
"무스기랍데?"
해변에 다다르기가 바쁘게 네 사람을 둘러싸고 결과를 묻는 그들은 그러나 이미 불리한 결말을 짐작하였다.
"야, 과연 도모지 말을 아이 듣습데."
중실이는 숨을 헐떡거리며 분개하였다.
"한 가지도 아이 들어줍든가?"
"들어주는 게 무스기요. 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꾸 조합에만 밉데."
임봉네는 괘씸하여서 입에 거품을 품겼다.
그러자 언덕 위에서는 조급하게 사무소를 나오는 공장주가 보였다. 그는 그러나 해변으로는 내려오지 않고 어디론지 포구 쪽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어디엘 가는가. 이리 오쟁이코."
"마─알 거 있소……엥가이 뿔이 뿌룩 나야지. 그 자리에서 볼을 콱줴박을까했소."
군칠이는 멀리 공장주를 향하여 헛 주먹질을 하였다.
"그래 아즈바이네 무스기랬소? 모다 일 아니 하겠다고 했소?“
"야─ 그러니 우리보고 무스기라고 하는고 하니 어전공장 일을 그만 두랍디다.“
공장주는 몇 사람 안 되는 공장 노동자쯤은 포구 안에서 즉시 새로 끌어 올 수 있다는 타산 아래에서 중실이와 군칠이 외 수명의 공장 노동자를 전부 해고시킨 것이었다.
"일 있소? 일 아이하면 그만이지!“
네 사람을 둘러쌌던 부녀 노동자들은 흩어지면서 제각각 수물거렸다.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은 어젯밤에 맹서한 것같이 이 자리를 움직이지 말고 공장주가 여러분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결코 일을 하여서는 안될 것이요. 그리고 이따 배 들어온 뒤에 몇 사람은 공장으로 가서 새로 들어올 노동자에게 우리의 뜻을 알리고 결코 일을 하지 말도록 권유하도록 할 것이요!“
강선생은 수물거리는 그들을 통제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진을 친 채 끝까지 공장주와 대항하기로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아침 배가 들어왔다. 여러 척의 배는 전날에 떨어지지 않는 풍부한 수확을 싣고 쌍쌍이 들어와 해변에 매였다.
포구에 갔던 공장주는 다시 사무소에 가서 감독을 거느리고 해변으로 내려왔다.
그들의 뒤를 이어 주재소의 부장과 순사 세 사람이 역시 해변으로 따라 내려오는 것을 그들은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슨 일로인지 그들은 도무지 생각지 않던 영문 모를 일이었다.
"삯전은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단연코 한 푼도 올리지는 않겠으니 그런 줄들 알고 일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싫은 사람은 그만두시오. 그것은 당신네 생각대로들 하시오."
백사장에까지 이른 공장주는 노동자들을 보고 비웃는 듯이 의기 있고 다구지게 말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것도 들은 체 만체하고 다만 결의의 빛을 보일 뿐이요 요란하게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말에 관심을 갖기보다도 더 시급한 일이 목적에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공장주를 따라온 부장과 순사는 말도 없이 강선생과 중실이, 군칠이, 임봉네, 일순네, 즉 네 사람의 교섭위원을 잡아 끌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거기에는 아무 설명도 없이 그들은 자꾸 다섯 사람을 끌기만 하였다.
영문 모르게 장수를 빼앗기는 수백의 군중들은 불길한 예감에 겁내면서 이 장면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쳤으나 아무 소용도 없이 다섯 사람은 불의의 X의 손에 끌려갈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제 아까 공장주가 급한 걸음으로 포구로 향하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재소에 가서 꿍꿍 수작을 대고 모든 것을 꼬여 바친 공장주의 비열한 행동을 알아챈 그들은 이제 극도로 분개하였다.
"그놈 새끼 더러운 짓을 한다이."
"행세가 고약한 놈이요.“
"그 썩어질 놈 쳐죽이오!“
"공장을 마서버리오!"
격분에 타오르는 그들은 아무에게도 지휘는 안 받았으나 마치 지휘를 받은 듯이 두 패로 풀려 한패는 해변 공장주에게로, 또 한패는 언덕 공장사무소로 맹렬히 밀려갔다. 너무도 격분된 그들은 분을 못 이겨 폭행에 나왔던 것이다.
감독의 제제도 아무 힘없이 언덕 위에 밀린 파도는 사무소를 둘러쌌다.
"돌을 줍어라!“
"사무소를 마서라!“
그들은 좍 흩어졌다.
돌이 날랐다.
사무소 유리창이 깨트려졌다.
빈 사무소 안에 와르르 밀려 들어간 그들은 책상을 깨트리고 공장 장부를 찢어 버렸다.
"조합으로 몰려가오!"
사무소 습격이 끝나자 그들은 또다시 일제히 어업조합으로 밀려갔다.
거기서도 사무소에서와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돌이 날랐다. 창이 깨트려졌다.
"썩어질 놈들, 처먹고 배때기가 부르니 한 통에 십 전이 무스기야.“
"한 사람이 부자되고 이 수백 명 사람은 굶어 죽어도 괘이찬탄 말이냐.“
돌연한 습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사와 감독과 서기들은 조합사무실 안에서 날아 들어오는 돌과 고함에 새우새끼같이 오그라졌다.
그들은 다시 해변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나 요번에는 산산이 흩어지지는 않고 무의식간에 긴 행렬을 지었다. 전날 밤에 강선생을 선두로 장개고개를 넘어올 때 같은 긴 행렬을 지었던 것이다. 그들의 가슴은 이제 복수의 쾌감에 끓어올랐다. 다행히 주재소가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그들은 별로 피해도 입지 아니하고 사무소와 조합을 습격하여 계획하지 않은 시위행동을 즉흥적으로 보기 좋게 하였던 것이다. 행렬의 열정에 발맞추는 그들의 가슴은 높이 뛰었다.
해변에 이르렀을 때에 거기에는 동무들만 수물거리고 공장주와 감독은 어디로 뺐는지 보이지 않았다.
배에서 내린 허연 그물더미가 모래 위에 여러 더미 노동을 기다리며 척척 무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노동을 제공하지는 않고 도리어 발길로 고기더미를 박차버렸다. 요구가 관철되기 전에는 고기가 썩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노동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발길에 차인 정어리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달포를 두고 내려 찌는 장마는 마침 오년 이래의 기록을 깨트려버리고야 말았다. 집이 뜨고, 사람이 상하고, 마을이 흩이고, 백성의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마작꾼에게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니 재동 정주사 집에서는 이 긴 장마 동안 하루도 번기는 법 없이 낮상 밤상으로 마작이 울렸고 장마가 지나간 이제까지 변치 않고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빈 맥주병이 가마니 속으로 그득그득 세 가마니를 세이고 아침마다 사랑마루에는 요리접시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러나 정주사에게는 이 긴 장마가 스스로 다른 의미를 가졌으니 그는 장마와는 무관심으로 마작을 탕탕 울리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마작꾼과 떨어져 침대 위에 누워서 신문을 뒤적거리는 정주사의 가슴 속은 심히 안타까웠다. 그것은 그러나 집이 뜨고 마을이 흩은 것을 슬퍼하여서가 아니라 보다도 더 중한 이유로이니, 즉 시골서 경영하는 정어리업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달포지간의 장마는 고기잡이를 온전히 봉쇄하여 버렸고 그 위에 폭풍우는 바다에 나갔던 다섯 척의 어선과 어부를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집어삼켜 버렸던 것이다.
─어선 오 척 유실.
오늘 아침에 정주사는 아들에게서 이런 전보를 받았다. 다섯 척이면 여러 천 원의 손해이다. 그리고 달포 동안 고기잡이 못한데서 생긴 손해 역시 막대할 것이다. 그나 그뿐인가. 그는 달포 전 장마가 시작하기 전에는 아들에게서 또 다음과 같은 전보를 받았던 것이다.
짐작하건대 이 파업에서 생긴 손해 역시 적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손해 위에 폭락된 시세는 여전히 계속되니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정주사는 기가 막혔다.
신문을 던지고 한숨을 지면서 정주사는 드러누운 채 끙끙 속을 앓았다.
"흘나!“
마작판에서는 흥겨운 소리가 나더니 뒤를 이어 요란한 훤소와 마작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작쪽은 잘그닥 잘그닥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다시 쌓였다.
"운송, 내려오시오. 한 상 합시다.“
최석사가 판에서 빠지자 심참봉은 침대 위의 정주사를 꾀였다.
"필경 망하기는 일반 아니요. 망해서 빌어먹게 될 때까지 짱이나 부릅시다 그려!“
심참봉의 자포자기의 이 말은 정주사에게는 뼈저리게 들렸다. 역시 불경기의 함정에 빠져 여러 해 동안 경영하여 오던 정미업을 마침내 며칠 전에 폐쇄하여 버린 심참봉의 요사이의 태도와 언사에는 어두운 자포자기의 음영이 떠돌았었다. 그는 폭리를 바란 바 아니었으나 드디어 오늘의 파산을 보고 정미소의 문까지 닫아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곧 자기의 전도를 암시하는 듯도 하여서 정주사는 심참봉의 자포적 언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였던 것이다.
"내려오시오, 운송!"
"어서들 하시오.“
정주사는 억지로 사양하여 버리고 침대 위에서 돌아누웠다. 머리 속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생각이 피어올랐다.
─규모 무섭던 심참봉이 드디어 저 꼴이 되고 말았다. 나의 앞길은 며칠이나 남았을까. 멀지 않아 같은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아니 심참봉과 나뿐만이 아니라 쪼들려 가는 우리의 앞길이 모두 그럴 것이 아닌가. 요사이 종로 네거리에 나서면 문 닫히는 상점이 나날이 늘어감을 우리는 볼 수 있고, 손꼽는 큰 백화점에서도 종을 울리며 마지막 경매를 부르짖은 참혹한 꼴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다시 남촌으로 발을 돌릴 때에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곳에는 그래도 활기가 있다. 큰 백화점이 더욱 번창하여 감을 본다. <히라나>와 <미쓰꼬시>의 대진출을 본다. 작은놈은 망해가고 큰놈은 더욱 커지며 한 장사가 공을 이루매 만 명 병졸의 뼈 말리는 격으로 수만의 피를 뽑아 몇 놈의 살을 찌게 하니 이것이 대체 무슨 이치인고—
정주사가 좀 센티멘탈한 마음에 자기 자신을 비참한 경우에 놓고 이리저리 뒤틀어 여기까지 생각하여 왔을 때에 밖에서 별안간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낯설은 젊은 양복쟁이 한 사람이 들어왔다.
정주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 마작하던 친구들도 조심스럽게 마작을 중지하였다. 맥주병이나 혹은 돈푼을 거는 관계상 그들은 낯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박태심이라는 사람 오지 않았소?"
양복쟁이는 마작놀이는 책하지 않고 마작하던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 개인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불리어 자리를 일어서는 박씨의 얼굴은 어쩐 일인지 금시에 빛이 변하였다. 그것을 보는 친구들도 알지 못할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나는 종로서에서 온 사람이오. 일이 좀 있으니 이 길로 바로 서에까지 같이 갑시다.“
양복쟁이는, 아니 형사는 어쩐 일인지 박씨를 날카롭게 노렸다.
평소에 말이 많고 선웃음 잘 치던 박씨는 이 자리에서 별안간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친구들은 똑똑히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방안에서 떨면서 주저하는 박씨를 형사는 다시 노렸다.
"무슨 일인지 가봐야 알지, 제가 진 죄를 제가 몰라? 괴악한 사기한 같으니!"
파랗게 질린 박씨는 다시는 아무 말 없이 허둥지둥 두루마기를 걸치면서 뜰로 내려섰다.
그 잘 떠들던 박씨가 이제 고양이 앞에 쥐처럼 숨을 죽이고 형사의 앞을 서서 문을 나가는 것을 보는 친구들은 몹시 딱한 생각이 났다.
"대체 무슨 일일까?"
친구를 잃은 그들은 의아하고 불안한 가운데에서 친구의 일을 궁금히 여겼다.
‘괴악한 사기한’이라니 그가 무슨 사기를 하였단 말인가. 하기는 며칠 전부터 그는 돈 백 원이 꼭 있어야 하겠다고 말버릇처럼 하여 오기는 왔었다. 그리고 직업도 없고 수입도 없는 순진한 유민인 그가 대체 어떻게 나날이 살아왔는지 그것이 친구들에게는 한 수수께끼였었다. 오늘의 형사는 말하자면 이 수수께끼를 풀어낼 한 갈래의 단서이었던 것이다.
즉 기적적으로만 알았던 그의 생활의 배후에는 그 어떤 불순한 수단이 숨어 있었던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암담한 동시에 친구의 일이 자기들의 일과 다름없이 불안하여 졌다. 사실 이 남아 있는 그들 가운데에 박씨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지 없을지는 온전히 보증할 수 없는 일인 까닭이다.
"결국 마작꾼을 또 한 사람 잃었구나!"
심참봉의 자포적 탄식에는 헐려 가는 이 계급의 운명이 역력히 반영되어 있는 듯하였다.
정주사는 그날 밤 오래간만에 다방골 첩의 집을 찾아갔다. 비도 비려니와 이럭저럭 마음이 상해서 그는 이 며칠 동안 첩의 집과 발을 끊었던 것이다.
"왜 그 동안 안 오셨어요?"
첩은 전날에 기생의 몸이었던 것만큼 아양과 애교를 다하여, 그러나 남편이 며칠 동안 자기를 버렸다는 것이 괘씸하여서 샐쭉하면서 정주사를 책하였다. 그러나 기실 속 심정으로는 퍽도 반가웠던 것이다. 그만큼 그날 밤 식탁에는 손수 그의 공과 정성을 다 베풀었다. 그의 어머니—인 동시에 어멈인—를 시켜서 사온 고급 위스키 한 병까지 찬란한 식탁 위에 올랐던 것이다.
"오늘 보험회사에서 왔다 갔어요."
식탁 옆에 앉아 그에게 술을 따라 바치던 첩은 문득 생각난 듯이 일어나 의걸이 서랍에서 한 장의 종이조각을 집어내어 남편에게 보였다.
"다 귀찮다!"
종이조각을 펴본 정주사는 그것을 다시 구겨 옆으로 던져 버리고 술잔을 쭉 들이켰다. 그것은 ‘일금 팔십오 원’의 생명보험료 불입 고지서였다. 연전에 첩을 새로 얻었을 때에 그는 지금의 이 조촐한 와가 한 채를 사서 모녀에게 맡기고 호톳한 살림을 따로 벌리는 동시에 첩을 끔찍이도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마음에 비싼 보험료를 치르면서 첩을 생명보험에까지 넣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 와서는 모두 그에게 귀찮았다. 사실인즉, 팔십오 원이란 돈도 그에게는 지금 아까웠던 것이다.
"술은 그만하시고 일찍 주무시지요."
첩은 보험료에 관하여서는 더 말이 없이 얼큰한 남편을 위로하면서 술상을 치웠다. 그리고 어머니는 건넌방으로 쫓고 안방에 두 사람의 잠자리를 툽툽하게 폈다.
정주사는 며칠만에 처음으로 옷 벗은 첩의 몸을 품안에 안았다. 흥분의 절정에서 눈을 가늘게 뜬 첩은 법열을 못 이겨서 그의 몸 밑에서 정열이 배암같이 탄력 있게 굼틀거렸다. 그러나 정주사는 별로 신기한 기쁨과 새로운 흥분은 느끼지 않았다. 늘 맡던 그 살냄새, 늘 느끼던 그 감촉, 늘 쓰던 그 기교, 그뿐이요, 그 외에 신기한 자극과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던 것이다.
두 사람에게만 허락된 이 절대의 순간에서도 정주사는 오히려 사업과 재산 생각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심참봉의 밟아 온 길, 오늘 박태심이가 당하던 꼴, 그에게 닥쳐올 장래—술과 계집에 마음껏 취하여 보리라고 마음먹었던 이 밤의 정주사는 이제 품안에 아름다운 계집을 안은 채 이런 무거운 가지가지의 생각에 천근 같은 압박을 한결같이 느꼈던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깊어가니 고기잡이는 바야흐로 번창기에 들어갈 때이다. 늦은 가을의 도시기—그것은 여름 동안 해변에서 수백 리 떨어진 먼 바다에 흩어져 있던 정어리떼가 해변으로 와글와글 몰려 들어오는 때이니 정어리업자가 생명으로 여기는 일년 중의 가장 중한 때이다. 모든 손해와 타격 가운데에서 한 줄기의 희망의 실마리를 붙이는 것도 곧 이때이다. 배 속에 퍼담고 또 퍼담아도 끊임없이 뒤를 이어 와글와글 밀려오는 고기떼, 그물이 모자라고 배가 모자라고 사람이 모자라는 판이니 해변 사람들의 흥을 가장 북돋우는 때이다. 그러나 대자연의 장난과 해류의 희롱을 그 뉘 아랴. 무슨 바람 어떤 해류의 장난인지 이 해의 바다는 도시기에 이르러도 고기떼를 해변으로 와글와글 밀어들이지는 않았다. 여러 해 동안 정들었던 정어리 영업자들을 바다는 돌연히 배반하여 버렸던 것이다. 바다는 푸르고 하늘은 유유하고 파도는 찰락거리고—모두 여전하다마는 포구의 활기만은 여전하지 않았으니 지나간 해의 가을같이 활기 있게 들볶아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언덕 위 공장에서는 가마가 끓고 고기가 짜이고 해변 모래밭에서는 정어리 뜯는 소리가 끓어오르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도시기의 활기 그것은 아니었다.
애타는 마음에 해변에 나가지 않고 공장 사무소에 앉은 채 해변을 바라보는 공장주의 가슴에는 일년 동안 받은 수많은 상처가 이제 또다시 생생하게 살아 나왔다.
─시세 폭락, 폭풍우, 노동자들의 파업, 활기 없는 도시기…… 그중에서도 폭풍우와 도시기의 천연적 대세에서 받은 상처보다도 시세 폭락과 파업에서 받은 상처가 더욱 컸던 것이다. 강선생을 괴수로 일어난 수백 노동자의 파업에 공장주는 사업의 불리를 각오하면서도 세부득 한 걸음 물러섰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굳었고 이 포구에서는 불시에 그들을 대신할 노동자들을 끌어오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별수 없이 그들의 세 가지의 요구 조건은 벼락같이 관철되고 파업을 일으킨 다음 날부터 노동은 다시 활기 있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공장주는 파업에서 받은 경제적 타격을 애석히는 여기지 않았다. 그는 이제 파업이라는 행동을 다른 의미, 다른 각도로 해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 많은 노동자들의 단결에서 생기는 위대한 힘! (중략) 두려운 한편 부러운 힘이다……
또 한 가지 그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시세 폭락의 배후에 숨은 농간의 힘이었다. 불같이 닥쳐온 어유 시가의 대중없는 폭락은 서구 ‘노르웨이’ 근해에서만 잡히는 고래기름의 풍족한 산액이 조선 정어리 기름의 수출을 압도하는 자연적 대세라느니보다 실로 일본에 있는 대자본의 회사 합동유지(合同油脂) 글리세린 회사의 임의의 책동인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이 폭락 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도(道) 당국과 총독부 수산과에서는 각각 기술자를 보내어 실정을 조사 시키고 정어리업 대표들을 참가시켜 어비제조 간담회니 폭락방지 대책협의회니 등을 열었으나 결국 정어리업자들에게는 그럴듯한 유리한 결과는 지어주지 못 하였던 것이다. 대재벌의 힘, 무도한 것은 이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노동자들이 그를 미워한 것같이 그는 이제 이 대재벌을 미워하였다. 노동자에게서 미움을 산 그는 실상인즉 대재벌의 손에 매어 있고 꿀려 있는 셈이었다. 위에서는 대재벌, 밑에서는 노동자의 대군, 이 두 힘 사이에서 부대끼는 그의 갈 길은 어디이든가. 위 아니면 밑, 이 두 길 중의 한 길을 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윗길을 못 밟을 바에야 그의 길은 뻔한 길이 아닌가─
이렇게 명상에 잠기면서 한결같이 해변을 바라보는 공장주의 눈에서는 이제 눈물이 푹 솟았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의 눈물도 아니요, 분함의 눈물도 아니요, 감격과 희망의 눈물이었으니 해변에서 떼를 짓고 고함치며 노동하는 수 많은 노동자들─그 속에서 그는 새로운 철학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그다지 원통치는 않았다. 더 큰 마음과 넓은 보조로 앞길을 자랑스럽게 밟으려고 결심한 그가 이제 흘리는 눈물은 흔연한 감격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바른길을 뙤어 준 이태 동안의 해변 생활, 그것은 대학에서 배운 사업의 이론과 비결 이상 몇 곱절 그에게 뜻있는 것이었다.
강 선생! 그는 오래간만에 문득 강 선생 생각이 났다.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오늘 밤에는 서울로 떠날 것이다. 떠나기 전에 강 선생과 만나 이야기라도 실컷 해보겠다는 충동을 느낀 그는 이제 자리를 일어나 눈물을 씻고 사무소로 나갔던 것이다.
재동 사랑에서 한 사람 두 사람 줄어가는 마작꾼 숲에서 정주사가 흩어지는 마작쪽에 ‘헐려 가는’ 철학을 절실히 느낀 것은 바로 이 때였던 것이다.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