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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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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법칙>
법칙 16. 뻔뻔한 여자와 잘난 남자.
“빨리 왔죠? 허억,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며 한 손으로 문을 잡은 채 독고산하를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눈썹을 삐딱하게 올린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날 가만히 쳐다보던 녀석은 이내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려있는 검은 봉다리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검은 봉다리 속에 담겨있는 라면의 수를 세더니 아까와 마찬가지로 4개가 들어있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봉다리를
돌려주었다.
“계란 넣지마.”
“넵.”
우렁차게 대답하며 오피스텔로 들어가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 독고산하가 한 손을 뻗어 길목을 막았다.
녀석의 길다란 팔에 의해 졸지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내가 고개를 들어 녀석을 다시 쳐다보자 녀석은 삐딱한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이내 못미덥다는 듯 검은 봉다리를 다시 빼앗아갔다.
뭐임?
“넌 안넣는다고 말하고도 넣을 애야. 아까도 그랬어.”
“이번엔 안그럴게요.”
“못믿어.”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몸을 돌려 오피스텔 안으로 휙 들어가버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녀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뒤를 따랐다.
독고산하는 소파에 앉아있는 유진태 감독을 힐끗 쳐다보더니 냉랭한 표정을 지은 채 부엌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얼라리오?
“초하씨 왔어요?”
“아, 네. 근데 저 라면 사러 간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요? 독고산하 왜저래요?”
“글쎄요, 라면이 얼른 먹고 싶은가 봐요.”
유진태 감독은 나지막이 대답하며 작게 웃음 지었다. 유진태 감독의 말대로 라면이 얼른 먹고 싶은 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채 유진태 감독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독고산하가 있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가 그리 급해서 부엌으로 쏙 들어갔나 하고 고개를 빼꼼이 들이민 순간, 난 어이가 가출하는 것을 느꼈다.
“뭐해요? 계란 아깝게!”
“이래야 니가 계란을 못넣을 거 아냐. 다 깼다.”
“그렇다고 이걸 다 깼어요? 미쳤어, 미쳤어!”
녀석은 씽크대 앞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계란을 모조리 깨고 있었다. 이미 내가 말리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땐 마지막 계란까지
씽크대 안에서 박살난 상태였다.
아이고, 아까워!
“아무리 계란을 싫어해도 그렇지, 이게 뭐에요! 먹는 걸 이렇게 버리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아깝게! 지금도 세상엔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애들 투성인데, 계란을 이렇게 막무가내로 버리면……”
“그럼 니가 먹든지.”
“이렇게 개박살 낸 걸 내가 어떻게 먹어요! 에이씨! 비켜요!”
독고산하를 향해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 소리를 냅다 질렀더니 녀석이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슬쩍 옆으로 비켜났다.
아까운 계란이 모조리 씽크대에서 숨을 거두다니.
박살 난 계란을 물로 헹구며 독고산하를 쳐다보자 녀석은 오히려 눈썹을 꿈틀거리며 ‘뭐, 어쩌라고?’하는 시선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말을!
“됐으니까 나가 있어요. 라면 알아서 잘 끓일게요.”
“그래놓고 아까처럼 또 짜게 끓이면? 아니면 왕창 싱겁든지.”
“안그래욧!”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나 귀 안먹었어!”
“에이씨! 안지르면 되잖아, 그럼!”
“지금도 질렀잖아!”
“이이잇…! 나가요, 나가!”
독고산하의 등을 떠밀며 한껏 짜증을 부리자 녀석이 투덜거리며 ‘막나간다 이거냐?’하고 입을 삐죽거렸다.
그 말에 또 토를 달았다간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이녀석이랑 싸우고 있을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문 채 녀석의 등만 밀었다.
녀석이 밀지말라며 다시 투덜거리길래 실수인 척 발이라도 밟아버릴까 하고 고개를 든 순간, 녀석의 목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난 것이 보였다.
아깐 두드러기 같은 거 없었는데?
“어? 이거 왜그래요?”
“뭐가?”
“목에 빨간 거요. 두드러기 아니에요?”
“아니야.”
녀석의 목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미 녀석은 알고 있었는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날 쳐다보았다. 아니라는 녀석의 대답에
가재미 눈을 뜬 채 녀석의 목에 얼굴을 더 갖다대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두드러기가 맞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이거 두드러기 맞는…….”
“야.”
“두드러기 맞아요, 이거. 약 발라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두드러기에요? 독고산하씨 알레르기 있…….”
“야, 너무 가까워.”
“에?”
“너무 가깝다고. 그렇게 가까이 붙을거면 숨을 좀 작게 쉬던가.”
심드렁하게 내뱉어진 녀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늦게 이해하고는 몸을 뒤로 확 뺐다.
그러자 녀석이 짓궂게 웃으며 내 미간을 꾸욱 눌렀다.
아파, 이 자식아!
“하악하악하악…가깝게 붙어놓고 그렇게 거칠게 숨을 쉬면 나보고 어쩌라고?”
“내, 내가 언제 하악하악하악 숨 셨다고 그래요? 뻐, 뻥치시네!”
“그럼 허억허억허억 쉬었던지.”
“아니거든요!”
“내가 누누히 얘기하지만 원래 도둑놈도 ‘나 도둑이에요’하고 얘기 안한다니까?”
“숨 좀 거칠게 쉰거랑 도둑이랑 무슨 상관이에욧!”
“어? 너 방금 니 입으로 숨 거칠게 쉰 거 인정했다.”
“이이잇! 그래, 숨 좀 거칠게 쉬었어요! 그게 뭐! 그게 왜! 그게 죽일 짓이에요? 앙?”
“누가 그렇대? 라면이나 잘 끓여. 하악하악 숨 쉬면서.”
“하악하악 안쉬어요! 안쉰다고!”
“응, 그래~”
독고산하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킬킬 웃었다. 녀석은 능청스레 ‘응, 그래~’하고 대답하며 부엌을 빠져나갔으나 어쩐지 내가
녀석에게 진 것 같은 기분에 내 코평수는 점점 넓어졌다.
내가, 말 잘하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내가 독고산하따위 때문에 패배감을 맛보다니! 으으으!
“에이씨! 너 진짜 짜증나!”
이미 끓기 시작한 물이 냄비 밖으로 뿌연 수증기를 끊임없이 뿜어댔다. 그 모습이 괜스레 얄미워 냄비 뚜껑을 열고 라면을
거칠게 담그며 한껏 짜증을 냈다.
어쩐지 꼬들꼬들한 라면 면발이 베베 꼬인 독고산하의 삐뚤어진 성격처럼 보여서 더 얄미웠다.
두고봐, 잘근잘근 씹어먹어 줄테니!
“라면 드세요. 이번엔 절~대로 안짜요. 아, 물론 싱겁지도 않아요. 완벽해, 완벽한 맛이에요.”
당당한 표정으로 라면 냄비를 들고 거실로 나오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독고산하가 내게 시선을 던졌다. 녀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심드렁히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픽-하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졌고, 생각보다 더 조용한 침묵이 급작스럽게 거실에 눌러앉았다.
라면을 상 위에 내려놓고 독고산하를 쳐다보자, 녀석 또한 의아한 표정으로 ‘왜?’하고 입을 벙끗거렸다.
“유진태 감독님은요?”
“베란다.”
“왜요? 담배?”
“급한 통화하는 것 같던데.”
심드렁한 녀석의 대꾸에 ‘아, 그렇구나’하고 놀부 박 깨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녀석은 피식 웃으며 소파에서
내려와 앉더니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아직 유진태 감독이 베란다에서 돌아오지도 않았것만 녀석은 아주 당당하게 냄비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잠깐!”
그리고 녀석의 젓가락질을 막은 것은 내 젓가락질이었다. 라면을 먹기 위해 젓가락을 뻗은 독고산하의 눈썹이 짜증스레
꿈틀거리더니 녀석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난 녀석을 향해 어정쩡하게 웃으며 최대한 귀엽게 말했다.
“아직 최연장자가 안왔잖아요. 다같이 먹어야 맛있죠.”
“싫어.”
“또 뭐가 싫어요, 싫긴! 다같이 먹어요 그냥!”
“난 저거랑 같이 먹으면 분명 체할 거야. 그럼 앓아 누울거고, 드라마 촬영도 미뤄지겠지. 그럼 영화 작업에 차질 생겨.”
“하?”
“알아 들었지? 그럼 젓가락 치워.”
유진태 감독과 라면 같이 먹는 일이 영화 작업에 차질주는 것으로까지 번지는 거냐? 사람이 어떤 뇌를 가져야 그런 사고회로를
할 수 있는거냐?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허참 아저씨가 들으면 어이 없어서 나참이라고 이름 바꿀 노릇일세.
멍하니 독고산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젓가락을 치웠다.
그리고 녀석이 냄비 속으로 젓가락을 꽂으려는 찰나, 베란다 문이 열리더니 유진태 감독이 빙긋 웃는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보니 독고산하 오피스텔의 커텐은 녀석과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꽃무늬였다. 칙칙한 검은색이 딱일 것 같은데.
“커텐 진짜 화려하네.”
“우리 사모님 취향이 꽃밭이거든.”
“김수옥씨요?”
“그럼 누구겠어.”
독고산하가 커텐을 향해 시선을 힐끔 주더니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김수옥씨의 취향이 꽃이었구나.
어쩐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고 있는데, 유진태 감독이 자리에 앉지 않고 소파에 벗어놓은 외투를
챙기더니 미안한 얼굴로 나와 독고산하를 쳐다보았다.
“미안해서 어쩌죠?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할 것 같은데.”
“에? 라면도 안드시구요?”
“저도 초하씨가 끓여준 맛있는 라면 먹고 싶은데, 워낙 급해서요.”
“많이 급하세요?”
“네, 그게……”
유진태 감독이 미안한 얼굴로 말을 하기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배웅하려는데, 독고산하가 라면을 접시에 덜며
퉁명스레 말했다.
“많이 바쁘니까 가는 거겠지. 안녕히 가세요.”
삐뚤어진 성격의 소유자 같으니라고.
“영화 작업이 제 예상보다 빨리 시작될 것 같아요. 조만간 스탠바이 들어갈 것 같아서, 체크해야할 것들이 많아서요.”
“윽, 영화 작업이라니까 못붙잡겠어요. 얼른 스탠바이하길 기다릴게요. 그럼 다음에 봬요, 조심히 가시구요.”
“네. 다시 연락할게요. 산하씨도요. 오늘 즐거웠어요.”
독고산하는 대답 대신 손을 한번 훠이 내저을 뿐이었다. 무슨 인사가 그따구야!
괜히 유진태 감독에게 미안한 기분에 독고산하의 정수리를 째려보다가 유진태 감독을 향해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유진태 감독은 괜찮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초하씨, 내가 낮에 한 말 모두 진심이에요. 부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주길 바랄게요. 알겠죠?”
“아, 그건…….”
“천천히 대답해줘도 돼요. 시간을 갖고 생각해줬으면 해요. 그럼 다음에 봐요.”
“…그럴게요. 조심히 가세요.”
마당이 있는 주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 같아선 지하주차장까지 배웅해주고 싶었지만 유진태 감독이 괜찮다고,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기에 하는 수 없이 문 앞에서 그를 배웅해야 했다.
다음에 보자는 인사와 함께 유진태 감독이 나가고 난 뒤, 띠르륵 하고 자동으로 잠기는 도어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사춘기에서 끝나지 않고 오춘기, 육춘기를 겪으며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독고산하는 라면을 먹으며 금세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독고산하씨.”
“왜.”
“산하씨, 유진태 감독님 싫어해요? 왜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해요? 어차피 같이 작업할 감독님이니까 친근하게 굴면서 친하게
지내면 더 좋잖아요. 배웅도 제대로 안해주고, 그러다 나중에 영화 찍으면서 호되게 당하면 어쩌려구요?”
“뭘 호되게 당해.”
“뭐 예를 들면…영화 촬영 중에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다면서 계속 촬영하게 한다든지, 독고산하씨를 때리면서 연기 지도를
한다든지. 그런거 말이에요.”
“그럴 일 없어.”
“에? 장담할 수 있어요? 내가 감독님이면 미워서라도…….”
“나 연기 잘해.”
독고산하가 나지막이 대답하며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돌려 날 쳐다보았다. 물끄러미 날 쳐다보는 독고산하의 시선에
어정쩡한 자세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며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녀석은 날 쳐다보다가 라면을 한 젓가락 집으며 턱짓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봐. 잘하나 못하나.”
텔레비전에선 때마침 선전이 끝나고 독고산하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재방송 중이었다. 성격이 마음껏 삐뚤어진 녀석이긴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빛나고 있는 녀석의 외모는 분명 출중했다.
그리고 괜스레 울화가 치밀만큼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무척이나 인정하긴 싫지만 독고산하와 동년배인 배우 중, 녀석만큼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는 없다.
드문 것도 아니고 찾기 힘든 것도 아니고, 아예 없다.
“네, 잘나셨어요.”
“나도 알아.”
독고산하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더니 라면 한 젓가락을 후루룩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이 텔레비전 속에서 애절한 사랑을
말하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푸하하 하고 웃자 녀석이 눈썹을 삐딱하게 움직이며 날 쳐다보았다.
“뭐가 웃겨?”
“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독고산하씨 라면 먹는 모습을 보니까 웃음이 나와요.”
“왜? 내가 웃겨?”
“아니에요, 웃기긴요. 그냥……”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며 녀석을 쳐다보자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냥 뭐?’하고 뒷말을 재촉했다.
으흠, 뭐라고 대답해줘야하나.
독고산하를 힐끔 쳐다보다가 번뜩이며 뇌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히죽 웃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움찔거리며 몸을 살짝 뒤로 뺐다.
“독고산하씨가 제가 끓여준 라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서 웃었어요. 맛있죠?”
“그게 뭐야? 내가 라면 맛있게 먹는 게 웃겨? 아무튼 맛있긴 해. 아까보단 훨 나.”
“당연하죠. 제가 사랑을 듬뿍 담아서 끓였……”
“뒷말 내뱉지마. 나 체해.”
“치, 알았어요. 아무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요. 히히.”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두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독고산하가 느끼한 이탈리아 정통 스파게티라도 먹은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넌 진짜……”
“전 진짜 뭐요? 진짜 매력적이라구요?”
“뻔뻔하다구.”
“원래 사랑에 빠지면 뻔뻔해지는 법이에요. 그리고 뻔뻔해져야 용기가 생기죠. 원래 용기 있는 여자가 미남을 쟁취하거든요.”
“…넌 좀 덜 뻔뻔해도 돼. 너무 뻔뻔해서 어쩔 땐 그게 거짓말 같아.”
예리하다.
연기를 오래 해온 녀석이라서 연기와 연기가 아닌 것의 구별이 재빠를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나지막이 내뱉는 말에
괜히 가슴이 덜컹인다.
하지만 거짓말 고수들의 가장 큰 성공 비법이 무엇이던가. 바로 찔릴수록 더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것 아니던가!
독고산하를 향해 싱긋 웃으며 젓가락을 들어 녀석의 그릇에 라면을 덜어주었다.
“사랑은 원래 거짓말 같은 일이잖아요. 자, 면발이 불기 전에 얼른 드세요.”
뜨거운 면발을 호호 불어주는 것은 그저 거짓말에서 비롯된 서비스 정신일 뿐이다.
호호, 면발을 향해 바람을 불며 다시한번 녀석을 향해 싱긋 웃었다.
*
“가.”
“네.”
오피스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독고산하를 쳐다보자 녀석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성격이
삐뚤어졌기로서니 이 야심한 시각에 여자 혼자 집에 돌려보내다니 매너없는 놈 같으니라고.
내가 아까 라면 호호 불어서 덜어줄 땐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더니!
“안녕히 계세요.”
“응, 앞으로도 콜하면 째깍째깍 달려와. 아니다, 날아와.”
내가 비행기냐? 날아다니게?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날아다녀. 날개라도 달아주고 날아다니라고 하든지. 나 참.
독고산하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현관 문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녀석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야.”
생각해보니까 좀 걱정스러웠나보지? 태워다주려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몸을 돌리마자 뭔가 차륵- 소리를 내며 내게로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받고보니 독고산하의 차 키였다.
“얼레?”
“그거 타고 가. 그리고 내일은 11시까지 데리러 와.”
“어머나.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보통 사람들은 데려다주는 걸, 인심 쓰셔서 차를 빌려주시네요?”
“기스라도 생기면 죽을 줄 알아. 내일 늦지 마.”
“정말 안 데려다줘요?”
돌아서는 독고산하를 향해 투덜거리며 말하자 녀석이 눈썹을 삐딱하게 구기며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웃기지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 치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왜?”
그래, 너한텐 애초부터 기대도 안했다!
“웃기고 있어 진짜! 내가 왜? 내가 왜에? 내가 왜에에에? 와, 사람이 의리란게 있으면 그런 말 못하지, 못해! 치사한 새끼!”
차마 집 앞에서 대놓고 욕할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자마자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며 차 키를 눌렀다.
띠릭-하고 문 열리는 소리에 쌍라이트가 번쩍이는 녀석의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인 닮아서 쌔끈하게 잘 빠진 벤츠를 보려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야! 생긴거만 멀쩡하면 다냐? 연기만 잘하면 다냐? 사람이 인간이 되야지. 야, 난 하라고 해도 너처럼 싸가지 없이 굴진
못하겠다. 와, 진짜 웃긴 놈이네 이거. 와, 치사 뿡이다! 퉤퉤퉤!”
아마 경비 아저씨가 CCTV로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동네 미친년이 비도 안오는데 발광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
하지만 경비 아저씨, 아저씨가 독고산하를 며칠만 겪어보시면 아저씨도 저처럼 변할 거에요.
이를 으득 갈며 차에 올랐다. 일단 난 소중하니까 안전벨트를 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비싼 차라서 그런지 시동이
꽤나 부드럽게 걸렸다.
물론 그것마저도 못마땅했지만.
“재수없게. 너도 비싼 차라고 째냐? 시동 잘 걸린다고 째냐고!”
차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엑셀을 밟았다. 부아앙-하고 차가 부드럽게 출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차 한 번 더럽게 좋네.
- Rrr. Rrr. Rrr.
한 십 분쯤 운전했을까, 빨간불로 바뀐 신호등 앞에 차를 세우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막상 보내놓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독고산하가 전화를 했나?
독고산하면 안받아야지 하고 생각하며 핸드폰 액정을 확인하니 ‘유진태 감독’이라는 다섯글자가 날 맞이했다.
으허엄.
어쩐지 독고산하일 것이라 확신한 내 자신이 부끄럽구만.
“여보세요?”
운전 중에 전화 받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받은 이유는 난 한번에 두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훌륭한 인간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
- 초하씨. 저에요, 유진태. 지금 통화 괜찮아요?
“음, 긴 통화는 못하구요 짧은 통화는 괜찮아요.”
- 짧은 거에요.
“그럼 말씀하세요.”
유진태 감독이 나지막이 웃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 웃음 소리도 부드럽구나. 이런 사람이 날 좋아한다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에 핸드폰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앞을 쳐다보았다.
초록 불이 깜박이는 횡단보도엔 민망하리만큼 사람이 없었다. 뭐, 개미가 길을 건너고 있을지도 모르지.
- 정식 크랭크인 날짜가 잡혔어요. 촬영 시작은 이주일 후에요. 그리고 이번 주말에 촬영 전 MT를 갈까 하는데 시간 어때요?
“우와! 이주일 후에 정식 시작이에요? 진짜 빠르네. 저 떨려요!”
- 하하, 저두 떨려요. 주말엔 시간 괜찮죠? 1박 2일로 시간 잡아서 평창쪽으로 갈까 해요. 촬영 전 MT라서 스탭이랑 배우 전원 참석하는 거구요.
“당연히 시간 괜찮죠! 안괜찮아도 괜찮게 만들어야죠. 무조건 갈거에요!”
- 오케이! 그럼 자세한 일정 잡히면 다시 연락줄게요. 내가 못하면 조감독이 연락할거에요. 되도록 제가 직접 할게요.
“바쁘시면 무리하지 마시구요. 그럼 주말에 뵐게요.”
- 네, 그럼 끊을게요.
우와! 이제 정식 촬영이 정말 코 앞이구나!
유진태 감독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통화를 끊고 멍하니 앞을 쳐다보았다. 정식 촬영 날짜가 나왔다는 말에 심장이 쿵쿵
요란하게 뛰어 손까지 살짝 떨렸다.
뭐랄까, 첫사랑을 만나기 직전의 상태처럼 말이다.
“우와, 이제 촬영이구나……. 우와.”
정말 감탄사만 나왔다. 멍하니 핸들에 손을 올려놓은 채 앞을 쳐다보다가 신호가 바뀐 것도 모르고 있었다. 뒤에서 빠앙-하고
클렉션 누르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엑셀을 밟았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어? 어어!”
급하게 엑셀을 밟느라 커브를 돌아 꺾어 나오던 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어어, 하고 멍청한 소리만 내지르며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나니.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독고산하의 비싸디 비싼 외제차가 박살나는 소리가 귓가로 들렸다.
아, 기스 나면 죽인다고 했는데……차 사고는 죽이고 또 죽이는 건가? 몇 번이나 죽이려나? 아, 난 몰라!
“……이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니야.”
나지막이 읊조린 것이 사고 후 내뱉어진 내 첫 말이었다. 내 몸 걱정보다 독고산하의 반응부터 걱정하게 되다니…….
아, 울고 싶어라.
***
으핫. 주말이 거의 끝나가고 있네요. 모두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읽어주신 분들과 꼬리말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사랑을 담아♡♡ 쪽쪽!
야호♬ 올림.
첫댓글 ㅎㅎ 재미있게 봤어요>ㅁ< 초하 어뜩해요.. 산하 반응 벌써부터 기대되는데요.. 건필하세요~
초하 사고쟁이..ㅋㅋ 맨날 사고쳐대...ㅋ
크킄.... 이대 독고산하군이 대판 뚜껑열릴 차례가 왔군여!!
아.. 귀여운 감독님ㅎㅎㅎ
ㅎㅎㅎㅎ
외제차 박살;;; 보상하려면 초하 길바닥에 앉을듯
계란알레르기가 잇는데 왜 집에 계란이 잇을까요..?ㅋㅋㅋㅋㅋㅋ 아 절대 시비거는건 아니에용!!
초하 일냈네용~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