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술붕어입니다.
오늘 아침 “비 내리는 호남선” 노래를 부른 “손인호”씨가 별세 하셨다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이 노래는 “나훈아”씨가 부른 “고향 역” 과 함께 제 고향과 연관이 있는 노래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함라”에서 자전거를 타고 4km 정도를 달려 “함열역”에 도착하여 통학열차를 타고 “황등역”을 경유하여 “이리(현 익산)”로 통학을 했습니다.
“고향 역”이란 노래는 “황등역”과 관련이 있는데,
나와 비슷하게 “황등역”에서 “이리”로 통학을 하셨던 제 고등학교 선배 "임종수"님이 작곡하고 "나훈아"씨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친 곡입니다.
그 선배님도 "삼기"라는 곳에서 4km 논길을 걸어 와 "황등역"을 경유 "이리"로 기차통학을 한 추억을 바탕으로 이 곡을 지었다고 합니다.
“익산시”에서는 이 노래를 기념하기 위하여 “황등역”에 코스모스꽃밭을 조성하고 "익산역"에는 노래 비와 함께 5분마다 이 노래를 틀어주고 있습니다.
“비내리는 호남선” 은 “함열역‘과 관련이 있는데,
이승만 자유당 정권시절 야당 대통령 후보가 혜공 “신익희” 선생이었습니다.
이 분이 기차를 타고 “이리”로 대통령 유세를 하러 가던 중 “함열역"에서 뇌출열로 급서를 하고 맙니다.
그분이 내건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슬로건을 저도 어렸을 때 들어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분이 한강 백사장에서 유세를 할 때 지하철도 없어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로는 경이로운 숫자인 30만 명이 운집 하였다고 하니 급서하지 않았다면 한국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의문입니다.
이 노래는 손로원씨가 작사하고 박춘석 작곡했는데,
혜공의 인기에 위기를 느낀 자유당이 선생을 암살 하였다는 풍문과 함께 미망인이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 노래를 지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당연 이 곡은 금지곡이 되었고 혜공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185만표(20.5%)를 무효표로 던짐으로 무언의 항의를 했다 합니다.
선이 굵고 도량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갖춘 혜공을 실은 “이리”행 열차는 "서울'을 떠난지가 오래 되었지만,
워낙 연착이 심한 호남선 열차이다 보니 이직도 “이리역”에 도착을 못 하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고향에 연고가 없어 기차로 " 황등역" "함열역"을 지나칠 때마다 아스라이 보이는 “함라산”의 실루엣이 내 어린 시절 추억을 일깨워주곤 합니다.
아! 내 고향!
첫댓글 노래에 얽힌 사연 잘 보았습니다.
그 시절이 눈에 선합니다.
열차타고 통학하던 시절~
학생들로 넘쳐나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고요.
저는 일로역에서 승차해서
임성.동목포,목포역으로~
목포행 완행열차 ㅎ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일로처녀구만.ㅎ
지금쯤 일로는 양파 캐느라 정신없겠지요.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대전발 영시50분 국수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수 없다나요.
저는 대구에서 깊은 새벽 가락 국수를 먹어 보았어요.
시댁인 경주를 가려면, 부산 가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대구에서 포항가는 통근 기차를 갈아 타야헸거든요.
대전이나 대구나 한 노선인데... 인생 같이 논의해도 되겠지요? ㅎㅎ
@은숙 울산 진짜 먼 곳인데 요즘은 KTX가 있어 금방 갑니다
대전 지하철에서 대전 역에 도착하면 대전발 영시오십분 노래 나옵니다
아마 고딩 저학년 때 인가
한강 백사장에서 유세 하시던 혜공 신익희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 합니다
노래 작사 작곡에 얽힌 사연 잘 읽었어요 ^.^
그렇군요
연세가 나 보다 많으시군요
백제의 문화가 살아있는 곳 익산분이신가보군요..ㅎ
해공 신익희 선생의 "못살겠다..갈아보자"
선거 슬로건으로 대히트작이라는 이 슬로건은
시기적으로 술붕어님이나 저나 당시에 듣지는 못했을 터이고..
아마도 그후의 대선에서.. 오재영이란 분 등등이 유사한 스로건을 내 걸었던거 같은데..그때 들으셧을듯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태어 나기 전 이야기니
조병욱 박사에 얽힌 일화가
노랫말이 되었다 하더군요
호남에서의 선거 참패가 ..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그때 시절이 순간 순간 떠오릅니다 애닮픈 지난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세윌만 흐릅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 군요.
제가 고 3 때 4, 19 혁명이 있었지요.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듣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잊고 있었던 그 때의 추억을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의 힘입니다
한참 머 물 다 갑니다~~감사합니다..
술붕어님~^^
고맙습니다
편안한 오후 되세요
함라산에 가면 고향역 노래에 대해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렇군요
한번 가 봐야지
친구들이 몇 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가지만 예술은 영원합니다
그리운 고향은 언제나 마음속에 머문답니다
특히나 술한잔 마시고 그리운 옛날을 생각할때는 더더욱 그러하지요~~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그 때 그시절,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아들 손을 잡고~ 하는 노래를 개사하여 마지막 구절에
자유당에 꽃이 피고,
민주당에 비가 오네~
아~ 이제 생각 났습니다. "무정천리"란 노래인 것 같네요.
아하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해공 신익희선생의 휘호인 광명정대(光明正大)
역시 해공 신익희선생은 대인 다운 대인입니다
그러게요
급서하지 않았다면
한국 정치사가 요동치지 않았을까요?
어머 그래요
난 전연 모르고 ㅎㅎ
ㅎㅎ
그 사연을 아는 사람 드뭅니다
어렴풋이 알았던 그때의 사연을 이야기를 하여주시어 감사합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