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의 반응이 살인자 한국인 이렇게 나가고 있더군요. 좀더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분명 한국인이란 민족적 특성에 의한 사건은 아닐텐데요. 결국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의 징후로 봐야겠지요.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비극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군요.
아랫글은 대학시절 엘리펀트를 보고 어떤 곳에 보냈던 글입니다. 뉴스를 보자 바로 엘리펀트의
장면들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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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2일. 미국의 콜로라도주 리틀콘의 콜럼바인 고등학교. 이 학교의 재학생이던 에릭과 딜란은 총기를 휴대하고 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평소 '트렌치 코트 마피아'라고 자칭하던 둘은 1000발에 가까운 총알로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사살하고 23명에게 부상을 입힌다. 범행을 저지른 그들은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언론은 두 소년의 범행 동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뚜렷하고 직접적인 범행 동기를 찾아내지 못했다. 평소 소년들이 헤비메탈을 즐겨 왔다든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몰입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는 두 소년의 끔찍하고 이유 없는 범죄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 사건을 단지 소년들의 개인적 인성에 관한 문제가 아닌 미국 사회 전체를 옭아매고 있는 총기 산업과 이에 따르는 폭력 문화의 여파로 분석한 것이 바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었다. 콜럼바인 고교의 비극적 사건을 통해 그간 가려진 미국 총기 문화의 환부를 파헤친 이 다큐멘터리로 무어는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거머쥔다.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를 보기 전에는 위와 같은 사전 지식이 다소 필요하다. 왜냐하면 <엘리펀트> 역시 미국 콜럼바인 십대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거스 반 산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2003년 칸 영화제에서 코엔 형제의 <바톤핑크> 이후로 12년 만에 감독상과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비극적인 총기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려는 의도의 폭로성 다큐멘터리였다면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는 무어 감독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서려 한다.
그는 영화적인 상상력을 이용하여 당시 사건이 있었던 하루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유 없는 살인과 평화로운 일상의 공유라는 역설로 구체화시킨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콜럼바인 고등학교 사건 당시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거스 반 산트 감독은 그 사건을 그대로 고증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유사한 사건을 영화 속에서 보여 주는 방식을 택한다. 제작을 맡은 배우 다이앤 키튼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영화는 투명하고 파란 하늘을 보여 주며 시작한다. 이후 알콜 중독자 아버지를 태우고 등교하는 남학생의 시선부터 시작하여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평화로운 오후의 학교 모습을 보여 준다. 카메라는 특정인에게 머물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평범한 하루를 살고 있는 다양한 학생들에게 옮겨 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운동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학생, 지나가는 잘생긴 남학생들에게 눈길을 주는 여학생, 게이의 분별 방법에 대해 토론하는 학생들. 먹은 것을 다시 토하며 다이어트에 여념 없는 여학생들, 그런 아이들의 왕따에도 묵묵히 도서관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여학생. 그렇게 학생 각 개인들이 보내고 있는 동 시간대의 다른 공간을 유연한 편집으로 입체적으로 화면에 투사한다.
직업 배우가 아닌 실제 재학 중인 학생들을 캐스팅한 거스 반 산트 감독은 영화 속의 대사 역시 그네들에게 스스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영화는 인위적인 느낌보다 되레 평범한 고등학교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을 통해 전해져 오는 사실성이 후반 총기 난사와 이어지면서 더욱 묵직한 공포로 다가온다.
영화는 가급적 조명이나 음악 혹은 다양한 카메라 워킹을 배제하고 마치 뉴스 카메라처럼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게임하듯 살인을 저지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비춘다. 그들의 총에 희생되는 학생들 역시 전혀 극적이지 않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보이지 않는 사건의 장본인들은 우리가 지금껏 영화를 통해 보아 왔던 범죄의 현장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 사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벌어졌을 것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폭력은 우리가 오락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극적인 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평온하고 웃음으로 넘치는 순간, 그 일상의 공간 안에서 폭력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엘리펀트>는 고요한 풍경 속에 무심한 듯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 원인은 우리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알 수 없을 것이다. 현대가 잉태한 폭력의 구조적 근본을 성찰하지 않고는 언제든지 같은 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엘리펀트>는 기존 영화들의 관습적인 문제 제기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형식으로 현대 사회의 폭력을 성찰하도록 만든다. 처음 더디게만 느껴지던 상영 시간이 막상 짧게 느껴진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첫댓글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엘리펀트'를 거론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더군요.. 여지껏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네요.
잘 분석해 놓으셨군요. 엘리펀트는 기존의 상업영화들의 영상언어를 해체한 작품입니다. 한 테이크로 광량이 전혀 다른 두 곳을 옮겨다니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죠. 하지만 엘리펀트의 카메라를 조리개값을 아무렇지 않게 바꾸면서 돌아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