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뒤 대구를 찾은 한 외신은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도시”라고 타전했다. 유네스코는 2017년 10월 대구를 음악창의도시로 인정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있고, 일 년 내내 버스킹 공연이 끊이지 않는 도시, 김광석 음악이 흐르는 골목도, 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리는 무대도 그곳에 있다. 마음에 ‘쉼표’가 필요한 날, 음악도시 대구를 찾았다.
365일 버스킹 공연이 열리는 대구
호수바람 불어오는 버스킹의 성지
살랑거리는 밤바람 맞으며 음악에 몸을 맡기기에는 수성못이 제격이다. 수성못에는 호수 둘레를 따라 걷기 좋은 산책로가 나 있다. 2km 남짓 되는 길에는 벚나무터널, 호수 위로 놓인 데크길, 상화동산 등 예쁜 포인트가 이어진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산책길을 걷고 있으면, 하늘을 물들인 노을이 호수에 붉게 번져가는 그림 같은 풍경을 안겨준다. 노을이 쓰러져가는 시간이 되면 바통을 이어받듯 호숫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음악 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자, 바이올린과 기타 반주에 맞추어 달달한 목소리가 윤종신 ‘좋니’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산책 나온 시민과 데이트하는 커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노래에 빠져들었고, 노래 너머 도심의 불빛들은 호수 위에 흔들리고 있었다.
[왼쪽/오른쪽]수성못 노을 풍경 / 밤이 더 아름다운 수성못 둘레길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음악분수쇼가 한창인 수변무대로 걸음을 옮기자 또 다른 공연이 한창이다. 가야금과 퉁소와 드럼이 어우러진 퓨전 국악공연이다. 수성못에는 평일, 주말에 상관없이 버스킹이 열린다. 1인 버스킹부터 밴드, 통기타, 댄스 공연까지 다양해 버스킹의 매력에 흠뻑 젖게 해준다. 버스킹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공연도 종종 열려 볼거리를 더한다.
호수에 비친 불빛과 어우러진 버스킹 공연
[왼쪽/오른쪽]수성못은 1인 버스킹부터 밴드, 댄스 공연까지 버스킹의 성지다. / 분수쇼가 펼쳐지는 수변무대 공연
대한민국 대표 야시장의 축제 같은 공연
서문시장 야시장의 거리공연은 조금 색다르다. 시끌벅적한 시장이라는 장소가 주는 분위기에 후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먹거리가 흥을 돋운다. 여기에 다양한 예술공연이 밤늦도록 펼쳐지니 걷고, 먹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더없이 좋다.
서문시장 야시장에는 80개나 되는 노란 매대가 줄줄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홍수 같은 사람들 틈에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어떤 이는 어깨까지 들썩인다. ‘둠칫둠칫 두둠칫~’ 신나는 음악이 들려오는 덕분인 듯했다.
어둠과 함께 시작되는 서문시장 야시장

먹거리, 즐길 거리 가득한 대한민국 대표 야시장
야시장 한가운데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다. 공연장에는 신명 나는 힙합 음악과 함께 춤꾼들의 춤이 한창이었다. 스트리트 댄서들이 배틀을 진행 중이었는데, 단순한 길거리 댄스가 아닌 수준 높은 무대였다. 화려한 의상과 화끈한 춤, 신명 나는 음악에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서문시장 야시장에는 매일매일 다양한 버스킹 공연이 열린다. 힙합댄스는 물론 국악 공연까지 하루도 쉬지 않는다. 돈 주고도 아깝지 않은 공연을 입장료도 없이 시장에서 볼 수 있다니 과연 음악창조도시 대구답다. 노을지는 호수에서의 선율부터 시끌벅적한 시장에서의 흥겨운 힙합까지 대구의 밤은 음악과 함께 흥이 솟는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음악에 묻혀 있다 보면 절로 가벼워진다.
[왼쪽/오른쪽]힙합댄스부터 국악 공연까지 다양한 버스킹이 매일매일 펼쳐진다. / 먹방에 공연까지 야시장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
일 년 내내 음악이 흐르는 도시, 대구
거리 공연이 아니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가수 김광석을 추모하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도 버스킹이 펼쳐진다.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도 있다.

[왼쪽/오른쪽]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됐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어온 대구 사문진나루터
국내 최초로 문을 연 클래식 음악 감상실 ‘녹향’은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린다고 타전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1946년 고 이창수 선생이 향촌동 자택에 가지고 있던 레코드판 500여 장과 축음기 1대로 고전음악 감상실인 ‘녹향’을 열었다. 6·25전쟁으로 대구에 피란 온 예술가들이 모이던 사랑방이 되었고, 양명문 시인의 ‘명태’가 탄생한 현장이 되기도 했다.
향촌문화관 지하 1층에 있는 녹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클래식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다. 은은한 조명과 예스러운 소파에 몸을 맡기고 앉자마자 이내 음악에 빨려든다. K-pop에 익숙한 귀에도 클래식은 낯설지 않고, 금세 푸근하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오히려 도시 소음, 직장 상사의 호통 같은 시끄러운 일상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
음악감상실 곳곳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DJ실 벽면을 가득 메운 LP판은 대부분 40~70년 된 것들이다. 녹향 오픈 때 사용한 나무상자 축음기도 눈길을 끈다. 신청곡도 받는다. 현재는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만 고전음악과 오페라를 들려주고 그 외 시간은 팝송과 영화음악을 들려준다. 녹향 위층으로는 향촌동의 옛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 향촌문화관이다. 향촌문화관 입장권만 있으면 녹향의 음악까지 누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참고로 이 건물에는 대구문학관도 있어 일거삼득의 기회다.

[왼쪽/오른쪽]LP판으로 가득한 우리나라 제1호 고전음악 감상실 ‘녹향’ / 1930년에 생산된 녹향의 축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