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월은 무심하게도 2012년 8월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있는 역사의 또 한축의 분수령이 되는 해로 역사에 기록되어질 것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때였던 1987년도 투표권도 없었을 때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아니 대통령선거가 있기 전에 6월항쟁이 있었는데 철모르는 1학년때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구호를 내걸고 선배들 뒤꽁무니나 쫒아다니던 내가 벌써 45살의 중년이 되어 있음에 한편으로 참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간 나는 25년여간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까?
잠사 상념에 잠겨서 지난 세월을 회상해보면 딱 요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먹고사니즘]이요, 둘째는 [부채의식]이다.
즉, 집안에 학비를 낼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4년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신청했던 ROTC4년 장학생이 1학년 2학기에 떠억하니 합격을 해서 그럭저럭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다른 6년4개월의 장교로서의 의무복무의 군대생활과 전역후 치열하게 나의 생존을 늘 엄습해왔던 [먹고사니즘]과의 싸움, 그리고 마음의 [부채의식] 때문에 2000년도부터 시작했던 [하이에나]라는 필명의 인터넷네티즌생활로부터 시작되어 2002년에 노사모, 개혁당원, 열린우리당원, 국민참여당원, 통합진보당원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름 [먹고사니즘]과 [부채의식]을 갚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면서 45살의 중년이 되었다.
그런의미에서 지난 25년의 세월을 회고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부채의식에 대한 내 스스로의 삶의 궤적에서 만난 정치인들에 대한 소회를 적어보고자 한다.
1. 김대중의 운명
사실 정치인 김대중은 내가 87년도 대학 1학년때 우연찮게 연세대학교에서 그의 연설을 듣게 되면서부터 난 그의 팬이 되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백발의 섞인 김대중의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던 구구절절한 민주화에 대한 그의 신념을 연설로 듣고 있노라면 그 어느누구도 매료되지 않을 군중은 없었다.
그 이후 보라매공원에서, 여의도 공원에서 그가 참석하는 대규모군중집회라면 가급적 찾아다니면서 그의 연설을 듣고 열광하는 나의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당시 김영삼도 민주화의 양대산맥이라고 하여 평가를 높게 받고 있었으나 김영삼은 그닥 나에게 깊은 신뢰로 다가오지 못했던 점을 보면 나중에 변절한 김영삼 때문에 나의 사람보는 안목에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었던 적도 있다.
결국, 김대중은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이 되었고, 김영삼이 초래한 IMF구제금융위기를 기적처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2002년 월드컵이 4강에 이르는 전국민의 환희의 도가니속에서도 아들들의 비리 때문에 정작 김대중 그는 전혀 기뻐할 수 만은 없었던 처지에 있었던 측면 때문에 그 당시 유행했던 동영상 [우울한대통령]을 보면서 남모르게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김대중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영원한 대부였던 것 만큼은 지울 수 없는 역사의 기록으로, 나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우리나라의 제1대 대통령이다.
2. 노무현의 운명
내가 정치인 노무현을 만난 것은 2002년 국민참여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4월인가 5월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때 나의 정치적운명(!)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때 작은 개인회사에 다니면서 정말로 열정적으로 노사모활동을 했었던 것 같다. 벌써 10년전의 일이다.
정치인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은 지켜보변 볼 수록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매력을 가진 거짓없는 정치인, 사람냄새나는 참으로 괜찮은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단 한번도 난 그에 대한 신뢰를 버린적이 없었다.
비록 참여정부 5년동안 같이 돌을 맞으면서 같이 아팠지만, 지난 2009년 그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나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게 만들었다. 난 그 이후로 지금도 노란색만 보면 지나가다가도 발걸음을 멈짓하고 노무현, 그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그 아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사람이다.
정치인 노무현, 그는 16대대통령이면서 나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도 같은 아니 어쩌면 아버지보다 더 나를 슬프게 했던 내가 정말로 존경하는 정치인, 사람.....노무현이다.
비록 그가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더러 진보적성향의 많은 분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주었더 할 지라도 나는 정치인 노무현, 인간 노무현은 그 당시의 상황에 맞서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주저없이 나의 모든 것을 걸수 있을 정도로 노무현 그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노무현, 그는 나에게 있어서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이다.
3.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나는 그를 아직 잘 모른다. 솔직히 그가 쓴 [운명]을 읽어 보았지만 김대중에게서, 노무현에게서 느꼈던 그 열정을 나에게서 불러일으키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차라리 모 방송프로그램의 힐링캠프에 나와서 보여준 모습이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의 정치적 식견과 사람됨됨이는 뭐 소탈하고,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것 등등이 노무현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인 문재인이라고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정도의 믿음은 당연히 가지고 있지만 난 아직 그를 내 가슴속에서 우러나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참여경선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후원금을 내고 할 정도의 열정은 솔직하게 잘 생겨나지 않는다.
정치인 문재인은 [운명]이란 저서에 다음과 같이 책 겉페이지에 기록하였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그런 것 같다.
노무현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여러사람의 정치적상황을 역시 갑작스럽게 변경시켜 놓았다. 사실상의 정치적사망선고를 받았던 [친노정치인]과 진보적성향의 정치인, 정당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거나 오히려 개인적, 정당적 입장에서 보면 부활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한 성공의 길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시혜를 입은 정치인은 누가 뭐래도 이광전전 강원도지사, 안희정충남도지사, 김두관전경남도지사, 그리고 이해찬대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재인후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문재인후보의 경우는 본인이 정치의 길로 안들어서고 싶었지만 본인의 말대로 [운명]처럼 정치의 길로 발을 딛어서 지금 민주통합당의 유력한 대통령후보자리를 놓고 경선하고 있다.
정치인 문재인, 그는 지금 민주통합당의 대통령후보에 가장 근접한 자리를 점하고 있지만 설사 후보자리를 꿰찬다고 하더라도 그의 앞길이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재인 그가 넘어서야 할 고비는 그 이후에 치루어야 할 안철수와의 야권단일후보 경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안철수라는 정치지망생을 나는 거의 알지를 못한다. 아니 그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 사실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각종 인터넷사이트에서 그와 관련된 기사, 그리고 블로그 등을 통해서 그에 관련된 각종 주장들을 면밀하게 나름 살펴보았지만 나는 ‘안철수’에 대하여 그닥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그는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의 상식적인 삶을 살아 온 사람은 아니기에 향후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어떤 정치를 어떻게 펼칠 지 예측이 불가하기에 난 전혀 기대감이 들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2012년 제18대 대통령은 예측가능한 문재인이 되면 그나마 최선의 선택과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정도이지만, 나중에 혹시 절박감 때문에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어쩌면 조금은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념을 가지고 그의 정치적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정도로 문재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4. 유시민의 운명, 아니 숙명
정치인 유시민,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난 지난 2002년 노무현후보가 후단협에게 빽태클을 당하고 나무에 올라가있는 상태로 노무현후보를 낙마시키려고 밑에서 나무를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돕기 위해 잘나가던 칼럼니스트를 때려치우고 화염병을 들고 뛰어든 심정으로 노무현후보를 지지하였을 때의 강렬한 그의 육성을 통해서였다.
그 이후 개혁당을 창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참하였고, 그와 관련된 각정 서적, 인터뷰기사, 그리고 수차례의 공적인자리에서의 만남 등을 통한 내가 본 유시민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도전적이고, 순수하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의 느낌으로 다가왔다면 유시민 그는 나에게 큰형과의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시민은 나의 큰형과 동갑내기이다.
내가 본 정치인 유시민은 지금까지 ‘자기밥그릇’을 단 한번도 챙기는 적이 없는 제1대 바보 노무현과 더불어 그에 버금가는 제2대 바보정치인이 바로 ‘유시민’이다.
유시민, 참 내가 생각해도 참 바보같다. 아니 어쩌면 그는 진짜 바보는 아닐까? .
내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읽어 보았을 때 난 그 속에서 그의 수려한 글솜씨가 아닌, 그의 박학다식함이 아닌 [참으로 정의로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순간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가 20대 초반의 군대를 갔다 온 이후니까 약 30년은 되었던 것 같은데.............
어라?
그 열정을 30년이 지나도 하나도 변하지 않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순수하게 도전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니 그에 대하여 참으로 경이롭다는 표현을 안쓸 수가 없다.
80년대에 서울대출신으로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는 어쩌면 권력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었는지 모른다. 결과론적으로 그는 국회의원 2번과 보번복지부장관을 했지만 그것은 그가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심없이 행한 행동에 대한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도출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왜냐 하면 지금껏 내가 10년동안을 그와 함께 같은 정당을 하면서 그의 기자회견, 강연, 그의 각종 정치적행보를 보면 그가 권력욕이 있었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한 정치적행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정치에 입문을 하고 난 이후 지금껏 정치적인 권력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행보해온 정치적인 의사결정사례를 몇 가지만 회고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혁당을 만든 것.
=> 만약 그가 권력욕심이 있었다면 별 가능성도 없는 군소정당인 개혁당을 만들지 않고 민주당에 바로 입당을 했을 것이다.
둘째, 보건복지부장관할 때 연금개혁을 위해 자신의 사직서를 들고 노대통령에게 제시하면서 협상을 해서 결국 자신은 사퇴하고 연금개혁법안을 성사시켰다.
셋째, 그는 자신의 말대로 ‘정치인’이라는 것을 노무현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자신도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종 정치인들과 사안에 대하여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고 각을 세웠기 때문에 ‘까칠함’의 대명사로 종종 불리우기도 한다.
넷째, 대통합민주신당의 이름으로 대선을 치르고 난 다음에 그는 대통합신당을 탈당하였다.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이 대통합민주신당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가 노무현대통령의 서거 후 그 동정효과로 도지사 등등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다섯째, 노무현효과로 민주당이 주가를 올리고, 친노정치인이 상한가를 칠 때 유시민 그는 야인의 생활로 있다가 이재정, 이병완, 천호선, 권태홍, 박무 등이 국민참여당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합류를 권했을 때 그는 어쩌면 가장 따뜻할 수도 있었던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 흔쾌히 국민참여당에 입당을 하였고, 나중에 당대표를 기꺼이 수락하였다.
여섯째, 올해 총선이 있기 전에 문성근 등이 주도하는 ‘국민의 명령’이 따뜻한 민주당의 품속으로 뛰어들 때 그는 야권의 가장 높은 대선후보지지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민주노동당, 새진보통합연대 등과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노력해서 내가 생각하는 한 최초로 주창했던 [야권연대, 야권단일화]를 이끌어 내서 각종 선거에서 야권이 그나마 선전을 하게 만들었던 보이는 보이지 않는 주역이 되었다.
일곱째, 지난 4월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3주체중의 하나였던 유시민은 통합진보당의 패권파들의 갖은 패악질에도 불구하고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비례대표 12번을 자청하여 통합진보당의 13석국회의원을 만들어 내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렇듯 지난 10년간 유시민이 걸어온 정치인의 길은 따뜻한 양지를 쫒지 않는 한없이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낮추는 곳으로 집중되어 있다.
사실상, 유시민은 그동안 얻은 것 보다는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정치인 유시민’이 되어 버린 결과로 나타났다.
...........
과연 유시민은 거의 모든 것을 잃었을까?
정치인 유시민은 왜 이렇게 일반 정치인 답지 않게 바보(!)스러운 길을 걸어 온 것일까?
이쯤에서 유시민의 운명, 아니 숙명을 이야기하려 한다.
김대중이 지역적차별속에 민주화의 초석을 닦아 놓고 통일을 위한 대통령이었다면, 노무현은 그 초석위에 기반을 든든하게 구축하면서 건물의 뼈대 정도와 지붕 정도만 얹어 놓은 대통령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중간에 공사가 중단이 돼서 건물에 비가 새고 온갖 삯풍이 몰아쳐서 다시 뼈대를 올리고 지붕을 개보수하는 역할은 어쩌면 문재인에게 다시 지워진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유시민에게 주어진 숙명은 무엇일까?
나는 유시민이 기록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어 보면서 노무현이 꿈꾸었던 나라, 민족, 진보의 미래를 분명히 보게 되었다.
결단코 말하건데, 유시민은 노무현대통령의 자서전을 정리하면서 아마도 장장 6개월여동안 칩거하면서 숱하게 노무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서 자신의 삶 또한 그에 투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유시민이 저술하고 있는 책 제목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던데 그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자고로, 일찍이 공자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지학:志學), 서른 살에 섰으며(이립:而立),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불혹:不惑),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지천명:知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이순:耳順),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종심:從心)
유시민은 1959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54세이다.
즉, 공자가 말했듯이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나이와 연륜으로써 유시민 본인이 지금 저술하고 있는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제목과도 같이 하늘 뜻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가다듬으며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유시민에게 주어진 숙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분단된 조국에서 기인된 남북간의 갈등
둘째, 호남, 영남간의 지역주의에 따른 갈등
셋째, 보수, 중도, 진보 등으로 갈려 있는 이념간의 갈등
넷째, 진흙탕과도 같은 패권적, 구태의연한 정치적 후진성에 대한 갈등
다섯째, 경제의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에 대한 구조적인 심화가능성에 대한 갈등
.......... 기타 등등 너무나도 많아 더 이상 언급할 수가 없을 정도임.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평생에 걸쳐 노력해서 많은 진전을 가져왔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너무나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상기의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어떤 정치인이 사심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 이행가능성을 기초로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해왔는지를 기준으로 ‘정치인 유시민’을 주목하고 있다.
물론, ‘정치인 유시민’이 메시아가 아니듯이 상기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님을 밝혀둔다. 그러나 유시민만큼 현실적 실현가능성을 전제로하여 상기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온몸을 부딛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또한, 유시민은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의 한계를 절감하는 한편 자신의 이름보다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이 목표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보의 한축을 구성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이 더 이상 진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거나 오히려 범민주진보세력의 이름으로 정권교체를 하는 것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뻔한 상황에 의한 역사에 죄를 짓는 최악의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국면으로의 전환이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유시민의 숙명은 노무현대통령께서 가시고자 했으나 가시지 못했던 진보의 재구성을 통한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대중적진보정당을 건설하여 명실상부한 제1단계로서 제3세력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궁극적으로 나아가서는 대중적진보정당이 제1정당이 되어 집권을 한다면 상기의 모든 문제점들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는 전제하여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어 대중적진보정당건설의 험난한 길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5년후 또는 10년 후에 그 과정에서 주어질 수도 있는 ‘대통령 유시민’은 사실상 목표과 아니라 과정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밝혀 둔다.
아메리카노 마신다고 욕하는 인간. 참 그런 경직됨으로 어찌 정치를 한다고 . 그럼 미일의 흔적이 전혀 없는 무인도 가서 너네들만의 당을 만들고 대통령을 만드시든지.내가 유시민 비서관이면 회의하면서 말안통할 때 받는 스트레스 해소시켜 드리려고 자비로라도 사다 드리것다. 몰랐냐. 유시민이 바리스타라는 걸. 별 꼴갑. 너네들이나 잘해. 받는 월급으로 노동자들한테 그냔 갖다 주시던가. 노동자도 자유롭게 편한히 아메리카노 마실 수 있는 여유로운 휴식이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이나 하셔. 진짜 그 기사 보고 커피마니아인 내가 엄청 열받네. 나, 맛있는 커피 마시러 강릉 까지 가는 비정규직 노동잔데. 날 위해 뭘 해주실까나
첫댓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ㅠㅠ 아...유시민...
참 좋은 글입니다!
어쩜 딱 제맘이네요...
노통의 지지자였음이 늘 자랑스러웠듯
첨맘님 지지자임이 언제나 자랑스럽습니다. 힘내시길.
아메리카노 마신다고 욕하는 인간. 참 그런 경직됨으로 어찌 정치를 한다고 . 그럼 미일의 흔적이 전혀 없는 무인도 가서 너네들만의 당을 만들고 대통령을 만드시든지.내가 유시민 비서관이면 회의하면서 말안통할 때 받는 스트레스 해소시켜 드리려고 자비로라도 사다 드리것다. 몰랐냐. 유시민이 바리스타라는 걸. 별 꼴갑. 너네들이나 잘해. 받는 월급으로 노동자들한테 그냔 갖다 주시던가. 노동자도 자유롭게 편한히 아메리카노 마실 수 있는 여유로운 휴식이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이나 하셔. 진짜 그 기사 보고 커피마니아인 내가 엄청 열받네. 나, 맛있는 커피 마시러 강릉 까지 가는 비정규직 노동잔데. 날 위해 뭘 해주실까나
유시민님만생각하면 맘이 아려옵니다ㅜㅜ
유시민님 너무 가슴아파요ㅠㅠ 너무좋은데
평생 떨거지일듯.. 쏘리 난 유시민씨가 아무리봐도 별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