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각 고문궁체 기행』 서예문인화 2017, 5월호 연재 1회

[계향묵로]

『장서각 고문궁체 기행』 서예문인화 2017, 5월호 연재 1회
『장서각 고문궁체 기행』 연재에 즈음하여
한글서예의 명칭부터 재고하자는 움직임이 마치 문예부흥이나 하듯 한글 궁체의 원리를 바닥에서 부터 재고(再考)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요즈음, 한글서예계가 캘리그라피의 등장으로 모호해진 정체성을 되찾으려는지 몸부림치는 양이 적극적이다.
차제(此際)가 이러한데, 본 연재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고려하게 된다.
컴퓨터의 일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하마 이십 여 년은 더 오래 전부터 서예계 일각에서는 서예의 전통성 퇴화에 맞물린 서예인구 감소를 우려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한낱 기우였음을 증명하는지 오히려 인구 비례로 보아 더 많은 서예인구증가의 현상을 보게 되고 특히 한글서예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관심에 필자도 적이 놀랍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필자의 궁체사랑과 관심은 붓을 들고 전문가의 길을 나선 80년대 초, 장서각을 드나들면서 시작된 일이 되었으니 당시는 대중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던 수장고의 장서가 마이크로화 작업으로 분주하던 때였다.
 서실을 운영하고 지도하면서 틈틈이 여러 해에 걸쳐 수집하기 시작한 궁체자료가 웬만한 표본을 망라하기에 이르러 후로는 한글의 다양한 서체의 아름다움에 빠져 모습(模習), 내지는 궁체학습자들의 고문이해를 돕고자하여 여러 종의 완미한 서체를 장르별로 선정, 현대어로 바꾸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최초로 궁체백선 10권이 1976년에 발행되었고 이듬해 산성일기 전권이 현대어로 옮겨져 주석을 달아 발행하였다.
 그러나 꾸준한 자료의 증가와 폭 넓은 이해를 추가하여 『궁체금낭』 5권을 펴내어 정선된 278선을 공개했다. 『궁체금낭』278선은 가급적 외부에서 들어온 자료가 아닌 순수 궁중자료 중에서 엄선한 궁체로 여기에는 많은 민체 스타일의 진흘림이 포함되어있으니 실로 궁체의 다양한 서체보고라 말 아니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 궁체의 관심과 사랑이 이제 캘리그라피라는 더 폭 넓은 장르로 확대되어가는 마당에서 우리글의 전통을 살리고 정체성을 고수해야겠다는 의지 내지는 캘리그라피의 근본적 이해를 위하여서도 궁중서체의 오리지널한 유형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여겨 본 잡지에 연재하기에 이른 것이다.
 궁체학습자와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사람들의 우리글 바탕을 일깨워주고 더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캘리그라피 보급과 확대를 유도하는 것이 전통적인 궁체 이해자들의 선구적 사명이 아닌가하여 궁체의 다양한 면모 278선이 수년간 본지에 연재하기로 마음먹기에 이른 것이다.
 장서각의 서고를 이해하기 전 우리의 관심은 거기에 보관된 궁체의 다양한 자료에 있다. 때문에 장서각에 소장되기 전의 낙선재에서의 면모와 그 자료가 어떻게 오늘날 장서각 까지 오기되었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한 그 보관된 자료의 경개가 궁금할 것이다.

본 연작물은 한글서체의 단순 내력이라 서예사를 가술하려는 것이 아니다.
훈민정음 반포로부터 시작되는 한글(언문)의 역사는 구한말 까지 이르는 궁체의 완성미를 이룬 자료까지 다루어야 하나 본 연재물은 한글 서체사에 코드를 맞춘 것이 아니라 궁체학습자의 필요요건에 코드를 맞춘 것이기 때문에 궁중체인 정서체와 흘림체 및 서간체의 대체적인 인식의 정도에 따라 순서를 자료의 가나다 순열에 배열 하였다.
따라서 본 연재물은 정서체나 흘림체를 우선으로 하여 점차 법도의 완성도를 벗어나 궁중서체의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민체의 초기 단계에 까지 이르는 궁중서체의 나열이며 본 연재물에는 필사체를 중심으로 하였으므로 판본체는 근본적으로 배제하여 연재할 예정이다.

이런 연재체재는 필자의 편저술 “궁체금낭”의 배열순에 따른 것으로 본서는 궁체의 이론서가 아니므로 각 자료마다 서법이론을 전개할 것은 아니지만 매회 등장하는 서체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간단한 서법멘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낙선재와 장서각”의 존재 본질부터 이해하고 첫 회의 자료 “공문도통(孔門道統)”을 완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선재와 장서각
 보물 제1764호 樂善齋(낙선재)는 1847년(헌종 13)에 중건된 궁궐 내부에 단청을 하지 않은 사대부 주택형식의 소박한 건축물이다.
 낙선재 상량문(上樑文)이 헌종의 문집 원헌고(元軒稿)에 수록되어 있는 상량문에 낙선재의 이름의 유래와 함께 낙선재는 궁내에 있는 건물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도 나타나 있는데 순(舜)임금이 선(善)을 보면 마치 ‘기뻐 황하가 쏟아지는 듯하였다’고 했고. … 단청을 하지 않음은 규모를 과도히 않기 위함이요, 서까래를 화려하게 놓지 않음은 소박함을 앞세우는 뜻을 보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 함으로 ’樂善‘이 태평성대를 이룬 순(舜) 임금이 선(善)을 ’즐거워한다’는 고사에 뜻을 담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헌종도 순임금의 뜻을 쫒아 화려함 보다는 소박함을 내세우고자 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정조가 즉위 후 규장각을 건립하는데, 규장각 2층은 많은 책과 선왕의 어진을 보관하는 주합루(宙合樓)였다.
 정조는 또한 1782년(정조 6)에 세자를 위한 공간으로 중희당을 건립하고 바로 연접한 곳에 주합루를 모방한 소주합루(小宙合樓: 헌종 때 승화루로 개칭)를 세운다. 그래서 헌종은 부친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소주합루 옆에 낙선재를 세운 것이고 이것이 낙선재의 입지를 나타낸 헌종의 소이(所以)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후 소주합루의 명칭이 승화루로 개칭하면서 선조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여 실제로 낙선재 영역인 승화루에 많은 서책을 보관했는데 거기엔 책이 총 3,742책, 서화가 총 665점이 당시에 보관 되었다.

              

낙선재 전경

                  낙선재 현판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있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가 이어져 있으며, 뒤편으로 화원과 상량정, 한정당, 취운정 등의 수십개 부석 건축물들이 위치해 있다.

 낙선재는 원래 처음에는 세자를 위한 공간으로 건설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국상을 당한 왕후들이 소복으로 은거하던 곳이기도 하였고 1756년(영조 32년)때 화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는 영조(英祖)대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847년(헌종 13년)에 중건되었는데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해 중건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종(高宗)대에 들어와서는 고종 21년 갑신정변 이후 고종이 낙선재를 집무실로 정하고 대신들과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후 후궁인 경빈 김씨와 대왕대비 순원왕후와도 관련이 깊은 공간이었다.
 근현  대에 들어와서는 마지막 황비 순정효황후,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고종 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 등 황실의 마지막 여인들이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잘 알려졌고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친왕 이은(李垠)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여기에 살았다.

 낙선재가 우리 서예인들 특히 궁체 애호가들에게 의미가 깊은 것은 아무래도 여기에 소장된 방대한 언서자료, 즉 특히 궁체소설이니 경사, 잡류의 언문자료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낙선재 경내의 승화루(承華樓)에 많은 서책을 보관했다.

당시만 해도 보관된 책이 총 <승화루서목>에 4,555점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서화가 918점(3,742책/서화 665점이라는 자료도 있음)에 이른다 했다.

 이는 규장각을 건립한 정조를 본받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낙선재에는 많은 책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주로 소설책이었다.

 내전(內殿)이 직접 읽기도 했고, 혹은 나인(內人)들로 하여금 낭독하게도 하였다.

 혹 책이 낡아 더러워지고 파손되면 나인이나 내시들이 다시 필사(筆寫)하도록 하여 보존하였다.

그러나 낙선재 도서의 역사는 장서각이 출현하므로 다른 양상을 맞게 된다. 조선왕실이 남긴 문화재를 소장해온 장서각의 역사는 이미 100년에 이르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 장서각

          한국학중앙연구원 현재 장서각
 조선의 국운이 쇠퇴하면서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한 이듬해인 1908년에 대한제국의 황실을 회복하고 황실도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규장각(奎章閣), 홍문관(弘文館), 집옥재(集玉齋), 시강원(侍講院) 등에 있던 서적을 인수관(仁壽館)으로 옮기고,  ‘제실도서목록’이라는 목록도 간행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모든 자료를 다시 편성, 조선왕실 관련 기관을 이왕직이라는 지위로 낮추었다.
 왕실 자료는 창덕궁의 선원전에 임시로 수장하고 이 시설을 ‘이왕직서무계도서실(李王職庶務係圖書室)이라고 하였는데, 이왕직은 1911년에 무주의 적상산사고본을 인수하고, 1914년에는 각 군영의 등록 자료를 인수하였는데, 수량이 늘어나자 1915년 창경궁의 낙선재 동남쪽에 서고를 새로 짓고 옮긴다.

1918년 여기에 ‘장서각(藏書閣)’ 이라는 현판을 걸었는데, 이때부터 장서각이라는 고유명사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후 장서각은 한국전쟁 때 적상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을 북한이 반출해 가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1950년에는 다행이 낙선재의 한글소설류가, 1964년에는 칠궁(七宮)의 소장 자료가 장서각으로 이관되었으며 1969년에는 봉모당(奉謨堂) 보각(寶閣)자료가, 1970년에는 종묘(宗廟)와 각 왕릉의 능재실(陵齋室) 자료가 이관되는 등 장서각은 조선왕실의 주요 자료를 소장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1981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현재 궁중 낙선재 소설본은 99종 2215책을 비롯하여 총 462종 2658책이 보관되어있다.

1.공문도통<孔門道統>單/문성궁몽유록 單
작자,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로 1책(59장)이다. 확실한 저작 및 필사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의 작품인 듯하다.

장서각 본에는, 표제가 한자로 ‘孔門道統(공문도통)’이라고 쓰여 있는데, 여기에는 ＜공문도통＞ 이외에 전체 분량의 반이 넘는 문성궁몽유록(文聖宮夢遊錄)이 합철(合綴)되어 있다.

 내용의 대체적인 개요는 공자(孔子)와 제자들의 언행을 사실성에 바탕을 두고, 다른 내용을 가미하여 기술하고 있다.

 공자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8분의 1 가량에서 주자(朱子)·자사(子思)·맹자(孟子)·안자(顔子) 등의 행적을 간략하게 특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공문도통

공문도통 확대부분
 공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즉 무너져 가는 주실(周室)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실추되어가는 도덕과 인륜을
 만회하며 오랑캐의 풍습을 배척하려고 여러 주변나라의 제후들을 유세한다.
 이 책에서는 공자가 유세하는 도중 사실에 나와 있지 않은 고사도 다소 보이는데 이는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 위주로 전기적 얘기를 쓰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내용면에서 공자의 행적을 소개함에 있어서 공자의 범상치 않은 인간형과 도덕, 인륜을 바로잡으려고 애써 부각시킨 점은 그래도 장자가 도척에게 벌벌 떨다가 기어 나오는 겁쟁이 공자를 그린 우화보다는 낫다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자는 여러 제후를 방문하고 자신의 정치관을 피력하려 노력하였으나 관철되지 않음을 몹시 안타깝게 표현하고 있는데 만일 공자가 때를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본 자료는 단권이지만 그 분량 중에도 절반이나 되는 두 번째 자료는 문성궁몽유록(文成宮夢遊錄)이다.

 여기에는 공자가 문성왕으로 추존되어 맹자, 안자. 자사, 염백우, 염구 등의 제자를 신하로 거느리며 공자가 생전에 펴 보지 못한 정치관을 펴 보인다는 가상의 스토리다.

 이는 공문도통에서 피력한 아쉬움을 상쇄해 보고자 한 노력이다.

 글씨는 흘림 궁체이나 수준급에 들지 않는 정도의 낮은 수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궁체의 원형을 잃지 않으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고전소설의 한 형태로 몽유(夢遊)의 형태를 빌려서 구성된 소설이 아주 많다. 주인공이 꿈에 이계(異界)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한끝에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서각(藏書閣) 소장의 <문성궁몽유록(文成宮夢遊錄)>이 이와 일치한다.

중원(中原)에 사는 유생이 공자(孔子)와 같은 대현(大賢)이 뜻을 얻지 못하고 천하를 방황한 것을 원망하고 한탄하다가, 청의동자(青衣童子)의 안내를 받아 승천하여 옥황(玉皇)에게 질책을 받고 공자가 문성왕으로 있는 사수(泗水)의 소국(素國)으로 인도되어 간다.

 이 나라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 역대의 유학자들과 우리나라 역대의 유학자들 11명이 제작기 관직을 맡아 문성왕을 보필하고 있다. 전후 4차의 양(楊) · 묵(墨) · 노(老) · 불(佛)의 침략이 있었으나 맹가(孟軻)를 비롯한 제장이 그때마다 대전(對戰)하여 승전한다.

문성왕은 제신들과 더불어 유도(儒道)를 강론하고 자공(子貢)으로 하여금 역대의 인물을 논평하게 한다.

 끝으로 자공은 문성왕 치세의 소국을 요순(堯舜)과 비견하고, 한유(韓兪)는 당우삼대(唐虞三代)에도 없었던 태평성대라 칭송하였고, 이를 기록하여 인간에 전해야 한다고 하였다.

유생에게 그것을 주어 돌아가게 하니 유생이 그것을 받아가지고 섬돌을 내려오다가 실족하여 꿈을 깬다는 내용이다.

문성궁몽유록

문성궁몽유록 확대본

2.구래공정충직절기<寇萊公貞忠直節記>31권 37책 중 체형이 다른1/5/7/8권을 소개하였음

   구래공충절직절기 권지 31-1

구래공직절기 권지1 확대부분

대송시절을 배경으로 한 국내 창작소설이다.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31권 31책. 국문 필사본이자 흔치 않은 창작소설이지만 배경은 중국이다.
 북송초의 명재상으로서 내국공(萊國公)의 벼슬을 지냈던 구준(寇準)을 주인공으로 삼은 조선시대의 창작소설이다

. ‘구래공정충직절기’는 ‘寇萊公貞忠直節記’와 같이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궁체금낭』의 자료 중 가장 많은 필사유형이 채록된 부분이다.
모두 31권 분량 중 체(體)를 달리하는 자료를 13종이나 추출하였다.
필자가 서로 다른지는 알 수 없으나 조금씩 아니면 전혀 다른 체형으로 쓰거나 아니면 최소한 개성이 다르다.

 이 소설이 ＜명주옥연기합록＞에 그 이름(‘구공졍츙직졀긔’)과 일부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고 낙선재본 중국소설 번역물인 ＜북송연의北宋演義＞에 나오는 양가팔부자(楊家八父子)의 무용담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명주옥연기합록＞보다는 앞서 이루어졌으되 ＜북송연의＞의 번역 보다는 뒤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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