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존 리치의 컬러사진집 ‘1950’
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 수필가
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 수필가
예전에 인천 조병창 관련 책자들을 구입해 준 큰아들로부터 종군기자 존 리치가 촬영한 한국전쟁 컬러 사진집 ‘1950’을 선물 받았다.
표지의 사진은 인적이 없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달구지다. 위에는 피난 살림살이 보따리와 쌀가마가 실려있고 돌쟁이 아이를 안고 있는 소녀가 짐에 기대앉아 있다. 앞에는 흰 저고리에 검은 바지를 걸친 아낙이 힘겹게 끌고 뒤에선 중학생 정도의 소년이 밀며 카메라에 미소 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들은 표지 사진을 보는 순간 6·25둥이인 아빠가 떠올라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한국전쟁 관련 사진은 거의 흑백사진이었으나 이 사진집은 컬러 사진으로 인쇄했다. 머리에 짐을 지고 등에는 아이를 업은 채 폐허로 변한 도심을 걷는 아낙의 뒷모습이 고난해 보인다. 추락한 북한 전투기 잔해에서 노는 소년의 해맑은 모습, 총탄이 할퀴어 누더기가 된 남대문, 연료 보급을 받지 못해 고물로 버려진 소련제 북한 탱크 모습이 처연하다. 활동사진은 아니지만 머릿속은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군용트럭이 드나드는 수원화성 장안문은 불안정한 모습이다. 반면에 독립문은 온전한 상태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새로 징집된 청년들이 어깨띠를 매고 군악대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신병들은 미군사고문단의 감독 아래 M-1 소총 8~9발을 쏴본 후 부대로 배치됐다.
인천상륙작전 전함 아이오와호 16인치 함포 탄 한 발의 가격은 1만 달러로 당시 캐딜락 승용차 한 대 값이었지만 한국의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발사됐다. 우리가 어린 시절 잠자리 비행기라고 부르던 헬리콥터도 한국전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용맹한 혈기로 조국을 지키던 고 백선엽 소장의 젊은 시절 사진은 세월의 무상함을 되짚게 한다.
남침한 북한군에게 마산까지 밀린 국군이 무너져 병력과 보급품이 도착하는 항구도시 부산이 함락됐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9일엔 평양을 탈환했다. 초대 주한미군사령관 워커장군. 그는 한국전 초기에 유엔군 전면 철수가 제기되는 분위기에서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0년 12월 23일 그가 61세로 전사하자 한국 정부는 미군을 위한 휴양시설 호텔을 건립하며 ’워커힐호텔‘이라고 명명했다.
홍콩에 주둔 중이던 영국군 부대 소속 스코틀랜드 분대는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로 연대 행진곡 ’잉글랜드 레이디‘를 연주하며 행진했다. 어느 날 존 리치 기자는 전투에서 팔을 잃은 젊은 병사의 침대 옆에 앉게 됐다. 병사는 병문안 온 동료 부대원에게 “혹시 자네들이 고지를 다시 탈환하게 되면 잃어버린 내 팔을 찾아봐 줘. 내가 제일 아끼는 반지가 그 팔 손가락에 끼어 있거든” 하며 유머로 동료 부대원들을 위로했다.
한국전쟁 당시의 판문점은 초가집이었고 주변엔 끝이 뾰족한 인디언 천막이 임시로 세워져 있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 당시 판문점은 현대식 목조 건물로 변해 있었고 처음으로 기자들의 출입이 허용됐다.
피보디상을 수상한 존 리치는 한국전 발발 당시 미국 INS 통신사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는 3년간 한국전을 취재했고 NBC 뉴스로 옮긴 후 도쿄를 근거지로 10년간 베트남전을 취재했다. RCA의 부회장을 역임한 뒤 은퇴, 부인과 해로하다가 향년 97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전쟁 컬러 사진 기록을 남겨 준 존 리치 기자에게 감사의 묵념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