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시원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뭔가 텅 빌 줄 알았는데
아니다
몇 년간 그냥 걸려있는 옷들을 과감히 골라냈다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외투를 갑자기 두 벌 사게 된 짠딸이 그날 밤으로 마스크를 쓰고 옷방을 정리하더니
대형 쇼핑백 대여섯 개를 꽉 채워 담아놓았다
나도 다음날 아침
마스크를 쓰고 옷방의 옷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퇴직 후
몸에 딱 맞는 정장풍이나 불편한 옷들을 많이 걷어낸 것 같은데
혹시나, 언젠간 입겠지 했지만 몆 년간 간택받지 못하고 쓸쓸히 걸려있던 옷들을 과감히 옷걸이에서 내렸다
가까운 기부처인 '아름다은 가게'로 낑낑대며 싣고 가져갔다
이곳에 가져가면 꼼꼼한 심사를 거치고 통과할 옷들을 골라낸다
오염되거나 좀 낡았다 싶은 옷들은 아예 빼고 갔기에 모두 심사를 통과했다
하이힐구두, 운동화 등은 남편과 내 것 하나씩만 통과했다
옷 120여 점, 외투 10여 점
약 130여 점의 옷이 이곳 매장에 전시되어 누군가에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팔려갈 것이다
해진 곳 없이 깔끔한 옷이니
누군가에겐 필요한 옷이 되겠지
아름다운 가게로 가져간 옷은 기부금으로 정산되고 연말정산에 약간의 도움도 된다고 한다
130 여점이나 발굴해 내었는데
왜 옷방은 별 표가 안 날까?
그만큼 덜어냈으니 여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가득한 옷방
그리고 여전히 외출하려면 입을 게 없는 악순환
옷을 사들이지 말아야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겠지만
봄이 오면 또 화사한 빛깔의 옷들에 눈길이 갈 테고
가을이면 쇼윈도를 장식한 무채색 옷들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가게 안을 기웃거릴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