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樹木이라 하고 그중에 쓸모있는 나무를 材木이라고 한다. 그럼 쓸모없는 나무는 무어라고 할까?
莊子에 나오는 얘기다.
木手의 名人이 제자 하나를 거느리고 材木을 찾아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거대한 아람드리 상수리나무 하나를 만난다. 가지도 잘 뻗어나고 울창하며 그 아래에는 신당(神堂)도 차려져 있었다. 그 나무를 제자가 보기에는 훌륭한 재목감인데도 스승인 목수는 힐끗 곁눈질만 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었다. "와~ 이렇게 좋은 나무는 여태껏 본일이 없다"며 탄성을 질렀지만 모른체하고 걷기만 한다.
제자가 뒤쫓아가 물었다. "왜 저리 좋은 재목을 두고 모르는체 하십니까라고---" 이에 스승은 "바보같으니라구 저 나무는 쓸모없는 巨木이다. 쓸모가 없기에 베임도 당하지 않고 오랜 세월 저렇게 크게 자랄수 있었던거야" 했다는 것이다.
쓸모가 없어 아무도 탐내지 않고 버림 받은채 자라난 나무를 "산목(散木)"이라 한다. 材木의 반대말인 것이다. 材木이라 함은 쓸모있는 아주좋은 나무다. 즉 나무(木)로서 재능(才能)이 있는것이 材木이며 이말을 그대로 사람의 경우에도 전용하여 쓸모있고 재능있는 사람을 재목이니 재목감이니 한다. 그렇다면 散木은 쓸모없고 재능이 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자의 산목론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아주 심오한 진리를 암시해주고 있다.
재목감은 미쳐 크게 자라기도 전에 베임을 당하지만 산목은 방임되어 자라고 싶은대로 자라고 또한 재목은 기껏해야 대들보 아니면 기둥으로 쓰이는등 틀에 박혀 제한된 쓰임새 밖에 안되지만 산목은 짙은 그늘을 만들어 나그네를 쉬게해 주고 또 상수리열매로 다람쥐새들의 먹이가 되어주며 까치며 소쩍새의 깃을 들이게 해주고 신령까지 불러들여 숱한 사람들의 인사까지 받는다.
당장에 쓸모가 있다하여 드러나는 재목처럼 사느니보다 산목처럼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은것처럼 긴눈으로 보면 재목보다 산목의 숨어있는 쓸모가 한결 다양하고 절실함을 알수있게 해 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이처럼 무한한 능력과 개성이 잠재해 있게 마련이다. 무슨 잣대로 평가하여 재목감을 삼으려 하는가?
***수능이니 입학시험이니 하는것 자체가 자라는 樹
--------수능이니 입학시험이니 하는것 자체가 자라는 樹木에는 비할바가 못되는 것이다.----??
‣)---- 영국의 하머튼은 "知的生活"이라는 저서에서 "지능은 땅을 달리는 타조라면 지혜는 하늘을 나는 솔개"로 비유하고 있다. 타조의 '지'는 실용적이지만 땅에서만 달리기에 시야가 좁은 흠이 있다. 솔개의 '지'는 비실용적이지만 하늘을 날기에 시야가 넓다. 지능과 지혜의 차이로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잠재력을 키우고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타조의 다리나 솔개의 날개가 똑같이 중요한데도 오늘날 학교교육은 다리만 길러왔을뿐 날개를 기르지 않은꼴이다.
재능이 곧 재목이라는 등식은 곤란하다. 부모들이 조기교육 열풍에 자기자식 편 드느라 선생님 머리채까지 잡아당기는 요즘 세상에 장자의 산목론은 해열제역할을 할 것이다.
木_林_森! 나무를 심자 가꾸자! "내나무"라 하여 나무를 심고 일생의 꿈을 실어 애지중지 기르기도 한다. 무럭무럭 자라 큰材木, 아니 나라의 기둥 일꾼이 되는 누구나 바라고 바라는 꿈나무인 것이다.
이참에 여념에 전승해 내린 "나무타령"이나 들어 보자요~ "淸明寒食에 나무심자 무슨나무 심을래 --- 십리절반 오리나무_열갑절 스무나무_대낮에도 밤나무_방귀 뀌어 뽕나무_오자마자 가래나무_깔고앉아 구기자나무_거짓없어 참나무_그렇다고 치자나무_칼로 베어 피나무_네편내편 양편나무_입맞추어 쪽나무_양반골에 상나무_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_아무데나 아무나무---"
나무중에 최고는 꿈남요 꿈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백년천년을 산다. 不世出의 人才들은 많다.
우리나라에서 5세 神童이라 불렀던 金時習, 이미 다섯살에 中庸과 大學을 통달했다 하여 장안에 소문이 나자 당시 노정승이요 학자인 허조(許稠)가 일부러 틈을 내어 이 신동을 찾아보고 불러 앉히고서 "나는 이미 쓸모가 없는 몸이니 노(老)자를 넣어 七言絶句를 지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이 신동은 "늙은 나무도 꽃을 피우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老木開花心不老" 하고서 걱정하실것 없나이다 하고 큰절을 했다 한다. 오! 天才로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불면 날고 쥐면 꺼질세라 애지중지 귀엽게만 기른자식! 가르침과 배움이 없으면 어쩌나---? 玉_石이 따로 있는가? 돌을 갈아야 옥이 되거늘---
天才는 큰 材木이 되는가? 옛날 모든 공부를 빈틈없이 잘해서 장원급제하면 그 모두가 정승이 될것 같지만 고려 470년 동안 장원급제해서 정승이 된 사람은 유량(柳亮)과 맹사성(孟思誠) 단 두사람뿐이며 조선조 5백년 동안에도 정인지, 권 남, 최항(崔恒), 홍응(洪應)등 겨우 네사람뿐이었다.
장원급제에 대한 주변의 고정관념이나 지나친 기대때문에 자기 재능을 펴지못한 것이다. (*조선시대 최연소 과거 합격자는 1866(고종3년)13세의 李建昌이고 최고령 합격자는 1890(고종27년) 85세의 정순교(丁洵敎)였다.)
매사에 똑똑하고 영리하여 빈틈없이 완벽하고 허점이나 실수가 없다면 인생의 매력도 세상의 재미도 없지 않을까? *주식을 공개한 Face-book 창업자처럼 부모가 덜 간섭하고 내버려둔 아이들이 세계적 인물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
敎學에 正道가 있을까? 溫故之情으로 거슬러 보자면 孟母三遷之敎니 斷機之戒를 떠올린다. 심지어 孟子는 "옛날에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다---易子之敎"라는 것이다. 자식을 직접 가르치는것은 주관에 치우칠수 있고 객관적이지 못한데서 오는 폐해를 경계한 것이다. 곧 제3자의 입장에서 보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다 보면 욕심이 지나쳐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결국에는 부모 자식간에 情理가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것이 달라진 요즘 세상 눈높이로는 어디까지나 溫故之新일터---? 나무여! 꿈이 있어 꿈나무이더냐---?
***두꺼비의 강의
원매(袁枚)라는 청나라 시인은 어린시절 항주(杭州)에서 보았던 도화사(道化師)이야기를 써 남기고 있다.
**부대 하나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이 도화사가 장터에 판을 벌이고 "두꺼비강의"라는 쇼를 벌인다. 부대를 열면 어미두꺼비와 새끼두꺼비 여덟마리가 따라나와 어미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 앉는다. 도화사가 어미두꺼비에게 "글을 가르치라"고 호령하면 개굴하고 운다. 어미가 개굴하면 여덟마리 새끼가 뒤따라 개굴개굴하고 두번만 복창한다.
이렇게 어미의 개굴 새끼의 개굴개굴이 계속되다가 그중 한마리가 실수로 개굴을 세번 복창한다. 그러면 관중들의 폭소가 일어나고 실수한 새끼두꺼비는 폭소에 놀라 두리번거리며 당황을 한다. 손님들은 당황하는 그 모습을 보고 주저앉아 계속 자지러지게 웃는다.
이 두꺼비의 강의에서 원매는 인생철학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하나의 실수가 없었던들 그 재미가 있었을까---? 세상도 빈틈이 없다면 재미가 있을까---? 빈틈이 없는 인생도 재미있고 행복할까---? 그렇다. 요즘 개그도 그들이 다 망가질수록 웃음이 나오고 재미있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싸이*.빌보드,핫11에 *영국차트3위 *유투브 조회수 2억7천만건을 돌파!,~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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