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陰(추음)
구름낀 가을
김병연
屯裡重陽不記名(둔리중양불기명)
故人書到喜平生(고인서도희평생)
登樓便有登山意(등루편유등산의)
送馬還乘送酒情(성마환승송주정)
病起黃花今歲色(병기황화금세색)
秋深落木異鄕聲(추심락목이향성)
此來相見爲佳節(차래상견위가절)
快上前宵獨月明(쾌상전소독월명)
시골에 살아 중양(重陽)이라는 말도 잊고 있었는데
옛 사람 글에 중양을 대하니 너무도 기쁘구나
다락에 오르니 산에 오를 생각이 드는데
말을 보내니 오히려 술 보낸 정보다 낫더라
앓다가 일어나 보니 노란 국화 한창이요.
가을 깊어 낙엽 지니 마치 별천지 같구나.
또 여기 온 뜻은 아르다운 가을 풍경 보려 함이니
지난 밤 나 홀로 밝은 달 구경했네.
[감상]
중양(重陽)은 음력으로 9월 9일을 뜻한다. 즉, ‘9(九)’라는 숫자는
양(陽)을 뜻하는데 이 ‘九’가 중양(重陽)이라 한다. 이런 좋은 계
절에 필자는 벗님과 함께 이 곳에 와 놀았다면 좋았을 것을, 어
제밤에는 결국 나 혼자 쓸쓸히 달 구경을 하며 보냈다는 외로운
심경을 드러내었다.
[작가소개]
김병연[ 金炳淵 ]
출생-사망 : 1807 ~ 1863
본관 : 안동
호 : 난고
본명 : 병연
속칭 : 김삿갓, 자 : 성심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경기 양주
주요저서 : 《김립시집》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고도 부른다.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하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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