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과보가 고묘함
① 적멸평등
“적멸평등”이란, 곧 이 법신보살이 증득한 적멸평등의 법을 말한다. 이 적멸평등의 법을 증득하였으므로 “평등법신”이라고 부르고, 평등법신 보살이 이를 증득하였으므로 “적멸평등법”이라고 부른다.
“적멸(寂滅)”에 대해 『대지도론』 제74권에 이르기를, “적멸이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모든 번뇌와 희론을 소멸하며, 움직이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며, 걸림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뜻은, 법성의 참된 이치는 부처님에게 있어서도 늘어나지 않고, 중생에게 있어서도 줄어들지 않으며, 깨달음에 있어도 높아지지 않고, 미혹에 있어도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번뇌를 소멸하고, 모든 희론을 여의고 상주하여 걸림이 없다. 견사혹을 모두 끊었기 때문이며, 나와 남의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적멸(寂滅)”이라는 것은, 곧 공성(空性)의 상태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공성의 상태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말씀드리면, 고요히 앉아 염불할 때, 어느 순간 오직 이 한 구절 명호만 있고 다른 생각은 전혀 없이,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만 머무는 상태, 이른바 “심일경성(心一境性)”의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한 구절 명호뿐이고, 그 밖의 다른 생각은 전혀 없으며, 잡념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멈추고 사라진 상태, 이것이 거의 적멸에 가까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 상태에서는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무명(어리석음)도 없고,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분별도 없으며, 원수와 친함, 좋아함과 미워함, 순경과 역경, 기쁨과 분노와 같은 모든 분별이 사라집니다. 항상 마음은 평온하고, 움직임과 고요함 속에서도 한결같으며, 경계가 있든 없든 늘 여여부동합니다. 이는 흔히 말하는 “팔풍이 아무리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데, 팔풍(이익과 쇠함, 비방과 명예, 칭찬과 비난,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설령 어떤 경계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사물이 오면 그대로 나타나고 사라지면 곧 자취가 없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어떤 색깔이든 거울은 그것을 변화시키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적멸의 상태이지요.
그렇다면 “적멸평등”이란 무엇일까요? 팔지 이상의 보살들이 함께 증득하는 평등한 이치의 본체를 말합니다. 이 본체는 『왕생론』에서 말하는 “정심(淨心)·평등법신·적멸평등법성”과 같은 것으로, 하나의 본체에 여러 이름이 붙은 것일 뿐, 그 실체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일체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본성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본성·불성·법성, 그리고 진심·진여·실상·일진법계라고 하는 것은, 비록 이름과 표현은 서로 다르지만 그 내용은 모두 동일하게 마음의 본성, 즉 적멸의 본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설령 부처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 마음의 본성은 늘어나지 않으며, 아직 부처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줄어드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망상과 잡념에 가려져 있어 지금은 단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적멸이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희론(戲論)”이라고 할까요? 바로 의미가 없고, 진리에 어긋나며, 선법을 증진시키지 못하는 말과 논의를 가리킵니다. 희론은 두 가지, 세 가지, 아홉 가지로 나누기도 하지만, 주로 진리에 어긋나는 언설을 가리킵니다.
적멸의 상태에서는 번뇌가 없고, 모든 희론도 여의며, 변하거나 움직이지도 않고, 사라지는 일도 없으며, 항상 자재하여 걸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멸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멸이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모든 번뇌와 희론을 소멸하며, 움직이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며, 걸림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견사혹을 모두 끊었기 때문이며, 나와 남의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견사(見思)”란 곧 견혹과 사혹을 말합니다. 사성제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견혹”이라고 하고, 탐욕·성냄·어리석음·교만과 같은 번뇌를 “사혹”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동시에 탐욕·성냄·어리석음·교만의 번뇌를 모두 끊어 버린 상태를 “견사혹을 모두 끊었다”라고 하지요. 견사혹이 모두 끊어진 사람에게는 더 이상 너와 나, 원수와 친함, 선과 악, 순경과 역경, 사랑과 미움, 기쁨과 분노, 괴로움과 즐거움과 같은 온갖 상대적 분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증득된 경계로,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면 그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아서,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작용도 사라진 경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만 문자와 이치에 의지하여 설명하고 있을 뿐이지만, 아무리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실제의 경계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마치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그 경계를 증득했다면, 『왕생론』에서 말하는 보살의 네 가지 공덕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종이 한 장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한 생각, 한 곳, 한 순간에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온갖 공양을 올리고, 온갖 모습으로 나타나며, 온갖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