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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 Byatt의 "Possession"을 헌책으로 구해 놓은 것이 있다. $2.00 표시의 스티커가 아직도 붙어 있다. 무엇인가 읽으려고 책장을 보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꺼내 보았다.
시작에 Nathaniel Hawthorne의 글이 인용이 되어 있고, 거기서 Romance와 Novel의 차이점이 제시된다. Brynt는 자신의 책 제목에 "A Romance"라는 말을 붙여 놓고 있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자유분방하게 쓰인 공상소설임을 Hawthorne의 입을 빌어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인용된 시가 하나 있는데, 바로 Robert Browning의 "Mr. Sludge, the Medium"에서 발췌된 것이었다. 이 시 다음에 "Possession"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브라우닝의 시는 시집 "Dramatis Personae"(1864년)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집에는 18개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당시의 높은 평판을 받았고, 지금도 잘 알려진 시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다. 원래 어떤 극의 등장인물들을 집합적으로 지칭하는 이 용어의 뜻에서처럼, 이 시집의 시들에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펼쳐 놓는다.
"Mr. Sludge, the Medium"은 그다지 잘 알려진 시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살펴보니, 브라우닝의 다른 시들에서 흔히 그렇듯이 인간사의 극적인 단면을 하나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진실과 거짓에 관한 것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아 그 두 영역의 경계를 단정할 수 있는 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시의 제목에 들어간 Medium(영매)가 암시하듯 강신술, 혹은 교령술(交靈術)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슬러지氏는 영매이다. 그런데 가짜 영매이다. 곧 사람들을 속인다. (그런데 '진짜 영매'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런데 어떤 여자의 혼을 불러내는 강신술을 행하다 그만 속임수가 들통난다. 그리고는 그것에 대해 장황한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 그 내용이 이 1,615행(1525행이라 나오기도 함)의 장편 시이다.
예전 같으면 아마 다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유가 많지 않아 대충 살펴보고, 그 중 "Possession"에 인용된 부분 바로 앞에서부터 시의 마지막까지 약 200행 정도를 정독을 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하는 말 중에는 잘못이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난 브라우닝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전자는 그의 인간사에 대한 통찰력이나 표현력이 참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며, 후자는 그의 시어들이 상당부분 난삽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내 영어실력이 짧아서인가 하고 반성을 하긴 하지만 반드시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학교의 권모 교수가 펴낸 브라우닝 책이 있어 참고할 만한 것이 있을까 떠들어 보았는데, Dramatis를 한결같이 Dramatic이라고 쓰고 있고, Mr. Sludge를 또 한결같이 Mrs. Sludge로 쓰고 있었다. 이 시에 대해 시집 중에서 '가장 길고 아마 가장 추한 시'라고 서술하고 있고, 한 페이지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언급하고 있다.
"Mr. Sludge, the Medium"은 실제 인물인 Daniel Home이란 영매에 대한 풍자(satire)라고 알려져 있다. 1833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Home('흄'처럼 읽어야 한다고 한다)은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 갔고, 일찍부터 교령술에 눈을 떴다. 1855년에 영국으로 와서 교령술을 행했다. 하얀 손이 나타난다거나 Home이 날아올라 창문으로 나가서 옆방에서 발견된다거나 하는 등의 영적인 일들이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그 해에 로버트 브라우닝도 부인인 Elizabeth와 그런 모임에 참석했다. Elizabeth는 Home을 믿고 감탄했으나 Robert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부인이 살아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를 썼고, 그녀의 죽음(1861년) 후에 완성했다.
브라우닝은 Home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그의 중간명이 Dunglass인데, 브라우닝은 그것을 이용해서 그를 'Dung-ball'이라고 불렀다. 'x덩어리'라는 말이니 아주 심한 말이다. 또한 시의 제목이며 화자(話者)인 Sludge 자체가 원래 찌꺼기나 침전물, 진흙 등을 뜻하는 말이다.
강신술 혹은 교령술은 별로 지금으로서는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 속임수이고, 나는 전부 그렇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의 소재와 배경은 그다지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진실과 지식과 상상의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시의 의도 혹은 주제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시에서 Sludge는 Boston의 후원자인 Hiram H. Horsefall을 속여 발가락으로 소리 내어 그의 어머니가 나타난 듯 꾸민 것이 발각된다. 시는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속임수가 어쩔 수 없이 행해진 행위라는 변명이 그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의 모호함을 적극 공략하여 자신의 행위를 적극 변명한다. 장황한 말을 늘어놓고,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끊기도 하고, 감정에 휩쓸리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그 위에 서려고도 한다. 참고로, 시의 Sludge와는 반대로 Home은 속임수를 행하는 것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고 한다.
실제 시나 소설에서 많은 가공(fiction)이 동원된다. 영과 혼을 다루는 영역에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가공인지 알 수 없다. 시인과 소설가는 그런 가공 혹은 꾸며냄으로 돈을 번다. 심지어 영매 자신도 속임수라고 알고 있는 행위들이 실제는 일부라도 사실이 들어 있다면, 신(神)이 자신의 영역을 드러내지 않으려 속임수를 기획하여 그 안에 진실을 교묘하게 포함시키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브라우닝이 Sludge 혹은 실제의 Home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은 증발하고 만다.
"Possession"에 인용되어 있는 부분은 1,615행 중 1,503행에서부터 1,547행까지이다. (중간에 몇 행이 생략되어 있다.) 그 앞에서 Sludge는 청자(聽者)를 향해, 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젊어서의 희망도 잃고 노년을 위해 모았던 빛도 사라지고 내세를 위해 지혜를 구했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세상이라고 단언한다. 반면에 자신은 속임수를 썼지만, 그 결과는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어떤 세상을 택할 것인가(What would you have?)라고 도전한다.
아래에 1,503~1,547행을 해석해 보았다.
And if at whiles the bubble, blown too thin,
Seem nigh on bursting,—if you nearly see
The real world through the false,—what do you see?
Is the old so ruined? You find you ’re in a flock
O’ the youthful, earnest, passionate—genius, beauty,
Rank and wealth also, if you care for these:
And all depose their natural rights, hail you,
(That ’s me, sir) as their mate and yoke-fellow,
Participate in Sludgehood—nay, grow mine,
I veritably possess them—banish doubt,
And reticence and modesty alike!
Why, here ’s the Golden Age, old Paradise
Or new Eutopia! Here ’s true life indeed,
And the world well won now, mine for the first time!
그리고 만일 때때로 거품이 너무 얇게 불어져서
거의 터질 것 같으면 - 만일 당신이 거짓을 뚫고
진짜 세상을 거의 보면 - 당신은 무엇을 보는지요?
예전 것이 그토록 황폐한가요? 당신은
젊고, 진지하고, 정열적인 무리 안에, 그리고 재능, 미모,
지위, 부귀-당신이 이런 것을 좋아한다면-의 무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자신이 타고난 특권을 버리고, 당신을
(그게 바로 저입니다, 선생님) 자신의 친구와 동료로 환영하고,
슬러지단(團)에 참여합니다 - 아니, 나의 것이 됩니다,
나는 진정 그들을 소유합니다 - 의심을,
그리고 또한 과묵함과 겸손함을 떨어버립니다!
자, 여기 황금시대, 옛날의 에덴동산,
혹은 새로운 유토피아가 있습니다! 여기에 정녕 새로운 삶이 있고,
세상은 확실히 획득되었고, 처음으로 나의 것입니다!
And all this might be, may be, and with good help
Of a little lying shall be: so, Sludge lies!
Why, he ’s at worst your poet who sings how Greeks
That never were, in Troy which never was,
Did this or the other impossible great thing!
He’s Lowell—it ’s a world (you smile applause),
Of his own invention—wondrous Longfellow,
Surprising Hawthorne! Sludge does more than they,
And acts the books they write: the more his praise!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존재할지도 모르고, 아마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거짓말의 도움을 받아 반드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슬러지는 거짓말을 합니다!
자, 그는 아무리 나빠도, 존재한 적이 없는 그리스인들이
존재한 적이 없는 트로이에서 어떻게 이런 저런 불가능한
위대한 일들을 했는지 노래하는 당신의 시인입니다.
그는 로웰입니다 - 그것은 그가 혼자서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당신은 미소로 갈채를 보내는군요) - 경이로운 롱펠로우이며,
깜짝 놀라게 만드는 호손입니다! 슬러지는 그들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며
그들이 쓴 책을 실제 행동해 냅니다. 그는 더 찬양을 받아야 합니다!
But why do I mount to poets? Take plain prose—
Dealers in common sense, set these at work,
What can they do without their helpful lies?
Each states the law and fact and face o’ the thing
Just as he’d have them, finds what he thinks fit,
Is blind to what missuits him, just records
What makes his case out, quite ignores the rest.
It ’s a History of the World, the Lizard Age,
The Early Indians, the Old Country War,
Jerome Napoleon, whatsoever you please,
All as the author wants it. Such a scribe
You pay and praise for putting life in stones,
Fire into fog, making the past your world.
그런데 시인까지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요? 보통의 산문을 생각해 봅시다 -
장사꾼들은 상식선에서 그런 것을 일터에서 펼칩니다.
유용한 거짓말 없이 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나요?
그들은 각자 법과 사실과 사물의 겉면을, 마치 자신이
그것들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이, 언급하고, 자신에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기록하고, 나머지는 아주 무시해 버립니다.
이것이 세계의 역사이며, 도마뱀 시대이며,
초기 인디언들, 옛 국가의 전쟁,
제롬 나폴레옹, 당신이 생각하는 그 무엇이건,
지어내는 이가 의도하는 대로입니다. 그런 저술가에게
당신은 돈을 지불하고, 돌에 생명을 불어넣고,
안개에 불을 지피고, 과거를 당신의 세계로 만들었다고 찬양합니다.
There’s plenty of “How did you contrive to grasp
“The thread which led you through this labyrinth?
“How build such solid fabric out of air?
“How on so slight foundation found this tale?
“Biography, narrative?” or, in other words,
“How many lies did it require to make
“The portly truth you here present us with?”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은 많습니다 - '당신은 어떻게
이 미로를 통해 당신을 인도한 실을 용케 잡았습니까?'
'공기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탄탄한 직물을 짜냈습니까?'
'어떻게 그런 취약한 토대에 이 이야기를 기초했습니까?'
'전기입니까, 설화입니까?'. 아니, 이렇게 표현하지요,
'당신이 지금 우리에게 제시하는 그 당당한 진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필요했습니까?'
구절 하나하나에 대해 정확한 전달은 어렵지만 전체적으로는 뜻이 통할 것이다. 중간에 작가로 Lowell(아마도 James Russell, 1819~1891)과 Longfellow와 Hawthorne이 등장한다.
첫 세 줄은 거짓말이 커져서 거의 드러날 정도가 된 경우를 말한다. 넷째 줄의 'the old'(예전 것)는, 그렇게 드러난 진실이 새것이라면, 이전에 거짓으로 꾸며진 세상을 말할 것이다. 시의 화자(話者)는 거짓으로 꾸며졌던 세상은 거짓임이 밝혀져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강변하고 있는 대목이다.
"Possession"은 내용은 짐작이 가지만, 실제 몇 페이지 밖에 읽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그다지 언급할 말이 없다. 읽다가 말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시인을 중심인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또 이 작품이 2002년에 Gwyneth Paltrow가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
- 2011년 10월 30일, 은밤 류주환
첫댓글 작가의 이름을 잘 못 표기했었네요. 영화는 보았습니다. 흐름이 어쩐지 다빈치 코드의 인상이 느껴졌는데, 전반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글을 잘 읽었습니다. 영국작가인 A. S. 바이어트의 "Possession"을 얘기하셔서 반가웠습니다. 제가 책은 아직 읽지 않았고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로 가상의 시인인 랜돌프 헨리 애쉬와 크리스터벨 러모트가 등장하고 애쉬 연구 학자인 롤런드 미첼과 러모트 연구 학자인 모드 베일리가 등장하지요. 책을 곧 읽으려고 합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Mr. Sludge, 'the Medium'"을 소개하여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