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시험하고 이웃을 정죄하는 사람들
요8:1-11
2026년 7월 19일(주일)
기동찬 목사
1.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이웃을 정죄하는 사람들>입니다.
6.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님 앞에는 항상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의 사람은 예수님을 시험해서 제거 하려고 하는 자들이고, 또 따른 한 부류는 “예수님,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요?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또 수 많은 사람들이 오셔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가셨는데 예수님처럼 “선한 일”을 하시며 “거룩하고 구별되게 살아내신 분”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거룩하고 구별되고 선한 삶”을 살아가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라도 시험하여 꼬투리를 잡아서 처단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니까,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당시 사회에서 존경받는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음행 중에 잡은 여인>을 “끌고”(3절) 주님께로 찾아 왔습니다.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오늘 본문은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인용해서 질문합니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신22: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레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姦夫)와 음부(淫婦)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지금 곤란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는 두 가지 법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법은 성경의 법, 율법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로마의 법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간음한 여인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거 하라” 하면 주님은 로마법에 걸립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사법권은 로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이 그래도 간음한 여인을 불쌍히 여겨 “돌로 치지 말라.”고 한다면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 모세의 율법을 부정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가짜 선지자가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씀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자, 주님께서 저들에게 뭐라고 해야 좋겠습니까?
지금 현장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호기심이 가득차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느냐,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속으로 미소 짓고 있습니다. <넌, 이번에 단단히 걸렸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다가 로마법에 걸려 죽을래, 아니면 로마법과 성경의 법을 지키려다가 가짜 선지자로 낙인찍혀 매장 당할래?” 이겁니다. 진퇴양난입니다.
진짜로 이 상황은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단단히 준비해서 주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기세가 등등합니다.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간음한 여인을 잡아 와서(2절)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명절 내내 예수님은 성전에서 강력한 말씀, 능력의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끼쳤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강력했으면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던 경비병들마저 은혜 받고 그냥 돌아 왔겠습니까,
그러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백성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나아가 로마 법정에 고발해서 합법적으로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금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의 의도는 빗나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십니다. 손가락으로 땅에다가 뭘 기록을 하십니다.
그 기록한 내용을 무리들이 보고, 자신들의 손에 들고 왔던 돌을 하나씩 둘씩 다 내려놓고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마저 다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기록 하셨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놀랍지 않습니까?
6.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이야!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쓰신 내용: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
그리고
8.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가지고 온 율법, 이 율법을 모세에게 기록해 주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그 율법을 기록해 주신 예수님께서 또 지금 땅에다 기록해 주신 후, 친히 말씀해 주십니다.
7...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지금까지는 엄청나게 기세가 등등했는데, 결국에는 자신들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자신들의 손에 든 돌을 내려놓고 그냥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9.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자, 무리들이 다 떠나가고 나신 후 주님은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 여인에게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주십니다.
기회를 주시면서 주님은 그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11절).
여인에게 이 말씀을 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요?
동일한 말씀인 줄 믿습니다.
11...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리고 “네 손에 들려 있는 정죄의 돌을 내려놓아라.”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저와 우리 모두가 쉽게 범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뭐냐면, 이웃의 허물과 실수를 볼 때, 나는 그렇지 않은데 너는 왜 그래! 하고 정죄의 돌을 쉽게 들고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일은 가정에서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향해, 요즘 애들은 왜 이래...
또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님을 향해, 우리 부모님은 왜 이래...
쉽게 정죄하고 비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주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의 거울 앞에서 오늘 나와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자도 되지 말고,
간음한 이웃을 향하여 정죄의 돌도 들지 말고,
주님의 은혜로 속죄함 받은 한 사람으로서, 속죄의 은혜만을 흘려보내는 자로 살아가기로 결단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보면, 늘 크게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시험해서 꼬투리를 잡아가지고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하는 자가 있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따르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주님은 죄인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11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오늘 주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은 이 여인은 주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을 “값싼 은혜”로 바꾸지 않기 위해서는, 이전의 잘 못된 삶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가족과 함께 팀을 이루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 갈 때 주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을 “값싼 은혜”로 바꾸지 않고 값지고 보람된 삶을 살아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인 줄 압니다.
이웃인 나의 가족을 향하여, 부모님을 향하여, 자녀를 향하여, 내 손에 들었던 비난의 돌, 정죄의 돌을, 오늘 이 성전을 빠져 나가기 전에 십자가 아래 다 내려놓고, 내가 먼저 주님의 속죄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직면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받은 은혜를 가지고 살아 갈 때 주님의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당시 사회에서 존경받는 분들이었습니다. 바로 저 같은 목회자입니다.
또 우리 직분자들과 리더들입니다. 보여지는 직분이 아니라 누구보다 죄인인 우리 자신의 마음을 직면할 때, 우리는 내가 받은 은혜를 가정에서부터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애통해하는 세리의 모습과 같은 겸손한 태도에 함께 하십니다.
이런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이런 우리와 함께 늘 동행 해 주심으로 우리가 가는 모든 곳, 그 곳이 가정이면 가정, 직장이면 직장, 학교면 학교 그곳에서 나로 인해서 형통한 곳, 화목한 곳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승리의 삶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찬양 부르신 후에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이 제 귀에 들리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제 손에 들고 있던 정죄의 돌을 내려놓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쉽게 판단하고 비난했던 정죄의 돌을 십자가 아래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게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주님 앞에 엎드릴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신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값싼 은혜로 바꾸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제 손에 들고 있는 모든 정죄의 돌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주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팀과 함께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낼 것임을 선포합니다. 성령님 강력하게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주님께 받은 속죄의 은혜를 또 다른 이웃에게로 흘려보낼 수 있는 주님이 두고 보시기에도 정말 괜찮은 삼겹줄의 팀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