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모르는 사람들이 구겨진 채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라서, 어디서부터 복기해야 잃
어버린 내가 복귀하는지 몰라서, 눈칫밥에 해장국을 말아 뒤통
수로 먹으며 지금 여기를 하염없이 타진한다 신 내리는 진도
에서 영접한 신을 벗고 맨발로 돌아온 남숙 씨의 주막 민(民)은
멀쩡한데, 적산가옥 이층 창문에 중국인 거리를 걸어놓은 흐
르는 물 엘피판은 왜 왼쪽으로 흐르다 끊겼을까 두-절. 아이
를 지우고 누운 여인숙에서 다시 아이를 새겨달라던 너에게로
간다 밤하늘 담배빵을 헤아리다 쭈그려 앉아 킥킥 끄던 너는
가느스름한 초승을 잡아당겨 손목을 그었다던가 더벅머리 긁
으며 홍등에 들어 부푼 것들을 마냥 터뜨리던 시절처럼 늙은
처마가 매달아 놓은 조등에 감전되어 혁대를 풀고 내 몸에 꽂
힌 모든 플러그를 뽑고 꽃무늬 빤스와 기하학적 팬티의 어지
러운 조합에 대하여, 달거리에서 해거리로 점점 길어지는 울
컥에 대하여, 거기 통화이탈지역에서 나는
누구와 대작하였나, 거기 누구 없어요?
엽서
월계와
녹천 사이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위암 말기이시고
동생은...... 외면하지 마시고 10원짜리 하나라도 동냥 주
시면 어머니 동생 죽을 때까지만 죽을힘을 다해 살아보시
겠습니다
개나리
산벚 백목련
좋아 죽는 사이
환절기
요리조리 걸음나비 아서아서 한세월이
맏물이라 아장아장
끝물이라 느적느적
애 터져 봄 벙그는 건 내 알 바 아니라서
터질락 말락 꽃들이 숨 참고 기다려도
더 갈 데 있는 것처럼
더 갈 데 없는 것처럼
곁눈질 주고받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닦달하지 마시라 저래 봬도 전속력
흑 백 흑 백 횡단하는
저 갈마듦 때문에
비로소 봄이 터지는 거다, 무더기로 시방
아홉수
길을 사랑했네 스물아홉 사랑해서
놋좆 놋좆 노를 젓다 계집 버렸네
너는 왜
내가 아니냐
자기가 남이야
폐허를 사랑했네 서른 아홉 사랑해서
엉덩이를 걷어찼네 너라는 삼인칭을
너는 왜
꼬리 치는 거야
네가 진짜 개야
후회를 사랑했네 마흔아홉 사랑해서
나 좋자고 너 버리고 궁리없이 쓸쓸하네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네가 정말 나야
- 시집 『마릴린 목련』 시인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