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 이후 '빅4' 재편…시중은행들 "추가 제휴 계획 없어"
전문가들 "원활한 코인 생태계 위해 다양한 거래소 등장해야"
[사진 셔터스톡]
업비트는 케이뱅크, 코빗은 신한은행, 빗썸·코인원은 NH농협은행.
이는 각각 ‘4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맺은 은행들이다. 코인 투자자들이 크게 늘면서 각 은행들은 제휴를 통해 신규 고객 유치는 물론 수수료 수익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은행 외에는 추가적인 제휴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향후 불거질 수 있는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일부 가상자산은 이미 제도권 편입 수순을 밟고 있어 고객 편의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빅4 거래소 실명확인 계좌수 733만개…1년 만에 600%↑
4대 가상자산 실명계좌 발급 현황.
최근 암호화페 투자 인기에 힘입어 4대 거래소 실명확인 계좌 수는 꾸준히 증가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9월 24일 기준 4대 거래소 실명계좌 수는 총 733만6819개다. 1년 전 108만9849개에 비해 600% 증가한 수치다. 업비트(케이뱅크)가 494만3853개로 가장 많고 빗썸(NH농협은행) 163만2660개, 코인원(NH농협은행) 65만5080개, 코빗(신한은행) 10만5219개다.
거래소가 은행에 낸 수수료도 늘었다. 올해 2분기 동안 4대 거래소와 제휴한 은행들이 거래소로부터 받은 수수료는 모두 169억7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1분기 수수료 70억5500만원과 지난해 3분기 5억2200만원보다 크게 늘었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업비트와의 실명계좌 제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은행으로 꼽힌다. 케이뱅크는 올해 3분기 약 168억원의 잠정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케이뱅크는 업비트 수수료 수익, 고객 유치에 따른 수신 규모 확보 등으로 출범 4년 만에 연간 누적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업비트를 비롯한 제휴처 확대로 케이뱅크 3분기 비이자이익도 8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1억원 늘어난 수치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업비트와의 제휴로 고객 수 확대는 물론 수신‧여신 확대로 이어졌다”며 “특히 2030 사이에서 인지도 상승에 기여했다”고 전했다.
케이뱅크 분기별 당기순이익 추이. [자료 케이뱅크]
"실익보다 리스크 커"…암호화폐 거래소 제휴 신중모드
서울 용산구 코인원 고객센터 가상화폐 시세 현황판. [연합뉴스]
하지만 대다수 은행들이 여전히 실명계좌 제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 9월 17일 기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63곳 중 가장자산사업자 ISMS(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서를 발급받은 업체는 47곳이지만 은행과 실명계좌 제휴를 맺은 곳은 4곳이다.
대형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은 거래소와의 실명계좌 발급 관련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상대적으로 확보한 고객이 있기 때문에 수수료 수익을 얻더라도 리스크에 비해 효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터넷은행 등장으로 신규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은행들은 일부 중소 거래소와의 제휴 가능성이 타진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모습이다. 서한국 전북은행장과 송종욱 광주은행장은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장과 지방은행장 간담회 자리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계약 의사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방은행 관계자 역시 “블록체인 등을 활용한 신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는 변동성이 크고 거래소마다 거래량이 달라 직접적인 제휴는 신중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선 '특정 암호화폐를 거래하기 위해서 특정 은행의 계좌를 무조건 생성해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주거래은행으로 거래하고 싶다”, “암호화폐 거래가 아니면 해당 계좌를 사용하지 않는다” 등의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업비트 독주체제?..."서비스 향상 위해 실명계좌 발급 늘려야"
빅 4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로고. [사진 각 사]
물론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중소 거래소와의 제휴가 '리스크 대비 실익이 크지 않다'는 항변이다. 오히려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자금세탁이나 해킹 등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은행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규정 상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정상적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원화 거래가 가능한 다양한 거래소가 나와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특정 거래소 ‘쏠림’ 현상이 심화될수록 수수료 폭리 등의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9월 25일부터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시행되면서 가상자산거래소는 은행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빅4' 체제로 재편됐다.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중소 거래소의 줄어든 고객과 거래량이 4대 거래소로 다수 흡수됐다.
특히 4대 거래소 중에서도 업비트 누적 회원은 지난달 말 기준 890만명에 달한다. 신고 수리 1호 거래소 업비트 회원수는 지난 8월 말 850만명에서 40만명 늘었다. 가상자산거래소 신고제 시행 전후로 폐업이나 원화거래를 중단한 거래소의 이용자가 유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거래 규모 기준으로 업비트의 시장 점유율은 80%를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비트의 점유율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2위 사업자이자 경쟁업체인 빗썸 실명계좌 수리에 제동이 걸리면서다. 지난 12일 금융보안원에 따르면 코인원이 업비트, 코빗에 이어 세 번째로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수리를 완료하면서 실명계좌를 확보한 4대 거래소 중 가상자산사업자 신고가 완료되지 않은 곳은 빗썸만 남게 됐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모든 가상자산 거래소의 원화 거래를 인정해 주면 혼란이 커져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은 이해한다”며 “거래소에서도 내부적으로 안전한 시스템을 갖춰 실명계좌 발급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중 한국핀테크학회장(고려대 특임교수)는 “전세계 코인은 만 개가 넘는데 우리나라 코인은 200개~300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거래소가 늘어야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는데 사실 은행들이 실명계좌 발급을 못 해 주는 게 아니라 안 해 주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다원 기자 hong.da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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