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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노을 저녁노을
<아침노을을 바라보며 / 박난서>
오늘 아침은 물에 젖은 솜털을 어깨에 걸친 양 자꾸만 늘어집니다.
공안 스님께선 생각이 일어날 때 죄가 일어난다 하셨는데
지금 소녀의 마음이 죄를 함께 일으켜 세움이라서 이렇게 무거운 것인지...
악행도 선행도 모두 생각이 먼저 일어서서 행함을 끌고 감이니
누군가를 마음으로 그리는 것도 생각이라는 욕심이 먼저 일어섰음인가 봅니다.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던데
하지만 소녀는 아늑한 소녀의 들녘을 소중히 밟고 거니렵니다.
작은 풀꽃 하나 다치지 않도록 발 옮김도 조심조심 하렵니다.
마음이야 어떤 춤이라도 못 추겠습니까.
하얀 저고리 나풀거리는 춤도 추어보고
꽃잎이 사르르 떨어질 것 같은 매화 같은 춤도 추어 보고요.
하늘에 길게 빗금을 긋는 번개 같은 춤도 추어 볼 것입니다.
바람을 안고 뒹구는 춤도 마음껏 웃음소리 내는 멋대로의 춤도요.
하지만 그 춤으로 소녀 적부터 키워온 붉은 노을이 흐려지는 몸짓은 아니 하렵니다.
넘어가는 모습이 아직 보이진 않지만
그렇게 물이 들다가 어둠에게 안기는 그 노을을
삶이 다 하는 날까지 꼭 안고 가렵니다.
목탁소리 들리는 암자에서 맞는 아침노을은 소녀를 벙어리로 만듭니다.
숨을 멈추고 눈동자의 움직임도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그 노을에게로 빨려드는 순종을 아낍니다.
장차 노을이 가까운 곳에 하늘정원을 하나 꾸미는 것이 소녀의 바람인데
그 일상을 언제쯤 껴안고 그리운 얼굴들에게
노을이 이는 바람으로의 초대를 하게 되올런지 즐거운 상상에 젖습니다.
꿈꾸는 일상을 안는 날 선홍빛 등을 밝히고 달빛 간간하게 흐르는 밤의 등에 기대어
소녀의 큰 가슴을 기다리겠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좀 맞고 들어와야겠습니다.
잎도 다 떨어지고 없고 노란빛이 좋은 탱자도 다 떨어지고 없는
가시일뿐인 탱자나무를 상상하며
서늘한 햇살 좀 이고있어보렵니다.
노란 행복의 따스한 기운이 스륵스륵 나무 뒤에서 기어 나와 줄겁니다.
오후도 맑음이 흐르는 시간들로 안으셔야지요.
마음의 호수가 나이테를 그리는
어린 녹두색 탱자를 돌돌 굴리며 올려드립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 김 난 석>
마음의 빛깔을 무엇이라 할까?
그보다 쉬울 수 있는 물빛은 무엇이며 하늘빛은 또 무엇이라 할까?
맑은 하늘을 쳐다보노라면 쪽빛 그리움이 먼저 다가오기도 하고
거기에 하얀 구름이라도 흐르면 한없는 평화스러움에
두 팔을 벌린 채 풀밭에 질펀히 눕고 싶기도 한데
노을빛이 어리면 또 어떤가?
노을은 아침녘이나 저녁녘에 공중의 수증기가
햇빛을 받아 벌겋게 물드는 현상이라지만
바라보노라면 아침노을은 아침노을대로 저녁노을은 저녁노을대로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서로 다른 한없는 신비감에 젖게 한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어서
아침의 마음이 저녁의 마음과 같을 수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과 그렇지 않은 날과의 마음이 같을 수 없을뿐더러
같은 대상을 대하더라도 지난날 추억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따라
지금의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다.
어느 심리학자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엔
태고의 유형이 원형으로 자리 잡고있다 한다.
하나는 꾸밈이나 가식이라는 페르소나(persona)요
또 하나는 남성의 여성성과 여성의 남성성이라는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요
또 하나는 그림자(the shadow)라 일컫는 것으로서
인간의 본능을 말한다고 한다(C.G. 융).
이것들은 오랜 예로부터 습관과 유전에 의해 집단무의식으로 전승되어
개개인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다가
자신의 체험과 외부의 자극에 의해
여러 행태의 의식과 의지로 발현된다고 한다.
아마도 노을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어서
미사여구를 동원해 찬탄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부드러운 여성의 미소를 떠올리거나
힘찬 남성의 맥동을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요
다른 한편으론 육신을 불태우고 싶은
욕정과 아쉬움으로 범벅된 바람과 뉘우침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을 테지만
자신의 지난 체험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그와 연상되는 지난 일들이 되살아나기도 할게다.
그러고 보면 대상의 빛깔은 고유한대로 있을 것이되
마음의 빛깔은 자기체험과 마음먹기 나름이라 할 수도 있으니
원효의 일체유심조라는 것도 기실 그런 것이려니 하고 짐작이나 해볼 뿐이다.
육신을 편안히 둘 곳은 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삼척안두만 있으면 바랄 게 없다 했지만(양주동)
아파트 한 평이 얼마인지를 알고 한 소리는 아니었을 게다.
허나 마음을 편안히 둘 곳은 돈과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니
쉬 찾아질 듯도 하다.
그렇다면 내 마음을 편안히 둘 곳은 어디던가?
아니 그에 앞서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마음을 이르는 말로 정신이라고도
넋이라고도
얼이라고도
心이라고도
靈이라고도
魂이라고도, 또 魄이라고도 하는 걸 보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서양에서도 mind라고도, spirit라고도, soul이라고도 하니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그것은 마찬가지인 듯도 싶다.
얼마 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마음>이란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책으로도 펴냈지만
여러 사람들의 각가지 견해만 늘어놓았을 뿐
딱히 이것이라고 집어내지는 못했다.
해부학적으로는 인간의 뇌가 하는 활동으로서
1백조개의 뉴론(neuron)과 시냅스(synapse)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감각이나 사상을 받아들이고 느끼고 저장하고 판단하고 연상하는
그 자체라고 소개한 뒤에
마음을 편히 두는 방법으로서의 여러 가지 명상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명상은 어느 하나에 생각을 집중한 뒤에
그것마저 놓아버리는 길이 있는가 하면
생각되는대로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길이 있으며
떠오른 생각들 중에서 아름다웠던 순간들에 머물면서
바라보는 길이 있다 한다.
마음을 그렇게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오늘은 붉은 노을을 바라보다가
지난 한때를 떠올려보며 엷은 미소를 지어본다.
생평기광남녀군 (生平欺誑男女群)
미천죄업과수미 (彌天罪業過須彌)
활몰아비한만단 (活沒阿鼻恨萬端)
일륜토홍괘벽산 (一輪吐紅掛碧山) / 성철스님 '열반송' 전문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였으니
하늘에 닿는 죄업은 수미산을 넘치는 구나
산 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 한이 만 갈래나 되느니
둥근 수레바퀴 불덩이를 토해대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한 평생 철저한 정진으로 매진하시던 큰 스님 성철
마지막엔 모두 쓸데없는 짓만 해댔다고 뉘우치고 계신 듯하니
이 글만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금욕이라는 것도 기도라는 것도 속세를 여의라는 것도
모두 부질없는 소리였다고 자성하고 계심일 테니
삶이란 어찌 엮어나가야 하는 것인지 누구도 쉬 말하기는 어려우리라.
계율을 쳐다보지 않고도 잘살고
계율을 지키면서도 못살고
공부하고 정진하던 원효대사도 결국 무애행(無碍行)을 하고 말았으니
아무 거리낌 없는 생활이 옳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
하늘의 뜻은 분명 있을 것이되
그 뜻이 무엇인지는 헤아리기 어려우니
때론 윤리나 도덕론으로, 때론 관습으로, 때론 신의 율법으로
이런 저런 말들을 하지만
어느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닐 게다.
그래서 붉게 물드는 서녘의 하늘을 보면
한없는 경외심을 갖게 되느니
그것은 바로 넘어가질 못하고 서산에 걸려 불덩이를 토해대는
회한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서산에 걸린 불덩이가 세상에 던지는 마지막 몸짓이
바로 저녁노을이려니
소녀야,그것은 황금노을이라기보다 황금률(黃金律)이라 해야겠구나.
그러나 사색은 쉴 때 하는 것이고
현실은 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
사색의 그늘 아래서 경건하게, 그리고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야겠지.
그래서 나는 환하게 아침을 맞아들이고
마침내는 따뜻한 저녁을 맞이하고 싶다고 노래할 뿐이니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보낸 뒤의 '눈이 내리면' 이란다.
장다리꽃 나비 모여들면
들판 위에 모자를 벗어놓고
벚꽃 화사하면
은빛 그늘에 외투를 던져놓으렴
아카시아 향기 흩날리면
바람 속에 저고리도 걸어보고
고개 들어 하늘도 한바퀴 돌아보렴
보리밭 황금빛 일면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둘러보고
고추잠자리 한들거리면
들판도 건들거려보렴
갈잎 날아들면 섬돌 위에
나란히 신발 벗어놓고
귀뚜리 울어대면 창가에 앉아
삼현(三絃)도 뜯어보렴
그러다가 아, 그러다가 눈이 내리면
발가벗고 아랫목에 들어 두 손을 모아보렴.
(졸 시 ’눈이 내리면‘ 부분)
소녀야,이제 나는 뉘우치는 눈빛으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잔불을 지피는 것이겠고
너는 밝은 미소로 아침놀을 생각하며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것이겠으니
우리 두 사람 노을에 눈빛을 맞추고 있음은 고운 인연이라지만
그 포개지는 접점은 삶에서의 황금률(黃金律)이라 하리라.
그래서 나는 그 황금률을 안고 무거운 행복감을 맛본단다.
소녀야,오늘은 이만 들어가련다.
첫댓글 노을이 불타고 있네요
황홀한 빛으로
내마음은 나만이 느끼고 나만이 생각하는 그냥 내것 이지요
의미있는 말씀을 놓고 가셨네요.
이렇게 해서 우리들 생각의 외연이
넓어지겠지요.
고맙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어서
아침의 마음이 저녁의 마음과
같을 수 없다니
같도력
노력해 보렵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을은 노을다워야
그 가치가 느껴집니다.
알다가도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일 겁니다.
때론 또 그렇게 변하기도 해야겠지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람과 가까이 하려 하지요.
어느 곳에서 보는가에 따라 노을의 아름다움은
달리 보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어떤 각도로 보는가에 따라 달리 보일 것입니다
안단테님의 말씀 처럼 자신만의 느낌 자신의 감정에 따라
노을이 변할 것 같아요 소녀를 지칭 하시며 써내려 가신 글의 묘사가
새롭게 다가오네요 잘 읽고 새기먀 갑니다
네에, 나이 차이도 있고, 본인도 자신을 소녀라 하니까요.
난석님~
인간은 스스로 변화를 하고
성격도 다르고 있습니다.
노을이 변환것처럼 사람의
마음도변하고 있네요.
맞아요,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변하기도 하는게 인간의 마음일 겁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글을 막연하게 읽으며
아침 창가를 봅니다. 아침 놀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지 않았는지...
잠깐이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네에, 이미 시작한 저의 사랑이야기입니다만
고맙습니다.
난석님~
아직 난석님은 비록 80대라도
마음은 아직 청춘이십니다
글을 읽어보니 그럼 마음이 학 하고 닿네요
늘 지금의 마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가요?...ㅎㅎ
아파하는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경우라면 나이야 상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