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하느님과 일치하는 관상과 형제들과의 일치를 이루는 친교 영성을 사는 공동체
1. 역 사
시에나 출신 귀족 법학자인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1272-1348)는 41세 되던 1313년, 강렬한 회심 체험후 도시를 떠나 시에나 남쪽 36km 지점에 있는 황량한 점토지역인 아코나로 물러가 기도와 보속을 위하여 동료 2명과 함께 공동체적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이 생활은 많은 젊은이들을 매료시켜 형제들의 수는 금세 늘어났고, 마침내 1319년 공동체는 ‘베네딕도회 성모마리아의 몬떼 올리베또 수도회’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공식 인준을 받게 되었다. 수도회는 성장을 거듭하여 창설자 생존 당시 15개의 수도원으로 늘어났다.
수도회가 한창 발전 중이던 때, 전 유럽을 흑사병이 휩쓸자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는 시에나 시민과 수도 형제들을 돌보기 위해 조금도 주저 없이 몬떼 올리베또의 고독을 버리고 시에나로 떠났다. 1348년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자신도 페스트의 희생자가 되어 당시 형제들 숫자의 반인 82명과 함께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도회는 더욱 번창의 길을 걸어 14-5세기 이탈리아 반도의 가장 중요한 영적 심장 역할을 하였다. 수도회는 흥망성쇠를 거듭하여 현재 세계 전 대륙에 걸쳐 47개 공동체가 있다.
2. 영 성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의 영성은 ‘관상(Contemplatio)과 친교(Communio)’이며 “한 몸(Unum Corpus)”이다. 즉 “하느님과의 한 몸, 형제들과 한 몸”이란 영성이다.
하느님과의 한 몸을 위해서 즉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철저한 침묵과 고독을 지키며, 형제들과의 한 몸을 위해서 “나”가 아니라 언제나 형제와 함께하는 “우리”를 강조하는 영성이다.
피라밋식 수직적 친교가 아니라 원탁식의 둥근 형제적 친교를 위해서 아빠스가 종신토록 수도원의 지배자요, 주인처럼 군림하던 그 당시에 과감하게 아빠스 임기제를 도입하여 아빠스의 임기를 1년으로 못 박았으며 전 회원이 매년 수도원을 바꿔서 살게 하였다. 교회적 감각으로 충만했던 그의 ‘친교’ 영성은 오늘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재발견한 ‘친교의 교회론’의 빛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3. 양 성
일정 기간 성소자로서 공동체와 접촉을 가진 후 입회하여 1년간의 청원기, 2년간의 수련기를 보낸다. 그 후 유기서원을 발하고, 4년간의 유기 서원기를 보낸 후 종신서원을 발한다. 오랜 수도승 전통과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에 따른 수도승 양성에 초점을 맞추기에, 앞날에 대한 지나친 계획과 염려를 놓게 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전적인 의탁을 강조한다.
4. 매일의 삶
기도와 노동으로 매일을 충실히 채운다.
기도 생활의 주축은 렉시오 디비나와 공동전례이고, 노동은 우선적으로 손노동을 강조하며 필요에 따라 학문 연구 등의 지적 노동도 포함한다. 올리베따노 회원은 수도생활을 우선적으로 선택한 수도승들이기에 외출을 극히 삼가며 대신 수도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려고 애쓰고 있다. 수도원은 하느님의 집이기에 누구라도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다. 손님담당 수사 (010-2816-1986)
5. 회원 현황
2014년 2월 현재 한국 공동체는 종신서원자 13명, 유기서원자 1명, 수련자 1명, 내부 봉헌자 2명, 청원자 6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제 수는 8명이다.
6. 성소 문의 연락처
성소담당 (010-5301-1319) 수도회 홈페이지 https://www.olivetan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