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 중심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에 있는 괴레메 야외 수도원 골짜기(야외 박물관)의 샌들 성당과 프레스코 벽화 모습입니다. 벽화 속의 인물들이 주로 샌들을 신고 있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2007년 4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괴레메(Goreme)
괴레메는 터키 중앙부의 네브세히르(Nevsehir) 현(縣)에 있으며 1985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 중 복합유산으로 등록되었고, 1986년 터키의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카파도키아 전역에 수천 개의 동굴 성당과 수도원 등이 있는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약 96㎢의 계곡 안에도 기묘한 풍경과 뛰어난 벽화가 있는 360여 개의 동굴 수도원(성당)이 흩어져 있다.
카파도키아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주거지역 중 하나이다. 이미 기원전 20세기에 아시리아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기원전 17-12세기에는 히타이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4세기 초 그리스도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탄압이 심해지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어와 살게 되었다. 7세기 후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터키가 점령되면서 더욱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카파도키아로 이주하였다. 11세기에는 인구가 7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들은 박해를 피해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 성당이나 수도원 또는 지하도시에서 생활하였다.
괴레메는 7세기 이슬람의 침입으로 데린쿠유(지하도시)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이 피난 와서 정착한 곳이다. 당시에는 “너희는 볼 수 없다”는 뜻인 ‘괴레미’(Goremi)라고 불렀으나 후대에 괴레메로 변했다고 한다. 이곳의 동굴 성당들은 대개 7세기에 처음 건설된 후 대부분이 10-13세기 비잔틴과 셀주크 시대에 지어졌다. 괴레메 수도원 골짜기 내에도 30여 개 이상의 동굴 성당이 있는데, 이곳은 독거 수도생활에서 공주 수도생활로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굴 성당 내부에는 천 년에 걸쳐 수도자들이 그린 많은 프레스코 벽화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동굴 성당으로는 바실리우스 성당(작은 성당), 엘말러 킬리세(사과 성당), 성녀 바르바라 성당, 열라늘러 킬리세(뱀 성당), 카란르크 킬리세(어둠의 성당), 차르클러 킬리세(샌들 성당), 크즐라르 마나스트러(수녀원), 엘 나자르 성당, 토칼러 킬리세(버클 성당) 등이 있다. 성당 이름은 각 성당 내의 프레스코 벽화에서 그 특징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괴레메 야외 수도원 골짜기는 그리스 중부의 수도원 집성촌인 메테오라, 아토스와 더불어 가장 인상 깊은 수도원 집성촌이며, 1923년 정교회의 모든 수도자들이 그리스로 이주하였다.
카파도키아(Cappadocia) 지역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심부로,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280km 떨어진 네브쉐히르 도시 일대의 광활한 고원 지대를 통칭 카파도키아라 한다. 서기 17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14-37년 재위)는 카파도키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로마 제국의 속주로 삼았다. 카파도키아라는 지명은 신약성경에 두 번 등장한다(사도 2,9; 1베드 1,1). 즉,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던 세계 각지에서 온 경건한 유다인 중에 카파도키아 주민이 등장하고, 베드로 사도의 첫 번째 서간에서 베드로 사도가 “폰토스와 갈라티아와 카파도키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 나그네살이를 하는 선택된 이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결국 1세기말엽에 이미 카파도키아 지역에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은 4세기에 와서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영성이 발전한 곳으로 흔히 삼총사 교부라 불리는 카이사리아의 주교 바실리오, 나지안주스의 주교 그레고리오, 니사의 주교 그레고리오의 활약이 두드러진 곳이다. 또한 4세기 후반부터 수많은 수도자들이 사암지대 곳곳에 동굴을 파 생활한 곳으로 수도원 집성촌과 30여 개가 넘는 지하도시, 그리고 지상도시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슬람 세력의 지배 후에는 박해를 피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동굴과 지하도시에서 거주하며 신앙을 지켜나갔던 지역이기도 하다.
카파도키아는 해발 1,000미터의 고원지대이면서 독특한 지질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은 본래 푸석푸석한 사암 지대였는데, 3천만 년 전 에르지예스 산(3917m)과 하산 산(3263m)의 화산이 터지면서 용암과 화산재가 사암 지대를 뒤덮었다. 그 후 풍화작용으로 침식되면서 단단한 부분만 남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 할 수 없을 정도의 불가사의한 바위들이 많이 생겼다. 또한 부드러운 사암을 파내면 훌륭한 주거공간이 되기 때문에 이미 선사 시대부터 집을 짓지 않고 땅굴 속에 살았고, 완덕을 향한 수도자와 박해를 피해 온 그리스도인들의 좋은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동굴 속에는 박해 속에서 신앙을 간직했던 신앙인들과 수도자들이 천 년에 걸쳐 그린 많은 벽화들이 여러 동굴 성당에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