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꿈속에서 악몽을 꾸고 있는 듯 동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덩치크고 튼튼한 동생이 저보다 먼저 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제 저녁에는 정욱이 형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잠깐 얼굴을 봤습니다. 추석전에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더군요. 추석 잘 보내라고. 동생의 운명을 미리 알았던건가요. 입관하는날 머리를 보니 이발까지 했더군요.
정욱이형과 헤어지고 동생 학원에 갔습니다. 몇 번 갔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동생의 뿔을 봤습니다. 기억나죠? 우리 가족이 몇년전 누나 결혼식 참석차 유럽 여행을 가서 우리 둘이서 부모님 모시고 같이
배낭여행 다니면서 동생이 가족끼리 흩어졌을 때 필요하다면서 스위스에서 뿔을 샀잖아요. 조금 걸어가다가 우리 가족중 누군가 보이지
않으면 동생이 뿔을 크게 불렀고 그러면 걸음이 늦으시던 아버지가
다른 구경하시다가도 얼른 뛰어 오셨고 앞서가던 어머니와 저도 걸음을 멈추고 동생과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죠. 동생이 가끔은 장난으로
뿔을 불면서 가족들을 모이게 하곤 했는데 기억나죠? 헝가리에선 우리가 전철 표를 사고도 표를 찍지 않아 역무원이 벌금을 내라고 하자
한참 실랑이 하다가 그 사람들이 우리를 밀치고 하자 동생이 그 뿔을
그 사람 귀에다 대고 크게 불었었죠. 귀청이 멍멍해 지도록. 그걸 보고 있는 우리 가족들은 결국은 벌금을 냈지만 그때 만큼은 통쾌했었죠. 그때 그 동생의 뿔피리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 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동생의 뿔피리를 제가 불어봤죠. 뿌~ 뿌 ~ ~. 그런데
왜 가족들이 다 안모이는 거죠? 그 때는 뿔피리를 잠시만 불어도 어디선가 가족들이 다 나타났었는데. 목청이 터져라 부는데도 왜 동생은
나타나지 않는거죠? 동생 지금 어디에 있나요? 있으면 잠시라도 나타나 주세요. 자꾸 꿈속에서만 나타나지 말고. 가족은 뭉쳐야 된다고 항상 말했잖습니까. 근데 지금은.. 항상 그 말을 강조하던 동생은 정작
어딜 간겁니까.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 좀전엔 공원묘원까지 갔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한밤중에 제정신이 아닌것 같습니다. 혹시 귀신이된 동생이라도
보고싶어 갔건만 동생이 지하에서 나오려고 할 때 막았던 바리케이트가 절 막고 있더군요. 치우려고 하니 자물쇠까지 잠겨져 있더군요. 동생. 동생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카페 음악을 바꿨습니다. 가사가 우리랑 많이 닮은 것 같아서요. 우린 형제였지만 사실 친구였잖습니까. 어렸을 때 잘못한 일이 있어서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항상 동생만은 제 편이었고 절 이해해 주었고 저도 마찬가지였죠. 좋은 걸 발견하면 항상 먼저 보여줬었고 재밌는 장난감이 생겨도 항상 함께 가지고 놀았었죠. 노래 가사처럼 우린 함께 기쁨을 나누며, 함께 즐거워 했고 우린 멋진 나날을
보냈었죠. 가사처럼 정말 멋진 그런 최고의 나날을 보냈었죠. 그렇게
우린 평생을 친구로 보낼 수 있었는데...
노래에서는 작별의 인사도 하건만 동생은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렸네요. 왜? 영은씨와 둘이서만 지내려고 그랬나요. 우리가 함께 했던
그런 멋진 날들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아서 가버렸나요. 아님 가사처럼
집안의 골치덩이라고 생각해서 가버렸나요. 동생은 술도 안마시고 부모님 돈받아 쓰는 사람도 아니었잖아요.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이 형을 도와줄 생각만 했었는데...
아직도 생생합니다. 동생이 사고 당하고 3시간 만에 현장에 갔었는데
물은 1층 입구까지 가득차 있고 밤중에 불은 안들어오고 물은 차갑고
지하는 온통 암흑이고. 그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제가 이 세상을 등지는 날 전 웃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생이 갔던 길을 따라갈 수 있으니. 그래서 우리 가족이 모두 다시
모일 수 있을테니까요.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엔 독감이 심하다 그러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영은씨와 음악 들으면서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같이 있으면 당연히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따뜻한 봄처럼 보낼
수 있겠죠? 그럼 언젠가 뿔피리를 불어 우리 가족을 부를 동생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가을이라 땅속이 차갑겠지만 그래도 잘자요
동생 영은씨와 함께~
- 사랑하는 형이 -
첫댓글 아니에요...차갑지 않아요... 시현이랑 영은씨가 있는 곳은 따뜻할거에요. 천국에선 감기 걸리지 않는다구요.... 아마 지금쯤 여행하느라 정신 없을거에요. ^^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