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와 김유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이항복이 귀양을 갈 때 위문하러 찾아온 김유에게 그림 한장을 선물로 주었다.
말 한마리가 버드나무 아래 고삐가 매어져 있었고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능양군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김유는 그 그림을 자기 집 사랑방에 걸어놓았다.
그뒤 어느날이었다.
능양군이 대문 밖 출입을 했다가 소나기를 만나 어느 집 문간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그때 그 집 하인이 대문 밖으로 나왔다가 능양군을 발견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고했다.
"주인마님, 대문 밖에 나그네가 서 있는데 예사 인물이 아닌 것같습니다.
소낙비가 심하온데 잠시 사랑으로 모실까요?"
"그리하려무나."
하인이 대문 밖으로 나와 말했다.
"뉘신지는 모르오나, 주인마님께서 사랑으로 들어 소낙비를 피하시라 하나이다."
"고맙지만,폐가 되니 그냥 여기 있겠다."
"주인마님께서 모시고 오라는 분부셨나이다."
나그네는 망설이다가 하인을 따라 사랑으로 들었다.
그리고 방 안을 얼핏 살폈다. 낮이 익은 그림이 눈에 띄었다. 분명 자기가 그림 그림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선조가 여러 왕손들을 불러놓고 그림과 글씨를 시험해 보았다.
능양군은 말 그림을 그려 바쳤다. 그 그림을 선조는 이항복에게 선사하였고 항복이 김유에게 준 것이다.
"아는 그림입니까?"
주인이 눈치를 채고 물었다.
" 이 그림 어디에서 얻었소이까?"
"백사 이항복 선생께서 귀양을 떠나실 때 제게 선물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백사에게 하사하신 게로군."
"혹시 이 그림을 그린 능양군 나으리가 아니신지요?"
"그렇소이다."
"김유라고 합니다.이렇게 만날 줄이야.꿈만 같습니다."
김유는 부인이 말한 전날 밤 꿈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인이 꿈을 꾸니 상감마마가 탄 연이 자기 집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꿈을 깨었다는 것이다.
김유는 하인을 불러 주안상을 내오도록 했다.
그런데 상이 잔칫집처럼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부인이 혹에 귀한 손님이 오지 않을까 하여 미리 음식을 장만하여 해 두었던 것이다.
두 사람을 금세 친해져 나랏일을 걱정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런 인연으로 인조의 김유에 대한 총애가 남달랐다.
-최범서의 <야사로 보는 조선의 역사 2>에서 옮겨온 글-
김유(1571~1648-조선조 문신)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집에 들어 앉아 있었다.
이때 백사 이항복(白沙李恒福-1556~1618-조선조 문신)이 북청으로 귀양을 가면서
말을 그린 조그마한 족자 하나를 김유에게 주었다.
그 그림은 선조가 말년에 여러 손자들을 불러 놓고 글씨나 그림을 각자 생각 나는 대로 한 장씩 그리게 했다.
이들 그림 중 나이어린 능양군이 그린 그림을 선조가 이항복에게 준 것이다.
이항복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이 그림을 김유는 사랑방에 걸어 두었다가 능양군을 만나게 된다.
이 그림으로 맺어진 인연은 인조반정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