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謙齋) 鄭歚1676년~1759년)은 조선 후기의 화가·문신이다.
20세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됐다.
30세를 전후해 한국 산수화의 창조적 독창성이 돋보이는 진경산수화의 종화가 됐다.
금강산 등 전국을 여행하며 조선을 풍광을 화첩에 담는 작업을 꾸준히 했다.
겸재 정선은 60대 후반에 양천현령을 지냈다. 이때가 진경산수화가 완숙한 경지에 오른 무렵이다.
그는 양천현령으로 있으면서 서울과 한강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때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을 남긴다.
“험준하고 힘찬 산악미에다가 부드럽고 서정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했다."
겸재는 당시 강변의 풍경을 담아내면서 이같은 평을 받는다.
정선은 30세가 되기도 전에 조선팔도 안에 화가로서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을 하였고, 덕분에 먹고 사는 걱정은 없어졌다.
그는 궁정화가로 연잉군(영조)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영잉군은 왕이 되어서도 정선을 아끼며 그의 예술 세계를 지원하는 기둥이 되어 주었다.
우리나라 지폐 천 원권 뒷면에 겸재의 그림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 가 있다.
산과 나무 그리고 한 채의 집이 어우러져 있는 ‘계상정거도’이다.
계상정거(溪上靜居)의 글자를 풀면 ‘냇가에서 조용히 지낸다’는 뜻이다.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의 산이 둘러 싸인 배산임수의 풍경으로
그 안에 작은 암자가 위치하고 있다. 좀 더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퇴계 선생이 그 속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계신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