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심: 김효종(金曉鍾) 재판관.
주문: 합헌 (7:2)
헌법재판소는 2005년 9월 29일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형법 제122조를 합헌으로 선고함.
1.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국회사무처 소속 6급 공무원으로서, 2002. 1. 2.부터 같은 해 10. 2.까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인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며 사무실에 출근하지 아니하여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를 유기하였다하여 직무유기죄 등으로 기소되어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중, 직무유기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122조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2003. 7. 9. 기각되자, 같은 달 14. 헌법재판소에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의 대상
형법 제122조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3. 결정 요지
가. 명확성 원칙 위반여부
직무유기죄의 입법취지 및 보호법익, 그 적용대상의 특수성 등을 고려할 때 형법 제122조에 규정된 ‘직무’란 공무원이 법령의 근거 또는 특별한 지시, 명령에 의하여 맡은 일을 제 때에 집행하지 아니함으로써 그 집행의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는 때의 구체적인 업무를 말한다 할 것이고, ‘유기’는 직무의 의식적 방임 내지 포기로서 단순한 태만, 분망, 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나 형식적으로 또는 소홀히 직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성실한 직무수행을 못한 것에 불과한 경우는 제외된다고 할 것이며, 과연 직무의 유기가 있다고 볼 것인지는 구체적인 상황의 고려 하에 시간적․장소적 요소와 직무수행의 가능성 등을 종합하여 사회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형법 제122조가 지닌 약간의 불명확성은 법관의 통상적인 해석작용에 의하여 충분히 보완될 수 있고,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일반인 및 이 사건 법률조항의 피적용자인 공무원이라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형법 제122조는 죄형법정주의에서 요구되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나. 과잉입법인지 여부
(1) 형법 제122조의 입법취지는 형벌의 제재를 통하여 헌법에서 나오는 공무원의 성실한 직무수행의무를 관철함으로써 국가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보호하고자 하는 데에 있는바, 국가공무원법에서 공무원의 의무위반행위에 대하여 징계책임을 추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형벌을 수단으로 성실한 직무수행을 확보하고자 하는 위 조항이 과잉입법이 아닌지 문제된다.
형법 제122조에 의하여 처벌받는 행위는 단순하고 사소한 직무태만이 아니라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의식적으로 직무를 방임 내지 포기한 행위로 국한된다. 이러한 직무유기행위는 국가기능의 정상적이고 원활한 작동에 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오늘날 사회가 복잡다원화 됨에 대응하여 국가의 기능 또한 확대된 가운데 국가기능의 장애 또는 마비가 현실화된다면 경우에 따라 대규모의 국가적․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고 그 회복 또한 곤란하거나 많은 시간적․경제적 소모를 수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는 궁극적으로 국민이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형벌의 제재를 예정함으로써 공무원의 직무유기행위를 예방할 필요성과 그 위반행위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엄정하게 물을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공무원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엄정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전체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헌법에 의해 주어진 지위와 책임으로부터 정당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무원상(像)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의 인식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한편 국가기능의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의식적 직무유기를 예방하고 공무원의 성실한 직무수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행정상의 징계처분만으로 충분할 것인지, 아니면 나아가 형벌이라는 제재를 동원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볼 것인지의 문제는 입법자의 예측판단에 맡겨야 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가장 중한 징계처분인 파면, 해임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에게 미치는 불이익한 효과는 형벌에 비해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입법자는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인 국가기능의 정상적 수행 보장을 위하여 가능한 수단들을 검토하여 그 효과를 예측한 결과 보다 단호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할 것인데 이러한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인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비록 오늘날 세계 입법의 추세가 공무원의 직무유기행위에 대하여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공무원의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에 기초하여 강한 법적, 윤리적 책임을 부과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관념을 바탕으로 국가기능의 장애를 초래할 염려 있는 의식적인 직무유기행위에 한정하여 이를 단호하게 제재하기 위하여 형사책임을 부과한 것은 입법재량의 범위 내의 입법권 행사라고 할 것이다.
(2) 형법 제122조는 법정형의 종류를 징역, 금고형과 자격정지형으로 선택적으로 규정하고 그 형의 하한에는 제한을 두지 아니한 채 다만 상한에 대하여만 1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법정형의 상한이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죄질이 가벼운 직무유기행위에 대하여는 개전의 정상을 참작하여 선고유예까지 선고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형법 제122조가 비록 벌금형을 규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형벌체계상의 균형을 잃은 것이라거나 책임과 형벌간의 비례원칙에 반하는 과잉형벌을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다. 평등원칙 위반 여부
사인간의 근로계약과는 달리 공무원의 직무관계는 국가가 일방 당사자이고, 그 직무내용은 공익 실현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적 근로계약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단언하기 어렵고,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공무원의 헌법상 지위 및 공무원의 직무유기행위로 인하여 훼손되고 피해를 입는 것이 국가의 공기능 및 국민 전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사인과 달리 공무원의 직무유기를 처벌한다하여 자의적인 차별 입법이라고 볼 수 없다.
※ 재판관 권 성, 재판관 주선회의 반대의견(위헌의견)
1. 명확성 원칙의 위반 여부
형법 제122조가 규정하는 ‘직무유기’는 문언적 의미에서 볼 때 대단히 광범위한 직무영역에서 다양한 행위태양에 의하여 행하여질 수 있는 것으로, 그 법문으로부터 과연 구체적 행위가 ‘직무유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직접 판단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무유기’에 관한 대법원의 해석 역시 직무유기죄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여전히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하는 것일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직무를 어떠한 방식으로 유기하는 때에 국가 기능이 저해되고 국민에게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 단순한 직무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에 관하여 판단에 도움을 주는 구체적이고 유용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다.
일반국민은 물론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적용대상인 공무원, 심지어 법적용기관인 수사기관이나 법원조차도 이 추상적 기준에 근거하여 직무유기죄의 해당 여부를 예측한다거나 일관성 있게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법적용기관인 법관의 보충적 법해석을 통하여도 그 규범내용이 확정될 수 없는 모호하고 막연한 형벌조항이라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2. 국가형벌권 행사의 남용인지 여부
공무원으로 하여금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여 국가기능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효율성을 제고하며 국민의 권익 침해를 방지한다는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의무이행확보의 수단으로 형벌을 부과할 것인지 여부는 신중히 판단하여야 한다.
공무원의 직무유기행위에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공무원의 직무수행의무의 최소한의 이행을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직무윤리나 사명감에서 우러나오는 직무수행의 진정한 성실성이나 효율성까지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국가공무원법 제78조 제1항 제2호, 지방공무원법 제69조 제1항 제2호는 ‘직무상의 의무(다른 법령에서 공무원의 신분으로 인하여 부과된 의무를 포함한다)에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한 때’를 징계사유로 규정하고 있고, 직무유기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행위는 위와 같은 징계사유에 당연히 해당하며, 특히 그 정상(情狀)이 나쁠 때에는 무거운 징계처분인 파면, 해임의 사유가 될 것인바, 그러한 행정상 징계는 공무원의 직무수행의무의 이행을 확보하기위한 효과적이며 충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무유기행위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벌을 다시 부과하는 것은 국가형벌권 행사의 남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징계벌에 그쳐야 할 곳에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국가형벌권 행사에 관한 법치국가적 한계를 넘은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된다.